국어문학창고

이봉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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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도사(道士)의 문학
金 相 一

 

 

 

이봉구(李鳳九) 선생의 생활이나 문학을 돌이켜 볼 때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도연명(陶淵明)의 시가 떠오른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결려재인경, 이무차마훤)

(문군하능이, 심원지자편)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산기일석가, 비조상여환)

(차중유진의, 욕변이망언)

 너무나 유명한 시가 돼서 의역해 보일 필요도 없겠지만, 젊은 독자를 위해서 알기 쉽게 풀이해 보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보잘 것도 없는 집을 지어 이 세상을 살고 있지만, 그러나 택시 따위 달리는 소음이나 공해가 미치지 않아서 좋다. 사람들은 나에게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묻곤 했지만, 글쎄 세상을 멀리 바라보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자연히 마음도 조용해지더구나. 나는 요사이 동쪽 울타리 밑에 핀 국화꽃을 꺾다가 유연하게 저 남산쯤을 바라보곤 하는 것이다. 산 기운은 해질 무렵이 가장 아름다웠고 날아가는 새들은 서로 짝지어 돌아가더라. 물론 이러한 관조에는 참다운 뜻이 있으니, 그것을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구태여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음주(飮酒)> 20수 중의 다섯 번째로 제목이 곧 <음주>인 것이다. 지은이는 술을 마시다 취한 끝에 이것을 읊었다고 하는 것이 오늘날 정평이 돼 있는 모양인데, 명정(酩酊) 중에 시를 읊었다고 하니, 정녕 시인은 술로 먼저 흥취를 돋구지 않고선 노래가 나오지 않았을까.

 새삼스럽지만, 이봉구 선생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소설가이시다. 그런데 소설은 언제 쓰시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명동의 증권 시장 골목께에 '은성'이라는 대폿집이 있었다. 나도 여길 여러 십 번 갔었지만, 들릴 때마다 목로 앞에, 마치 한 도사가 정좌하여 도를 연마하고 있는 자세로, 앞에 놓인 대폿잔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 신사가 있었다. 대폿집에 도를 닦으러 왔을까. 잔을 비우는 것을 목격한 적은 없는데, 어느 사이에 마셨는지 얼굴엔 술기가 올라와 불그스레하다. 나는 이봉구 선생과 수인사한 적이 없어 동행의 친구에게 저 도사가 뉘시냐고  물었더니 선생이시란다. 언제 보아도 선생은 이 대폿집의 목로 앞에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 소설은 쓰는 것일까. 밤늦게 들러 보아도 역시 거기 단좌하고 있었다. 그런데 종종 잡지에 선생의 작품이 나와 있곤 하는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 무엇인가에 홀리어 있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시인 박성룡(朴成龍)씨는 선생의 주도(酒道)에 대해서 '나는 주도란 것이 있는지 잘 모른다.'고 하면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선생은 독작(獨酌)을 좋아한다. 주도에 있어 이 독작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다고 들었으므로 선생의 주력은 그만큼 오래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목적 의식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상주(商酒)라 하고, 그리고 폭주는 급수에도 들지 못한다고 하던가? 아무튼 술이란 아무 이유 없이 마시는 게 높은 단수에 속한다. 선생을 만나면 으레 그 분 앞에는 큰 대폿잔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대폿잔은 언제부터 거기 놓여 있는지, 또 언제 비워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바라보고만 앉아 있는 것 같은 것이 주법(酒法)인 모양이다…….  

  도대체 주도란 무엇인가. 국어 사전을 펴보니까, 주도란 주덕(酒德)을 함축하고 있는 모양인데, '술이 취한 뒤에도 심신을 바르게 가지는 버릇'이라는 풀이가 나와 있다. 이 정의엔 동양 특유의, 혹은 유교적인 도덕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건 지금 어쨌든, 이봉구 선생이야말로 이 주도의 대가가 아니었는가 한다. 방금 박 시인이 보고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선생은 주로 독작이다. 대작을 하다 보면, 대체로 명정하기 마련이요, 떠들게 될 것이요, 정신은 몽롱 상태에 빠지게 됨에 따라 시비가 벌어지고 난폭해질 것이며, 마침내는 심신을 바르게 갖기는커녕 인사불성이 될 게 아닌가. 그러나 독작은 상대가 없을 것이니, 몽롱 상태에 빠지기 전에 자기를 제어하거나 절제할 수 있으리라. 선생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 있어, '은성'에서 20년 동안을 이 주도를 견지해 온 것이다. 명정한 사실을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다. 그 방면의 도사가 아니고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겠다.

  나는 이쯤에서, 분명히 밝혀 둘 사실이 있다. 아까 옮겨서 보인 박 시인의 보고서는, 필자가 스크랩해 놓은 것에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이봉구 선생의 최근작 <차단한 등불이 하나>에서 발췌했다는 사실인 것이다. 선생은 이 작품에서 박 시인의 시를 전사(轉寫)하고, '오래 전부터 피차 호흡이 통해 친근감을 느껴 온 시인인데다' 박 시인의 작품을 신문에서 읽은 '날 밤은 콜라를 탄 소주 한 컵을 마시며 내 나름대로 깊은 사념에 잠기어 있을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애주를 중독으로 속단해 버리는 등' 여러 사람에게서 오해를 받고 있는데 박 시인만은 자기 주도를 제대로 평가해 주어 고맙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술도 하나의 양절주(瀁節酒)로 삼아 조심스레 잔을 기울이며 60고개를 넘어선 것'인데 <명동의 엘레지>를 오독한 결과, 마치 자기가 '분별 없는 술꾼들의 추태를 찬미'하고 보여 준 것처럼 잘못 알고 있는 신문에 대해서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의 동기는, '술이 취한 뒤에도 심신을 바르게 가지는 버릇'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 혹은 광고한 셈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태도는 일방적인 가설을 설정하는 법이 없이, 전혀 선생의 발상이나 신념에 따라 서술한 것이 된다.

  그러나 선생은, '애주를 중독으로 속단해 버리는 등',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유감을 표시해도 좋으리만큼 심신을 바르게 가지고 있었을까. 선생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작가 자신이 주동 인물이 되어 등장했거나 혹은 내레이터로서 등장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독자는 선생의 작품을 자전(自傳)이라고 보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단언해도 좋은데, 만일 그러한 자전적 소설에 엄연히 알콜리즘의 현상이 노출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면, 혹은 음폐하고 있었다면 이봉구(李鳳九) 문학은 가짜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모름지기 진실을 분석해 보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면하는 주제도 거기 있는 것이다. 도사의 가면을 벗겨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앞에 이 작가의 성장이나 반생을 조사해 둘 필요가 있겠다.

 단편 <북청 가는 길>은, 선생의 성장기의, 그 성격을 보여 주고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서두는 다음과 같다.

 회색 바지에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보기에도 끔찍한 쇠고랑을 찬 열아홉 살의 홍안 소년이 함경도 북청으로 압송되어 가고 있다.

 여기 열아홉 홍안 소년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봉구 청년 자신이지만, 그는 지금 식민지 경찰의 손에 의해서 개처럼 끌리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죄명은 그러면 무엇인가. 죄명 따위 있을 리 없었고, '그들 일본 경찰이 말하는 위험 인물인 독립 운동가·사상가·요시찰 인물인 그 선생님의 집을 매일 놀러 다니었으니 그들이 볼 때 잡아둘 만한 죄인일지는 모른다.' 그러니까 조선에서 출생했다고 하는 사실 그 자체가 반역죄에 해당되었고, 그래서 개처럼 끌리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청년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무릎이 상하여 궁둥이로 자리를 옮겨야 했고, 이른봄이라는데 유치장엔 담요도 없었고 들려 오는 소리라고는 동포의 비명(고문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취조와 학대를 받고 있었다. 이유 없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청년은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는 일이라곤 별로 없다. 정녕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였을까. 김동환의 시집 <국경의 밤>을 외우는 것이 고작이다. 일종의 도피가 된다. 도피는 불안이나 공포 따위에서 도주하거나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도덕성도 없지 않았는가 한다. 이 인물은 선이나 악 그 어느 편도 선택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작품의 주동 인물이었다고 하면, 주동인물은 원래 첫 투쟁자라는 의미가 있었다는 점에서 마땅히 반동적인 인물이 돼야 했을 것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감방 속에 귀뚜라미처럼 노래나 읊조리고 있었다. 정적 혹은 중성적 인물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해방 후에 이어 6·25 동란을 거치는 동안의, 선생의 성격이나 퍼스낼리티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을 검토해 보이겠다.

  방금 해설한 작품은 선생의 작품으로는 이채롭게도 3인칭 내레이션의 형식을 빌어 서술하고 있었지만, 이하의 모든 작품들에는 작가 자신이, 혹은 주변의 실재 인물이 그대로 등장하는데, 먼저 <방가로(放歌路)>는, '사무친 그리움과 아픔 속에서 맞이한 팔일오 해방은 나에게 있어 새로운 청춘이 시작되는 날이었다'고, 제법 '청춘'을 노래하고 있었는데, 그러면 내레이터의 청춘이란 어떤 것이었는가.

  내레이터는, 입원중의 오장환이 군중 앞에 뛰쳐나와 목 메인 소리로 시를 낭독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고, 한 소년이 다방에서 베토벤의 <합창>을 손수 들려 준 음악을 듣는 것이다. 또 김동리(金東里), 임서하와 함께 자기 집에서 '진정한 민족 문학의 개화를 위한 작가의 운명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헤어졌다.' 김광균(金光均)의 집에서 한 젊은 시인의 소개를 받고, 김소월(金素月)의 <초혼>의 위대성을 논의한다. 그는 또 '새로 문을 연 서라벌 다방에서 아침과 밤이면 하바네라의 음악을 즐기고,' 이 다방에서는 '커피 잔이 오면 먼저 주머니에서 소독곽을 꺼내어 알콜에 젖은 탈지면으로 손을 닦은 후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 이채로운 한 번역 문학자를 소개한다. 또 '소설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강물에 몸을 던진 다자이(太宰治)의 작가정신과 그 운명에 이날 밤 나는 진정할 수 없는 마음에 대폿집에서 더위도 모른 채 벗들과 술을 마시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내레이터는 도덕적인 선택을 전혀 한 바 없다. 그에 있어 인간관계는 오히려 고통이나 슬픔을 안겨 줄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복잡한 현실에서 한사코 도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레이터에게 있어 현실은, 도연명이 소음이나 공해를 피한 공간에서, 먼발치로 남산쯤을 바라보듯, 이를테면 관조의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내레이터는 그러면 동란 때는 무엇을 했는가. 반드시 적절한 본보기는 못되지만 가령 단편 <잡초>를 들어 보여도 무방하겠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은 세 사람이다. 하나는 내레이터, 그리고 하나는 내레이터의 예전 연인이었다가 지금은 외국에 가 있는 '애라'라는 여자. 또 하나는 프랑스의 젊은 과학자이자 전란을 취재하러 온 듯이 보이는 기자다. 그러면 이 두 남녀는 무엇 하러 서울에 왔는가? 6·25 동란으로 황폐한 서울-'폐허'를 관광(!)하러 온 것이다. 여자는 이런 소릴 지껄인다. '과학자(프랑스 기자)를 따라 폐허를 찾아 왔는데 어쩌면 이토록 상했을까 ! ' 부연해 둘 필요가 있겠는데, 그러니까 폐허를 찾아 관광을 왔는데, 서울 어딜 보나 수복 시민들이 구더기처럼 들끓고 있어 도무지 흥취가 없으니 곧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과학자는 이 여자의 태도와 조금 다르다. 그는 내레이터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잡초가 보고 싶으니 안내를 하십시오. 잡초는 희망의 묘석 틈에서도 자란다고 게오르규는 말했습니다. 하물며 서울 폐허에 돋아난 잡초란 이방인인 나로서도 그저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잡초에 대한 공부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오독할까 싶어 주석해 두겠는데 그가 말하는 '잡초'의 의미는, 아무리 짓밟혀도 재생하는 생명력의 비유쯤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내레이터는 이러한 관광객들에 대해서 어떠한 반응을 보여 주었을까. 전혀 도사적(道士的)인 것이다. 도사는 원래, 희노애락지 미발위지중(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이라-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따위 감정을 밖에 표출하는 것을 삼가야 하고, 그것이 도사의 이른바 중용(中庸)이란 다지만, 이 내레이터는 도무지 감정이 없는 중성적 인물이다. 여자의 굴욕적인 언동에 대해서도 결코 노여워하지 않았고, 그녀가 '살아 있는 한 나의 청춘도 살아 있을'거라는 둥 점잖기만 하시다. 또 과학자가 잡초론을 연설해도 이렇다는 표정도 없이 충실한 안내자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간에 선택이 없는 순종이 있었고, 한편 여자나 과학자도 일방적인 행동이 있었을 따름이다. 이들 일행이 들르는 장면도 이봉구 문학의 어떤 장면이냐가 거의 그러했듯이 다방이요, 바요, 대폿집이다. 장면도 고정 관념처럼 변치 않은 셈이지만, 내레이터는 음악 다방에서 술에 젖어 번득이는 내 입으로 서정주(徐廷柱)의 <국화 옆에서>를 낭송하는 것이다. 이러한 에피소드도 이봉구 문학의 거의 어디서나 나타나는 스테레오타입이었지만, 이번에는 프랑스의 과학자가 도사적인, 이를테면 범신론적(汎神論的)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여자에게 '당신의 얼굴에도 지금 국화꽃이 한창 피어져 있다'고 하는 언동이 그것인데, 이 인물이 작가의 분신이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과학자도 마땅히 도사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으리라.

  보다시피 이 작품은 이봉구 선생의 6.25 동란 때의 현실이나 소음엔 아랑곳하지 않고 이에 따라 다만 먼발치에서 관조만 하고 있었다는 한 보기가 되지만, 휴전이 되고 조금은 생활이 안정된 듯이 보이던 시절의 작품엔 어떤 것이 있었을까.

  가령 중편 <산타마리아>를  들어도 좋겠다. 이 작품의 내레이터도 예외 없이 수면 시간을 제외하곤 노상 술을 즐기고 있었지만, 문제는 작가 자신이 곧 음주 명정하여, 예의 몽롱 상태에서 이 작품을 쓰지 않았는가 추정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토리의 전개(플롯이 아니다. 이 봉구 문학엔 플롯이 있을 수 없다. 성격의 상충(相衝)이 없는 곳에 플롯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가 비연대순적(非年代順的)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도입부에선 과거와 현재 따위 시제의 구분이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할 일도 없고 반가운 일도 없는 막연한 피난의 하루하루가 대구에서 그것도 무더운 여름날 시작되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6·25 당시를 서술하고 있는가보다고 믿고 있었는데, 한 참을 읽다 보니, 플래시백도 없이 '6·25 때 나는 집에서 물려받은 시계' 어쩌고 하는 서술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의 도입부는 언젯적 피란이 되는가. 참고 더 읽어 가면, 내레이터는 거리에서 한 친구를 만나는데, 거두절미하고 이런 대화가 나오는 것이다.

 "무슨 일로 이 더위에 대구에 오셨어? 원고 때문인가요?"

 "아니, 더워서……왔어……"

 "무슨 말씀인지? 피서는 못할지언정 더위를 찾아 일부러 오셨다니."

 "허어."

 "술 좀 하신 것 같아, 말씀이....."

  이 대화를 읽고 나서도 시제는 분명하지 않다. 더 읽어 내려가니까, 내레이터는 '이곳 출판사에 넘겨 줄 원고가 끝나는 날까지는 이곳에 있어야만 되고' 한다는 서술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의 도입부나 전개부터는 6.25 당시의 피란 생활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무엇인가. 이 작가의, 예의 주도에서 비롯하는 알콜리즘과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는 도사의 가면을 벗겨 볼 차례가 되었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면, 내레이터는 두 여자(독신이고 젊다)와 한 지붕 아래 있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정상적인 남녀라면 의당히 성적(性的) 관계쯤 있어야 한다. 작가는 그렇게 장면을 설정하고 있었으니까. 남녀들은 천사처럼 서술되고 있었다. 사실 이봉구 문학에서 성적 관계가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정녕 선생은 도사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성적 임포텐스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만일 선생이 알콜리스트였다고 하면 그러한 자기의 고통이나 공포를 분석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작가의 진실이다.

 이봉구 문학이 자전적인 형식을 빌고 있다는 사실은, 선생 자신의 구태여 그것을 강조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 그것은 문단의 정평이기도 했다. 예의 단편 <차단한 등불이 하나>도 맨 처음에 지적한 것처럼 전혀 자전적인 작품이었지만, 여기서 선생은 마침내 자기가 알콜리스트임을 증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을 도사의 명예상 음폐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의식하고 있지 못했을 따름이다. 내레이터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돌팔이 의원의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고, 다른 장면에서는 차를 기다리다가 포도 위에 쓰러져 '나는 뻣뻣하게 굳어 버린 두 다리를 있는 힘을 다해 주무르기 시작했다'는 증상이 모두 그것이다. 알콜리즘에 의한 신경 장애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애주를 중독으로 속단해 버리는 등' 해명은 무엇인가. 이건 방언(放言)인 것이다. 따라서 정색을 하고 상대할 것이 못되지만, 원래 알콜리스트는 종종 전후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방언을 하고도, 그 의미를 의식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감정이나 기억이 이미 둔마(鈍麻)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봉구 문학의 작중 인물의 인간관계가 모두 일방적이요, 감정의 정상적인 교류나 혹은 갈등이 아주 제한되고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실 속에서 찾는 人間學                

 한 인간을 크게 두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향외적(向外的)인 면과 (向內的)인 면이 그것이다. 전자를 밖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라면, 후자는 내면으로 지향해 가는 인간의 내적 모습을 말한다. 넓게는 정신세계로서, 작가인 경우 그것은 작가의 정신 세계, 곧 작품 세계가 될 것이다.

 이 양자의 합일에 의해 한 인간이 형성된다 하여 틀림이 없다.

 이제 필자는 인간의 연구 대상으로서 작가 박 연희(朴淵禧)씨의 향외적, 향내적 인간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먼저 행외적인 측면으로서, 1918년생의 작가 박 연희는 함남 함흥에서 출생, 광복과 더불어 공산 치하의 학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월남했다. 이어 월간 문예지 <백민(百民)>, 문예지 <신조(新潮)>, 월간 종합지 <자유세계> 등을 맡아보며 작가로서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46년 10월에 단편소설 <쌀> (백민)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고, 이후 <삼팔선>, <고목>, <빙화(氷花)> 등을 발표하면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일찍이 러시아 문학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이 작가는 가난한 서민감정과 사회의식을 강조했고, 특히 6.25사변을 계기로 하여 그러한 위식은 더욱 강조되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는 다음 항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지겠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인간적 휴머니즘을 깊이 간직한 작가이다. 언뜻 보기에 무뚝뚝한 사람처럼 보이나, 그 것은 어디까지나 인상에 불과할 뿐 실은 그렇지도 않다. 솔직 담백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불의에는 과감하고, 정에는 정으로 이끌려 가는 다정다감한 인간미가 풍부한 작가이다.

  옛말에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술자리를 같이 해 보라는 말이 있거니와 박 연희의 인간을 읽으려면 술잔을 같이 나누어 보는 것도 그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잔을 기울이면 기울수록 마치 사랑방에서 맡은 듯한 구수한 서민의 냄새를 맡게 한다. 그 냄새는 몸에서 저절로 배어 나온 것으로 가까이하면 할수록 정에 끌리고 만다. 체험을 통해서 얻은 그의 솔직하고도 순박한 인생담은 더욱 사람을 끌게 하고, 바리톤 같은 굵은 목소리에 제스처를 써가며 인생을 표현할 땐 새삼 그의 따스한 인간미에 젖는다. 청탁을 가리지 않는 그의 술잔은 소탈하기 이를 데 없고, 한 마디로 말해서 텁텁한 막걸리 같은 성미이지만, 그러나 불의나 부정을 꼬집을 때의 모습은 날카로운 독수리와도 같다. 앞서 말한 대로 텁텁한 막걸리 같은 성미에 고량주같이 톡쏘는 일면이 없지 않다. 그는 그토록 불의와 부정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다. 양주보다는 한국의 탁주에 가깝고, 비프스틱보다는 우리의 빈대떡에 가까우며 플라스틱 제품보다는 우리의 함지박에 가까운 한국적 인간미의 작가, 그가 바로 박 연희가 아닐까.

  그는 이런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변이 강한 사람이다. 세상을 재주로 살아가는 작가가 아니라, 노력으로 살아가는 집념을 무기로 삼으며 살아가는 성실파이다. 그의 생활 태도에서 우리는 그것을 읽는다. 검소하면서도 해야 할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그는 마치 불도저 같은 집념으로써 추구해 간다. 한 번 잡은 것은 두 번 놓치지 않으며, 꼬리에서 꼬리를 물면서 파헤쳐 나간다. 그 하나의 실례로서 몇 해 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홍길동전>의 작가적 태도만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작품을 씀에 있어 손으로 쓰는 작가라기보다는 발로 쓰는 작가이다. 그만큼 주어진 소재에 몸을 던지고 역사적 고증에 발(취재)로써 입증시킨다. 익지 않은 재주로 독자에게 야합하는 작가가 아니라, 집념으로써 작가적 성실성을 다하되 평가를 독자에게 일임하는 작가이다. 그런 면에서 독자에게 야합하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를 리드하는 작가이며, 독자와 야합하라고 할 때 차라리 붓을 꺾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작가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작가 정신이라 하여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를 대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이조 자기를 연상한다. 이조 자기의 미(멋)가 평평범범(平平凡凡)한 미, 꾸미지 않은 자연미, 꾸밈이 없는, 사심이 없는 미, 소탈하면서도 솔직한 미, 객기도 없고 속기도 없는 순박한 미에 있다고 한다면, 작가 박 연희야말로 그런 미(멋)를 지닌 사람일 것이다. 자기의 몸이 완전 무결한 원형이어도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자기에 좀반점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담은 김치 맛이 변한단 말인가. 거기 담아 둔 탁주 맛이 달라진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이조 자기가 사심이 없고 솔직하기 때문에 불의와 부정, 가식을 싫어하듯 욕심이 없고 꾸밈이 없는 솔직한 인간이기 때문에 부정과 불의에 과감하다. 무엇인가 구린내가 있는 사람은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기 쉽지만 그에게는 그런 여지가 없기 때문에 과감할 수 있는 것이다. 꾸밈이 없는 순수한 한국적인 자기, 작가 박 연희를 이렇게 봄은 비단 필자만의 견해는 아닐 것이다.

3

  이상에서 필자는 작가 박 연희의 향외적인 인간상을 대충이나마 살펴보았다. 얼마만큼 정확성을 기했는지는 의문이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적 견해임을 밝혀둔다. 그렇다면 작가로서의 지향하는 향내적인 세계(사상)는 무엇일까.

  필자는 앞서 인간으로서의 휴머니즘을 지니면서도 불의와 부정에는 과감한 작가임을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작가 정신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애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문단 데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로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제 향내적인 작가 정신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선 직접 작품에 임하는 것이 그 첩경이 될 것이다. 이의 구체화를 위해서 박 연희의 몇몇 작품을 살핀다.

  박 연희 문학의 제1기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작품 <고목>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그의 초기 문한 세계는 허무주의, 아니 퇴폐적 무상주의자였음을 연상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인생의 무상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제2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문학은 변모를 보이기 시작했으니, 6·25를 계기로 하여 삶의 무상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또 하나의 인간사회를 맛보았고, 그 속에 살면서 퇴폐적 무상주의에 사로잡힌다는 것이 얼마나 무가치한 삶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불안과 공포와 부정이 서식하고 있는 절망의 벽(현실) 앞에서 새로운 생활의 탐구를 절규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 첫 작업으로서 사회악, 정치악이 빚어냈던(자유당 시대) 퇴폐적 현실에 대해 반항의 기치를 들기 시작했다. 현실을 정시하고, 그에 밀착하면서 자유와 인간의 옹호를 그의 작품 세계에다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이것이 제1기에 서 2기로 가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단편 <증인>이 이 승만 정권의 독재성을 고발한 것이라면, <닭과 신화(神話)>는 사회악과 정치악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사실적 수법으로 다룬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방황>은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대륙을 휩쓸고 있을 무렵, 일본 군대에 끌려간 한국 젊은이와 일본인 사이의 인간애를 그린 것이다. 또 작품 <변모>는 사회악과 정치적 부조리의 단면을 고발한 작품이다. 또 작품 <환멸>은 말 그대로 인간 사회의 환멸 상을 그린 것으로서 환경의 지배에 따라 타락해 가는 한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이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현실 의식이 강한 작품을 쓰고 있음을 본다. 그리하여 그의 첫소설집 <방황>의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 '기계적인 조직 속에서 인간이 자동적으로 인형화되어 가려는 현실 속에서 인간적 자유의 욕구를 추구'하려는 삶의 의와 '참된 인간성을 찾기 위하여 부정을 거부하고, 신뢰할 수 없는 그 현실에 따사로운 체온을 찾으려고' 헤매고 있는 모습이 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인간 속에서 인간을 찾으며 몸부림친다. 참다운 인간을 구하기 위해 오늘의 인간을 꿰뚫으며 그 부조리를 고발하고 파헤친다. 오늘의 인간사회에서 불신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는 새로운 인간상을 갈구하며 생의 강렬한 의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생을 영위해 감에 있어, 삶의 의지로써 꿰뚫으려 한다. 다시 말해서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되, 새로운 인간 사회를 삶의 의지로써 추구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의 의지란 주어진 자기의 삶에 충실하며 책임을 다해 보려는 자유에의 욕구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박 연희가 작품을 창작함에 있어 제1신조로 삶는 철학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일러, 증언의 문학, 고발의 문학을 인간의 상처, 시대의 상처를 폭로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이에 박 연희 문학은 인간의 내적 모순과 사회의 모순을 폭로 고발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인간상을 발굴하려는 데 의의를 둔다.

  그의 작중 인물들은 한결같이 시류를 타고, 행운에 놀아나는 인물이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들처럼 병적인 인상을 주리만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향내적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면, 사회악과 정치악 때문에 생활 능력과 행동력을 박탈당한 채, 그리고 일상생활로부터 추방당한 채, 방황과 환멸 속에서 자기 세계를 찾아 몸부림치는 인간, 그러면서도 그런 비정의 현실에 고발자(증인)가 되어 보려는 인간, 바로 이것이 박 연희 문학의 영토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물들이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향내적 인간상이 작품 <닭과 신화>의 주인공 '나'라고 한다면, 그리고 정치악 때문에 생활능력과 행동력을 박탈당한 방황자가 <증인>의 주인공 '준'이라고 한다면, 일상적 퇴폐적 사회악 때문에 쫓겨난 인간상은 작품 <환멸>의 주인공 '훈'을 들 수 있다.

 준은 신문사에서 권고 사직을 당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였다. 헌법 개정안 부결에 대한 기사 때문이었다. 여당지면서 오히려 야당의 입장을 유리하게 썼다는 것이 문제되었던 것이다.

 이는 작품 <증인>의 일부이다. 이 통에 '준'은 생활력과 사회적 활동력을 잃어버린 실업자가 되었고, 끝내는 상상도 하지 못할 사상범으로까지 몰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준'은 자유당의 정치악이 빚은, 인권을 유린당한 그 표본이 되고 만 것이다. 오늘에 와서 준은 적어도 자유당 치하때 입은 인간의 상처, 시대의 상처를 고발하는 데 있어 하나의 정직한 증인이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사회악이 빚어낸 또 하나의 인간상을 살펴보자.

 작품 <환멸>의 주인공 '환'은 빨갱이였다. 그래서 형무소 생활을 했다. 개과천선하여 자유를 얻었으나 사회는 그를 냉대했다. 더구나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다. 그렇다고 놀고 먹을 수는 없는 세상, 직장을 찾아 방황하기에 이른다.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사회악이 빚은 젊은이의 반항은 그로 하여금 황금 제1주의를 낳게 했고, 그 황금주의는 끝내 인간악을 낳고 말았다. 그러니까 사회악은 '훈'을 공갈과 협박과 사기와 날강도 짓을 직업으로 삼게 하는 악에 찬 인간상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그래서 '훈'에겐 이 사회가 환멸이었다. 그에게 있어 사회의 환멸은 곧 인간의 환멸이었고, 인간의 환멸은 바로 생애의 환멸이기도 했다. 이런 삶의 환멸 속에서 그는 의식적으로 인간악을 범하기에 이른 것이다. '훈'은 형무소 감방안의 막다른 골목(극한상황)에서 목숨을 부여안고 몸부림치는 얼굴들을 보았다. '밥이 제일이요', '밥 이외에 무엇이 있소?' 이토록 밥을 찾다가 죽어 가는 철학 교수의 최후를 보았고, 전라도 청년을 보았고, 친구 '권'의 죽음을 정시(체험)했다. 그래서 한 번밖에 없는 죽음을 자살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악이었다. 자살 의식이야말로 그에 있어서는 하나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살고 있다는 그 자체부터가 죽음에 대한 하나의 반항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원죄 의식가지도 부인하고, 강자 생존의 철칙을 이행하기 위해 그는 의식적으로 역설적으로 인간악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한편, 박 연희 문학의 작중 인물들은 대개 고행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고향 상실자로서 고향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이다. 인간을 생의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게 하며 자기 내면의 갈등을 폭로시킴으로써 적나라한 자아의 성실성이 드러나도록 한다. 그리하여 일상적, 퇴폐적인 세상 사람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인간(고향)으로 돌아오는 것, 이것이 자유로운 인간 존재의 존재 방식으로 믿는다. 여기에 그의 문학적 이상이 있다. 그러니까 일상적 입장에서 수반되는 은폐적인 경향에 반항하는 문학, 즉 비은폐성의 문학(인간), 바로 이것이 박 연희의 문학의 본체요 이념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인간을 사회에다 참여시켰다. 참여한 현실 속에서 방황케 했고, 방황하는 현실 속에서 환멸을 느끼게 했으며, 사회악이 빚어낸 환멸의 현실에 대해 성실한 증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지금까지 걸어온 박 연희 문학의 길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인간의 성실성을 제시하려 한다. 그러면서 그의 주인공들은 고향상실에서 오는 향수를 그리워한다. 사회악과 정치악의 현실을 방황하면 할수록, 환멸을 느끼면 느낄수록, 성실한 증인이 되면 될수록 정비례해서 새로운 고향에의 동경을 갈망한다. 그의 고향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생득적인 고행의 개념이 그것이요, 고향 상실에는 새로운 고향 추구가 또 하나의 그것이다. 작품 <고향>의 주인공 '달수'가 그리는 고향의 의미가 생득적인 것이라면, 괴뢰 군의관의 향수는 새로운 고향 발견에의 갈망이다. 고향을 동경함에 있어 '달수'와 괴뢰 군의관의 향수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고향에의 동경이라는 면에서는 변함이 없다. 바로 그 점에서 그의 문학이 휴머니즘의 정신과 일맥 상통하고 있음을 본다.

 새로운 고향에의 발전-, 이는 작품 <방황>에서 절정에 이른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새로운 고향(자유)을 발견하려고 방황하는 두 청년(한국인과 일본인)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아우성치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주인공 '용일'(한국인)과 '요네가와'(일본인)는 피가 다른 이민족이다. '요네가와' 조상들의 수작으로 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식민지 하에 있었던 우리 청년들은 그들의 전쟁의 도구로 끌려갔다. '용일'이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전쟁에서 탈출, '요네가와'와 새로운 삶에의 땅(고향)을 찾아 헤맨다. 지금은 같은 상황에 던져진 탈주병, 사선을 헤매던 극한상황에서 새로운 고향을 동경하며 '살아야 한다.'는 같은 이념 하나로 그들은 민족의식도 국가의식도 초월했다. 그들은 삶 앞에서 순수한 인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땅에의 애착에 몸부림친다. 결국 인간은 사회악의 속에서 영원한 고향을 찾는 존재이다. 박 연희 문학은 바로 이 점에서 고향 귀의에의 인간상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새로운 인간에의 발견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고향에의 갈망이기도 하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할 과정이면서 과제일 것이다.

 4

 다시, 제3기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의 문학에 접어들면서 박 연희 문학은 또 하나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즉 역사소설에의 향수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역사소설의 본령은 지나간 과거를 통해 오늘의 인간상을 살피고 내일의 새로운 인간상 발굴에의 자(資)로 삼자는 데 있다고 한다면, 박 연희는 역사를 통해 그것을 찾고 있다. 그 작업의 하나가 역사소설에의 향수일 것이다. 즉 어제의 거울을 통해 오늘의 나를 보고, 다시 그 나를 통해 새로운 나를 예약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역사성에서 찾는다. 최근에 와서 그가 역사소설에 매력을 느낌도 그 일환책의 하나일 것이다. 현실을 방황하다가 환멸을 느꼈고, 그런 현실을 고발함에 있어 증인이 되어 온 오늘의 우리에게 새로운 고향 제시를 그는 역사성에서 찾고 있다. 역사를 통해 인간을 반성하고, 역사를 통해 앞으로 도래하여야 할 인간을 탐구한다. 여기에 그의 문학의 또 하나의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작가 박 연희가 역사적 판단력으로 제시한 인간상을 통해 오늘의 나를 돌이켜보고 내일의 나를 창조해 갈 일이다. 박 연희의 역사소설은 바로 여기에다 그 근간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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