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읍성이란 무엇인가

by 송화은율
반응형

읍성이란?

 

읍성은 지방 행정 관서가 있는 고을에 축성되며, 성 안에 관아(官衙)와 민가를 함께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읍성은 행정적인 기능과 군사적인 기능을 아울러 갖는 특이한 형태이다. 읍성은 평지에만 쌓는 일은 드물고 대개 배후에 산등성이를 포용하여 평지화 산기슭을 함께 감싸면서 돌아가도록 축조되었다. 평상시에는 읍성이 행정 단위가 되지만 유사시에는 방어 기능의 성곽이 되어 성문을 굳게 닫고 군, , 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성을 지킨다. 이러한 읍성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존재로서 고려 말에 처음 등장하여 조선 초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조선 초기 '동국여지승람'에는 읍성이 179개가 나타나는데 당시 부(), (), 도호부(都護府), (), (), 등 행정 구역이 330여 개 였던 것으로 미루어보면 반수가 넘게 읍성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읍성은 남해, 서해안 지방과 북쪽의 변방에 주로 축조되었는데, 고을의 크기나 중요성에 따라 그 규모는 크게도, 작게도 축성되었는데, 고을의 크기나 중요성에 따라 그 규모는 크게도, 작게도 축성되었다. 경성, 전라, 충청 지방의 해안에 읍성이 많이 설치된 것은 고려 말 이후 잦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고 함경, 평안도에 읍성이 많은 것은 거란, 여진족들의 침략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북방의 국경 지대에 주진성(州鎭城)을 많이 쌓았는데, 평지에 자리잡은 읍의 주위를 둘러싼 성벽의 일부가 뒤쪽으로 산 위에까지 뻗치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한 형식은 우리나라 지방 고을들이 대개가 배후에 산을 등지고 시가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에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읍성은 고려시대의 주진성이 그 모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읍성 가운데에서 평산성이 아니고 순수하게 평지에 축조된 형식은 조선 초기에 이르러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승주군의 낙안읍성이나 홍성의 해미읍성 등은 평지에 축조된 대표적 읍성이며 오늘날까지도 성벽의 옛 모습을 잘 지니고 있다. 고려 말에 축조된 읍성은 대부분 토성이었으나 조선 초기에 석성으로 바뀌고 그 규모가 확장되었으며 특히 세종, 성종대에는 읍성이 없었던 곳에 새로 성을 쌓는 등 읍성 축조가 활발해졌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