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저- 김광균
by 송화은율은수저 - 김광균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가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후략>
<핵심 정리>
1. 시작(詩作) 배경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비통한 심경을 절제와 간결의 언어로 표현하여 더 많은 효과와 감동을 준다.
2. 시상의 전개
* 제1연 - 은수저에 고인 눈물
* 제2연 - 애기에 대한 환상
* 제3연 - 안타까운 부정(父情)
3. 주제 : 아기를 잃은 부정(父情)
4. 소재 : 은수저
5. 시어의 상징 의미
* 은수저 - 애기를 상징
<감상의 길잡이>
이미지즘 경향의 회화적 수법을 앞세운 이전의 시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김광균의 이 시는 자식 잃은 아버지의 뜨거운 부정(父情)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시는 해방공간의 정치성 짙은 시들과는 달리 김광균의 시적 관심사가 다시 시인의 내면의 문제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김광균이 문단에 처음 작품을 선보인 것은 불과 16세이던 1930년 동아일보 지면이었다. 그리고 첫 시집 와사등이 출간된 것이 25세 때인 1939년이고, 두 번째 시집 기항지가 나온 것이 33세 때인 1947년이었다. 결국 그는 서른 이전의 나이에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한국 시사에서 확보했을 뿐 아니라, 해방을 전후해서 이미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거의 소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후 그는 시작 생활을 중단하고 실업계에 투신하여 역량있는 실업인으로 활약하다가 문단 고별 시집인 황혼가(1957)를 출간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3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 생활을 재개하여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예전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말았다.
이 시는 두 번째 시집 기항지에 수록되어 있지만, 후기 작품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항지 발문에 ‘내 나이 스물 여섯부터 서른까지의 것’이라고 기록된 것을 참고한다면, 이 시는 예전의 시와는 전혀 다른 경향의 작품으로 서른 이후에 창작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보식 구성의 이 시는 화자인 아버지가 저녁을 먹으며 아이의 부재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한밤중에 만난 죽은 아이의 환영과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아이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이 시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비통한 심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어는 ‘눈물’ 하나밖에는 없다. 그러나 간결한 3연의 구성과 단문으로 행을 마감한 시 형식 속에는 자식을 그리워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아픔이 흠뻑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1연은 화자가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저녁 식사 시간, 화자는 문득 아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어디를 간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저녁 밥상을 받고 아이의 빈 자리를 보며 그제서야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의 방석에 놓인 주인 없는 ‘은수저’를 보며 화자는 눈물을 흘린다. ‘저무는 산’과 ‘잠기는 노을’은 하강․소멸의 이미지로서 아이의 죽음을 상징하며, 아기를 ‘애기’로 표현한 것에서 더 짙은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은수저는 ‘수복강녕(壽福康寧)’을 빌며 그가 아이의 돌잔치 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화자는 그 은수저에서 더 깊은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은수저’에서 ‘애기’를 떠올리고, 다시 그것은 ‘부정(父情)’으로 확대됨에 따라 마침내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2연은 한밤중에 화자가 아이의 환영(幻影)을 만나는 모습이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화자는 들창을 열고 바람 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던 중, 불어 오는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방실방실 웃으며 방안을 들여다 보는 아이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반가와하기도 전에, 아이는 벌써 문을 닫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3연은 아이가 죽음의 세계로 떠나가는 모습이다. 화자는 ‘먼 들길’로 제시된 죽음의 세계로 ‘맨발 벗은’ 채 울면서 가고 있는 ‘애기’를 목메어 부르지만, 아이는 ‘불러도 대답이 없’고 ‘그림자마저 아른거’릴 뿐이다.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던 2연의 ‘애기’가 3연에 와서는 사자(死者)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 있다. 아무리 목메어 부르며 그리워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이 곳 이승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임을 인정하고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데서 진한 육친애를 느낄 수 있다. 정지용의 <유리창>과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지만, <유리창>보다 화자의 감정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별다른 수사적 기교 없이 평이한 서술로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지만, 그것을 절제하고 여과하는 시인의 인간적 성숙도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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