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이런들 엇더하며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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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엇더하며

 

 

이렇게 산들 어떠하며 저렇게 산들 어떠하리오.

만수산의 칡덩굴이 서로 얽혀진 것처럼 살아간들 그것이 어떠하리오.

우리도 이와 같이 얽혀져 한평생을 누리리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이방원

연대 : 고려말

종류 : 평시조

성격 : 비유적

제재 : 드렁칡

표현 : 직유, 대구법, 상징법

주제 : 회유. 시세에 영합하기를 권유

내용 연구

엇더하며 : 어떠하며

엇더하료 : 어떠하겠는가

만수산 : 개성에 있는 산

드렁츩 : 드렁칡. 츩> 칡(전설모음화)

누리리라 : 살아가리라

이해와 감상

 

정몽주에 대한 회유책으로 이방원이 부른 노래로 정몽주는 이 노래의 답가를 단심가를 “이 몸이 주거주거 일백번 고쳐 주거, 백골이 진토되여 넉시라도 잇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이며, '포은집(圃隱集)'에는 한역(漢譯)되어 “

此身死了死了 (차신사료사료)

一百番更死了 (일백번갱사료)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向主一片丹心 (향주일편단심)

寧有改理也歟 (영유개리여지)"

를 부르고, 조영규에게 피살되었다고 한다.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키려는 정몽주의 단심가와 새왕국을 건설하려는 이방원의 하여가의 대립은 끝없는 인간 세상의 한 단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 만수산드렁칡을 비유하여 아무렇게나 살면 어떻겠느냐고 풍자하는 작품이지만, 역사는 누구의 편인가?

심화 자료

이방원(태종 太宗 1367~1422)

 

자 유덕(遺德). 휘 방원(芳遠). 태조의 5남. 어머니는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 비는 민제(閔霽)의 딸 원경왕후(元敬王后).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사대언(密直司代言)이 되고, 후에 아버지 이성계(李成桂) 휘하에서 신진정객(新進政客)들을 포섭하여 구세력의 제거에 큰 역할을 함.

하여가(何如歌)

 

此亦何如 차역하여

彼亦何如 피역하여

城隍堂後垣 성황당후원

頹落亦何如 퇴락역하여

我輩若此爲 아배약차위

不死亦何如 불사역하여

 

조선 초기에 이방원(李芳遠)이 지은 시조. 1수. 작자는 조선 건국에 공이 큰 태종으로, 이 작품은 반대당인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회유하기 위하여 마련된 자리에서 지어 부른 작품이다. ≪해동악부 海東樂府≫와 ≪포은집 圃隱集≫에는 한역되어 전한다(此亦何如 彼亦何如 城隍堂後垣 頹落亦何如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

이에 대하여 정몽주는 〈단심가 丹心歌〉를 지어 응수하였다. 이 두 작품은 〈하여가〉가 직설적인 말을 피하고 우회적 기교로 여유롭고 느긋함에 비에, 〈단심가〉는 직설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으로 굳은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즉 이방원은 얽힘의 논리로 화해와 조화를 희구하고 있는데, 정몽주는 죽음의 논리로 의지와 단절을 노래하고 있어, 당시 두 사람이 처한 입장, 곧 지략적인 정치가와 비타협적인 학자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참고문헌≫ 海東樂府, 圃隱集, 한국문학통사 2(조동일, 지직산업사, 1992), 韓國詩歌文學史(朴乙洙, 亞細亞文化社, 1997).(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방원·정몽주가 주고받은 시의 속뜻은?

정몽주는 고려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한 나라를 없애버리고 새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신하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으면 고려라는 나라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고려의 폐단을 ‘조선’이라는 새 나라를 건설해 극복하고자 했다. 조선을 개국하는 과정에서 이방원은 어진 중신인 정몽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욕심에 이성계를 왕으로 세워 조선을 개국해 편안하게 살자는 뜻의 ‘하여가’를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본 것이다. 그러나 정몽주는 고려 왕족을 향한 절개를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의 ‘단심가’를 읊어 자신의 뜻을 전했다. 단심가는 조선의 개국과정에서 반대파의 주장을 대변했으나, 개국 후 신하의 충성심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이 됐다.(경향신문 '생각통통 초등논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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