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유리창 1 - 정지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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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1 -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 갔구나!

(조선지광 89, 1930.1)

 

*열없이 : 맥없이. 속절없이


작가 : 정지용(1902-?) 아명 지용(池龍).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생. 휘문고보,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영문과 졸업. 시문학동인.

그의 시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1930년대 시의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시풍이 바뀌어서 동양적인 관조와 고독의 세계를 많이 다루었다.

시집으로는 정지용시집(시문학사, 1935), 백록담(문장사, 1941), 지용시선(을유문화사, 1946) 등이 있다.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정지용의 시풍은 참신한 이미지의 추구와 절제된 시어의 선택에 있다. 이 시에서는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극도의 절제된 감정과 비정하리 만큼 차가운 객관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혈육과의 이별은 커다란 슬픔일 것이다.

이 시는 어린 자식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애절한 슬픔을 노래한 작품인데 시적 화자가 바로 슬픔의 주체인데도 맑고 차가운 감각적 이미지에 의해 그러한 주관적 감정이 과잉 노출되지 않고 절제되어 나타난 작품이다. 정지용의 초기시의 특징이 가장 성공적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성격 : 애상적, 감각적, 회화적

특징 : 선명한 이미지, 감각적 시어의 선택과 감정의 대위법(對位法)을 통한 감정의 절제가 돋보임.

어조 :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애상적 어조

구성 : : 유리창에 어린 영상(1-3)

: 창 밖의 밤의 영상(4-6)

: 외롭고 황홀한 심사(7-8)

: 죽은 아이에 대한 영상(9-10)

제재 : 유리창에 어린 입김

주제 : 죽은 아이(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시어의 풀이

* 유리창 : 서정적 자아를 그리워하는 대상과 단절시키면서, 동시에 별(죽은 아이의 영혼)과 영상으로 대면하게 한다.

* 언 날개 : 입김 자국을 가냘픈 새에 비유

* 별과 새 : 죽은 아이의 영혼

* 외로운 황홀한 심사 : 슬프고 외로운 감정과 차갑고 황홀한 감정이 대비되는 감정 대위법’.

 

 

<연구 문제>

1. , , 이 나타내는 이미지의 공통점을 쓰라.

소중하고 고귀함을 드러내는 공통점을 지닌다.

 

2. 이 시에서 물먹은 별의 의미를 50자 정도로 쓰라.

별을 보며 저 먼 세상에 가 있을 아들을 생각하고 화자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음을 표현했다.

 

3. 이 시와 김현승의 󰡔눈물󰡕은 창작 동기가 비슷하고, 시의 바탕에 흐르는 정서도 일치한다. 각각의 화자는 자신들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그 차이점을 60자 정도로 쓰라.

☞ 󰡔유리창󰡕은 화자의 슬픈 감정을 엄격히 절제하고 있은며, 󰡔눈물󰡕은 슬픈 감정을 신에 대한 신앙으로 극복하고 있다.

 

4.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모순 형용의 시구를 화자가 처한 정황에 비추어 설명해 보라.

외로운 심사는 자식이 죽은 정황에 비추어 당연하거니와, ‘황홀한 심사는 유리창을 보석처럼 닦으며 죽은 아이의 영상과 만날 수 있다는 데 연유한다.

 

5. 이 시의 제목 유리창이 암시하는 의미를 50자 정도로 쓰라.

이승과 저승의 운명적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두 세계를 잇는 교감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시의 제재인 유리창은 이승과 저승의 운명적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교감의 매개체이기도 하여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유리창에 가까이 서서 죽은 아이를 생각하는 화자는 창 밖 어둠의 세계로 날아가 버린 어린 생명의 모습을 한 마리의 가련한 로 형상화하여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고 말하고 있다.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어둠은 화자의 어둡고 허망한 마음과 조응(照應)이 되고, ‘물먹은 별이라는 표현은 별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이 시에서 외로운 황홀한 심사와 같은 관형어의 모순 어법은 독특한 표현이다. ‘외로운심사는 자식이 죽은 정황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하거니와 황홀한심사는 유리창을 닦으며 보석처럼 빛나는 별에서 죽은 아이의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데 기인한 것이다.

 

이 시는 겉으로 서늘하고 안으로 뜨거운 정지용 시의 특징과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절제된 정서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어두운 밤 유리창 앞에 서서 느끼는,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견고한 이미지로 그려 낸 작품. 시인이 29세 되던 1930년에 쓴 것으로, 자식을 잃은 젊은 아버지의 비통한 심경을 주제로 하면서도 그것을 절제된 언어와 시적 형상으로 객관화한 점이 인상깊다.

 

유리창 밖에 있는 무한한 어둠은 자식을 잃은 시인의 허전하고 괴로운 마음에 대응한다. 그는 유리창에서 쉽게 사라지는 입김 자국을 보며 가냘픈 새의 모습을 연상한다. 마지막 줄에서 확인되듯이 이 새는 잃어버린 아이의 비유적 형상이다.

그 아이를 생각하는 슬픔은 시인은 어둠 곁에 보석처럼 빛나는 `물먹은 별'로 표현했다. 이 별은 아버지의 곁을 떠나 어둠 속으로 돌아간 아이의 멀고도 그리운 모습인 동시에, `물먹은'이란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눈에 맺히는 한 방울 눈물의 반짝임과도 연상(聯想) 관계가 있다. [해설: 김흥규]

 

 

< 감상의 길잡이 3 >

이 시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선명한 이미지를 통하여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유리창에 붙어 서서 멀리 밤하늘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별을 바라보고 있다. 그 별은 죽은 아이의 순결한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려서 별을 잘 볼 수가 없어 입김을 불어 그것을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고 한다.’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것 때문에 아이의 영상이 담겨 있는 별을 잘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리창을 열어 젖히지 못하는 이유는 유리창에 어리는 입김에서도, 아이의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에 어리는 입김에 언 날개를 파다거리는 새의 영상이 나타나는데, 그 새는 폐혈관이 찢어진 채 죽은 어린 아이의 혼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란 처절하리만치 슬픈 법인데, 이 시에서는 그 감정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슬픈 감정의 노출이 과잉되지 않고 절제되어 드러나는 것은 감정의 대위법에 의해서이다. ‘차고 슬픈 것’, ‘외롭고 항홀한 심사와 같이 차가운 것과 슬픈 것, 외로운 것과 황홀한 것을 대립시키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절제된 감정은 마지막 행에서 기어이 터져 나오고 만다.)

 

이러한 절제된 언어로 시를 형상화하는 능력은 정지용 특유의 것이다. 모더니즘(이미지즘)의 이론적 기수인 김기림이 정지용을 극찬한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선명하고 참신한 이미지의 도입, 감각적이고 세련된 시어의 선택 등이 이미지즘의 특징이다(시각적 이미지와 대위법을 통한 감정의 절제). 특히 외로운 황홀한 심사와 같은 관형어의 모순 어법(모순 형용,oxymoron)은 독특한 표현 기교이다. 외로운 심사는 죽은 자식을 그리워하는 상황이기에 당연하거니와, 황홀한 심사는 유리창을 닦는 일종의 의식을 통해 죽은 자식을 그 영상으로 만나고 있기 때문에 유발된다.

 

 

<맥락 읽기>

1.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2.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유리창을 보고 서 있다.

홀로 유리를 딱고 있다.

혼자에요,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고 있어요.

 

3. 나가 그러고 있는 시간은? 계절은?

입김이 나는 걸 보니 추운 겨울 같은데요, 새까만 밤이에요.

 

4. 왜 나는 새까만 밤에 잠은 안 자고 유리창을 보고 있을까?

근심 걱정이 있나봐요. 슬픈 일이 있나봐요(1). 그리워하고 있어요(4). 누군가 산새처럼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날아가 버렸대요. 외로와요(8).누군가가 떠나갔어요(9,10)

 

5. 나의 심정은 어떤 것 같니?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대요, 물먹은 별이래요, 누군가 산새처럼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떠났대요.슬퍼하고 있어요.

5-1. 그 누군가는 어떻게 됐길래?

고운 폐혈관이 찢어졌으면 죽은거죠.

산새처럼 날아갔어요. 어디로 갔는 지는 모른다.

 

6. 슬프면 술을 마셔도 될텐데, 왜 하필 유리창을 보고 있나?

방안은 답답하니깐요.

 

7. 유리창을 보면 답답한게 사라지니?

밖이 내다 보이니깐요.

 

8. 그래도 방안에 있는 건 마찬가진걸?

방 안에 있어도 밖이 보이기만 하면 덜 답답해요.

 

9. 그럼 나는 유리창을 보면서 슬픔을 잊고 있겠네?

아니에요,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고 그래요, 슬픈 것이 자꾸 어른거려요.

 

10. 그럼 유리창은 나의 슬픈 마음을 지속시키네요?

, 보기만 하게 만드니깐요, 볼 수만 있게 하니깐요. 슬픈 내 모습을 비춰주니깐요.

 

11. 그러면, 유리창과 슬픔이 연관이 있는 건가요?

유리창은 밖을 보여주기만 하고 못 나가게 가로막고 있어요. 죽음(이별)은 보고 싶게 만들기만 하고 만날 수는 없게 해요.

 

11-1. 유리창은 어떤 느낌을 주나?

밖을 볼 수 있게 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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