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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의 황혼 / 하인리히 페스탈로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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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의 황혼 / 하인리히 페스탈로찌

인간은 옥좌 위에 앉아 있으나 초가의 그들에 누워 있으나 본바탕으로는 평등하다. 인간의 본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성현은 이를 말해주지 않는가? 소를 모는 농부도 소에 대하여는 잘 알지 않는가? 목자도 양의 성품을 연구하지 않는가?

그대들 사람을 다스리며, 사람을 보호하고 기른다고 자임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과연 농부가 소에 대하여 바치는 정도의 수고를 하고 있는가? 목자가 양에 대하여 바치는 정도의 정성을 들이고 있는가?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민중에 대한 지식인가. 그대들의 사랑은 과연 백성을 총명하게 다스리는 데 필요한 목자와 같은 사랑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이 인간을 고상하게 만들고, 무엇이 인간을 더럽히는가. 무엇이 인간을 굳세게 하고 무엇이 인간을 허약하게 만드는가. 백성을 기르는 목자는 반드시 이러한 일들을 알아야 한다. 또 아주 누추한 오막살이에 사는 사람들도 이러한 일들을 알아야 한다.

모든 곳에서 인류는 이러한 일들을 알아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인류는 모든 곳에서 애쓰고 일하고 힘쓰면서 향상하려고 하고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인류는 몇 대에 걸쳐 구했으나 이러한 일들을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헛되이 죽어갔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생애는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못했다고 임종의 마당에 크게 외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죽음은 가을철에 뭇 과일들이 자기네의 사명을 다한 후에, 겨울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찾아 대지 위에 떨어지는 무르익음과 같게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

인간은 자신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이 진리로 이끄는 길을 자신의 본성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한다.


흡족하고 배부르게 젖을 먹는 아이는 이 길을 통하여 어머니가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어머니는 어린이의 마음속에 감사의 본질인 사랑의 염을 길러 준다. 아버지가 구워주는 빵을 먹으면서 아버지와 나란히 난로 불을 쬐는 아이들은, 의무니 감사니 하는 낱말의 뜻을 알기도 전에 이러한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아들로써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인생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


인간이여! 이 자연의 질서 안에서 진리를 찾아내라. 그러면 그대는 어떠한 처지, 어떠한 행로에서도 바랐던 이 진리를 찾아낼 것이다.

인간이여! 그대는 안식과 평화를 얻기 위하여 이 진리를 필요로 한다. 또 이 진리는 도성(導星) 처럼 그대 주변의 일들을 잘 처리하여 주는 지침이 될 것이며, 그대의 생활의 발판이 될 것이며, 그대에게 성스러운 복을 안겨다 줄 것이다.
그대는 이 인생살이에서 하고많은 진리를 다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그 처지에 알맞는 복을 누리기에 필요로 하는 지식의 범위는 좁다. 이 범위는 그의 주위나 그의 생활에서 그리고 그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출발하여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은 범위가 제아무리 확대될지라도, 진리가 축복하는 온갖 힘을 가져오는 이 중심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숭고한 자연의 길이여! 그대는 진리로 하여금 힘과 행동이 되게 한다. 자연의 길은 교육의 원천이며, 인간의 본성을 흡족하게 채워주는 밑바탕이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을 겉으로 화려하게 성장시키려고 서둘지는 않는다. 자연이여, 그대의 자녀들은 여러 제약 아래 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은 사물을 완전히 이해한 연후에 나오는 지식의 표현이며 결과인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자연의 순서의 과정을 너무 서둘러 지나가면, 인간은 자기 안에 깃든 힘을 스스로 파괴하게 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깃든 본성의 평안과 조화를 잃게 된다.


인간의 정신을 일상 생활의 대상물에 대한 사실적인 지식을 통해서 진리와 지혜로 이끌도록 하여라. 그러기 전에 인간을 수천 가지의 말공부와 사상의 혼란 속에 헤매게 하고, 또한 일상 생활의 사물에 대한 진리는 구하지 않고, 말과 소리와 글을 바탕으로 그들의 정신을 지도하거나, 또는 이것을 바탕으로 인간의 여러 능력의 기초를 도야하려 든다면, 인간은 본성의 평안과 조화를 잃게 된다.


자연은 너그럽게 기다리며, 결코 서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성장을 기다리지 않고 억지로 말의 순서를 밀어 넣는 인위적인 학교 교육은 어린이를 겉으로만 반짝이게 할 따름이다. 이것은 어린이의 속에 깃들어야 할 자연력의 결핍을 안 보이게 덮어버림으로써, 오늘갈과 같은 경박한 시대의 사람들만을 만족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활의 터전, 인간 각자의 처지, 이것들이야말로 자연의 교재이다. 이 안에 자연이라는 슬기로운 지도자의 힘과 질서가 깃들어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인간 교육을 세우지 못하는 학교 교육은 모두 헛된 교육이다. ....


그러므로 자연의 교육 방법에는 조금도 억압적인 면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교육에는 확고한 점이 있고, 자연의 질서에는 집안 살림에서 보는 듯한 정밀성이 있다. 산만하고 혼돈된 박식, 이것 역시 자연의 길이 아니다.

가벼운 지식의 날개로 맴돌기는 하나 자기 지식을 조용하고 굳세게 응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역시 자연의 길을 잃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굳세고 맑고 세밀한 눈과, 그리고 참으로 즐겁게 진리를 받아들이는 감정을 잃는다.


박식하여 이것저것 아는 것은 많으나 인간의 지혜가 갖추는 순수하고 조용한 감각이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흔들린다. 그들이 제아무리 자랑스러이 뽐낼지라도 텅 빈 황야와 흑암이 그들을 둘러싼다. 그러나 한편 복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의 힘은 밝은 빛을 발한다.


인간을 진리로 향하게 도야하라. 이것만이 인간의 본성과 자연을 아늑한 지혜로 향하게 도야하는 길이다. ......

인류에게 모든 순수한 축복을 주는 힘은 기교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런 힘이 될 기본적인 소질은 모든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놓여 있다. 이것을 완성시키는 것이 온 인류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계발시킬 자연의 길은 평탄하고 쉬워야 한다. 또 참되고 아늑한 진리로 이끄는 인간 교육은 단순하며 동시에 일반적으로 응용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정의감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진리 인식의 힘을 매장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 안의 근본 관념 및 근본 감정이 갖는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단순하고 순수한 감각을 흩뜨려 놓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지혜는 이 슬기로우며 진리에 순종하는 심정과 그 힘에서 우러나온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성스러운 복은 단순하고도 순수한 이 감각에서 우러나온다.


인간을 이렇게 단순하고 순박하고 순수한 감각을 갖추도록 교육시켜라. 자녀의 어버이 된 자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어버이와 군주 사이, 무거운 생활고를 짊어진 빈민과 더욱 무거운 근심에 허덕이는 부자 사이, 무식한 부인과 이름 높은 박식가 사이, 게으르게 조는 자와 온 세계를 독수리 같은 힘으로 흔드는 천재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만일 그에게 인간성이 결핍되어 있다면 어두운 그늘이 그를 둘러싼다. 그러나 도야된 인간성은 오막살이에 사는 사람에게서도 그 순수하고 드높은 완숙된 인간의 위대성을 스스로 발휘하게 한다. ....

이 자연의 길에서 벗어난 계층 교육 직업 교육 시민 교육 등을 부자연하게 앞세우는 자, 그대는 가장 자연스러운 복을 누릴 인간을 유혹하여 암초 많은 바다 속에 던지는 자로다. ....

보라, 인간이여! 느끼지 못하느냐, 땅의 자녀들이여! 상류 계층들은 소위 교육을 한답시고 이러한 마음속의 힘을 도리어 많이 잃게 하고 있다! 인간들이여, 보지 못하느냐! 그들은 이 슬기로운 자연의 길에서 벗어나 공허하고 황폐한 불행을 그들 자신에게 가져 오고 있으며, 또 그로 인해서 백성에게까지 불행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그대들은 느끼지 못하는가, 대지여! 인류는 대대로 이어온 이 가정적인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성스러운 복에서 떠나, 헛된 지식과 명예욕을 채우기 위하여 도처에서 겉으로만 화려하나 실은 어색한 무대 위에서 연극을 벌이며 자신을 소모하고 있다.


이득히 먼 곳으로 길 잃은 인류가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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