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유재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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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 혹은 사회사(家族史 혹은 社會史)
金炳翼

 

 

유재용(柳在用)은 78년 겨울호의(문예중앙)에 『누님의 초상(初喪)』을 발표하면서 그 〈작가 노우트〉에서, 이 소설을 출발하여 앞으로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역사 속의 인물들, 그것도 고향에서 실제로 보고 듣고 겪은 사람들을 소설로 다루어 보겠다는 자신의 새로운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약속대로, 그리고 우리가 그에게서 기대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정력으로 자기의 고향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오고 있으며,   그러는 1년 반 동안 내가 읽을 수 있었던 8편의 이 중·단편소설은 아마 〈가족 소설(家族小說)〉이라 불러도 좋을 그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 가면서 오늘의 우리 한국 문학에 또 하나의 과제로 제시될 수 있는 주제를 탐구하는 성과를 보여 주고 있다. 그 주제란 분단과 전쟁을 분수령으로 하는 우리 사회사적 변모를 그 최소 단위인 가족의 역사를 통해 점검·분석해 나간다는 것인데, 그것은 극도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의 현대사와, 만질수록 오히려 더 크게 덧나는 우리의 6.25상처를 가족 구성원들의 이력(履歷)과 유전(流轉)을 통해 조명·포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주제에 이르러 유재용(柳在用)의 소설들은「꼬리 달린 사람들」에서 보이던, 기괴성과 우화성을 도입한 문명 비판적인, 그러나 그 공소함을 떨치지 못하던 그의 작품 세계로부터 벗어나, 아연 활기 있고 구체적인 형상력을 발휘하며 이 세계와 문학에 대한 사실주의적 인식과 효과를 획득하게 된다. 그의 일련의 가족 소설들은 이렇게 해서 얻어진 우리 문학의 의외의 성과가 된 것이다.

 물론 6·25를 계기로 하여 달라지거나 흩어진 가족 또는 고향 사람들에 대한 회상적 진술이 유재용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다. 소년기를 북한에서 보내고 전쟁 때 남하하여 성인이 된 월남작가, 그 중에도 이호철(李浩哲)·강용준(姜龍俊)이 근년에 즐겨 다루던 소재들이 바로 헤어진 가족과 고향 사람들에 대한 회상과, 30년 후에 재회하면서 발견되는 시간의 간극들이며, 남한에서 성장하며 한국 동란으로 가정이 붕괴되고 가족들이 변모하는 과정을 기술하는 이문구(李文求)·전상국(全商國)에 의해서도 이러한 주제들은「관촌수필」과 「바람난 마을」·「하늘 아래 그 자리」로 문학적 형상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들과 대조해서 유재용의 일련의 가족 소설들이 지니는 그 나름의 독자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그의 소설들 하나하나는 아버지·형·누님, 그리고 고향 사람들의 개별적 면모 묘사로 향하고 있지만 그 전체는 〈가정〉이라는 하나의 전통적 단위를 향한 강력한 구심력에 의해 유기적 조합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일종의 집단사가 되어 시대와 개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감지케 함으로써 이 소설들을 사회사적 관철의 대상으로 주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유재용(柳在用)의 소설들은, 월남과 6·25가 그의 가족사의 결정적 계기로 포착되고 있지만, 그러나 한말 이후 격렬한 변화를 이루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음으로 해서 우리의 가시권내(可視圈內)에 드는 근·현대사 전체가 가족사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3세대에 걸친 이 같은 시대사적 조망(眺望)은 다음 두 개의 사회사적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의 가족사적 운명과 가족 제도의 변화는 1세기 전부터 동요되어 그 동안 상당량의 음성적 진통을 겪어 왔다는 것, 둘째, 그 변화는 가령 한국의 식민지화라든가 3·1운동·해방·분단·전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의 배경 또는 기반으로서의 민족사 또는 민중사적 사회사, 그러니까 역사의 실체로서의 집단사로 포착된다는 것 등이다. 유재용의 가족 소설이 갖는 셋째의 의미는 기존 체제의 붕괴에만 그의 시선이 멈춘 것이 아니라 그에 대치할 새로이 싹터 오는 집단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우리가 가령 전통(傳統)이라고 부른다면, 그는 이 전통의 전승 전개 과정을 거의 신랄할 정도로 분명하고도 탁월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 인식은 오직 유재용에 의해서만이 확실하게 소설적 형상력을 얻는 역사의 아이러니적 명제일 터인데, 그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비유하며 말한〈아버지에게서 아들로가 아니라 삼촌으로부터 조카에게로 전승〉되는 전통 승계의 현실적 논리이다. 그의 소설에서의 이러한 통찰은 우리의 사회사 파악에 중요한 관점과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이 세 개의 관점에서 접근될 유재용의 가족 소설들에 대해 우리가 여기서 먼저 해명해야 할 것은 개인의 가족적 이력에 어떻게 사회사 혹은 민족사적 차원의 조명이 가능한가라는 문제이다. 그것은 비단 이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림이라든가 가족의 죽음이라든가 하는 체험을 개인사 혹은 내면 의식으로 처리한 많은 회상 소설들의 작가들에게도 적용될 문제인데, 한국의 작가들에게는 유달리 개인·가족사가 민족·사회사로 확산될 이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운명 혹은 비극적 체험이 민족의 그것과 직결된다고 표현될 수 있는 이 진술은, 우리가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당면했던 사건들이 역사의 표피로만 거쳐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각 그 구성 분자로 축조되고 있는 역사의 심층·저변으로까지 충격을 가했다는 인식에서 가능한 것이다. 동학 혁명 이후 식민지 시대로부터 오늘날의 분단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우리의 역사는 한 개인에게 개인으로서의 삶의 선택을 할 수 있게끔 허용한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운명이 민족사의 운명에 수렴될 수밖에 없을 만큼 전반적이고 근원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그 이전의, 왕조사와 평민사의 이원적 궤적을 그려 온 우리의 전래의 역사와 비교할 때 엄청난 차이를 보여 준다. 그 하나는 이러한 우리의 역사가 작가들에게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제공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여기서 발단된 상상력은 의도적인 소피스티케이션 없이도 자유롭고 발랄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한국의 작가는 자신이 체험한 사건들을 꾸밈없이 써나가도 그것은 우리 역사의 핵심적인 전개와 관련을 맺게 되며, 일본의 경우처럼 사소설로 위축될 염려가 적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운이 작가의 상상력 경시라는 역기능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민족사적 비극의 현장이 되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은 아직까지는 우리 작가들의 귀중한 체험일 것은 틀림없다. 유재용은 이 자산을 십분 활용한 아마 전형적인 경우일 것이다.

 「누님의 초상(肖像)」으로부터 최근의「내 우상(偶像) 쓰러지다」에 이르기까지의 8편의 중·단편 소설들은 그 주인공들의 이력에 있어 약간의 차질들이 있고, 이 차질들을 포함한 전체 소설들의 구조와 기법에 있어 작가의 섬세한 배려와 의도, 곧 실제 체험이 소설적 공간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도 작가적 상상력이 은근하게 개입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내 우상 쓰러지다」에서 소개되는〈나〉의 형은 아버지 죽음을 이야기하는「고목(古木)」에서의 큰형과 작은형을 하나로 묶은 인물이며「사양(斜陽)의 그늘」에서의 누님은「누님의 초상」의 누님과 같은 유형이지만 그들의 삶의 궤적과 양상은 상반되게 묘사된다. 그런가 하면,「유전(流轉)」의 두 형제와「짐꾼 이야기」의 짐꾼은 1인칭으로 씌어지고 있지만 분명히 작가의 가족 구성원들이 아니라 거기에 발붙이고 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들을 작가 자신이 속했던 일연의 가족 소설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 소설들의 무대가 되고 있는 고향이 강원도 북방의 금화로 한결같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 아버지가 최씨이고 역자 돌림이며 아들대가 규자 항렬이라는 것, 그 인물들이 여러 소설에서 같은 혹은 비슷한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등의 사실로써도  알게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소설들이 1인칭, 그것도 소년의 시점에 의해 관찰·확인된 대로 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검증된다. 이 소설들에서 소개되고 있는〈나〉의 가족사가 작가 자신의 그것과 일치하는가 어떤가의 문제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작가가 하나의 가족 이야기를 리얼스틱하게 관찰하고 묘사했다는 것이며, 그 묘사가 한 가족사를 통한 우리 사회사·민족사의 기술이란 보편적 관점을 획득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역사의 인식에 매우 중요한 입지점을 마련한다는 평가가 가능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유재용의 가족 소설들이 제일차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사회사적 관점은 지방의 지주로 대표될 수 있는 우리의 전래의 지배층이 근·현대사를 통해 어떻게 형성되고 몰락했는가라는 국면에 대해서이다. 아버지의 말년과 그의 전날 이력을 점묘법으로 그리고 있는「고목(古木)」과「사양의 그늘」은 이미 그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이러한 시선을 시사하고 있거니와 형을 추억하고 있는「내 우상 쓰러지다」와「두고 온 사람」에서도, 기대되던 한 인간이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무게에 눌려 쇠락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그리고 있고,「누님의 초상」에서는 본격적으로, 그리고「사양의 그늘」과「고목」에서는 앞의 것과 다른 모습의 편린으로 묘사되고 있는 누님을 통해 그녀의 도덕적 타락을 점검하고 있다. 환언하면 우리의 전래 사회에서 상류 계층을 이루고 있던 양반 또는 지주가 소유하던 부(富)와 권력과 도덕의 세 가치가 각각 아버지와 형과 누이를 통해 몰락되고 마침내 신분의 완벽한 추락을 우리가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나〉의 눈을 통해 관찰·회상되는 이 세 가족의 모습은 작품마다에서 조금씩 변형되긴 하지만 그 큰 줄거리를 따라 그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그 몰락의 과정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1880년대 말 강원도 김성에서 평범한 토반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 동학란도 겪었고 서당에도 다니다가 신식 교육을 받고 농림 학교를 졸업한다. 군청 서기를 지내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다가 어느 날 월급쟁이 생활을 집어치우고 양조장(혹은 제재업)에 손을 댄다. 당초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그는 때맞춰 다가온 호경기를 업고 돈을 벌기 시작하며 벌리는 돈으로 계속 땅을 사들인다. 기하급수적으로 재산이 분 그는 군내에서 제일의 지주가 되었고 두 남매를 일본으로 유학 보낸 것 외에도 일체 낭비도 하지 않는다. 일제 말기를 공출과 감시받는 이들 때문에 어렵게 지낸 그는 해방이 되고 소련군이 진주하여 공산주의자의 세계가 이루어지면서 반동 지주 계급으로 몰리고 땅을 몰수당하며 생계와 목숨조차 위급해진다. 마침내 그는 먼저 월남한 아들을 따라 이남으로 내려와 가난한 피난민이 되었으며 6·25때에는 두 남매마저 잃는다. 드디어 그는 무력한 아들에 얹혀 살며 돌아갈 길이 없는 고향의 땅에도 미련을 버린 채 일종의 자폐(自閉) 심리에 빠진 우울하고 괴팍한 노인이 되었으며, 92세에〈그의 생애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쌓아 올린 큰 땅덩어리를 작은 손아귀에 움켜잡았던 강한 인간〉은〈열 평짜리 공원 묘지〉에 묻힌다. (「고목」)

  이 집안에는 전부터 큰 인물이 나오리란 예언이 전해 오고 있었고, 가문 안의 그러한 기대는 돈만 벌었을 뿐 다른 야심을 갖지 못한 아버지로부터 머리가 비상하고 의욕이 강한 큰아들에게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 어린 시절, 형은 내게 있어 영웅이요 우상이었다〉.(「내 우상 쓰러지다」) 일본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형은 제일 조선인 단체인 공생회(共生會)에 그가 좋아하는 여학생 때문에 가입했다가 거기서 광부로 속아 넘어온 조선인 노무자들의 참상을 알고 열성 회원이 되며 그들의 탈주를 선동·지원하는 일에 참가한다. 시모노세끼에서의 이 거사 계획은 그러나 실해하고 그는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1년 징역을 치른 후 귀향한다. 이미 사회주의에 감염된 그는 일제 말기 칩거와 광부 노역을 하며 부모들의 뜻을 거역하여 소작인의 딸(「두고 온 사람」에서는 집안 하녀)과 결혼하고자 하다가 해방을 맞는다. 자치대장으로 발탁, 다시〈나〉영웅이 된 그는 지주들의 땅을 소작인에게 나눠 주자고 주장했으나 정작 그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것을 강요하지도 못했고 한편 공산당원들에 의해 소작인의 딸을 짓밟은 반동 지주로 비판당한다. 사태의 변화를 깨달은 그는 먼저 38선을 넘어 월남했고 중학교 교사 노릇을 하며 〈평범하게〉 살려고 한다. 6·25가 나고 서울이 적 치하에 들자 그는 목숨을 보존을 위해 의용군으로 자진 입대했고 인민군의 철수 때 탈출·귀가했으나 의용군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복직이 되지 않자 국군 장교로 다시 입대, 전방으로 떠난 지 두 달만에 전사한다.(앞서 말한 것처럼 형의 이러한 생애는 「고목」에서는 일본에서 징역을 살고 돌아와 병사한 큰형과 의용군으로 입대해서 실종된 작은형 두 인물로 분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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