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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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문제점

 

이기주의는 심리적 이기주의와 윤리적 이기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심리적 이기주의란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며, 모든 사람은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한다는 주장이다. 심리적 이기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다른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까지 주장한다.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 존재라는 이러한 주장은 홉스, 맨더빌, 벤담 등이 취한 입장으로 성악설(性惡說)로 파악할 수 있으며,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경제인'과도 매우 유사한 개념이다.

 

그런데 인간은 과연 철두철미하고 이기적인 존재일까? 드물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타인을 위해 희생적으로 살아간 성자들이 있고, 보통 사람들도 때로는 순수한 동정심이나 의무감에 의해 행동하지 않는가? 심리적 이기주의자들은 겉으로 비이기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행동들도 사실은 명예나 내적 만족 등을 얻기 위한 이기적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만원인 버스 속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도 주변 사람들의 도덕적 비난을 회피하고 심리적 만족을 얻기 위한 이기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설명 방식에 따르면 자기 희생적 행위와 자기의 직접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구별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다 같이 이기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편, 윤리적 이기주의자란 행위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윤리적 이기주의에 의하면 모든 개인은 각자의 이익을 가장 많이 증진시킬 수 있는 행위를 해야 한다. 홉스의 논변을 통해서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를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인간들은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무정부적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상태는 불안한 상태이며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불안한 상태이므로, 이를 극복하여 자기의 이익을 보다 합리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인간들은 시민 사회의 법과 도덕을 제정한다. 이렇게 보면 도덕이나 법은 이기적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지킬 것을 약속(계약)한 것에 불과하다. 이 계약은 국가의 강제력에 의해 뒷받침됨으로써 지켜져야 한다. 이것이 각자의 이익을 더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만일 사람들이 일시적 충동이나 무지 등에 의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행동을 한다면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이 모두 감소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자기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행동이 옳은 것으로 평가된다.

 

윤리적 이기주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견해로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들 수 있다. 스미스는 그의 저서인 국부론에서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사회적 선()이 다른 어떤 경우보다 더 커진다고 주장한다. "경제 주체가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진실로 의도할 때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사회의 이익을 더 효과적으로 증진시킬 때가 있다." 스미스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환이 거래 쌍방에게 주는 이익과 교환의 발전에 따르는 분업의 이익을 강조했다. 그는 경제 주체의 이기적 행위가 사회적 부를 크게 증대시키고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시키므로 이기심은 결과적으로 옳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여기에서는 자기 이익의 추구라는 도덕적으로 그리 권장할 만하지 못한 동기가 꽤 좋은 사회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이기심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스미스가 정당화한 자기 이익의 추구는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정의(正義)에 의해 규제되는 이기심이다. 이 때 말하는 정의라는 것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타인의 생명, 자유, 재산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철저한 이기심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불사하지만, 계몽된 이기심은 타인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가 지켜지는 곳에서는 생산, 교환, 소비 등의 경제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구성원들이 더 나은 상태에서 살 수 있게 된다. 스미스가 정당화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 계몽된 이기심이다.

 

실상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주의는 비난의 대상이 될 뿐, 일반적으로 승인 받기 어렵다. 우리가 진지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이기주의는 인간들의 이기적 성향을 인정하면서도 인간들이 지켜야 할 일정한 규칙과 제약을 받아들이는 이기주의이다. 여기에 따르면 이 규칙과 제약하에서 최대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행위가 된다. 앞에서 살펴본 홉스의 견해도 개인들이 이성적 약속(계약)을 통해 마련된 규칙과 규범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점에서, 계몽된 이기주의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계몽된 이기심을 내세우는 입장은 곧 개인주의와 통한다. 자신만이 이기적인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도 그러하며 따라서 타인의 이익 추구 기회도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라는 개인만이 아니라 다른 '개인들'을 나와 동등한 행위의 주체로 인정하는 일반적 관점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뿐 아니라 모든 개인들이 권리의 주체로 취급받는다. 이렇듯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이기주의는 이미 철저한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개인주의의 장단점

 

크게 보면 홉스나 스미스의 견해는 근대에 들어와 발전한 개인주의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는 개인을 사회에 우선하는 것으로 놓는 입장이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입장이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중세의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근대적 질서가 성립하기 시작하던 무렵, 중요한 사고 방식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중세에는 개개인이 주로 공동체의 일부이자 그 구성원으로서 취급되었으며, 신적(神的)인 질서 그리고 신분과 같은 엄격한 사회 질서에 종속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공동체적 노동을 중요시하는 농업 중심의 당시 경제 상황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반면에 근대와 더불어 이룩된 자본주의의 발전은 개개인의 창의적 노동과 자유로운 상거래 활동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여기에 따라 개인의 가치와 권리를 침해받을 수 없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 널리 퍼져 나갔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사고 방식은 특히 근대 초기에 중세의 신분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민 질서를 이루어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개인주의는 특정한 사회 질서가 처음부터 존재하고 개개인은 거기에 얽매여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오히려 개인이 우선이고 사회는 이 개인들의 합의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 개인주의의 기본 발상이다. 여기에 따르면 개인이 사회의 기초이고 사회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개인에게는 애당초 이렇게 사회를 구성하고 꾸려 나갈 수 있는 능력과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개인주의를 내세운 근대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이성적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생명과 자유, 재산 등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회 질서는 이러한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근대의 중심적 사회 이론인 '사회 계약론'은 이렇듯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개인주의가 신분적 억압을 깨뜨리고 인간 개개인의 권리와 가치를 부각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는 그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다. 또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력을 중시한다는 점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볼 때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지니는 문제점들도 있다. 첫째,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바와는 달리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개인주의에 의존하여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힘들다. 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으로 보장하려 할 때, 공익을 위한 업무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적합한 장소에 도로를 건설하거나 공공 건물을 지으려고 할 때 그 곳의 토지를 소유한 개인이 이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개인의 권리를 앞세운다면 공공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여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

 

둘째, 이런 경우보다도 개인주의에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 불평등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사회나 국가의 간섭을 최소로 할 때, 개개인의 조건이나 능력에 따라 불평등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하여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실제로 '수요에 맞는 생산' '공급에 맞는 소비'를 보장해 주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개인의 경제 활동에 바탕을 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주기적인 공황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공황은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함과 동시에 자본의 집중과 독점의 조건을 마련해 줌으로써, 부의 불평등이 심화 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자유 방임 경제가 낳은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국가의 개입과 간섭을 불가피하게 한다.

 

셋째, 개인주의가 전제로 하는 가정들에도 문제가 있다. 앞서 보았듯이 개인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개인이 사회에 우선한다고 보고 이 개인들이 사회를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적인 가정일 뿐 실제의 역사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애당초 고립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언제나 일정한 집단 속에서 일정한 사회 관계를 맺고 살아 나간다. 그러므로 개인주의 사상가들이 상정하는 '사회 이전의 상태' 혹은 '자연 상태'란 허구적인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들이 내세우는 개인들이란 개인의 중요성이 한껏 부각된 초기 자본주의의 사회에서의 인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 절에서 언급했던 홉스나 스미스가 제시하는 이기적 인간도 실상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인간의 한 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자유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 경제 체제에서 인간들은 가능한 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타인은 모두 경쟁자나 거래 상대자로만 취급한다. 여기서 개인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란 상거래와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규칙일 따름이다. 근대의 개인주의는 이와 같은 배경하에서 나타난 것이며, 이런 점에서 이기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에는 타인에 대한 애정이라든가 집단에 대한 소속감 등이 부족하기 쉽다. 또 개인주의만을 고집할 경우 사회 속에서의 인간 관계가 이익과 관련된 계산적인 관계로 흐르고 말 가능성도 크다. 개인의 권리와 이익 그리고 이를 고려한 합리적 계산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요소만으로 채워진 인간 관계는 삭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오늘날 개인주의적 합리성 못지 않게 공동체나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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