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설화
by 송화은율원화설화
신라 진흥왕 때 두 원화(原花)인 남모(南毛)·교정(孤貞)간에 얽힌 설화. 원화는 화랑의 전신으로 화랑도(花郎徒)는 국선도(國仙徒)·원화도(原花徒)·풍월도(風月徒) 등으로도 일컬은다. ‘源花’(원화)라고도 표기한다.
≪삼국유사≫ 권3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郞)·진자사(眞慈師)조와 ≪삼국사기≫ 권4 진흥왕(眞興王)조에 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민가의 아름다운 처녀들을 골라 원화라 하여 그들에게 효제충신(孝悌忠信)을 가르쳤는데, 남모와 교정(삼국사기에는 俊貞으로 되어 있음.)을 원화로 뽑았다.
그런데 교정은 남모를 질투하여 술을 먹여 몰래 북천(北川)으로 데려가 살해하였다. 이 사실이 동요를 통하여 알려져 남모의 시체를 북천에서 찾아내자, 교정도 죽음을 당하고 원화는 곧 폐지되었다.
그 뒤 여러 해를 지나 이번에는 양가의 덕행 있는 사내를 뽑아 명칭을 화랑이라 고치고 처음으로 설원랑(薛原郎)을 받드니 이것이 화랑의 시초이다. 이때부터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선행을 일삼으니 오상(五常)·육예(六藝)·삼사(三師)·육정(六正)이 널리 행하여졌다.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 花郎世紀≫에는 어진 재상과 충성된 신하가 모두 화랑에서 나오고,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군사도 여기에서 생겨났다고 하였으며,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 鸞郎碑〉 서문에도 현묘의 도, 풍류의 도라고 하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三國史記, 花郎道硏究(李宣根, 鮮光印刷株式會社, 1948), 花郎世紀의 史料的 價値(李載浩, 정신문화연구 36,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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