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원귀마당쇠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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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공연된 '원귀마당쇠' 원본

다시 찾은 '원귀마당쇠'

홍갑표 기자

 

'원귀마당쇠'는 가면극의 대본이다.

1961년 서울대학교에서는 <향토개척단>이라는 농어촌 학생 활동단체가 있었다. 이 단체는 419직후에 활동한 서울대학교 국민계몽대의 법통을 받아 12개 단과 대학을 망라하여 조직되어 활동하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지고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총맞아 죽던 해인 19793월에 해단되었다.

1963 겨울 이 단체에서는 이미 의식화 운동의 하나로 제 1회 향토의식초혼굿(鄕土意識 招魂굿)을 기획하고 (4대 단장 송기중-현 서울대 국문과 교수 시기) 강연,사대주의 장례식, 살풀이, 가면극(원귀마당쇠),농악과 함께하는 뒷풀이 등을 내용으로 하는 축제를 벌였다.

나는 이미 졸업을 했으나 후배들 행사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만해도 지금의 굿판같은 데 어울리는 ''를 기진 학생이 드믈었다. 남자 탈춤의 기본인 어깨흥을 추스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미 졸업한 이영윤 친구도 변학도로 뛰지 않울 수 없었다.

이 극은 곧 이어 대학을 벗어나 대구 경북고 학생과 경북대 학생들이 출연하여 대구 KBS방송국 공개홀인 KG홀에서 공연하여 절찬을 받았다. 그 때 연출은 내가 맡았다. 사대주의 장례식에 사용된 상여와 허수아비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박수를 받았던 임동규 친구가 2001 민족통일대축전에 범민련 남측 부의장 자격으로 방북했다가 문제가 되어 아직도 공판에 계류중임이 안타까웁다.

 

자세한 내용을 소개한다.

강연회

'향토개척의 문제와 방향이 농업발전을 저해하는 근본 원인'-김문식 교수(농대 교수-지도 교수)

'농업 협동화 이 가능성과 의의'-박동묘(상대-교수 지도교수)

 

신판 광대 놀이

' 寃鬼 마당쇠'(1) 조동일 작 이필원 연출

[원귀 마당쇠]의 대본과 조동일 교수의 글이 부록에 있음)

 

농악 굿

'나가자! 歷史'-

'향토 의식 소생굿'

'사대주의 살풀이'

'난장판 민속놀이'

'조국 발전다짐 굿'

 

<향토의식 초혼 굿>

사대주의 철저 배격

<19일 본부서 광대놀이농악 굿 등 흥겨워> (당시 대학신문의 기사 한도막)

 

"학생 농촌 운동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여 기세를 올리던 향토개척단에서는 자체의 자세를 반성하고 민족 예술 현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에 1회 향토의식 초혼 굿이라는 이름의 축제를 벌렸다. 지난 19일 하오 5시 문리대 강당에서 '향토개척단의 문제와 방향'이라는 강연회 (=연사 김문식, 박동묘 교수)를 열고 이어서 문리대 소극장서 신판 광대놀이를 공연 문리대 교정에서 사대주의 장례식 , 농악 굿 등을 호화롭게 열었다. 횃불이 높이 지피고 巫歌와 농악이(동국대학교 농악대-당시 유일한 대학 농악대) 흥겨운 가운데 막걸리를 나누면서 대학가를 떠들석하게 한 이 축제는 종래의 외래풍 카니발과 달리 흥겹고 친근한 향토성이 미만(?)했다는 점으로 이채로웠으며 농촌과 농민을 토대로 한 주체성 확립을 다짐했다는 점으로 큰 의의를 보였다.

이날 강연회를 끝내고 시청각 교육센터 소극장에서 막을 연 광대놀이원귀 마당쇠(趙東一-현서울대국문과교수 작 李弼遠연출)은 탈을 쓴 평민의 원귀 마당쇠(홍갑표-졸업)군과 전형적인 악덕 양반 학도군(이영윤-졸업   세실그장 및 세실레스트랑 경영)이 등장하여 (무덤가에 앉아) 옛날과 지금의 농촌 생활을 비교 - 신랄한 새타이어를 풍겼고 변학도가 상놈인 마당쇠한테 속죄하고 새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등 관중을 시종 시원한 웃음에 잠기게 했다.

연극이 끝나자 事大買辦屈從之柩를 넣은 상여를 몰고 문리대 교정을 한바퀴 돌면서 장례식을 지냈다. 향토개척단 학생들이 運柩하여 4.19 기념탑 앞에서 유세차.....祭爲事大主義하노라운운의 제문(별항 참조)을 읽으면서 관을 태워 버릴 때는 박수가 터저 나오기도 하였다.

이어 학생들은 횃불을 높히면서 巫歌에 맞춰 노래와 춤을 추고 통째로 갖다 논(드럼통에다 막걸리를 가득 채우고 호수를 달아 누구나 마음껏 빨아 마시게 했다.)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흥을 돗구었고 요란한 농악소리는 대학가의 주민들까지 구경오게끔 해서 성황을 이루었다. 이번 첫 번째의 이 향토 축제는 좀처럼 없던 이색적인 행사로서 큰 성과를 거두고 19일 밤 10시 지나서야 막을 내렸다."

대학가에서 탈춤이 극으로서 연출된 것이 처음이었고 왈'경성 제국대학'캠퍼스에서 농악이 울려 퍼진 것도 처음이었다. 당시 농악대는 동국대학교 농아대가 협조 출연해 주었다.

 

葬禮式 輓章

 

'事大主義 買辦 屈從之柩'

'謹弔 事大主義'

죽었구나 事大主義 네 자식 까지 몽땅 데려가라

잘 죽었다 事大主義

불쌍하다 째즈

죽어가는 사대주의 자라나는 民族意識

 

<祭文>

=鄕土意識招魂굿 장례식에서=

 

維歲次 癸卯十一月十九 日執祭者遣怨鬼 馬堂鐵이여 招魂民族意識하며 祭爲事大主義하노라. 時運不運하고 天下擾亂할 째 汝輩數萬里 絶域에서 來訪朝鮮하여 恒生吾等이러니 汝輩之所行于今 數千年間哀衰不同커늘 當今祭日하야 ! 讀汝之罪狀하오니 지어다. 汝豈不知乎리오! 汝祖誕于中國하야 傳來四方하여는 小國擾亂하고 民心洶洶케 하여 昏闇國民之耳目하고 不辨生路케하며 種落相傳타가 至於汝身하니 君子之所件이오 國家之所案어늘 維吾等慈愛之心으로 收拾汝身하여 處至于今이러니 改過遷善하여 當盡心竭 忠하여 圖報天恩하고 修勵 名節 以盡前罪어든 ! 不知汝罪하고 相存依托國民之心하야 擾國亂民하니汝罪深大于今至當하여는 吾等自立勸勵하여 國民啓蒙하여 造還刷新하여 新世代之 理念으로 救國富財하고 改正本然之國休하리니 我邦之國汝輩不生不하리라 此時以後不許慈愛之心하리니 歸地汝鄕하여 好生하라.此陳設之物諸般槪念으로 飽食盡充하여 歸鄕之路(?)하라. 蒼天在上하고 神明在傍하니 雖無知少年犯次中一罪라도 愷愷漂漂하여 不知其死所어든 汝今冒彌天大罪하고 將何歸乎.

 

祭文 해설

유세차 계묘년 1119일 제사를 집행하는 집제자가 원귀 마당쇠를 보내서 민족의식의 혼을 불러 사대주의를 제사 하노라.

시운이 불운하고 천하가 요란할 새 너희 무리들은 어찌 수 만리 아득히 떨어진 이역에서 조선을 찾아와 줄 곳 우리와 살더니 너희 무리의 소행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천년간 희노애락과 흥망성쇠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았거늘 오늘 제일을 당하여 우리들이! 네놈들의 죄상을 읽으리니 들을지어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너희 조상들이 중국에서 태어나 사방으로 전래되어 소국을 요란하고 민심을 흉흉케 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혼미하고 어둡게 하고 살아갈 방향과 길을 분별치 못하게 하며 씨를 내려 서로 전래해 오다가 네놈들 몸 속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니 군자들이 가히 문제 거리로 삼을 일이요 또한 국가적으로 다룰 안건이로다 허나 우리들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너희들의 몸뚱이를 수습하여 오늘에 이른 바니 개과 천선하여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충성함으로써 하늘의 은혜에 보답하고 힘써 이름과 지조를 닦음으로써 전죄를 말끔히 씻을 지라.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지 못하고 항상 국민의 마음속에 의탁하여 나라를 흔들고 백성을 분란케 하니 네 죄가 너무나 깊고 큰 바이다. 이제 오늘을 당하여 우리들은 자립을 권하고 장려하며 기풍을 쇄신하여 역사를 스스로 창조하고 국민을 계몽하여 완전 쇄신하여 새 세대의 이념으로 나라를 구하고 부강케 하고 국체를 본연의 모습으로 바르게 개조하노니 우리 나라에서 네 무리들은 함께 살지도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라.

지금이 지나면 결코 자애로운 마음을 허락치 않으리니 너희들의 고향으로 썩 돌아가고 서로 잘 살도록 하라. 이 제사에 차려 놓은 제물의 여러 개념(槪念)을 맘껏 배불리 먹고 네 고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핍진하여 쓰러 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푸른 하늘이 위에 있고 신명이 옆에 게시니 어찌 무지한 소년이라도 이 중의 죄 하나라도 범하면 할 바를 몰라 개개표표(희노가 엇갈려 조바심하여?)하여 그 죽을 바를 알지 못하거늘 오늘날 네놈이 하늘에 진 큰 죄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진데 장차 어찌 다 돌려 보낼고?

 

'원귀마당쇠' 원본과 조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뜻있는 이들의 폭 넓은 활용을 기대한다.

 

鄕土意識 招魂굿(19631)

(新撰 광대 놀이)

 

[寃鬼 마당쇠]

 

등장인물

 

마당쇠

변학도

원귀 꺽달이

쩔뚝이

팔뚝이

관중석

 

시대- 무대는 현대

극 내용은 이조 말기

 

장소- 무대는 서울대학교

극 내용은 전라도 빈곤군 무지면 절량리

......................

 

무대: 추석날 밤의 묘지. 무덤 3, 4개가 여기 저기 보인다.

각 무덤 앞에는 약간의 제물이 차려져 있다. 초라하고 작은 무덤A 앞에 놓인 제물은 초라하고, 크고 잘 가꾸어진 무덤B앞에 놓인 제물 역시 잘 차려져 있다. 무덤 뒤에는 몇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고, 그 사이로 커다란 달이 보인다.

 

막이 열리면 한동안 음산한 분위기가 계속 되더니, 갑자기 센 바람 소리와 함께 무덤A의 뚜껑이 활짝 열리더니, 원귀 마당쇠가 뛰어 나온다.

 

마당쇠: (뛰어나와서 사방으로 쾅쾅거리며 돌아다닌다. 고개를 끄덕 거리며 여기저기 훑어 본다.)

관중석: 이크 저게 뭐냐? 귀신 나왔다 귀신!

마당쇠: (사방을 둘러 보다가 다시 펄쩍 뛰며)? 나보다가 귀신이라고? (무대 앞으로 나가 면서)그래 나는 귀신이다 귀신이여! 귀신이라면 어쩔 것이여. 그러나 겁낼 건 없어. 사람 해치러 나온 악귀는 아니라니께. 얼빠진 총각 호리러 나온 요귀는 또 아니여 어진 백성 잡아먹을려고 나온 마귀도 아니여. 사귀도 아니고 미명귀도 아니랑께. 몽달귀신도 아니고 엇귀신도 아니어. 그런 건 다 아니란 말이여!

관중석: 그럼 무슨 귀신이냐?

마당쇠: 무슨 귀신이냐고? 난 원귀여, 원귀! 원한이 있어 무덤에서 나왔단 말이여.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면서)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원한이 있어서 나왔당께. 그냥 흙이 될 수는 없어서 나왔어. 가슴에 쌓이고 쌓인 원한은 죽어서도 살아지지 않는 것이여! 나는 할 말이 있어서 나온 원귀여. 원귀여!(뒤로 슬슬 물러나면서) 내가 죽어부렀다고 안심들 했지. 단세 아무 말도 없을 것으로 안심했지? 그 녀석 말썽 없이 잘 죽어버렸다고 기뻐했지? 그랗게 뜻대로 되나? 안될 말이여. 안되지. 뼈마디 마다 원한이 사무친 내가 죽은들 쉽게 썩어버릴 줄 아나? 다시 나오고 마는 것이여. 죽어도 도저히 죽을 수 없당께.

관중석: 너는 도대체 누구길래 원귀가 되었냐?

마당쇠: 누구냐고? 누군가 알아보고 나서 무덤으로 몰아넣을 것이여? 잡아서 곤장을 칠 것이여? 그러나 인자는 그렇게 쉽게 안될 것이여. 겁이 난다면 이렇게 나올 놈이 아니여. 누구냐고?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헐까?

관중석: 성명 삼자를 대아 보아라.

마당쇠: 성명 삼자가 어디 따루 있어? 촌놈의 성은 김가 아니면 이가니께 무식한 선조가 그 둘중에 하나로 정했을 것이고 이름은 우리 엄니가 마당서 나을 낳았다고 마당쇠라 했는 갑이여!

관중석: 어디서 살았나?

마당쇠: 동네 이름이 어디 따루 있간디? 숭년이 하두 자주 드니께 숭년두들이라고 불렀는 갑이여. 그만치만 알면 될 것이여.

관중석: 언제 살았나?

마당쇠: 언제라고?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된단 말이여.(화를 버럭 내며) 날적부터 죽을적 까 지 살았지.

관중석: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라도 없나?

마당쇠: 왜 없갔어? 날리 이야기를 해 볼까? 담관 오리를 잡아 죽인다고 마실장정들이 머리박에다 수건을 동이고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갔어. 세셍이 발칵뒤집어 지고 천재 개벽한다는 소리까지도 들렸어.

관중석: 그 해가 무슨해냐?

마당쇠: 무식한 놈이 육갑을 짚을 줄 알아야지.(갑자기 생각나서 펄쩍 뛰며) 옳지! 옳지!

갑오년이라고 하더라!

관중석: 동학란 말이구나

마당쇠: 뭐라구?

관중석: 현대 사람들은 그 난리를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부르고, 제마다 연구를 한답시고 법석이지.

마당쇠: 별 꼴을 다 보겠다.

관중석: 그건 그렇고 딴 기억은 없나?

마당쇠: 꼭 한가지 더 있지. 숭년 말이다. 숭년. 숭년이야 거의 해마다 들었지만 난리가 끝나고 칠년 후에 든 숭년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큰 숭년이었어. 그해가? 그렇지 계묘년이었어. 난리때 뽀돗이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데, 나같은 병신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겠어.

관중석: 너가 그 때 죽었단 말인가? 앉아서 굶어 죽었나?

마당쇠: 열흘이나 굶은 몸으로 살려 달라고 관가를 달려가다가 발길에 채여 죽었어. 발길에 채여 죽었단 말이여. (발길에 차인 듯이 넘어진다.)

관중석: 기구한 한 평생이었구나 원귀가 될만도 해.

마당쇠: 보통 원귀가 아니여. 원귀 중에서도 대장이라니께. 그래서 팔도 강산 원귀들이 할 말을 다 해주려고 나온거야.

관중석: 옛날 원귀들은 원이나 감사 꿈에 현몽을 해서 해원을 하던데..

마당쇠: (소리를 버럭 질러 말을 막으며) 무어라고? 원님 꿈에 현몽을 해? 차라리 개 새끼 꿈에 현몽을 하지. 그 따위 얼빠진 소리가 어디서 나온 당께? 내가 누구한테 원한이 맺혔고 누구 때문에 죽었는데? 현몽은 고사하고 가서 그 놈의 원이란 자를 콱 찔러 죽여 버릴려고 어제 저녁에도 나가지 않았나.

관중석: 그래서?

마당쇠: 그래서가 뭐야! 원 이놈의 세상.

어떻게 되었는지 관가가 있던 자리에는 빈터만 남아있고 골목골목 못 보던 집들만 꽉 둘러 있지 않겠나. 그런 판에 그 놈의 원이란 자를 찾을 수 있어야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여?

내가 죽은 놈이라고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나?

관중석: 너의 눈에 안 보이는게 아니야.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데 그 자리에 관가가 아직 남아 있기를 바라느냐? 원님이 아직 남아 있을 리가 있나? 다른 방법으로 원한을 풀어야지.

마당쇠: 그러면 그 놈의 원이란 작자를 어디서 만나나?

관중석: 같이 찾아보도록 하자.

마당쇠: (두리번 거리며 살핀다) 그 녀석이, 그놈이 어디 있나? (관중석 가까이 가서 한참 두리번 거리다가) 그런데 여기 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들 모여 있나? 또 무슨 난리가 났나?

관중석: 난리가 난게 아니고 서울대학교에서 굿을 한다고 해서 구경꾼들이 모인거야.

마당쇠: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서울 대학교라니? 뭘하는 곳이여?

관중석: 뭘하긴 뭘해. 글 배우는 곳이지.

마당쇠: ! 그럼 서당이로구나 이것 잘 못 왔는데..

관중석: 서당이긴 서당인데 옛널 서당과는 다르지 공자왈 맹자왈은 배우지 않고 다른걸 배워.

마당쇠: 다른 공부가 어디 있당께?

관중석: 옛날일이나 지금일이나 옳고 그른 것을 다 밝혀 배우는 거야.

마당쇠: 그래? 옳지 되았어. 그럼 내 이야기도 들어주고 옳고 그른걸 밝혀 주겠구먼. (좋아서 날뛴다) 인자사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만났구만. 뒷산에다 대고 허트리던 소리들을 다 털어 놓아도 좋단 말이여?

관중석: 무슨 말이라도 해야 돼.

마당쇠: 그런데 굿은 왜 함시로 이러지?

관중석: 너 같은 원귀들 살아 나와서 할말을 다 하라고 굿을 하는거야.

마당쇠: 오라~! 그래 내가 굿 하는 소리를 듣고 깨어 났구나. 그래 뭐가 이상하드라니까.

관중석: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마당쇠: 말을 할라니께 먼 말을 먼저 해야 될지 모르겠다니까.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가슴이 갑갑하고, 숨이 콱콱막히고,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방구가 뿡뿡 나오기만 한다니께.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이 만한 불덩이가 모가지로도 치밀고 가슴으로도 치밀고 허리로도 치밀고 해 사람 환장하것당께. 내 본래 욕쟁이는 아닌데 개좆같이 욕만 나온당께.(무덤 앞에 주저 앉는다.) 아고데. 숨차. 원 이놈의 거 무얼 할랴고만하면 이렇게 숨이 차니...하기야 워낙 먹은 것이 있어야지. 굶어 죽은 놈이 무슨 힘이 있나.(한참 그대로 앉아 있다가 무덤앞에 차려 놓은 제물을 보았다.)옳지 그걸 잊고 있었구나. 손자놈이 이 귀한 음식을 차려 놓고 갔는데.(하나씩 집어 들면서)보리밥 한 그릇, 술 한잔, 오징어 한 마리, 감 한 개, 밤 두알..쯔쯔쯔...(한숨을 내어 쉬면서 눈물어린 목소리로) 후유..손자녀석도 똥구녁이 찢어지게 가난하구나. 그럼시도 할애비 제사라고 이렇게 까지 차리다니 저들은 굶으면서도...쯔쯔.....어서 먹어야지.(밥을 급히 퍼 먹는다)이렇게 차리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을가...(밥그릇을 든 채로 일어나면서) 여보소 내 손자를 보았나?

관중석: 낮에 성묘를 왔을 때 보았지

마당쇠: 어떤 꼴을 하고 왔던가?

관중석: 말도 말어..눈으로 볼 수가 없더군.

마당쇠: 쯔쯔...그럴테지..무슨 옷을 입고 왔던가?

관중석: 무명 잠방이를 입고 왔더군.

마당쇠: 옛날이나 지금아니 꼭 같은 신세 로구나..그놈의 팔자 기구하기도 하지. 허기야 그 심한 숭년에도 아들녀석이 살아 남았고 또 손자까지도 두었으니 신기한 노릇이지. (밥을 몇 숫가락 퍼 먹다가) 어거....저희들은 굶으면서도 할애비제사라고 밥을 떠 놓았는디, 그런 밥을 내가 어떻게 먹을 수 있단 말이여. 목구멍으로 넘어가야지..(밥 그릇을 내려 놓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팔자야..(일어서면서 무덤 B앞에 놓인 잘 차려 진 제물을 보았다.) 이것 보아라. 여기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구나. 이녀석은 복도 많구나.

관중석: 택시를 타고 온 배불둑이가 그걸 차려 놓고 갔다.

마당쇠: 뭐라고? 태백산?

관중석: 태백산이 아니고 택시라고 했다. 택시는 저절로 굴러가는 탈 것인데. 우리같은 가난뱅이는 못타는 거여.

마당쇠: (무덤 B를 걷어차면서) 이자식은 뭣이간디 그런 부자 자손을 두어서 잘 얻어 먹는 것이여.(무덤을 살피다가) 무덤 앞에 비석이 서 있는 걸 보니 예사 무덤이 아니구나. 까막눈이 진서를 알아볼 수는 없어도 이게 양반이라는 도적놈 무덤인 줄은 똑똑히 알지. (앞으로 나오면서) 세상이 이렇다니까.. 양반이란 녀석들 말이여. 특히 우리 고을 다스리던 변학도 같은 자식들 말이여. 욕심 많고 우악스럽고 더럽고 치사스럽스럽고 냄새나고 아니꼬운 도적놈들 말이여. 양반이란 도대체 뭣이여? 일년 내내 피땀흘려 농사지어놓으면 일년 내내 끄트름만 하고 앉았다가 다 빼앗아 가는 도적놈이 아니고 무엇이여. 양반이란 도대체 무슨 말이여.

 

(어깨춤을 추면서 큰 소리로 창을 한다.)

 

개잘량이란 량자에

개다리 소반이란 반자 붙어

양반인가 양반인가

허리꺾어 절반인가

신주 모신 선반인가

이 빠진 쟁반인가

먹다버린 조반인가.

돼지 다리에 각반인가

얌채 법에 위반인가.

 

(무덤 B를 툭툭찬다.)

 

변학도: (무덤 B의 뚜껑을 활짝 열고 튀어나와서) 네이놈! (벼락같이 호령을 한다) 네 이놈! 천하에 이렇게 무엄한 놈이 어디에 있느냐! 이 놈을 그저! 이 죽일놈아! 네 모가지가 열 개라도 너는 살지 못할 것이다!

이놈을 그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린다.) 이 개, 돼지 보다 못한놈아! 눈이 있건들 내가 누군지 똑똑히 보아라!

마당쇠: (변학도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허허! 이런일도 있어!

변학도: (씩씩거리며) 이 놈아! 내가 너의 고을 부사 변학도란 말이다. 이 무엄한 놈아! 네가 아무리 상놈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못 알아 보다니!

마당쇠: 못 알아볼 리가 있어. 너를 지금까지 찾아 다녔는데! (좋아서)바로 여기 있었구나. 몇 천년 몇 만년 살 것 같더니. 너도 결국 죽고 말았구먼..헤헤.. 나와 꼭 같은 신세가 되었단 말이여. 헤헤.

변학도: (더욱 화가나서) 무엇이 어째고 어째!

마당쇠: 하여간 잘 만난거여!

변학도: 잘 만났다고? 여봐라 게 누가 없느냐! 이 박살 할 놈을 당장 끌어 내리지 못하겠느냐! 저 소리가 쑥 들어가게 아가리를 찢어 놓지 못하겠느냐!

마당쇠: (어깨춤을 추면서) 허허~ 이 양반좀 보게 영 돌아버렸당께.

변학도: (더 큰소리로) 여봐라! 게 누가 없느냐!

마당쇠: 여봐라 저리봐라 하고 돼지 목 따는 솔를 지르면 저 달이 대령하겠나, 저 나무가 대령하겠나!

변학도: 여봐라! 통인아!

마당쇠: 헤헤..이 양반보게..여기는 동헌이 아니고 무덤이여! 무덤!

변학도: (아직도 진정하지 못하고) 무어라고? 무덤이라고?(비로소 알았다는 듯이) ..그렇지.. 깜빡 잊어버렸구나.

마당쇠: 하여간 잘 만난거여.

변학도: 네 이놈! 내가 비록 무덤에 묻혔어도..에헴! 근본을 논지하면..에헴..일찍이 문하시중의 자손으로....

마당쇠: 문하시중이라고? 네 할애비가 문하시중이었다면 우리 할아버지는 문상시대 였어.

변학도: 이 무식한 놈아! 문상시대란 무슨 개 수작이냐! 문하시중으로 말하지면 지금의 영의 정과 같은....

마당쇠: 아니, 우리 할아버지가 대문을 고칠 때, 대문위에 올라가서 고쳤으니 문상(門上)이 아니여. 그리고 말을 몰고 대문 가운데서 큰소리로 부를 때 까지 기다렸으니 시대(侍大)가 아니여..문하시중이 문제가 아니여.

변학도: 뭐라구! 난 이래도 사대부란 말이다! 공자께서 가라사대 사대부란....

마당쇠: 귀신한테도 사대부가 있고 오대부가 있나? 네가 사대부라면 난 팔대부는 된다는 것이여.

변학도: 이 죽일놈아! (화를 더 내며)그건 그렇다 하고 너 지금까지 무어라고 떠들었지 누워서 듣노라니까 별별 개수작을 다 하던구나. 나를 찾아서 어떻게 하겠다고?

마당쇠: 하여간 잘 만난거여

변학도: 게 아무도 없느냐?

마당쇠: 이 양반 죽은 것만 해도 서러운데 정신까지 돌았구려.

변학도: 이녀석을 그저 (마당쇠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다)

마당쇠: (도리어 변학도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든다) 힘이 모자라서 절절기면서 산 줄 아나. 굶어 죽은 놈이지만 너 하나 메어칠 힘은 있다니께!

변학도: (숨이 막히면서) 이놈이! 이놈이!

마당쇠: 그렇게 땅땅 얼러대면 쌀을 갖다 바치겠나? 돈을 갖다 바치겠나?

변학도: (숨넘어 가는 소리로) 이 죽일 놈아!

마당쇠: (역시 멱살을 잡고 흔들면서) 너도 죽은 놈이고 나도 죽은 놈인데, 무얼 그러느냐? 죽은 놈에겐 체면덜된 수작 하지 말고 아니꼽게 굴지마라. 그런 수작 집어 치운다면 놓아 준다.

변학도: (마당쇠가 놓으니까 그 자리에 덜컥 주저 앉는다. 한참 후에 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연다.) . 이놈아 자고로 이르기를 관장은 어버이와 같아고 했는데, 내가 비록 죽은 몸이라 해도 이게 무슨 짓이냐! (일어 선다.)

마당쇠: 관장이 어버이라고? 세상에 자식 등쳐먹는 어버이를 어디서 보았느냐 말이여! 우리농부가 너희들 양반을 먹여 살렸지 너희들 양반이 우리들을 먹여 살렸단 말이냐?

변학도: 이놈이 사서삼경을 못 읽어서 저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구나.

마당쇠: 뭐라구? 사서삼경이라구? 난 이래뵈도 팔서육경을 읽었어.

변학도: 팔서 육경이 도대체 뭐냐!

마당쇠: 히히. 양반이라면서 육경도 몰라. 나 같은 상놈도 아는데..에헴..육경을 논지하면, 일 찍이 공부자께서 가라사되 육경이란 자고로 에헴..(하나씩 손을 꼽는다) 첫째. 봉사안경, 둘째 머슴쇄경, 세째 처녀 월경, 넷째 야경꾼만 잡는 순경, 병신들 춤추는 광경, 에헴..그리고 나서 에헴...(청중들을 가리키며)이 밥통들 초혼굿 구경! 내가 아는 육경을 니가 몰라.

변학도: 너 이놈 진서는 못 읽었을게다. 우리 사대부들은 진서를 보고 풍월을 읊는데.

마당쇠: 무어라고..?

변학도: 상놈이 풍월을 알겠나마는 내 한수 읊을 테니 너 모르겠지만 들어 보아라.

에헴.(엄숙하게.)

 

금준미주난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난 만성고라

촉루락시에 민루락하고

가성고처에 원성고라 에헴...

 

마당쇠: 이게 무슨 소리여

변학도: 그러면 그렇지..네가 그 뜻을 알겠느냐? 으흠.. 이건 바로 저 송나라 시인 이타박이가 한고조 홍문면 잔치때 한 수 읊은 거여.

관중석: 그놈 되게 유식하네.

변학도: ..그 뜻을 색이자면, 진서의 뜻을 상놈이 알가마는 으흠..말하자면..

금 술잔의 좋은 술은 천하에 제일이요

옥소반 좋은 안주는 만고에 으뜸이라.

촛불이 떨어질 때 오동잎 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오기러기 날더라.

에헴..이게 풍연가 아니여

 

관중석: 엉터리다.

관중석: 놈 되게 무식하네..

마당쇠: 히히 웃기지 말어.. 진서를 안다는게 결국 그것 뿐이여? 그 소리는 나도 알어. 모르는 사람이 없단 말이여. 그게 배곯아 죽겠다는 소린데....?오동잎이 지고 외기러기 가 날아?

관중석: 마당쇠 잘 한다.

마당쇠: 너가 글을 안다고 하는 건 다 거짓말이고 너가 아는건 백성들 등쳐 먹는 수단 밖에 더 있어? 이런 바보 천치가 백성들 등처 먹는데는 여우 같고 늑대 같다니께.. 이 도적놈아!

무덤C: 도적놈아

무덤D: 도적놈아

무덤E: 도적놈아.

변학도: 이크 이게 무슨 소리냐?

마당쇠: 천지 신명이 노해서 도적놈을 벌 줄려는 거다.

변학도: 뭐 천지 신명이 (부들부들 떤다) 제발..

마당쇠: 내 이제 천지신명 앞에서 너가 도적놈인 연유를 낱낱이 아뢸 것이여. 할말 있거든너도 하란 말이여.

변학도: 이걸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이여.

마당쇠: 우리같은 농부는 일년 내내 피땀흘려 농사지어도 굶는데, 너같은 놈들은 일년 내내 끄트름이나 하고 발구락의 때나 문지르고 앉았어도 잘 쳐먹으니. 우선 그게 도적질이 아니여!

변학도: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마당쇠: 죽도록 농사지어 놓으면 반도 넘게 뺴앗아가지 않았는가베. 숭년에도 빼앗아가고 농사를 못지어도 빼앗아가고, 묶은 밭에서도 빼앗아가고, 돌자락 밭에서도 빼앗아 가고 하지 않았는가베. 그게 도적질이 아니란 말이여.

변학도: 왜 자구 들추어 내는 거냐!

마당쇠: 봄에 쌀을 빌려주고 가을에 받아간다고 해 놓고 또 얼마나 빼앗아 갔나! 안 꾸어주고도 가져가고, 쌀에다가 모래를 썪어서 주고는 받아갈 때는 몇 갑절 빼앗아 가고 하지 않았어. 그게 바로 도적질이 아니고 세상에 무엇이 도적질이란 말이여!

변학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삼스럽게 그럴건 없잖아.

마당쇠: 군역대신 군포를 받아간다 해놓고, 또 얼마나 해 먹었나. 늙은이 것도 빼앗아가고,죽은 백골 한테서도 빼앗아가고, 삼척동자에게서도 빼앗아가고, 심지어는 뱃속에 든 애의 것도 빼앗아 갔으니... 그게 도적질이 아니여!

변학도: 아니 무슨 소리를 자꾸 하는거야.

마당쇠: 성을 쌓는다 대궐을 고친다하고 무명이고 돈이고 있는대로 다 털어 가 놓고, 부역을 나오라 뭘하라 하고, 다 끌어가지 않았느냐 몇 백기씩 데려가서는 밥 한술 안주고서 곤장만 치며 말소 처럼 죽어라고 부려먹지 않았느냐! 그게 도적질이 아니여!

변학도: 아니, 아니.. 내 말 좀 들어 보아라.

마당쇠: 너 이놈 우리 고을에 처음 왔을 때 무어라고 했지? 백성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못을 판다고.. 말이야 좋지..그러나 그게 바로 도적질이 아니고 무어여.. 못을 만들테니 돈을 내라. 못 뚝을 쌓으니 나와 부역을 해라. 그리고선 물을 댈라면 물세를 내라.

이리 뜯어가고 저리 뜯어가고 하지 않았어. 그 못이 생기고 나서 우리 농부들은 더 못살게 되었고 너놈은 수 만냥을 모았으니..그게 도적질이 아니여!

변학도: 아니 그게 아니여.. 사실은 그런게 아니라니까..여보게 그게 아니고..

무덤C: 도적놈 잡아라.

무덤D: 도적놈을 때려라.

무덤E: 도적놈을 죽여라.

변학도: 아이코..천지 신명께 비옵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고...

마당쇠: (엉덩이 춤을 추면서 창을 한다. 창의 내용에 따라서 변학도의 여기 저기를 두들긴다.)

이놈의 뱃때기는 한강수 인가

쌀 삼만석 먹고도 배탈이 안나.

이놈의 허리통은 백두산인가

무명 삼만통 두르고도 모자란단다.

이놈의 아가리는 작두날 인가

열전 삼만냥 먹고도 이가 안 상해.

이놈의 팔뚝은 지옥 차 산가

수만 백성 죽이고도 살만 찐다.

 

(계속해서 한참 동안 춤을 춘다)

(다시 창을 한다)

나온다 나온다 원귀가 나온다.

밥 못먹어 굶어 죽은 원귀가 나온다

 

(이때 무덤C에서 원귀 꺽달이가 나온다. 춤을 추면서 차츰 변학도에게 가까이 간다.)

 

나온다 나온다 원귀가 나온다.

계묘년 흉년에 당가루 핥아 먹다가

몽당 비짜루 맞아죽은 원귀가 나온다

수재비 아흔 아홉그릇 먹다가

배터져 죽은 원귀가 나온다.

 

(이때 무덤D에서 원귀 쩔뚝이가 나온다. 춤을 추면서 차츰 변학도에게로 가까이 간다.)

 

나온다 나온다 원귀가 나온다.

갑오년 난리에 죽은 원귀가 나온다.

부러진 팔다리 내 놓으라고 원귀가 나온다.

없어진 목숨 내 놓으라고 원귀가 나온다.

 

(이때 무덤E에서 원귀 팔뚝이가 나온다. 춤을 추면서 차츰 변학도에게로 가까이 간다. 마당쇠 역시 춤을 추면서 변학도에게로 가까이 간다.)

 

꺽달이: 내 곡식 내 놓아라.

쩔뚝이: 내 다리 내 놓아라.

팔뚝이: 내 목숨 내 놓아라.

마당쇠: 내 목숨 내 놓아라.

변학도: (덜컥 주저 앉더니 와들와들 떤다.) 어커커..이거 큰일 났구나.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여보시오 구례현감 날 버리고 혼자 가시오. 아니 이거 어커커..일났구나 일났어.여보시오 운봉현감 날 버리고 혼자 가시오. 통인아~방자야..이거 날살려라..날 살려.. (쩔쩔맨다)

 

(꺽달이 쩔뚝이 팔뚝이는 춤을 추다가 하나씩 무덤속으로 들어간다)

(마당쇠는 계속 춤을 춘다)

 

변학도: (마당쇠에게) 제발 살려주십시오. 봉고파직은 하시더라도 모.....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저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만 그게 어디 저의 죄지 제 모가지 죄입니까..

마당쇠: 이 친구가 영 돌았다니께.. 변학도라고 하니께 춘향전의 어사 출도 장면으로 착각을한 모양이로구나 어사 정도가 문제가 아니여...

변학도: (같은 어투로 계속한다)무얼 바칠까요, , , 비단, 그리고 계집 무엇이든지 다 바칠터이니 헤헤..그저..

마당쇠: (변학도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키면서) 어사 무서운 줄만 알고 원귀 무서운 줄은 모르는 구나. 어사는 그런걸 갖다 바치면 되지만 우리는 안될 것이여. 어사 란건 도대체 뭔가.

같은 도적놈이여..어사 때문에 죽은 원귀가 얼마나 되는데..

변학도: (일어나면서) 그럼 살려주시는 겁니까? 몇 냥이나 바치면 될갑쇼?

마당쇠: 이놈아. 너의 목숨을 바쳐라.(어사의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우리는 염라대왕이 보낸 어사다.

면학도: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죽은 놈이 어떻게 목숨을 바칩니까..

마당쇠: 이녀석 이제 정신이 돌아오는 가베..

변학도: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나서 땀을 씻고나서) 여보게 마당쇠 아닌가?

마당쇠: 내 단단히 일러두겠어. 이제부터는 양반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 치우고 다만 귀신으 로서의 본연의 자세에 돌아와서 너의 죄를 솔직히 자백하고 용서를 빌어라.

변학도: 다 자백 할 수 밖에 없지..이왕 이렇게 된바에..나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내 속이나 뒤집어야지.

마당쇠: 그럼 우선 왜 그렇게 도적질을 많이 했는지 말해보랑께..

변학도: 사실은 나대로 곡절이 있었는거야...나도 원 한자리 할려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긁어모아서 돈 만냥을 만들었잖나..

마당쇠: 그래서?

변학도: 그래서 그 돈을 싸가지고 세도 높은 김정승을 찾아가서 온갖 정성을 드리기 삼년..가까스로 원 한자리를 한 거야..그러니 우선 그 만량이라는 밑천을 뽑아야 하지 않겠나..그리고 어디 밑천만 뽑아서야 되나.. 끊임없이 또 갖다 바쳐야하고 또 다시 벼슬을 살 밑천을 장만 해야지..

마당쇠: 혼자 먹은 것이 아니라 다른 높은 양반네 들과 나누워 먹었다는 수작이로구나..

변학도: 좋은건 다 훑어 올리라고 나를 원을 시킨건데 하는 수 있나.. 뭐 내가 잘 했다는건 아니고..다만 도적놈 부하로서의 고민이 있었다는 거야.

도적놈들끼리의 다툼은 또 얼마나 많다고. 하여튼..벼슬 산다는 것도 더럽고 치사스럽고 괴로워..

마당쇠: 그런 개수작이 어디 있단 말이여. 벼슬살기가 그렇게 괴롭거든 우리집에 와서 머슴이나 살았으면 좋았을걸 그랬구나.

변학도: 내가 잘했다는건 아니야.

마당쇠: 그럼 정상을 참작해 달라는 소리여?

변학도: 그것도 아니여. 처분대로 해줘..

마당쇠: 그럼 내가 묻겠다. 너가 훔친 쌀은 모두 얼마나 되나?

변학도: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겠나.. 하지만 일년에 삼만석은 모았으니까..가만있자..벼슬살이를 이십년 했으니까..육십만석은 훔침 셈이여..

마당쇠: 너 때문에 굶어 죽은 백성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이라도 해 보았느냐? 이 죽일놈아!

변학도: 어떻게 빌어야 하겠나..

마당쇠: 빌어서 될 문제가 아니야..그 다음 너가 긁어 모은 돈은 얼마나 되나?

변학도: 적어도 이십만냥은 될꺼야..

마당쇠: 너가 죽인 사람은? 직접 죽인 사람만

변학도: 적어도 삼천명은 될거야..

마당쇠: 네가 겁탈한 여자는?

변학도: 그것도 삼천명은 되지..

마당쇠: 나는 옆전 한잎 못 훔치고도 곤장을 백대나 맞았는데..너는 그만한 죄를 짖고 어이무사하기를 바라겠느냐.

변학도: 아니..아니..그 죄를 다 다스리겠다는 거야?

마당쇠: 입 닥쳐 그리고 묻는 말에 우선 대답해라..전국에 너 같은 양반이 얼마나 되나?

변학도: 벼슬한 양반이 적어도 삼천명은 될거고 벼슬안한 양반은 수도 헤아릴 수 없지..

마당쇠: 벼슬한 양반은 다 너같이 도적질을 했지?

변학도: 그야 말할 필요가 없지..내가 특별히 도적질을 많이 한게 아니야..

마당쇠: 그럼 전국 양반이 다 도적질 한걸 합하면 모두 얼마나 되는가? 또 몇백년 동안 도도질한 걸 다 합하면 얼마나 되것이여?

변학도: 어휴..그걸 어떻게 다 셈한단 말이야..숫자가 모자란다.

마당쇠: 농민은 그 만큼 피해를 입었단 말이여. 그러니 너희들은 그 만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여..

변학도: 그만한 벌을 받아?! (깜짝 놀라 어쩔줄 모른다) ....목아지가 백만개가 있어도 모자르겠는데..아니 그게 참말이여?

마당쇠: 나도 어려운 수는 모르니 그저 곤장 백만대만 맞도록 하렸다.

변학도: 곤장 백만대라?! 백만대?! ...백만대!(뒤로 넘어져 버린다..비틀거린다.)

무덤C: 내가 때린다.

무덤D: 내가 때린다.

무덤E: 내가 때린다.

마당쇠: 백만대 맞고 나면 죽은 몸둥이도 없을 터이니 최후의 소원이 있거든 말하렸다.

변학도: (가까스로 일어나면서) 꼭 한가지 소원이 있다.

마당쇠: 무어냐?

변학도: (자기 무덤을 가르키며) 오늘이 바로 추석이라 손자놈이 저렇게 제물을 차려 놓았으니 저걸 좀 먹도록 해 조었으면 좋겠는데..

마당쇠: 좋다! 그만한 소원을 못 들어 주겠느냐.

변학도: (제물을 먹기 시작한다) 한잔 같이 들었으면..

마당쇠: 나는 내걸 먹겠다. ( 자기 무덤 앞으로 간다)

변학도: 내것이 더 좋으니 이걸 먹지..

마당쇠: (벌떡 일어서면서) 그렇구나..너의 무덤 앞에는 온작 산해진미가 다 차려져 있구나. 보아하니 너의 손자도 도적놈인 모양이로구나.

너의 손자가 무얼해 먹고 사는지 몰라도 도적질을 안하고 서야 이런 제물을 차릴수 가 있갔어?

변학도: 아마 그런 모양이야.

마당쇠: 너 죽을 때 아들에게 돈을 얼마나 물려 주었나?

변학도: 이것저것 다 보태면 한 이십만량은 물려준 셈이지..

마당쇠: 아들이 손자에게 물려준 건 얼마나 되는가?

변학도: 모르긴 하지만..아들 녀석도 똑똑한 편이었으니까..재물을 줄이지야 않았겠지...

마당쇠: 그렇다니까! (다시 화를 낸다) 죽은 너가 아무리 잘 못 했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여... 살아있는 너의 손자가 도적질을 하고 있다면 그게 문제란 말이여!

변학도: 그럼 어떻게 해야되나...그럼 내가 손자를 찾아가서 마음 고쳐 먹으라고 꾸짖을가..

마당쇠: 좋다. 나는 내 손자를 찾아가서 용기를 내라고 격려할 것이여.

변학도: 지금 갈까?

마당쇠: 갈려면 꿈에 나타나야 할 건데 꿈에 나타나기에는 아직 좀 일러..자정은 넘어야 울리지..

변학도: 우선 술이나 마시자.

마당쇠: 좋다.

변학도: 둘의 술을 섞어 먹자. 아니야..술을 섞어 먹으면 짬봉이 되어서 몸에 해로울 텐데..

마당쇠: 그건 산 사람의 경우고..죽은 우리가 어디 몸이 있나.

변학도: 그렇지 참..

 

(둘은 술을 마시며 달을 쳐다 본다.)

 

마당쇠: 달이 밝구나.

변학도: 정말 밝구나.

마당쇠: 물 소리도 좋구나.

변학도: 바람소리도..

마당쇠: 산 사람들 이런 묘한 기분을 모를 것이여.

변학도: 올해 농사가 풍년이었으면 좋겠구나.

마당쇠: 이제 너도 농사걱정을 하게 되었구나..여하튼 반가운 일이야.

변학도: 세상소식을 좀 알아보자.

마당쇠: 어떻게 알아볼가.(관중석을 향해서)

여보게 젊은이..

관중석: 무슨일이지?

마당쇠: 올해 농사가 어떻든가?

관중석: 되긴 잘 된 편이여..

변학도: 그거 다행한 일이로구나

관중석: 그러나 그렇게 좋아할 것 못 되..

마당쇠: ? 내 손자는 무어라고 하던가?

관중석: 기뻐하면서 한숨쉬더라.

변학도: ?

관중석: 농사가 잘 되었으니 기뻐하고 빚이 너무 많으니까 한숨 쉬지..

마당쇠: 그녀석..생각하던 대로구나..무슨 빚인가?

관중석: 장리, 고리채, 농협의 융자금 그외 사소한 빚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더군..그리고 옛날 사람들은 설명해도 잘 모르겠지만 쌀값보다 다른 물가가 너무 높아서 농사를 자어도 품 값이 안나온다고 한 숨 쉬더군.

마당쇠: 고생이 여전한 모양이구나. 옛날에 잘 못 되었던 일들이 아직 그대로 다 있나.

관중석: 잊혀진 것도 있고 아직 그대로 있는 것도 있어.

마당쇠: 그대로 남은 잘못은 어떻게 할건가.

관중석: 고치도록 싸워야지..

마당쇠: 누가?

관중석: 농민들이 그리고 여기 모인 우리들이...싸울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나타나기 시작 했어..

마당쇠: (절을 넙죽히 하면서) 잘 부탁한다. 꼭 싸워서 우리 손자가 잘 살수 있도록 해다오.

변학도: 나도 동감이야.

무덤C: 잘 싸워라.

무덤D: 이겨라.

무덤E: 믿는다.

마당쇠: (변학도에게) 너의 손자를 찾아가서 단단히 꾸짖어야 한다. 마음 고쳐먹지 않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다짐해라. 분명히 말을 전하면 곤장 백만대 중 반은 감해준다.

변학도: 나머지 반은?

마당쇠: 너의 손자가 마음을 고치면..감해준다.

변학도: 허허..내가 살고 죽는 것은 손자에게 달렸구나.

마당쇠: 자 들어가서 한 잠 자고 자정이 넘거든 현몽하러 가자..

변학도: 그러도록 하자

 

(둘다 각각 자기 무덤으로 들어간다.)

 

<다시 나온 마당쇠> 조동일

<원귀 마당쇠>의 대본이 나타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갑오년 난리 때 맞아죽어 원귀가 된 마당쇠가 무덤을 헤치고 나와, 놀라면서 반기는 관중을 상대로 살았을 때 못 다 한 말을 하는 것이 작품의 내용이다. 그런 사건이 현실에서 재현되었다. 망각의 무덤에 들어갔던 대본이 다시 나타나 자기 말을 하게 되었다.

탈춤운동의 내력을 캐고자 하는 후학들이 더러 어렴풋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마당쇠에 대해서 묻는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대본이 남아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조차 흐릿하다고 했다. 목격자의 증언도 정확해야 쓸모가 있는데, 일을 꾸민 당사자가 지어낸 말을 하면 본의 아니게 역사를 조작하고 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물증이 앞에 있으니 몇 마디 증언을 남길 수 있다.

196311, 나는 그 때 불어불문학과 대학원 휴학생이었다. 불문학에는 흥미를 잃고 더욱 절실한 것을 찾고자 했다. 그 다음 해에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하기로 작정하고, 국문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문화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여러 분야의 동학들과 함께 연구발표를 하면서, 민요조사를 나가고 탈춤을 배우기도 했다.

우리문화연구회 회원 가운데 당시 국문과 3학년 학생이었던 서대석형과 뜻이 맞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서대석형의 소개로 서형의 동급생인 송기중형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의 농촌계몽운동 단체인 향토개척단의 단장 직책을 맡고 있던 송형이 가을에 무슨 행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풍물과 탈춤을 되살리는 대동굿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것은 전례가 없는 시도였다. 그때까지는 대학 축제를 미국판 대중음악이 지배했다. 뺀드를 불러다 놓고 째즈를 부르는 것을 대단하게 여겼다. 4.19 의거의 주역들조차도 문화의식을 혁신하는 대안은 생각하지 못했다. 오랜 폐풍을 일거에 뒤집으려면 극적인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풍물을 치고 탈춤을 추면서 굿을 해야, 농촌이 피폐에서 벗어나고, 농민이 주인이 되고, 민족이 소생한다고 했다. 그런 취지를 살려 󰡐향토의식초혼굿󰡑을 크게 벌이자는 계획을 설명했다.

송형은 그 제안에 적극 찬동하고, 향토개척단을 움직여 바로 일을 시작했다. 향토개척단과 우리문화연구회 양쪽에 열의와 재능이 함께 뛰어난 인재들이 얼마든지 있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천지가 진동하는 함성을 질러 세상을 뒤흔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많은 찬동자를 얻어 후속 작업이 이어지게 했으며, 누구도 무관심할 수 없게 했다. 그래서 학생운동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대학 축제의 역사를 바꾸어놓았다.

그 행사의 여러 순서 가운데 나는 연극에만 직접 관여하기로 하고, "신판 광대놀이󰡒라고 표방한 <원귀 마당쇠>를 만들었다. 그것이 어떤 연극이었던가 다시 생각하면 흥분을 누르고, 실상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미비하고, 두서가 없었다. 김천흥선생을 모시고 춤을 배웠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연출자도 연기자도 탈춤을 잘 알지 못해 적당히 넘어갔다. 족보가 불문명한 탈을 내가 만들었다. 갑자기 야외로 나가는 것이 모험이라고 생각해 실내에서 공연했다. 무대장치도 맡아, 막이 오르면 무덤만 보이다가 갑자기 무덤을 열고 누가 뛰쳐나오게 했다.

그런데도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가 신기한 구경거리를 제공한 데 있다고 하고 말 수는 없다. 농민 수탈에 대한 비판하는 주제가 등장인물이 관중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시비를 나누는 탈춤의 진행방식으로 제시되어 공감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 방식을 일관되게 사용해 환상과 실상, 저승과 이승, 과거와 현재, 현실과 이론, 갈등과 화합의 관계를 말해, 뜻하는 바가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을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것도 연구대상으로 삼을 호사가가 있으면 하게 될 일을 작자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서대석형, 송기중형과 함께 나는 지금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서대석형과는 계명대학에 같이 있다가, 헤어진 뒤에 다시 모였다. 송기중형과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함께 가르치다가, 시간의 차이를 두고 같은 곳으로 왔다. 그런데도 전에 함께 하던 일을 자주 화제에 올리지는 않았으며, 구체적인 기억은 나날이 멀어져갔다. 그러다가 38년이 지난 어느 날 서대석형이 소문 없이 보관하고 있던 <원귀 마당쇠> 대본을 내놓아, 오래 묻혀 있던 과거가 갑자기 되살아났다. 내 글씨로 원지에다 써서 프린트한 것이다. 많이 낡았는데도 읽을 수 있으니 신통하다. 송기중형이 대본을 복사해주면서 회고담을 쓰라고 주문해서 이 글이 이루어졌다. 우리 세 사람의 인연은 이 생에서 비롯한 것 같지 않다.

이상 여러분이 잘 읽어 보시고 널리 활용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디지털말지에 이 원고를 처음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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