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이범선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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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시대(戰後時代)의 핵(核)  
朴東奎

 

 

1

  50년대란 시대적 술어(術語)는 우리 소설에 있어서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 민족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혼란과 전쟁 이후 폐허와 공허의 광장에 서서 새로운 소설 문학의  문을 연 역사적 의의뿐만 아니라, 사회사적(社會史的) 측면에서도 자유롭게 서구 문명과 직접적인 교류를 할 수 있게 되고, 동양의 지방색적(地方色的) 요인과 한국의 인습적 문화 영향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이국(異國)의 병사들을 통해서, 혹은 그들의 문화적 성향들로 인해서 충돌하고 변증되고 갈등을 일으키던 시대였다는 점도 중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민족이 일찍이 겪은 바 없었던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해서 사회와 인간과 존재와 생명이라는 현대 정신 문명의 핵체(核體)들을 직접적으로 생사의 현장에서 확인해야 하는 어렵고 허무한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특이한 이런 상황을 담아야 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50년대라는 시대적 특색을 형성한 것이다. 이에 대해 55년 전후의 소설문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다.

  ① 전쟁 소설 · 정치 소설 등이 나타난 것이 새로운 국면이다. ……평상적(平常的)이고, 일상적인 국면이 아니고 괴기(怪奇)하고 극단적인 시튜에이션을 만들어, 인간의 능력을 시련하고, 심리적인 인간성을 표상하고 있다.

  ② 깡패 소설이 등장하고 있다. 이문희(李文熙)의 <흑맥(黑麥)>, 손소희(孫素熙)의 <태양의 시(時)>, 손창섭(孫昌涉)의 <사제한(師弟恨)>등은 힘의 세계를 취급했는데, 기존 질서에 대항하여 힘의 윤리를 내세우고 있다.

  ③ 창부의 소설이 나오고 있다. 양공주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 오영수의 <안나의 유서 (遺書)>와 사창굴의 여인을 다룬 이문희의 <제목 없는 여인>등은 작가의 휴머니즘의 발로이겠다.

  ④ 해방 전의 연애 소설이 차츰 성소설(性小說)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⑤ 실존주의와 함께 프랑스의 앙티로망이 시도되고 있다. 이호철 (李浩哲)의 <무너앉는 소리>나 이광숙 (李光叔)의 <두 소녀> 등은 그 영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앙티로망이 소설로서 크게 유행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정 태용 (鄭泰榕), 《해방문학 20년(解放文學二十年)》34∼35페이지.

  이러한 분류는 그 타당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겠으나, 형이상학적인 현대인의 내면적 상황을 주목하는 작품과 사회 비판적인 작품, 전후의 세대가 겪고 있는 하이틴의 세계를 다룬 작품, 고발문학 계열의 작품, 니힐리스틱한 현실관의 소설 등, 이제까지 우리문학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향의 문학이 대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소설에 흐르고 있는 대체적 경향은 전쟁이 빚어 놓은 허무의 심연과 그 심연에 던져진 인간의 참상들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참상은 인간을 생각하고 그 인간의 존재를 어떻게 부각시켜 현실에 대응해 나가겠느냐 하는 논리적 체계의 철학서보다도, 그 참상을 통해서 휴머니스트로서 느끼는 비애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그들의 작품의 주인공 대부분이 매춘부. 실직자. 병자. 고아. 소시민 등 사회로부터 유리되거나 거세당한 무기력하고 낙오하고 힘없는 사람들인 것의 원인이 된다.

  이 현실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원천적 힘---도덕률. 가치 의식. 윤리관. 인간 의식. 인간 상호간의 신뢰 등---을 사실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실한 힘을 어떻게 찾아야 한다는 뚜렷한 지표도 없었다.

  그 당시에 등장한 작가들의 작품을 열거하면, 장용학(張龍鶴)의 <요한 시집(詩集)>, 박연희(朴淵禧)의 <증인(證人)>, 손창섭(孫昌涉)의 <유실몽(流失夢)>, 서기원(徐基源)의 <암사지대(暗射地帶)>, 한무숙(韓戊淑)의 <감정이 있는 심연(深淵)>, 선우 휘( 宇輝)의 <불꽃>, 송 병수(宋炳洙)의 <쑈리 킴>, 오상원(吳尙源)의 <모반(謀反)>, 오수영의 <명암(明暗)>, 유주현(柳周鉉)의 <장씨 일가(長氏一家)>, 이호철(李浩哲)의 <파열구(破裂口)>, 이범선(李範宣)의 <오발탄(誤發彈)>, 김성한(金聲瀚)의 <암야행(暗夜行)> 등이다.

  이들 작품들은 대부분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의나 일상적 상황보다도 전쟁이 빚을 수 있는 극한의 상황이나 전쟁의 상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전시대의 누구도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참인간의 실상(實像)을 현실의 차원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일제 시대의 소설이 지닌 허구적(虛構的) 현실 감각의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페허의 벽돌담에 기대선 채 살아가야 하는 고달픈 그들의 현실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면 현실을 수용하는 작가 정신의 변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변혁의 바닥에는 5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축(軸)으로 20세기의 새로운 문화권에 직접적으로 대응해 나가게 되었다는 보다 보편적인 문학 정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전후 시대의 개막이 가져온 생명의 실상에 대한 추적이 단순한 한국적 특이성이라는 수직적인 면만 아니라 수평적인 면에서 20세기의 세계 정신의 유동과 일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실존주의, 앙티로망, 잃어버린 세대 등 서구 문화의 유행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전개를 모색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수용(受容)이나 계승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이 담겨진 찌그러진 깡통으로 만든 집 속에서의 고독한 자기 성찰과 극기의 자세를 50년대 작가들이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2

   50년대의 작가들 중 이범선은 <오발탄>으로 해서 50년대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성장 과정은 그의 대표작이라는 <오발탄>을 정점으로 초기의 <학 마을 사람들> 등 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근래 이보영(李甫永)은 이범선(李範宣)에 대한 재평가를 말하면서, 오늘날 문학 독자들은 일상적인 불안감 때문에, 그 작품의 항구적인 예술적 가치는 어떻든,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 심각한 것에 민감한 반응을 잘 보이고, 그때그때 월평(月評)과 독자의 반응이 좋은 것이면 과대 선전을 하는 저널리즘의 병폐도 거들어서 이범선의 잔잔한 목소리를 소극적 ·퇴영적인 것으로 잘못 간주하기 쉽고, 반면 상당히 격렬한 목소리가 담긴 탓으로 <오발탄>이 가장 중요한 대표작처럼 여겨져 온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범선의 대표작에 대한 새로운 제언은 그의 문학적 이력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20년 평안 남도 안주군 신안주면에서 태어났다. 30세 때 월남하여 거제 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36세가 되는 1955년 김동리(金東里)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지에 단편 <암표>(4월호)와 <일요일>(12월호)이 실림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

  1957년 《현대문학》에 <학 마을 사람들>을 발표하여 많은 문학인의 관심을 끌었고 이어 《사상계》 에 <사망 보류(死亡保留)>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이범선의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후 그의 대표작이라 불려지는 <오발탄>을 《현대문학》에 1959발표하여 61년 제5회 동인 문학상(東仁文學賞)을 탔다.

  그 후 오월 문예상(五月文藝賞) 장려상을 탄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장편 소설도 많이 발표하였는데 <동트는 하늘 밑에서> . <밤에 핀 해바라기> . <하오(下午)의 무지개> . <구름을 보는 여인> 등 신문 연재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이러한 창작 활동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잔잔한 목소리`로 열심히 그의 문학 수업을 엮어 왔다. 따라서 진실로 그의 대표작이 어느 것이겠는가 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논의되어져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3

  이범선의 <오발탄>은 분명 다시 문학계를 진동시킨 문제작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자극적이고 감동적인 그의 독특한 설법의 효과 때문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가 겪고 있던 참다운 시련, 그것을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면 <오발탄>은  그러한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제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중되는 생활의 압력에 의한 자포자기적 상태의 소시민 누구나가 겪고 있던 사회 부정에 대한 반감을 가장 직설적인 방법에 의해 표상시켜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이 단지 이범선의 '모든 것'은 아닐지라도 한국 소설사에 하나의 큰 파동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작품 내부적인 면에서도 소시민의 생활과 양심, 민족적 비극인 6.25, 그리고 인간의 생존이라는 것들이 완전히 돌돌 뭉쳐져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벽성을 지닌 <오발탄>에 대하여 김현은 이렇게 말한다.

  이범선의 특색은 대부분의 평자(評者)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들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는 <오발탄>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짙은 리리시즘을 밑바닥에 깐 회상적(回想的) 취향, 얼마 되지 않는 봉급에 뿌리혹박테리아처럼 다닥다닥 매달린 식구들을 즐겨 보여 주는 그의 소시민에 대한 완강한 집착, 그러면서도 양심이라는 가시를 끝내 빼 버릴 수 없는, 아마도 틀림없이 기독교적 교육의 잠재인 듯한 도덕을, 이런 모든 그의 특성은 <오발탄>에서 희귀할이만큼 완벽한 예술적 환치를 획득하고 있다.

                                         -----김 현, 《사회와 윤리》 183페이지

  백승철(白承喆)은 이렇게 말한다.

  <오발탄> 속에는 이범선이 즐겨 그려 온 비극적인 삶의 절망 · 좌절 · 통곡 · 비애 ·발악이 중하게 집약되어 있는데 작가는 인간에 대한 사회의 압력, 학대의 양과 질이 어느 만큼인가 하는 것을 아주 하드보일드하게  추궁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고발 문학의 자기류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오발탄>에서처럼 사회에 대한 정확한 주제 의식, 상황 속에서 피흘리는 장본인들에 대한 동정 없는 응시, 그리고 그러한 조건 속에서 벌어지는 행동 반경을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발탄》 해설 309페이지

  이 두 가지 견해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범선의 <오발탄>이 지닌 허무주의적 색채와 고발 문학적 성격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먼저 <오발탄>의 서두를 통해서 접근하여 보기로 한다.

  계리사 사무실 서기 송철호(宋哲浩)는 여섯 시가 넘도록 사무실 한구석 자기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미진한 사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부는 벌써 집어치운 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니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딴 친구들은 눈으로 시계 바늘을 밀어 올리다시피 다섯 시를 기다려 후딱 나가 버렸다. 그런데 점심도 못 먹은 철호는 허기가 나서만이 아니라 갈 데도 없었다.

  이 서두에서 보듯이 송철호는 착실하고 양심적인 계리사 서기다. 그러나 그에게는 6.25의 역사적 상처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이북에서 넘어와서 이 암담한 생활에서 정신 이상을 일으켜 '가자'고 외쳐대는 어머니, 그에게는 진정한 사상적 대립의 현실적 논리를 전개시킬 수 없는 그런 것이 송철호를 누르고 있다. 또한 군대에 가서 상이군인으로 돌아와 몇 년을 빈둥거리는 아우는 그에게 또 다른 압력이 되고 있고, 양공주로 전신한 누이동생은 그에게 도덕적 · 윤리적 추락의 함정을 낳게 하고 있다.

  또한 '지난날 자기가 음악을 했었다는 것도, 미인이었다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남편과 어린 딸에만 매달려 있는 만삭의 아내'는 그에게 또 다른 인간적 고뇌의 샘이 되고 있다. 이러한 그를 둘러싼 인간군들이 보내는 무한한 현실적 압력을 헤쳐 나가야 하는 착실하고 양심적인 송철호의 설정은 작가의 현실에 대한 격렬한 항변의 양식이다.

  이범선은 《현대한국문학전집(現代韓國文學全集)》의 창작 노트에서, 어느 날 일과를 끝내고 대야에 손을 씻으려고 담갔을 때 손에 묻은 잉크가 번져 나가는 것이 그의 혈관 속에 든 피가 새어나가는 것과 같은 착각을 가졌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실상 그러한 장면이 <오발탄>에 등장한다.

  잉크 그것은 잠시 대야 밑바닥을 기다 말고 사뿐히 위로 떠올라 안개처럼 연하게 피어서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손가락 끝을 중심으로 하고 그 색의 농도가 점점 연해져 갔다. 맑게 갠 가을 하늘색으로 대야 가장자리까지 번져 나간 그것은 다시 중심의 손끝을 향해 접어 들며 약간 진한 파랑색으로 달무리모양 그런 둥그런 원을 그렸다.

  피! 이건 분명히 피다.

  이 '피'의 의미는 이 범선 소설의 열쇠가 된다.

  그의 '피'는 고향을 두고 온 설움의 향수인 도시에 양심의 원천이 되는 극히 감상적인 의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의 격렬한 항변이 섞인 고발적 속성도 소시민의 어쩔 수 없는 한계 안에 머물게 하고, 그리고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리리시즘의 가락으로 우리 마음에 뜨거운 눈물로 적셔 들게 되는 것이다.

  그의 초기작인 <학 마을 사람들>도 이러한 불행의 수레바퀴를 '피'로써 씻어 내고 있다.

  강원도 두메산골의 한 마을, 학 마을이라 불리어지는 마을에 해방과 더블어 학이 돌아왔지만 6.25를 거치는 동안 학은 살해되고 학이 깃들던 나무도 불타 버린다. 이 학의 불행은 선의의 인간군에 의해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되고 있다. 즉, '억쇠의 실연, 그의 손자 덕쇠한테 삼각 관계에서 패한 박훈장(朴訓長) 손자 바우의 보복 행위' 등이 그 불행의 인간적 형틀이지만, 그것은 학이 지닌 자연과의 교감(交感)에 의한 동화처럼 그것을 영원한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가장 인간적인 감정으로 용인하고 그것에 순응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양식은 불행을 피의 외연(外延)으로 보고 뜨거운 인간의 본질을 피의 내포(內包)로 보는 것이다. 그는 이 내포와 외연의 '피'의 승화를 통해서 역사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무력한 소시민의 현장에 초점을 두고 선량한 인간만을 설정해 온 것이다.

 4

  이범선은 고발의 항변을 소리높이 외치는 소설가는 분명 아니다.

  오히려 산길 속에 묻혀서 우는 꾀꼬리처럼 자연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선량한 인간에 대한 연모의 정이 넘치는 작가이다. 그가 즐겨 다루는 대상, 즉 소시민군(小市民群)---<피해자> . <문화 주택> . <사망보류> 등---은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의 한 변신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변신은 약삭빠르고 살아가는 방법에 익숙하고 영악한 그런 타이프가 아니라, 오히려 누덕누덕 불행으로 먹칠된 불쌍한 얼굴이다. 그의 인간군은 따뜻한 선의의 미소와 인간 가족의 차다운 혈연이 뭉쳐져 있다.

  단지 그들은 이 현실을 헤쳐 나가는 투쟁적이고 과감한 생존을 위한 계략을 지니지 못하고 회상하는 동결의 상태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에게 산뜻한 미소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의 작중 인물의 인간 관계가 보여 주는 아름다운 양심과 선량한 인정의 가장 정감스러운 혈연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이 고발 문학의 참다운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현실을 보는 냉정한 자세에서 우러나온 표상 형식(表象 形式)일 뿐이다. 한국 소설이 향수와 비애의 애잔한 멋을 내면에 깔고 험한 세상을 맑고 투명하게 그려나가는 그의 수법은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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