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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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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요점 정리

의미 : 달이 천 개의 강을 비춘다는 말로 석가모니가 중생을 교화함을 말함

창작 : 세종 29년 (1447) 추정 ('석보상절'과 거의 같은 시기임)

간행 : 세종 31년 (1449)

작자 : 세종대왕

형식 : 악장, 서사시

내용 : 석가모니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 찬불가로 용비어천가와는 달리 찬불가(讚佛歌)이므로 궁중 음악에서는 사용 안됨. 상, 중, 하 3권으로 간행되었는데 이 중 상권만이 발견되었다. 수록 작품은 모두 194장이나 이로 미루어 볼 때 전편은 580여 장이 될 것으로 추측됨.

제작동기 :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어 바친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세종께서 보시고 이 글을 지었음(두 500여 곡으로 된 3권의 활자본. 현재 상권 1책이 보물 398호로 지정)

의의 : 용비어천가와 함께 대표적인 신체 악장, 최대의 서사시(敍事詩이고, 15세기 국어의 귀중한 자료이며, 불교문학의 정화(精華)이고, 표기에 한글을 위주로 하여 한자를 협주로 한 점으로써 한글전용이 행해진 최초의 문헌으로 일컬어진다

참고 : <월인천강지곡>을 세조 5년에 '석보상절(釋譜詳節)'과 합본하여 '월인석보(月印釋譜)'라는 이름으로 간행함

내용 연구

'월인천강지곡'의 배경 설화

 

헤아릴 수 없는 먼먼 전 세상 시절에 한 보살이 임금으로 있다가 왕위[王位]를 아우에게 맡기고, 부처의 도리를 배우러 출가하여 구담 바라문(瞿曇拍羅門)을 만나 자기의 옷[王位]을 벗고 구담의 떨어진 옷을 입고 깊은 산에 들어가 과실과 물을 잡수시고 좌선(坐禪)하시다가 자기가 다스리던 나라에 걸식(乞食) 하러 내려오니 모든 사람들이 그를 왕인 줄 몰라보고, 다만 구담의 제자라 소구담이라고 했다. 이 보살이 성 밖의 사탕수수밭에 불도를 닦는 정사를 만들어 혼자 좌선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마침 500명이나 되는 도둑 떼가 나라의 제물을 훔쳐 가지고 보살이 좌선하고 있는 정사 앞을 지나갔는데, 이들은 보살의 500세(世)전의 원수였다.

이해와 감상

 

석가모니의 공덕을 기린 작품으로 불교 문학의 정수로 조선시대 세종이 지은 악장체의 찬불가(讚佛歌). 상권 1책과 중권낙장이 보물 제39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용은 석가의 전생으로부터 도솔천에서 하강하여 왕자로 생장하고, 화려한 결혼생활 가운데에서 인생에 대한 번민으로 출가, 수도하여 불도를 깨치고, 장엄한 권능으로 중생을 교화, 제도하다가 열반하여 그 전신 사리를 신중들이 봉안, 신앙하기까지의 전생애를 소설적인 구조로 서사화하였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석가의 인격과 권능을 신화적으로 미화함으로써, 이 작품은 영웅의 일생을 찬탄하는 전형적인 서사시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또한, 표현면에서도 완벽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음곡(音曲)에 의하여 가창(歌唱)됨으로써 거기에 알맞은 운율로 조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의 묘사에서 서경이나 서정이 뛰어나고 수사법이 고루 갖추어짐으로써 수려한 서사시로 완결되었다.

〈용비어천가〉와 함께 최고의 국문시가로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교성과 문학성을 조화, 통일시킨 장편서사시로서, 인도문학의 걸작이라는 ≪불소행찬 佛所行讚≫과 대비되는 명작으로 평가된다.

별곡계통의 악장체를 집대성한 거작으로 자리를 굳혔고, 〈용비어천가〉와는 달리 일관된 서사성을 지님으로써 시가문학사상 중요한 구실을 하여 왔다.

곧 이 작품은 ‘이야기체 노래’로서 가사(歌辭)의 기본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가사문학의 형성과정에서 한시계통의 가사구조로부터 본격적인 가사에 이르는 중간에 자리하여 그 맥락을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월인석보≫에 이르러 불교계 강창문학(講唱文學)의 대본이 되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상절부(詳節部)는 강설하는 부분이고 월인부는 가창하는 대목으로 되어 있어서, 이것이 강창문학의 표본이라면 국문학의 소설사 내지 희곡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보물 제398호. 활자본. 상중하 3권으로 되었으나 현재 상권 1책과 중권의 낙장(落張)이 전할 뿐이다. 이 책은 ≪석보상절 釋譜詳節≫과 함께 합편되어 ≪월인석보 月印釋譜≫로 간행되었다.

 

원간본과의 대조에 의하면, 이 때 ≪석보상절≫보다는 심하지 않으나 한자(漢字)와 독음의 위치 변경, 한자음 종성(終聲)에서의 ‘窮’ 사용, 협주(夾註)의 추가, 가사(歌詞)의 수정 등 부분적인 변개와 곡차(曲次)의 변동이 있었다. 이 책이 단독으로 중간된 일은 없다.

≪월인석보≫에 전하는 〈석보상절서〉에 의하면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석보상절≫을 지어 올리자 이를 본 세종이 ≪석보상절≫의 내용에 맞추어 부처의 공덕을 칭송하여 읊은 것이라 한다.

‘월인천강’이라는 명칭 자체도 부처의 공덕을 칭송한 것으로서, ≪월인석보≫ 권1의 첫머리에 “부텨 百億世界(백억세계)에 化身(화신)悧야 敎化(교화)悧샤미 愷리 즈믄 佳犬매 비치요미 加悧니라.”라고 한 주석에서 보듯이, 곧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지만 백억세계에 화신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이 마치 달이 하나이지만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수많은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 말미암은 것이다.

이 책의 간행시기는 ≪석보상절≫이 이루어진 1447년(세종 29)에서 그 다음해인 1448년 사이에 완성하여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권상에 실린 노래가 모두 194곡이므로 전체로는 모두 580여 곡의 노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권상 1책과 권중의 낙장만이 전해지고 있으나, ≪월인석보≫에 실린 노래까지 합하면 모두 약 440곡이 알려져 있다.

한글로 표기된 운문(韻文)으로서는 〈용비어천가〉 다음가는 최고(最古)의 자료로서, 장편서사시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특히, 표기에 있어서 한글을 위주로 하고 한자를 협주로 표기한 최초의 문헌이다.

이 한글 위주의 체재는 한자를 먼저 놓고 한글을 그 아래에 달아놓은 ≪월인석보≫의 〈월인천강지곡〉 부분과 대조적이어서 한글을 존중한 세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 한자음 표기에 있어서도 이 책에서는 음가(音價) 없는 종성에 ‘窮’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징적인데, ≪석보상절≫ 이후의 문헌에서는 동국정운식(東國正韻式) 한자음 표기의 한 특징으로서 위와 같은 환경의 종성에 ‘窮’을 사용하였다(예 : 希 ○).

이 밖에 중성(中聲)의 자형(字形)에 있어서도 ‘ㆍ’, ‘○’의 경우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한글 자형의 변천을 아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편, 활자는 ≪석보상절≫과 똑같이 갑인자(甲寅字)인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와 함께 쓰인 한글 활자를 포함하여 서지학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한교과서주식회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상권과 중권의 낙장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석보상절≫에 끼어 전한다. 1961년 통문관(通文館)에서 실물크기대로 영인, 간행하였으며, 그 밖에 1962년 ≪국어학 國語學≫ 1호 등에도 영인,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註解 月印千江之曲 上(許雄·李江魯, 新丘文化社, 1962), 論註 月印千江之曲 上(朴炳采, 正音社, 1974), 月印千江之曲攷(金思燁, 李朝時代의 歌謠硏究, 大洋出版社, 1956), 月印千江之曲解題(南廣祐, 國語學 1, 國語學會, 1962), 月印千江之曲 解題(許雄, 韓國의 名著, 玄岩社, 1969), 月印千江之曲(李東林, 韓國의 思想 大全集 7-세종-, 同和出版公社, 1972), 中世語의 한글資料에 대한 綜合的考察(安秉禧, 奎章閣 3, 서울大學校圖書館, 1979), 月印千江之曲의 몇 가지 問題(史在東, 語文硏究 11, 語文硏究會, 1982).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월인천강지곡

조선 세종이 1449년(세종 31)에 지은 불교 찬가(讚歌)로, 보물 제398호. 1447년에 왕명에 따라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지어올리자 세종이 석가의 공덕을 찬송하여 지은 노래이다. 그러나 왕의 측근이었던 김수온(金守溫)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것이라는 이설(異說)도 있다. 《월인천강지곡》이란, 부처가 나서 교화한 자취를 칭송한 노래라는 뜻으로, 상 ·중 ·하 3권에 500여 수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아울러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한국 최고(最古)의 가사(歌詞)이다.

이 책의 표기법에 관하여 몇 가지 두드러진 점을 들어보면, ① 당시의 맞춤법은 모두 표음(表音)의 원칙, 즉 소리나는 대로 적는 원칙에 따랐다. 곧, ‘사ㆄ미怠,바翠(食), 머그니(食), 마가(防)…’ 식으로 풀이씨(用言)와 줄기(語幹)와 씨끝(語尾)과의 구분이 지켜지지 않고 표기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일이시나, 눈에, 말이시나, 일흠은, 담아, 안아, 안굼시니이다, 낮과, 곶우흰, 곶비, 맞나겝側며, 깊거다… ’ 등으로 비교적 현대 문법과 가깝다. ② 다른 문헌이 한자(漢字)를 앞세우고 그 밑에 한글로 음을 다는 표기법을 채택하고 있음에 비하여, 이 책은 그 위치가 반대로서 한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한글을 사용하려는 주체성(主體性)의 발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③ 종성(終聲)이 없는 자리에 ‘ㅇ’을 붙이던 당시의 한자음 표기법을 볼 수 없다는 점 등이다.

이는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및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 등과 함께 정음 창제 당시의 언어연구로서 빼지 못할 자료가 되지만, 《월인천강지곡》의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예술적인 독창성의 결여 때문에 그다지 높게 평가되지는 못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산일되어 상권만이 전하다가 1961년 진기홍(陳錤洪)에 의하여 발견되어 3권으로 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1962년에 통문관(通文館)과 신구문화사(新丘文化社)에서 각각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또한 1995년 12월 발견된 《월인석보(月印釋譜)》 권25에 새로운 《월인천강지곡》의 시 7수가 수록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1곡

높고 큰 석가불의 끝없는 공덕을 이 세상 다하도록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이 세상 다할 때까지 아뢰고 아뢰어도 능히 다 아뢸 수 없을 만큼 높고 크십니다.)

요점 정리

주제 : 석가불의 무량 무변한 공덕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월인천강지곡'의 '월인천강'은 밝은 달이 이 세상의 모든 강물에 고루 다 비친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교화(敎化)가 온 세상에 가득함을 비유한 말이다. '其一'과 '其二'는 함께 '월인천강지곡'의 서장(序章)이다. '其一'은 '용비어천가' 제 1장처럼 형식상 파격을 가져온 장으로 설의법과 과장법을 동원하여 끝없이 넓고 크신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였음.

2곡

석가 세존의 하신 말씀을 사뢸 것이니, 천 년 전에 하신 말씀이시지만, 귀에 듣는 듯이 여기소서.

요점 정리

세존의 일(만 리 밖의 일)과 세존의 말씀(천년 전의 말)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석가 세존의 하신 일을 말씀드릴 것이니 (우리 나라에서) 만 리나 떨어진 곳 (인도에서 일어난)의 일이지만 눈에 보는 것같이 여기소서라는 뜻으로 '其二'는 2절 4구의 형식 을 갖추어 '용비어천가'와 같은 악장체 문학의 정형을 이루었다. 시간적·공간적으로 멀고 아득한 석가 세존의 말씀과 행적을 아뢸 것이니, 현세에서 보고 듣는 듯이 여기라는 내용이다.

3곡

먼먼 전 세상에 (전생의 석가모니가) 임금 자리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정사 앞에 앉아 게셨다. 오백 명의 전 세상 원수가 나라의 공물을 훔치고 지나갔다.

요점 정리

주제 : 석가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임금이 출가하여 정사에서 도를 닦음과 전생의 원수가 나라의 재물을 훔치어 나감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其三'은 석가 세존이 태어나기 전 세상의 이야기로, 구담씨(瞿曇氏)의 내력을 밝힌 내용이다. 이렇듯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은 불교의 연(緣)을 중심으로 한 윤회 사상(輪廻思想)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곡

(왕은 정사에 앉아 있는 보살이) 형님인 줄 모르므로, 발자취를 밟아가서 (보살이 도둑인 줄 알고 잡아다가) 나무에 몸을 꿰어 (화살로 쏘아) 목숨을 마치게 하셨다. (보살 소구담이) 자식이 없으므로 (대구담이) 그의 피를 모아 그릇에 담아서 남녀를 태어나게 하셨다. (소구담의 대를 감자씨가 이음)

요점 정리

석가모니 전세의 내력(보살의 죽음과 보살의 대승인 남녀 탄생)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왕은 정사에 앉아 있는 보살이) 형님인 줄 모르므로, 발자취를 밟아가서 (보살이 도둑인 줄 알고 잡아다가) 나무에 몸을 꿰어 (화살로 쏘아) 목숨을 마치게 하셨다. (보살 소구담이) 자식이 없으므로 (대구담이) 그의 피를 모아 그릇에 담아서 남녀를 태어나게 하셨다. (소구담의 대를 감자씨가 이음)라는 뜻으로 其四는 그 계속으로 석가씨의 먼 조상의 출현을 노래한 것이다. 전 세상 원수로 인하여 아우에게 죽음을 당하고 다시 대구담의 신통력으로 남녀로 태어나는 불교의 연을 바탕으로 한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윤회(輪廻) 사상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심화 자료

 

'월인천강지곡'의 배경 설화

 

헤아릴 수 없는 먼먼 전 세상 시절에 한 보살이 임금으로 있다가 왕위[王位]를 아우에게 맡기고, 부처의 도리를 배우러 출가하여 구담 바라문(瞿曇拍羅門)을 만나 자기의 옷[王位]을 벗고 구담의 떨어진 옷을 입고 깊은 산에 들어가 과실과 물을 잡수시고 좌선(坐禪)하시다가 자기가 다스리던 나라에 걸식(乞食) 하러 내려오니 모든 사람들이 그를 왕인 줄 몰라보고, 다만 구담의 제자라 소구담이라고 했다. 이 보살이 성 밖의 사탕수수밭에 불도를 닦는 정사를 만들어 혼자 좌선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마침 500명이나 되는 도둑 떼가 나라의 제물을 훔쳐 가지고 보살이 좌선하고 있는 정사 앞을 지나갔는데, 이들은 보살의 500세(世)전의 원수였다.

5곡

(보살 소구담이) 불쌍하게 목숨을 바치매, (그 피로 인하여) 감자씨가 이으심을 대구담이 이루었습니다. (선혜라는 선인이) 아득한 후세에 석가모니불이 되실 것을 보광불이 말씀하셨습니다.

요점 정리

석가불 조상의 내력(감자씨의 승계와 보광불의 예언)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보살 소구담이) 불쌍하게 목숨을 바치매, (그 피로 인하여) 감자씨가 이으심을 대구담이 이루었습니다. (선혜라는 선인이) 아득한 후세에 석가모니불이 되실 것을 보광불이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말로 其五는 자식이 없는 수구담(보살:임금)의 뒤를 대구담이 감자씨로써 잇게 했음을 말한 것인데, 이는 곧 소구담의 자손인 감자씨의 계승을 알린 것이다.

160곡

(노도차가) 칠보로 된 산을 만들어 내니, 물과 나무가 있으며, 꽃과 열매가 모두 갖추었습니다. (사리불의 신념으로), 금강역사가 나오니, 금강저를 잡아 열리에서 겨누니 (칠보산이) 곧 무너졌습니다.

요점 정리

주제 : 노도차와 사리불의 재주를 겨룸(노도차의 조화와 사리불의 불력)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노도차가) 칠보로 된 산을 만들어 내니, 물과 나무가 있으며, 꽃과 열매가 모두 갖추었습니다. (사리불의 신념으로), 금강역사가 나오니, 금강저를 잡아 열리에서 겨누니 (칠보산이) 곧 무너졌습니다는 뜻으로 其116는 사리불과 노도차의 재주 겨룸에서 사리불이 노도차를 물리친 불력을 찬양한 것이다.

기타 작품

其158

노도차가 많은 사람들 앞에 나와 재주를 부려 나무 한 그루를 만드니 금방 가지가 퍼져 모든 사람을 가려 덮는데 꽃과 열매가 가지마다 달렸다. 사리불이 이것을 보고 신력을 내어 모진 바람을 일으키니 그 나무는 뿌리가 뽑아지며 가지가 꺾이어 떨어져서 먼지가 되어 부서지므로 모두 사리불이 이겼다고 소리쳤다.

其159

노도차가 못(池) 하나를 만드니 사면이 모두 보배고 그 가운데는 갖가지 꽃이 피었다. 사리불이 이것을 보고 어금니마다 여섯 개의 연꽃이 피었고 연꽃 위마다 일곱 옥녀가 있어 이 못의 물을 다 마셔 버리니 못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其 161

노도차가 또 용 한 마리를 만들어 내니 머리가 열이라, 허공에서 비가 오며 여러 가지 보배가 떨어지고 우레가 치고 번개가 번쩍거리니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사리불이 한 마리 금시조(금빛 날개를 가졌다는 새 - 날개 넓이가 360만 리인데 용을 잡아먹는다고 함.)를 만들어내니, 온 세상을 덮을 만큼 큰 새가 그 용을 잡아서 찢어 먹으므로 모두 사리불이 이겼다고 말하였다.

其162

노도차가 또 재주를 부리어 한 마리의 소를 만들어내니, 몸이 굉장히 크고 다리가 매우 굵고 날카롭더니, 이 소가 땅을 후비며 큰 소리를 지르고 뛰어 왔다. 사리불이 이것을 보고 사자 한 마리를 잡아먹으므로 모두 사리불이 이겼다고 말하였다.

其163

노도차가 몇 번을 지고 난 뒤에는 제 몸이 야차(夜叉)=두억시니.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장 가운데 하나 또는 여기서는 생김이 추악하고 사람을 해치는 혹독한 귀신)가 되어 몸이 길고, 머리 위에 불이 붙고, 눈이 피 같고, 손톱 발톱과 어금니가 날카롭고, 입에서는 불을 토하며 달려왔다. 사리불도 자신이 비사문왕(사천왕 가운데 비사문의 임금)이 되니 야차가 무서워하며 달아나려 하였으나 사면에서 불이 일어나므로 갈 데가 없었는데, 오직 사리불 앞에만 불이 없으므로 곧 그리로 가서 항복하며 "살려주소서."하고 비니, 즉시 불이 꺼지고 사람들은 사리불이 이겼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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