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이문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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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깨달음의 문학세계
金鍾澈

  

 

이문구는 우리 나라의 현존 작가 중에서 농촌의 현실에 가장 밝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충남 보령군 대천읍 대천리 속칭 관촌 부락에서 태어나, 그 반농 반어(半農半語)의 고장에서 농어민의 생활을 유년기부터 보고 겪으면서 자랐고, 중학생의 몸으로 손수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는 어른이 되어 서울에서 작가로 활동하다가 77년 5월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행정리 (발안)에 삶의 터를 정하고 농민들과 어울려 여러 해 동안 생활했다. 이문구의 어린 시절과 발안 시절의 생생한 체험, 그리고 그가 서울에 사는 동안 가끔 찾아가곤 했던 고향 대천에서 보고 들은 일이 「관촌수필」과 「우리동네」 연작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관촌수필」은 77년부터 78년까지 연작 형식의 소설로 발표되었다. 연작의      편인 「일락서산」,「화무십일」,「행운유수」,「녹수청산」,「공사투월」은 작가의 유·소년기 추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편인 「관산추정」은 어린 시절에 같이 놀다 탈향(脫鄕) 후 다시 만난 고향친구와의 이야기이다.   평인 「여요주서」와 「월곡후야」는 장성한 뒤에 귀향했다가 겪은 경험담이다. 「우리동네」연작은 이 문구가 발안에 들어간 뒤 최근까지 발표한 단편소설들인데, 이 책에 수록된 「김씨」,「이씨」,「최씨」,「정씨」,「강씨」,「유씨」, 말고도 「장씨」,「조씨」,「황씨」(중편「으악새 우는 사연」을 改題)가 있다.

 「관촌수필」연작에서 가장 강렬한 감동을 주면서 독자를 사로잡는 인물은 「공산토월」의 석공이다.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석공의 인간미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자기 집 농사에만 부지런을 피운 것이 아니었다. 이웃 동네 크고 작은 일에도 부러 빠진 적이 없었다……추렴이나 비럭질로 마음의 곳집을 고친다거나 봇둑 보수가 있게 되면 으례 석공이 앞장서 나서야만 버그러지고 뒤틀림이 없었다……사변통에 어떻게 없어진지 모른 마을 상례 기구가 마련되기까지 상여계와 상포계(喪布契)를 일으켜 마무리지은 것도 석공 힘이었고, 里中契(이중계)가 해를 더해 갈수록 번창을 본 것도 순전 그의 적공이던 것이다. ……7월 삼복 땡볕 아래서 남의 무덤을 파고, 8월 장마 궂은 밤비 속에서는 갓난애 무덤을 꾸려 냈다. 특히 동네에서 죽은 어린애 관은 거의 석공 혼자서 지고 올라가서 매장하기 일쑤던 것이다. 들으나마나 한 공치사 몇 마디 외엔 아무런 보수도 없던 일들, 마치 그런 일에 봉사함만이 자기의 직분이며 도리인 것처럼.

   석공은 마을 공동 관심사를 앞장서 해결하고 적빈(赤貧)에 시달리는 이웃의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그는 왕조 체제 아래서 억압적인 구조 속에 신음하면서도 상부상조하던 백성의 전형이다.

  석공이야말로 우리가 어렸던 시절, 고향에 더러 남아있던 <구원(久遠) 의 한국인상>이다. 옆집 사람이 죽건 말건, 길가에서 행인이 강도를 당하건 말건 아랑곳않는 매정한 도시인들 속에 섞여 살다가 석공과 같은 사람에 부딪치면 우리는 스스로 잃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통렬하게 깨닫게 된다. 물질적인 부가 아무리 풍요해져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온다해도 이런 인간이 없다면 그 세계는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우리는 석공에게서 문자 그대로의 인도주의를 본다. 이 혼탁한 물질문명의 시대에 더없이 소중한, 석공처럼 감동적인 인간상을 그려내는 데 작가의 문구의 탁월함이 있다.

  필자는 이문구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작자 개인의 진실성이 작품에 진하게 투영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흔히 작가와 작품을 하나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필자는 이문구의 소설에서 작자의 사람됨이 독자를 강력하게 사로잡는 것을 볼 때마다, 역시 진실한 인간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석공이 6.25  때 겪은 고초의 여파로 죽을병을 얻어 서울에 와 치료를 받는 장면에서 그것은 여실히 나타난다.

   낮에는 누나가 가사를 전폐하고 병실을 돌보았고, 밤이면 밤마다 내가 불침범을 섰다……낮에는 온종일 서울 바닥을 쓸다시피 약국 뒤지기로 해를 저물리었다……제약회사, 제약공장을 찾아 안양, 시흥, 태릉, 의정부……서울 근접의 공장까지도 알 수 있는 곳이면 멀다 할 수가 없었다.

   석공을 살리기 위해 하루 백리길을 걸어서 헤매는 〈나〉의 인간적인 행동은 석공의 인정과 어우러져 절실한 감동을 안겨 준다. 그것은 단순한 의리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기주의나 도시인 근성과는 거리가 먼 진실한 인간성에서 우러난다.

  〈나〉의 집에서 부엌살림을 하는 봉점이, 드난살이하는 아낙네의 아들 대복이, 한마을 친구 복산이, 그리고 〈나〉의 어머니 석공만큼은 강렬하지 못하지만 역시 흐뭇한 인정의 세계를 보여준다. 〈나〉의 어머니가 「화무십일」에서 피난민 일가에게 보이는 〈인심〉은 전통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 인도주의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관촌수필」연작에 그려진 〈인정의 세계〉 이면에는 50년대 초까지 존속된 <반상적(班常的 질서〉가 있다. 평론가 김종철(金鍾哲) 교수는 그 점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관촌수필」에 등장하는 양반 가문인 이씨네 사람들은 어진 사람들이며 이 어진 마음을 중심으로 화목한 마을이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회를 억압적인 사회라고는 물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압적인 사회의 잔재는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계층적 차별은 여전히 분명하다. (「사화변화와 전통적 가치」《문학과 지성》1978년 봄호 p.271)

  〈나〉에게 유년기부터 천자문을 가르치던 할아버지가 동네에는 〈상것〉들의 자식밖에 없다고 하여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아들들을 택해 함께 공부를 시키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관촌」연작의 주조를 이루는 인정의 세계는 매우 감동적이지만, 이제는 우리의 의식이나 생활에서 청산되어 마땅한 〈봉건적 질서〉를 아쉬워하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독자의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문구의 소설들을 보면 도처에 〈양반〉과〈상것〉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그가 일방적으로 양반의 전통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왕조 체제 아래서 그 나름으로 저항하면서 선비의 기개를 지킨 양반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 체제 아래서보다도 지배와 피지배자의 갈등이 더욱 심한 현대에, 〈반상적 질서〉에 대한 집착은 자칫하면 작가의 역사의식을 해칠 우려가 있다.

   「관촌수필」이      편은 염무웅 교수의 적절한 지적 그대로 〈잃어진 육친과 쫓겨난 고향에 대해 바치는 최대의 문학적 獻辭(헌사)요 낳아 길러 준 땅에 되돌리는 가장 귀한 갚음〉이다. (「도시-산업화시대의 문학」, 《민중시대의 문학》, p.330) 이런 성과와 동시에 이 작가는 〈새로운 시대의 농촌 현실을 보다 전면적으로 형상화하는 다음 단계의 필연적인 과업>(같은 책,p330)을 안게 되었다. 이 필연적인 과업으로 나타나는 것이 「관촌수필」   편과 「우리동네」연작이다.

  「관촌수필」의 前期(전기) 작품들이 봉건 질서의 잔영 속에서, 갓잡아올린 생선처럼 팔딱이는 싱싱한 삶을 살아가는 전형적 한국인상을 그렸다면 「관촌수필」의 후기작과 「우리동네」 연작은 억압적인 체제 아래 근대화와 상업주의의 공세에 몰려 해체되어 가는 농촌 공동체를 묘사하고 있다.

  전자에서도 이 작가의 날카로운 사회 의식이나 비판정신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후자에 이르면 그것이 도처에서 독자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전자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고향을 되돌려 주고 우리 곁에는 이미 없는 소중한 인간상을 보여 주는 〈정서적인 감동〉의 세계이다. 후자는 〈인간다운 삶의 뿌리 자체가 괴물같은 권력에 의해 흔들리는 농촌에서 비판적인 안목으로 세태를 주시하면서 소박하게 항거하는 당대인들이 환기시키는〈지적인 깨달음〉의 세계이다. 이 〈정서적인 감동〉과 〈지적인 깨달음〉의 바탕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그의 문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평자들은 흔히 그의 문체를 입담이라고 간단히 정의하거나 판소리의 가락 또는 사투리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독특한 유형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면만 있지는 않다. 그는 분위기나 정경 및 동물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읽는 이를 吸引(흡인)한다.

   모닥불은 계속 지펴지는데다 달빛은 또 그렇게 고와, 동네는 밤새껏 매양 황혼녘이었고, 뒷산 등성이 솔수펑 속에서는 어른들 코골음 같은 부엉이 울음이, 마루 밑에서 강아지 꿈꾸는 소리처럼 정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쇗쇗쇗쇗……머리 위에서는 이따금 기러기떼 지나가는 소리가 유독 컸으며, 낄륵-하는 기러기 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마당 가장자리에는 기러기떼 그림자가 달빛을 한 옴큼씩 훔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이것은「공산토월」의 일절이다. 필자는 석공이 장가가는 날 밤을 묘사한 이 대목이 우리나라 현대문학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묘사에 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유려하고도 정감 넘치는 묘사는 이문구의 소설 도처에서 보인다. 그는 이런 종류의 묘사와 앞에 말한 입담을 통해 독자를 감동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다음으로, 그의 작품에서 활력소로 작용하는 것은 생황의 제반사와 자연에 대한 정밀한 지식이다. 그의 소설에는 살림살이에 대한 추상적인 서술이 없으며〈이름 모를 새〉 따위의 표현도 없다. 농촌의 연장, 어촌의 漁具(어구), 생선이름, 나무와 풀 이름, 목수와 연장, 꽃상여의 부분 명칭 등등, 그의 비틈없는 지식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외래어로 디테일이라고하는 이 세부 지식은 그의 작품을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 준다. 우리는 이문구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발딛고 사는 이 세상과 자연에 대해 너무나 무지함을 절감하게 된다.

  이 세부 지식은  그의 작품을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 준다. 우리는 이 문구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발딛고 사는 이세상과 자연에 대해 너무나 무지함을 절감하게 된다.

  이문구가 발안 생활에 들어가 농촌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체험하면서 써낸 「우리 동네」연작의 전초적인 지표가 되는 작품이 「관촌수필」 「관산추정」, 「여요주서」, 「월곡후야」이다.

  「관산추정」의 후반은 옛날의 그 포근하던 한내[大川]가 도시에서 밀려온 소비 문화와 퇴폐의 하수구가 된 실상을 그리고 있다. 뚝에 지천으로 버려진 콘돔이 돼지 먹이 풀에 섞여 돼지가 횡사하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이 반농반어의 생활 터전은 더렵혀진 것이다.

  「여요주서」는 어느 소년이 아버지의 병구완을 위해 잡은 꿩을 팔아 주려던 <나>의 선량한 중학 동창이 자연 보존에 역행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의 횡포에 시달리는 이야기로서, 인간을 배제하는 사이비 자연 보호와 권력의 남용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벽촌에서 중년남자가 소녀를 겁탈한 사건을 둘러싸고 동네 청년들이 범인에게 사적인 제재를 가하는 「월곡후야」에서 작가는 파렴치범의 죄악보다도, <지역사회 발전과 근대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고 자랑하면서 그를 단죄하는 청년들의 불성실한 태도에 초점을 맞추어 <정치적인 구호>의 허구를 폭로한다.

  「관촌수필」후기작들이 체험과 관찰을 밑거름으로 해서 독자에게 주는 지적인 깨달음은 「우리동네」연작에서 일단의 비약을 한다. 이 깨달음은 작가가 농촌에 살면서 애정과 비판의 눈길로 관찰한 사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데서 비롯된다.

  「우리동네」연작에서 이문구의 제재( 題材)는 한결 폭이 넓어진다. 이 연작 가운데서 가장 긴 「황씨」는 농촌의 안방에 침투한 텔레비전, 선풍기. 농약 공해로 자취가 드물어진 곤충, 농촌의 고리채, 부재 지주의 증가, 농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 농협을 악용하는 모리배, 고추에 농약을 마구 뿌리는 악덕 농민, 이리저리 수탈당하는 농민의 실상을 절실하게 그리고 있다.

……내 말이 저기헌 것이, 요새 텔레비전 한가지만 여겨 보라구. 활동사진이구 굿이구간에 여편네들이 저기할 게 있다? 자식들이 한 가지나 배울 게 있다? 공해가 벨게 아닌겨, 사람 사는디 이롭잖은 건 죄 공해거든…… 신문을 보자면 열통이 터지구, 무슨 들어볼 만한 소식이나 웂으까 하구 워쩌다가 틀어보면 예미-사람이 얼마나 죽구 얼마를 도적질혔다는 얘기뿐이지…… 경향간에 공해버텀 평준화 돼가지구설랑.

   이처럼 순박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은 「우리동네」연작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민방위 교육을 풍자한 「김씨」, 농촌의 아이들에게까지 전염병처럼 번진 망년회, 부녀들의 관광여행, 고고춤, 농협의 변칙운영, 조미료 중독, 도박풍조를 그린 「이씨」, 도시인들이 사냥 공해와 농민의 자녀가 관련된 노사문제를 다룬 「최씨」, 모내기에 동원되어 주민을 골탕먹이려고 데모를 하는 고등학생과 통대(統代) 사기꾼의 행각을 묘사한 「정씨」,농민이 소외되는 농촌 근대화의 허구와 수매의 비리를 파헤친 「강씨」는 바로 70년대 이후 농촌의 축도라고 할 수 있다.

  백 낙청 교수의 표현대로 <여기 그려진 농촌은 왕년의 농촌 작가들이 흔히 다루던 절대적 빈곤과 정체의 세계가 이미 아니며 많은 도시인들이 향수에 젖어 몽상하는 목가적 풍경과도 물론 거리가 멀다.> (서평「사회 비평 이상의 것」,《창작과 비평》1979년 봄호,P.347)

  70년대 이후의 농촌이 물질적으로 이전보다 어느 정도 풍요해졌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풍요의 본질은 무엇인가. 농민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그들은 흘린 땀의 대가치고는 원통하기 짝이 없는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웃이 이웃을 사랑하고 상부상조하던 전통적인 공동체가, 텔레비전을 전위로 한 상업주의 매스컴의 영향과 독점 자본의 소비문화 조장 때문에 붕괴되었다는 사실이다.

  농촌 공동체 파괴, 농촌의 물질적. 정신적 황폐화는 노동문제와 더불어 우리 시대에 가장 심각한 상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도시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어쩌다가 고속버스를 타고 길가에 전시용으로 지어진 양옥들만을 보는 사람들은 우리의 뿌리인 농촌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이제 농촌도 잘살게 되었다는 매스컴의 상투적 선전에 마취되어 있는 것이다.

 역사를 오늘 속에 되살리고 오늘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작가의 중대한 채무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나라의 작가들 가운데서 현실의 중요한 일부인 농촌과 농민에 눈길을 돌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더러 있다고 해도, 농민의 모습을 참되게 전달하는 작가는 찾기가 힘들다. 이런 까닭에 이문구는 대단히 소중한 작가이다. 그는 이 땅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농민을 애정어린 눈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안목으로 바라본다. 필자는 앞으로 그가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삶을 감동적으로 접맥시키는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작가라고 믿지만, 지금 농촌 소설로써 거둔 문학적 성과만으로 이미 문학사에 오래 남을 기념비를 세웠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신작평론집《한국문학의 현단계1》(창작과 비평사, 1982)에 실렸던 「작가의 진실성과 문학적 감동」(이문구론)가운데서 「관촌수필」과 「우리동네」연작에 해당되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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