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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雲英傳)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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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雲英傳)

수성궁은 안평대군(이조 세종의 셋째 아들)의 옛집으로 장안성 서쪽으로 인왕산 아래에 있는지라, 산천이 수려하여 용이 서리고 범이 일어나 앉은 듯 하며, 사직이 그 남에 있고 경복궁이 그 동에 있었다. 인왕산의 산맥이 굽이쳐 내려오다가 수성궁에 이르러서는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고, 비록 험준하지는 아니하나 올라가 내려다보면 아니 뵈는 곳이 없는지라, 사면으로 통한 길과 저자거리며, 천문만 호가 밀밀층층하여 바둑판과 같고, 하늘의 별과 같아서 역력히 헤아릴 수 없고 , 번화 장려함이 이루 형용치 못할 것이요, 동쪽을 바라보면 궁궐이 아득하여 구름 사이에 은영(隱映)하고 상서(祥瑞)의 구름과 맑은 안개가 항상 둘러 있어 아침저녁으로 고운 자태를 자랑하니 짐짓 이른바 별유천지(別有天地) 승지(勝地)였다.

때의 주도(酒徒)들은 몸소 가아(歌兒)와 적동(笛童)을 동반하고 가서 놀았으며, 소인(騷人:풍류를 즐기어 노래하고 읊는 사람)과 묵객(墨客)은 삼춘 화류시와 구추단풍절에 그 위를 올라 음풍영월하며 경치를 완상하느라 돌아가기를 잊으니, 산천의 아름다움과 경치의 좋음은 무릉 도원에 지남이 있더라.

이때, 남문 밖 옥녀봉 아래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으니, 청파사인 유영이라. 그는 연기 이십 여에 풍채가 준아하고 학문이 유여 하되, 가세가 빈곤하여 의식을 이을 길이 없는지라, 울적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이 곳의 경개가 좋음을 익히 들었으며 한번 구경코자 하되, 의복이 남루하고 얼굴빛이 매몰하여 남의 웃음을 받는지라 머뭇거리다가 가보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만력(萬曆) 신축(辛丑) 춘삼월 기망(보름)에 탁주 한 병을 샀으나 동복도 없고 또한 친근한 벗도 없는지라, 몸소 술병을 차고 홀로 궁문으로 들어가 보니, 구경 온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유생은 하도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다가 바로 후원으로 들어갔다. 높은데 올라서 사방을 보니, 새로 임진왜란을 갓 겪은 후라, 장안의 궁궐과 성안의 화려했던 집들은 탕연(蕩然)하였다. 부서진 담도 깨어진 기와도, 묻혀진 우물도, 흙덩어리가 된 섬돌도 찾아볼 수 없었다. 풀과 나무만이 우거져 있었으며, 오직 동문 두어 칸막이 우뚝 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유생은 천석(泉石)이 있는 그윽하고도 깊숙한 서원으로 들어가니, 온갖 풀이 우거져서 그림자가 밝은 못에 떨어져 있었고, 땅 위에 가득히 떨어져 있는 꽃잎은 사람의 발길이 이르지 아니하며 미풍이 일 적마다 향기가 코를 찔렀다.

유생은 바위 위에 앉아 소동파가 지은

我上朝元春半老滿地落花無人掃

아상조원춘반로만지낙화무인소

라는 시구(詩句)를 읊었다. 문득 차고 있던 술병을 풀어서 다 마시고는 취하여 바윗가에 돌을 베개삼아 누웠더니, 잠시 후 술이 깨어 얼굴을 들어 살펴보니 유객은 다 흩어지고 없었다. 동산에는 달이 떠 있었고, 연기는 버들가지를 포근히 감쌌으며, 바람은 꽃잎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때 한 가닥 부드러운 말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유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서 찾아가 보았다. 한 소년이 절세(絶世) 미인(美人)과 마주 앉아 있다가 유영이 옴을 보고 흔연히 일어나서 맞이하니, 유영은 그 소년을 보고 묻기를,

'수재(秀才)는 어떠한 사람이기로 , 낮을 택하지 않고 밤을 택해서 놀고 있느뇨?'

 

소년은 생긋이 웃으며 대답하더라.

'옛 사람이 말한 홍개약구( 蓋若舊)란 말은 바야흐로 우리를 두고 한 말이지요.'

 

세 사람은 솔밭처럼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매, 미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아이를 부르니, 차환(시종 드는 계집 아이) 두 명이 숲 속에서 나왔다. 미인은 그 아이를 보고 말하기를,

'오늘 저녁 우연히 고인(故人)을 만났고, 또한 기약하지 않았던 반가운 손님을 만났으니, 오늘밤은 쓸쓸히 헛되이 넘길 수 없구나. 그러니 네가 가서 주찬(酒饌)을 준비하고, 아울러 붓과 벼루도 가지고 오너라.'

두 차환은 명령을 받고 갔다가 잠시 후 돌아 왔으니 빠르기가 나는 새 오락가락 하는 것과 같더라.

유리로 만든 술병과 술잔, 그리고 자하주(신선이 마시는 자줏빛의 술)와 진기한 안주 등은 모두 인세(人世)의 것은 아니더라.

세 사람은 석 잔씩 마시고 나서, 미인이 새로운 노래를 부러 술을 권하니, 그 가사는 이러하니라.

깊고 깊은 궁안에서 고운 님 여의나니

쳔연은 미진한데 뵈올 길 바이없네

꽃피는 봄날을 몇 번이나 울었더뇨

밤마다의 상봉은 꿈이지 참이 아니었네

지난 일이 허물어져 티끌이 되었어도

부질없이 나로 하여 눈물짓게 하누나

노래를 마치고 나선 한숨을 '후유'쉬면서 느껴 우니, 구슬 같은 눈물이 얼굴을 덮으니, 유영은 이상히 여겨 일어나 절을 하고 묻기를,

'내 비록 양가의 집에 태어난 몸은 아니오나, 일찍부터 문묵(文墨)에 종사하여 조금 문필(文筆)의 공을 알고 있거니와, 이제 그 가사를 들으니, 격조가 맑고 뛰어나시나, 시상이 슬프니 매우 괴이하구려. 오늘밤은 마침 월색이 낮과 같고 청풍이 솔솔 불어오니 이 좋은 밤을 즐길 만 하거늘, 서로 마주 대하여 슬피 울음은 어인 일이오. 술잔을 더함에 따라 정의가 깊어졌어도 성명을 서로 알지 못하고, 회포도 펴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소. '하고 유영은 먼저 자기의 성명을 말하고 강요하더라. 이에 소년은 대답하기를, '성명을 말하지 아니함은 어떠한 뜻이 있어서 그러하온데, 당신이 구태여 알고자 할진대 가르쳐 드리는 것은 어려우리까마는, 그러나 말을 하자면 장황합니다.'하며 수심 띄운 얼굴을 하고, 한참 있다가 입을 열어 말하기를,

'나의 성은 김이라 하오며, 나이 십세에 시문(詩文)을 잘하여 학당(學堂)에서 유명하였고, 나이 십사세에 진사 제이과에 오르니, 일시에 모든 사람들이 김진사로서 부릅디다. 제가 나 어린 호혈한 기상으로 마음이 호탕함을 능히 억누르지 못하고, 또한 여인으로 하여 부모의 유체를 받들고서 마침내 불효의 자식이 되고 말았으니 천지간 한 죄인의 이름을 억지로 알아서 무엇하리까? 이 여인의 이름은 운영이오, 저 두 여인의 이름은 하나는 녹주요, 하나는 송옥이라 하는데, 다 옛날 안평대군의 궁인이었습니다.'

'말을 하였다가 다하지 아니하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하옵니다. 안평대군의 성시(盛時)의 일이며 진사가 상심하는 까닭을 자상히 들을 수 있겠소?'

 

진사는 운영을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성상(星霜)이 여러 번 바뀌고 일월이 오래 되었으니, 그때의 일을 그대는 능히 기억하고 있소?'

'신중에 쌓여 있는 원한을 어느 날인들 잊으리까? 제가 이야기해 볼 것이오니. 낭군님이 옆에 있다가 빠지는 것이 있거든 덧붙여 주옵소서.'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하더라.

세종대왕의 왕자 팔 대군 중에서 셋째 왕자인 안평 대군이 가장 영특하였지요. 그래서 상이 매우 사랑하시고 무수한 전민과 재화를 상사하시니, 여러 대군 주에서 가장 나았사옵더니, 나이 십삼 세에 사궁에 나와서 거처하시니 수성궁이라 하였습니다.

유업(儒業)으로써 자임(自任)하고, 밤에는 독서하고 낮에는 시도 읊으시고 또는 글씨를 쓰면서 일각이라도 허송치 아니하시니, 때의 문인재사들이 다 그 문(門)에 모여서 그 장단을 비교하고, 혹 새벽닭이 울어도 그치지 않고 담론(談論)을 하였지마는, 대군은 더욱 필법(筆法)에 장(長)하여 일국에 이름이 났지요. 문종대왕이 아직 세자(世子)로 계실 적에 매양 집현전 여러 학사와 같이 안평대군의 필법을 논평하시기를,

'우리 아우가 만일 중국에 났더라면 비록 왕희지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찌 조맹부에 뒤지리오.'

하면서 칭찬하시기를 마지않았사옵니다.

하루는 대군이 저희들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천하의 모든 재사(才士)는 반드시 안정한 곳에 나아가서 갈고 닦은 후에야 이루어지는 법이니라. 도성(都城) 문밖은 산판이 고요하고, 인가에서 좀 떨어졌을 것이니 거기에서 업을 닦으면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시고는 곧 그 위에다 정사(精舍) 여남은 간을 짓고, 당명을 비해당(匪懈堂)이라 하였으며, 또한 그 옆에다 단을 구축하고 맹시단이라 하였으니, 다 명(名)을 돌아다보고 의(義)를 생각한 뜻이었지요. 때의 문장(文章)과 거필(巨筆)들이 단상에 다 모이니, 문장에는 성삼문이 으뜸이었고, 필법에는 최흥효가 으뜸이옵니다. 비록 그러하오나 다 대군의 재주에는 미치지 못하였사옵지요.

하루는 대군이 취함을 타서 궁녀 보고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재주를 내리심에 있어서, 남자에게는 풍부하게 하고 여자에게는 재주를 내리심에 있어서 적게 하였으랴. 지금 세상에 문장으로 자처하는 사람이 많지마는, 능히 다 상대할 수 없고, 아직 특출한 사람이 없으니. 너희들도 또한 힘써서 공부하여라.'

하시고는 대군께서는 궁녀 중에서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아름다운 열 명을 골라서 <소학>, <언해><중용>, <대학>, <맹자>, <시경>, <통감>, <송서> 등을 차례로 가르쳐 5년 이내에 모두 대성하였지요. 열 명의 이름 금련, 은섬, 자란, 보련, 운영이니, 운영은 바로 저였어요.

그리고 항상 영을 내리시기를, "시녀로서 한 번이라도 궁문을 나가는 일이 있으면 그 죄는 죽음을 당할 것이며, 또 외인이 궁녀의 이름을 아는 이가 있다면 그 죄도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략)

하루는 밤에 자란이 지성으로 저에게 묻기를,

"여자로 태어나서 시집가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애인이 누군지 는 알지 못하나, 너의 안색이 날로 수척해 가므로 안타까이 여겨 내 지성으로 묻나니, 조금도 숨기지 말고 이야기하라."

저는 일어나 사례하며,

"궁인이 하도 많아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말을 못하겠거니와 네가 지극한 우정으로 묻는데 어찌 숨길 수 있겠니?"

하고는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지난 가을 국화꽃이 피기 시작하고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대군이 칠언사운 10수를 쓰시고 있었는데, 하루는 동자가 들어와 고하기를,

"나이 어린 선비가 김진사라 자칭하면서 대군을 뵈옵겠다 하옵니다."

하니, 대군은 기뻐하시면서,

"김진사가 왔구나."

하시고는 맞아들이게 한즉, 베옷을 입고 가죽띠를 맨 선비로서 얼굴과 거동은 신선 세계의 사람과 같더구나. 진사님이 절을 하고 하는 말이,

"외람 되어 많은 사랑을 입고 존명을 욕되게 하고 이제야 인사를 올리게 되오니 황송하기 말할 수 없사옵니다."

하니, 대군은 위로의 말을 하시더라.

진사님이 처음 들어올 때에 이미 우리와 상면을 하였으나, 대군은 진사님의 나이가 어리고 착하므로 우리로 하여금 피하도록 하지도 아니 하였었지. 대군이 진사님 보고 말씀하시기를,

"가을 경치가 매우 좋으니 원컨대 시 한 수를 지어 이 집으로 하여금 광채가 나도록 하여 주오."

하시니, 진사가 자리를 피하고 사양하며 말하길,

"헛된 이름이 사실을 어둡게 하고 말았나이다. 시의 격률도 모르는 소자가 어찌 감히 알겠나이까?"

이때 대군은 금련으로 노래하게 하시고, 부용으로 거문고를 타게 하시고, 보련으로 단소를 불게 하시고, 나로써 벼루를 받들게 하시니, 그때 내 나이는 십칠 세였단다. 낭군은 한 번 보매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가슴이 울렁거렸으며, 진사님도 또한 나를 돌아보면서 웃음을 머금고 자주 눈여겨보더라.

진사님이 붓을 잡고 오언사운 한 수를 지으니 그 시는 이러하였지.

기러기 남쪽을 향해 가니

궁안에 가을빛이 깊구나.

물이 차가워 연꽃은 구슬 되어 꺾이고,

서리가 무거우니 국화는 금빛으로 드리우네.

비단 자리엔 홍안의 미녀

옥같은 거문고 줄엔 백운같은 음일세.

유하주 한 말로 먼저 취하니

몸 가누기 어려워라.

대군이 읊으시다가 놀라시면서,

"진실로 천하의 기재로다. 어찌 서로 만나기가 늦었던고."

하시었고, 시녀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이는 반드시 신선이 학을 타고 진세에 오신 것이니, 어찌 이와 같은 사람이 있으리오."

라고 하였지.

나는 이로부터 누워도 능히 자지를 못하고, 밥맛은 떨어지고 마음이 괴로워서 허리띠를 푸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는데, 너는 느끼지 못하더라.

 

자란은,

"그래 내 잊었었군. 이제 너의 말을 들으니 정신의 맑아짐이 마치 술깬 것과 같구나."

라고 하더이다.

그 후로 대군은 자주 진사님과 접촉하였으나, 저희들은 서로 보지 못하게 한 까닭으로 매양 문틈으로 엿보다가 하루는 설도전에다 오언사운 한 수를 썼습니다.

베옷에 가죽띠를 맨 선비는

신선과 같은데,

매양 바라보건만

어이하여 인연이 없는고.

솟는 눈물로 얼굴을 씻으니

원한은 거문고 줄에 우나니,

가슴속 원한을

머리 들어 하늘에 하소연하오.

시와 금전 한 쌍을 겹겹이 봉해 가지고 진사님에게 부치고자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어요.

얼마 후 진사님이 오셨는데, 얼굴은 파리해져서 더욱이 옛날의 기상은 아니었어요.

제가 벽을 헐어 구멍을 뚫고 봉서를 던졌더니, 진사님이 주워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펴 보고는 슬픔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며 차마 손에서 놓지 않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한 무녀가 대군이 궁에 드나들면서 사랑과 신용을 얻고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진사님이 그 집을 찾아가 보니 나이가 삼십도 못되는 얼굴이 아주 예쁜 여자로서 일찍 과부가 되고는 음녀로 자처하고 있었는데, 진사님을 보고는 기뻐하였지요. 무녀는 진사님을 붙들어 놓고 정으로써 돋우고 밤을 새우면서 같이 자리라 마음먹고는, 다음날 목욕하고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꾸밈을 하고 꽃같은 담요와 옥같은 자리를 깔아놓고 계집종으로 하여금 망을 보게 하였답니다. 김진사가 와서 이 광경을 보고 이상히 여기니, 무녀가,

"오늘 저녁은 어떤 저녁이기에 이와 같이 훌륭한 분을 뵈옵게 되었을까."

하였으나, 김진사는 뜻이 없었기 때문에 대답도 않고 있으니, 무녀가 또 말하길,

"과부의 집에 젊은이가 왜 왕래를 꺼리지 않고 자기의 번민을 말하지 않는지요?"

"점이 신통할 것 같으면 어찌 내가 찾아오는 뜻을 알지 못하오?"

이에 무녀는 즉시 영전에 나아가 신에게 절하고 방울을 흔들고 몸을 떨며,

"당신은 정말로 가련합니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삼 년이 못 가서 황천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맺힌 한을 백약으로도 고칠 수 없으니, 만일 당신이 다행히 편지를 전하게 될 것 같으면 죽어도 영광이겠습니다."

"비천한 무녀로서 부르시지 않으면 감히 들어가질 못합니다. 그러하오나 진사님을 위하여 한번 가보겠습니다."

무녀가 편지를 갖고 궁에 들어와 가만히 전해 주더이다. 제가 방으로 들어와서 뜯어보니,

'한 번 눈으로 인연을 맺은 후부터 마음은 들떠 있고 넋이 나가 능히 마음을 진정치 못하고 매양 성 그쪽을 향하여 몇 번이나 애를 태웠지요. 이전에 벽 사이로 전해 주신 편지로 해서 잊을 수 없는 옥음을 황경히 받아들고 펴기를 다하지 못하여 가슴이 메이고 읽기를 반도 못하여 눈물이 떨어져 글자를 적시기에 능히 다 보지 못하였으니 장차 어찌 하오리까. 이러한 후부터 누워도 자지를 못하고 음식은 목을 내려가지 않고 병은 골수에 사무쳐 온갖 약이 효험이 없으니 저승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직 소원은 조용히 죽음을 따를 뿐이오니,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신께서 도와 주셔 혹 생전에 한 번만이라도 이 원한을 풀게 하여 주신다면 마땅히 몸을 부수고 뼈를 갈아서라도 천지신명의 영전에 제를 올리겠습니다.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예를 갖추지 못하고 삼가 붓을 놓나이다.'

라 하였고, 사연 끝에 칠언사운 한 수가 적혀 있었으니, 이러했지요.

누각은 저녁 문 닫혔는데

나무 그늘 그림자 희미하여라.

낙화는 물에 떠 개천으로 흐르고

어린 제비는 흙을 물고 제 집을 찾아가네.

누워도 못 이룰 꿈이오. 하늘엔 기러기도 없구나.

눈에 선한 임은 말이 없는데

꾀꼬리 울음소리에 옷깃을 적시네.

제가 보기를 다함에 기운이 막혀서 입으로는 능히 말할 수 없었고,

눈물이 다하자 피가 눈물을 이었습니다.

하루는 대군이 비취를 불러,

"너희들 열 명이 한방에 같이 있으니 업을 전념할 수 없다."

하시고 다섯 명을 나누어 서궁에 가서 있게 하니, 저는 자란, 은섬, 옥녀, 비취와 같이 즉일로 옮겨갔습니다. 옥녀가 말하길,

"그윽한 꽃, 흐르는 물, 꽃다운 수풀이 산가나 야장과 같으니, 참으로 훌륭한 독서당이라 말할 수 있구나."

이에 제가 대답했지요.

"산 사람도 아니고 중도 아니면서 이 깊은 궁에 갇히었으니, 정말로 이른바 장신궁이다."

하였더니, 좌중 궁인들이 자탄하고 울적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편지를 써서 뜻을 이루고자 했으며, 진사님도 지성으로 무녀를 찾아 간절히 부탁을 하였으나 그녀는 오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아마 진사의 뜻이 자기한테 없음을 유감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럭저럭 두어 달이 지나고 계절은 다시 가을로 접어들어 바람이 불고 국화는 황금빛을 토하고 벌레는 소리를 가다듬고 흰 달은 빛을 밝혔습니다. 이때에 시내에서 빨래함은 좋은 때라. 여러 궁녀와 같이 날짜와 빨래할 장소를 결정하려 했으나 의논이 맞지 아니하였지요. 남궁 사람들은,

"맑은 물과 흰 돌은 탕춘대 밑보다 나은 데가 없단다."

그러자 서궁 사람들도 말했습니다.

"소격서동의 물과 돌은 바깥에서 더 내려가지 아니하니 왜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데를 구하는가."

하였으니, 남궁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고서 승낙하지 않으므로 결정을 짓지 못하고 그 날 밤에는 그만두고 말았지요. 그 뒤 진사님을 그리워하는 저의 병이 위중해짐에 남궁·서궁의 궁녀들이 모여 의논 끝에 소격서동으로 정하기로 하였지요. 중당에 모였는데, 소옥이 말했습니다.

"하늘은 명랑하고 물이 맑으니 정히 빨래할 때를 당하였구나. 오늘 소격서동에다 휘장을 치는 것이 좋겠지?"

이에 여러 사람은 다 반대가 없었습니다. 저는 서궁으로 돌아가서 흰 나섬에다 가슴속에 가득 찬 슬픔과 원한을 써서 품에 넣고 자란과 같이 오겠다."

그 집에 가서 좋은 말로 애걸하며,

"오늘 찾아온 것은 김진사를 한 번 만나 보고 싶은 것뿐이니, 기별해줄 것 같으면 몸이 다하도록 은혜를 갚겠어요."

무당이 그 말대로 사람을 보냈더니 진사님이 찾아왔습니다. 둘이 서로 만나니 할 말도 못하고 다만 눈물을 흘릴 뿐이었지요. 제가 편지를 주면서 말했어요.

"저녁에 꼭 돌아올 것이니 낭군님은 여기에서 기다려 주옵소서."

하고는 바로 말을 타고 갔습니다. 진사님에게 전한 편지의 그 사연은 이러하였습니다.

'일전 무산 산녀가 전해 준 편지에는 낭랑한 옥음이 종이에 가득하였습니다. 정중한 마음으로 읽고 또 읽어보니 슬프고도 기뻐서 마음을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고 바로 답서를 보내고자 하였사오나 이미 전할 길이 없었습니다. 또한 비밀이 샐까 두려워서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며 날아가고자 하오나, 날개가 없으니 애가 끊어지고 넋이 사라져 다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사오니 죽기 전에 이 편지를 통하여 평생의 한을 다 말씀드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낭군께서는 저를 새겨 두옵소서. 저의 고향은 남쪽이옵니다.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시기를 여러 자녀 가운데에서도 편벽 되게 사랑하시어, 나가 놀아도 저하고자 하는 대로 맡겨두셨습니다. 부모님은 삼강오륜의 행길을 가르치시고 또한 칠언당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이 열세 살 때 대군의 부르심을 받은 까닭으로 부모님을 이별하고 형제를 멀리하여 궁중에 들어오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마음 금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빨래하러 가는 행차에는 양금의 시녀들이 다 모였던 까닭으로 여기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사옵니다. 눈물은 먹물로 변하고 넋은 비단 실에 맺혔사오니 바라고 원하옵건대 낭군님께서는 한번 보아주옵소서.'

이러한 글은 가을을 맞이하여 상심하는 글이고, 그 시는 상사의 시였습니다.

제가 말을 타고 무당의 집에 돌아와 본즉 진사님은 종일 느껴 울어 넋을 잃고, 실성하여 제가 온 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왼손에 차고 있던 운남의 옥색 금환을 풀어서 진사님의 품속에 넣어 주고 말하였습니다.

"낭군께서는 저를 보고 박정하다 아니 하시고 천금같은 귀한 몸을 굽혀 더러운 집에 와서 기다리시니, 제가 비록 불민하오나 또한 목석이 아니오니 감히 죽음으로써 허락하리이다. 제가 만약 식언한다면 여기에 금환이 있사옵니다."

하고, 갈 길이 총총하므로 일어나 작별을 고하니, 흐르는 눈물이 비와 같았습니다. 제가 진사님의 귀에다 대고,

"제가 서궁에 있으니 낭군께서 밤을 타 서쪽 담을 넘어 들어오시면 삼생에 있어서 미진한 인연을 거의 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옷을 떨치고 나와서 먼저 궁문을 들어오니, 여덟 사람도 뒤따라 들어오더이다. 얼마 후 제가 자란 보고,

"오늘 저녁에는 나와 진사님과 금석의 약속이 있으니, 오늘 오지 않을 것 같으면 내일에는 반드시 담을 넘어 오리라. 오면 어떻게 대접할까?"

 

그 날 밤에는 과연 오지 않았더이다.

진사님이 담을 본즉 높고 험준하여 넘지 못하고 돌아와서 근심하고 있는데, 특이라 하는 어린 종이 있어 이를 알고는 진사님을 위해 사다리를 만드니, 매우 가볍고 능히 거두었다 폈다 하기에 아주 편리하였습니다. 그 날 밤 궁으로 가려고 할 때 특이 품안으로부터 털옷과 가죽 버선을 주면서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넘어가기가 어렵지 아니할 것입니다."

진사님이 입으니 빛이 낮과 같았습니다. 진사님은 그 계교를 써서 담을 넘어 숲속에 엎드리니 달빛은 낮과 같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사람이 안에서 나와 웃으면서,

"이리 나오소서. 이리 나오소서."

진사님이 나아가 절을 하니, 자란이 말하였습니다.

"진사님이 오심을 고대하기를 대한에 비를 바라듯 하였는데, 이제야 뵈옵게 되어 저희들이 살아났사오니 진사님은 의심하지 마옵소서."

하고는 바로 이끌고 들어가기에, 진사님이 층계를 거쳐 들어오실 제 저는 사창을 열어놓고 짐승 모양의 금화로에다 향을 사르고, 유리 같은 서안에다 <태평광기> 한 권을 펴들고 있다가, 진사님이 옴을 보고 일어나 맞이하고 절을 하니 진사님도 답례를 하더이다.

 

자란으로 하여금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자하주를 따라 권하니, 석 잔을 마시고 진사님은 좀 취한 듯이 말하였습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가?"

 

자란이 마침 그 뜻을 알고는 휘장을 드리우고 문을 닫고 나가더이다. 제가 등불을 끄고 잠자리에 나아가니 그 즐거움은 가히 알 것입니다. 밤은 이미 새벽이 되고 뭇닭은 날 새기를 재촉하기에 진사님은 바로 일어나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후로부터는 어두울 때에 들어와서 새벽에 돌아가시니 그렇게 하지 않는 저녁이 없었지요. 사랑은 깊어가고 정은 두터워져 스스로 그치기를 알지 못하였어요. 이 때문에 궁중 안 눈 위에는 문득 발자취가 나게 되었습니다. 궁인들은 다 그 출입을 알고 위험하다 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진사님이 좋은 일의 끝이 화기가 될까 두려워 근심하고 있는데 특이 들어와 물었습니다.

"저의 공이 매우 컸는데 상을 논하지 않으시니 옳은 일이 아닙니다. 진사님의 얼굴빛을 보니 근심이 있는 것 같사와 알지 못하거니와 무슨 까닭이옵니까?"

"보지 못한즉 병이 마음과 골수에 있고, 본즉 헤아릴 수 없는 죄가 있으니 어찌 근심하지

"그러면 어찌하여 남 몰래 업고 도망가지 않으십니까?"

진사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 날 밤 특의 계교를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특이 노비지만 지모가 많아 이 계교로써 가르치니 그 계교가 어떠하오?"

저는 허락하여 말하였습니다.

"저의 부모님과 대군이 주신 의복과 보화가 많은데, 이 물건들을 버리고 갈 수 없사오니 어찌하면 좋으리이까. 말 열 필이 있다 하여도 다 운반할 수 없습니다."

진사님이 돌아가서 특에게 말하니, 특은 기뻐하면서,

"무엇이 어려움이 있사옵니까? 저의 벗 중에 역사 20여 명이 있사온데, 이 무리로 하여금 운반케 하면 태산도 또한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밤마다 수습하여 이레만에 바깥으로 운반하기를 마치고 난 특이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보화는 본댁에 쌓아두면 상전께서 의심할 것이오니 산중에다 구덩이를 파고서 깊이 묻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의 뜻은 이 보화를 얻은 후에 저와 진사님을 산골로 끌고 들어가서 진사님을 죽이고는 저와 재보를 자기가 차지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진사님은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하루는 진사님이 대군의 궁에 갔다 돌아와서 하는 말이,

"도망해야 하겠소. 내가 지은 죄로 해서 군이 의심을 품고 있으니 오늘밤에 도망가야 하겠소. 오늘밤에 도망가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소.'

'지난 밤 꿈에 한 사람을 보았는데 얼굴이 흉악하고 모돈단우라 칭하면서 말하기를 '이미 약속한 바 있어 장성 밑에 오래도록 기다렸노라' 하기에 깜짝 놀라 깨어 일어났거니와, 몽조가 상서롭지 아니하니 낭군님도 생각하여 보옵소서."

"꿈은 허망하다고 하는데 어찌 믿을 수 있겠소."

"그 장성이라고 말한 것은 궁장이며, 그 모돈이라고 말한 것은 특이니, 낭군님은 그 노복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신지요?"

"그놈은 본래 미련하고 음흉하지만 전일 나에게 충성을 다하였으니 어찌 나중에 악한 일을 하겠소?"

"낭군님의 말씀을 어찌 감히 거역하오리이까마는 자란이와 나의 정이 형제와 같으니 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하고는 곧 자란을 불러 진사님의 계교로써 말하였더니, 자란이 크게 놀라며 꾸짖어 말하더이다.

"서로 즐거워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어찌 스스로 화근을 빨리 오게 하느냐? 한두 달 동안 서로 사귐이 또한 족하거늘 담을 넘어 도망하는 것을 어찌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있으리오? 천지는 한 그물속 같으니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도망간들 어디를 가리오? 혹 잡힐 것 같으면 그 화는 어찌 너의 몸만으로 그치겠느냐. 몽조가 상서롭지 못하다 하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만약 길하다고 하면 네가 기쁘게 가겠느냐. 마음을 굽히고 뜻을 누르고서 정절을 지켜 평안이 있으면 천이를 듣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너의 얼굴이 좀 쇠하면 대군의 사랑도 풀어질 것이니 사세를 보아 병이라 하여 누워 있으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허락하여 주실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낭군과 같이 손을 잡고 가서 백년해로(百年偕老) 함이 가장 큰 계교이니 이런 것을 생각하여 보지 못하였는가. 이제 그와 같은 계교를 당하여 네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감히 하늘을 속일 수야 있겠느냐?"

이에 진사님은 일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고는 한탄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나갔습니다.

하루는 대군이 서궁 수헌에 와서 철쭉꽃이 만발하였음을 보시고 시녀에게 명하여 오언절구를 지어 올리게 하고는 대군이 칭찬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들의 글이 날로 발전하므로 내 매우 가상히 여기거니와 다만 운영의 시에는 뚜렷이 사람을 생각하는 뜻이 있구나. 네가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김진사의 상량문에도 의심할 만한 대목이 있었는데, 너는 김진사를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이에 저는 즉시 뜰에 내려 머리를 땅에 대고 울면서 고했어요.

"대군께 한 번 의심을 보이고는 바로 곧 스스로 죽고자 했으나 나이가 아직 이십 미만이고, 또 부모님을 보지 않고 죽으면 구천지하에 죽어서도 유감이 있는 까닭으로 살기를 도적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다가 또한 이제 의심을 나타냈사오니 한 번 죽기를 어찌 애석히 여기리까."

하고는 바로 비단 수건으로 스스로 난간에다 목을 매었더니, 대군이 비록 크게 노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정말로 죽이고 싶지 않은 고로, 자란으로 하여금 구하여 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진사가 그날 밤 들어오셨으나, 저는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고, 자란으로 하여금 맞이해 들여 술 석 잔을 권하고는 봉서를 주면서 제가 말했지요.

"이후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니, 삼생의 인연과 백년의 가약이 오늘 밤으로 다한 것 같습니다. 혹 천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마땅히 구천지하(九天地下)에서 서로 찾게 되겠지요.

진사는 편지를 받고 우두커니 서서 맥맥히 마주 보다가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갔습니다. 자란은 처량하여 차마 볼 수 없어 몸을 숨기고 눈물을 흘리면서 서 있었습니다. 진사가 집에 돌아와 봉서를 뜯어보니,

'박명한 운영은 두 번 절하고 엎드려 사뢰하옵니다. 제가 비박한 자질로서 불행하게도 낭군님께옵서 유념하여 주시어 서로 생각하기를 몇 날이며, 서로 바라보기를 몇 번이나 하다가 다행히 하룻밤의 즐거움을 나누었을 뿐, 바다같이 크고 넓은 정은 다하지 못하였나이다. 인간사 좋은 일에는 조물주의 시기함이 많사와, 궁인이 알고 대군이 의심하시어 조석으로 화가 다가왔으매, 낭군께서는 작별한 후로 저를 가슴에 품어 두시고 상심치 마시옵소서. 힘써 공부하시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고 후세에 이름을 날리시어 부모님을 기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 의복과 보화는 모두 팔아서 부처님께 바치시어 여러 가지로 기도하시고 정성을 다하여 소원을 내어 삼생의 미진한 연분을 후세에 다시 잇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사는 다 보지를 못하고 기절하여 땅에 넘어지니 집사람들이 뛰어나와 구하시니 다시 깨어났습니다.

"궁인이 무슨 말로 대답을 하였기에 이렇게 죽으려 하시나이까?"

하고 물으니 진사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다만 한 가지만 말할 뿐이었습니다.

"재보는 네가 잘 지키고 있느냐? 내 창차 다 팔아서 부천님께 숙약을 실천하리라."

특이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기를,

'궁녀가 나오지 않으니 그 재보는 하늘과 나의 것이겠지.'

하며 벽을 향하여 남몰래 웃었으나, 사람들은 까닭을 알 수 없었지요.

하루는 특이 스스로 옷을 찢고 코를 쳐서 피가 흐르게 하여 온몸을 더럽히고 머리를 흐트리고 맨발로 뜰에 엎드려 울면서 말했어요.

"제가 강적의 습격을 받았나이다. 외로운 한 몸이 산중을 지키다가 수많은 도적들이 습격하여 오므로 목숨을 걸고 도망쳐 왔나이다. 만일 그 보화가 아니더면 제게 어찌 이와 같은 위험이 있으리이까?"

하고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므로 진사님은 따뜻한 말로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얼마 후 진사님은 특의 소행을 알고 노복 십여 명을 거느리고 가서 불의에 그 집을 수색하여 보니 다만 금팔찌 한 쌍과 운남 보경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말이 전파되어 궁인이 대군께 고하니, 대군이 대노하여 남궁인으로 하여금 서궁을 찾아보게 한즉 저의 의복과 보화가 전부 없어졌으므로, 대군이 서궁 궁녀 다섯 사람을 뜰에 불러놓고, 형장을 엄하게 차려놓고 영을 내리기를,

"이 다섯 사람을 죽여서 다른 사람을 징계하라!"

하시고는 집장 한 사람에게,

"장수를 헤아리지 말고 죽을 때까지 치렷다!"

 

이에 다섯 사람이 호소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한 번 말이나 하고 죽겠나이다."

하고 은섬이 초사를 올리니, 대군이 보기를 마치고 나시더니 또 한 번 초사를 다시 펴고 보시는데, 노여움이 좀 풀리는 것 같으므로 소옥이 엎드려 울면서 아뢰었습니다.

"전날 빨래하러 갈 때에 성안으로 가지 말자고 한 것은 저의 의견이었으나, 자란이 밤에 남궁으로 와서 매우 간절히 청하기에 제가 그 뜻을 안타까이 여겨 군의를 물리치고 따랐사옵니다. 운영의 훼절은 그 죄가 저의 몸에 있사옵고 운영에게 있지 아니하오니 저의 몸으로써 운영의 목숨을 이어 주옵소서."

이에 대군의 노여움이 좀 풀어져서 저를 별당에다 가두고 다른 궁녀들은 다 돌려보냈는데, 그 날 밤 저는 비단 수건으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진사는 붓을 잡아 기록하고 운영은 옛일을 당겨서 이야기하는데 매우 자상하였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슬픔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다가, 운영이 진사보고 말하였다.

"이로부터 다음 이야기는 낭군님께서 하옵소서."

이에 진사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운영이 자결한 후 모든 궁인들이 통곡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부모가 돌아간 것과 같이 했습니다. 저는 공불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 구천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자 그 금팔찌와 보경을 다 팔아 사십 석을 사서 청녕사로 보내어 재를 올리고자 하나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 특을 불러 전일의 죄를 사하고,

"내 운영을 위해 초례를 베풀고 불공을 드려 발원을 빌고자 하니 네가 가지 않겠느냐?"

 

특이 즉시 절로 가서 삼 일을 궁둥이를 두드리면서 누워 놀다가, 지나가는 마을 여인을 강제로 끌고 들어와 승당에서 수십 일을 지내고도 재를 올리지 않으므로 중들이 분히 여겨 재를 올리라고 하매, 특이 마지 못하여,

"진사는 오늘 빨리 죽고 운영은 다시 살아나 특의 짝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와 같이 삼 일을 밤낮으로 발원하는 말이 오직 이것뿐이었답니다. 그리고 나서 특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운영 아씨는 반드시 살 길을 얻을 것입니다. 재를 올리던 그날 밤 저의 꿈에 나타나서 정성껏 발원해 주니 감사한 마음 이루 다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절하고 울었으며, 중들의 꿈도 또한 같았다고 합니다."

하기에 저는 그 말을 믿고 있었지요.

저는 독서하고자 청녕사에 며칠 묵는 동안 중들로부터 특이 한 일을 자세히 듣고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목욕 재계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향불을 사르면서 합장하고 빌었습니다. 그랬더니 칠 일만에 특이 우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러한 후로부터 저는 세상 일에 뜻이 없어 새 옷을 갈아입고 고요한 곳에 누워 나흘을 먹지 않고 한 번 깊이 탄식하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쓰기를 마치자 붓을 던지고 두 사람은 마주보고 슬피 울면서 능히 스스로 그칠 줄을 몰랐다. 유영은 위로의 말을 해 주었다. 김진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례하고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은 다같이 원한을 품고 죽었기로 염라대왕이 죄없음을 가련히 여기시어 다시 인간에 태어나도록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하의 즐거움이 인간보다 못하지 않는데 하물며 천상의 즐거움은 어떠하겠습니까? 이로써 인간에 나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만 오늘 저녁에 슬퍼한 것은 대군이 한번 돌아가시자 고궁에 주인 없고 까마귀와 새들이 슬피 울고 사람의 자취가 이르지 않으므로 그리 했을 뿐이옵니다. 거기에다 새로 병화를 겪은 후로 아름답고 빛나던 집이 재가 되고 섬돌, 담이 모두 무너지고 오직 섬돌 위에 피어 있는 꽃만이 향기 만발하고, 뜰에는 풀만이 깔리어 그 빛을 자랑할 뿐이니, 그 찬란하던 옛날의 모습이 바뀌지 않았다고 하지만 인간사 변화가 이와 같이 같거늘 다시 옛일을 생각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대들은 천상의 사람입니까?"

"우리 두 사람은 본래 천상 선인으로서 오래도록 옥황상제를 모시고 있었더니, 하루는 제가 반도를 따가지고 운영과 같이 먹다가 발각되고, 전세에 적하되어 인간의 괴로움을 골고루 겪다가, 이제 옥황상제께서 전의 허물을 용서하사 삼청궁으로 올라가서 다시 옥황상제의 향안 앞에서 상제를 모시게 하였삽기로, 돌아가는 이때를 타서 바람의 수레를 타고 다시 진세의 옛날 놀던 곳을 찾아와 보았을 뿐입니다."

하며 김진사가 말하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운영의 손을 잡고 또 말했다.

"바다가 마르고 돌이 불에 타 버린들 우리들의 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요, 오늘 저녁에 존군과 서로 만나 이렇듯 따뜻한 정을 나누었으니 속세의 인연이 없으면 어찌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존군께서는 이 원고를 거두어 가지시고 돌아가 뭇사람의 입에 전하여 웃음거리가 되자 않도록 영원히 전해 주시오면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하더니,

 

그리고는 김생은 취하여 운영의 몸에 기대어 시 한 수를 읊었다.

꽃 떨어진 궁중에 연작이 날고,

봄빛은 예와 같건만 주인은 간 곳 없구나.

중천에 솟은 달은 차기만 한데,

아직 푸른 이슬은 우의를 적시지 않았네.

花落宮中燕雀飛 화중궁중연작비

春光依舊主人非 춘광의구주인비

中宵月色凉如許 중소월색량여허

碧露未沾翠羽衣 벽로미첨취우의

운영이 받아서 읊었다.

고궁의 고운 꽃은 봄빛을 새로 띄고,

천 년 만 년 우리 사랑 꿈마다 찾아오네.

오늘 저녁 예 와 놀며 옛 자취 찾아보니,

막을 수 없는 슬픈 눈물은 수건을 적시네

古宮柳花帶新春 고궁류화대신춘

千載豪華入夢頻 천재호화입몽빈

今夕來遊尋舊跡 금석래류심구적

不禁哀漏自沾巾 불금애루자첨건

이때 유영도 취하여 잠깐 누워 있다가 산새 소리에 깨어났다. 구름과 연기는 땅에 가득하고 새벽빛은 창망한데, 사방을 살펴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김생이 기록한 책자만이 있었다. 유영은 쓸쓸한 마음 금할 수 없어 신책(神冊)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왔다.

장 속에 감추어 두고 때때로 내어 보고는 망연자실(茫然自失)하여 침식(寢食)을 전폐했다. 후에 명산을 두고 두루 찾아다니더니, 그 마친 바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요점 정리

작자 : 미상(작품속의 유영을 작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연대 : 미상(숙종 때 17세기)

형식 : 고전소설, 비극 소설, 염정소설(艶情小說), 몽유소설, 애정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시점이지만 시점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운영전'은 일반적인 몽유록계 소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몽유록계 소설과는 다른 주인공이 현실과 꿈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운영전'은 현실에서는 유영이 주인공이지만, 꿈속에서는 운영과 김 진사가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의 다원화는 인물의 개성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운영이 자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시점의 혼란이 나타나는 부분도 있다.

성격 : 비극적, 염정적

주제 : 남녀 간의 지고지순한 사랑(또는 궁녀의 비극적인 삶), 인간성 해방(그녀의 죽음은 순수한 애정마저 감추어야 하는 유교적 질곡(桎梏)과 궁녀의 억압된 삶에 대한 저항이 담겨 있기 때문에) - 대부분의 고전 소설이 단순 구성에 행복한 결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지니는 데 반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특이성을 보이고 있다.), 신분을 초월한 남녀 간의 지고지순한 사랑 또는 궁녀의 비극적인 사랑

구성 : 비극적 결말로 두 연인의 정사인 비극으로 처리한 유일한 소설, 환상적 구성으로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몽유록의 발전된 형식이라 할 수 있으며, 액자식 구성이라는 입체적 틀 속에 비극적 주제를 전개하는 특이성을 보이고 있다.

유영과 운영. 김 진사의 만남

현실(외화)

꿈(내화)

운영, 김 진사의 이별 -

유영의 행적

현실(외화)

내부 이야기로 운영과 김 진사가 번갈아 가며 비극적인 사연을 이야기함

외부 이야기로 유영이 운영과 김 진사의 이야기를 들음

만남 - 현실에서 환상, 꿈으로

① 선조 때 선비 유영이 안평 대군의 옛집인 수성궁터에 들어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 잠이 들었다.

② 유영이 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궁녀였던 운영과 김진사를 만나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게 되었다.

비극적 사랑 -이야기 속의 이야기, 꿈의 세계에서 과거를 회상

③ 풍류를 좋아하던 안평대군이 10명의 궁녀를 별당에 두고 시와 풍류를 배우게 한다.

④ 운영은 안평 대군을 찾아온 김진사에게 반하고, 둘은 서로의 연정을 편지로 주고 받는다.

⑤ 운영은 궁밖으로 빨래하러 나가는 틈을 이용하여 김진사를 만나 회포를 푼다.

⑥ 이후, 운영은 밤마다 궁궐 담을 넘어 들어 오는 김진사와 짙은 사랑을 나눈다.

⑦ 안평 대군이 이 사실을 알고 대로하여 궁녀들을 문책하니, 운영은 자책감 때문에 자결한다.

이별 - 꿈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옴

⑧ 김진사는 절에 가서 운영의 명복을 비는 재를 올린 다음. 슬픔이 병이 되어 죽는다.

⑨ 김진사와 운영은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세인(世人)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한다.

⑩ 유영이 다시 취중에 졸다가 깨어 보니 김진사와 운영의 일을 기록한 책만 남아 있다.

⑪ 유영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명산 대천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그 마친 바를 알 수는 없다.

특징 : 궁녀인 운영과 김진사는 조선의 봉건적 사회 제도의 모순된 현실을 뛰어 넘어 남녀의 진솔한 사랑을 추구하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혀 자살하게 된다. 이러한 표면적 이야기로만 본다면 주인공인 운영과 김 진사는 비극적 인물이요, 좌절된 인간상이다. 운영은 궁녀라는 신분과 순수한 인간적 애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죽음을 선택하였으며 운영의 죽음은 곧 김진사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영의 죽음이 단순히 비극성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녀의 죽음은 순수한 애정마저 감추어야 하는 유교적 질곡(桎梏 : ①옛 형구인 차꼬와 수갑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과 궁녀의 억압된 삶에 대한 저항이며, 인간성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는 비인간적 규제와 형식에 매인 삶을 벗어나 진정한 자아 찾기를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줄거리 : 선조 연간의 어느 봄날, 청파사인(靑坡士人) 유영이 세종의 셋째아들로 호탕한 생애를 보내다가 세조의 찬탈 후 억울하게 주살된 안평대군의 구택(舊宅) 수성궁에 놀러갔다가 취몽 간에 안평대군의 궁녀였던 운영과 그녀의 애인 김진사를 만나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듣고 깨어 보니 꿈이었다는 몽유록계의 소설이다. 궁중의 구속적인 생활 속에서 대군의 문중에 출입하는 청년 시인 김진사의 모습을 보고 연정이 끓어오른 운영은 남의 눈을 피해 그와 서신을 교환하고 밀회를 하다가 발각되어 옥중에 갇힌 끝에 자결하며, 궁 밖에서 운영을 기다리던 김진사도 그녀의 장사를 치른 다음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왕조 세종의 제3자 안평대군의 수성궁은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되었다. 유영이라는 한 선비가 춘흥을 못이겨 그곳을 찾아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잠이 들어 밤을 맞는다.

한 곳에 이르니 어떤 청년이 아름다운 여인과 속삭이다가 유영이 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맞이한다. 여인은 곧 시비를 불러 자하주(紫霞酒)와 성찬(盛饌)을 차려오게 한다. 그 뒤 세 사람이 대좌하여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유영이 그들의 성명을 물으니 청년은 김진사, 여인은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이라 한다. 유영이 안평대군 생시의 일과 김진사의 슬퍼하는 곡절을 물으니 운영이 그들의 사연을 먼저 풀어 놓는다.

안평대군은 풍류왕자로서 궁중에 아름다운 전각을 짓고 풍류 재자(才子)들을 모아 시회를 여는 한편, 운영을 비롯하여 궁녀 10명을 뽑아 가무와 서예를 가르치며 별궁에 두고 즐기게 된다. 하루는 안평대군이 운영이 지은 시를 읽고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상냐고 다그치며 힐문한다.

어느날 안평대군과 궁녀들이 시를 짓고 있는데 김진사가 찾아와 함께 어울려 시회(詩會)를 열게 된다. 그때 운영은 김진사의 재모(才貌)에 마음이 끌려 그를 사랑하게 된다. 김진사 또한 운영에게 정을 보내게 된다. 그 뒤 운영은 김진사를 몰래 사모하다가 그에 대한 연정을 시 한 수에 옮겨, 마침 김진사가 안평대군을 만나러 온 틈을 타 문틈으로 전하한다. 김진사도 수성궁에 출입하는 무녀를 통하여 사랑의 답신을 보낸다. 운영과 김진사의 관계를 눈치챈 안평대군은 궁녀를 나누어 서궁으로 이주시키고 운영을 힐문하지만 운영은 죽을 각오로 사실을 부인하고 자백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중추절에 궁녀들이 개울로 빨래를 하러 나갈 기회를 얻자, 운영은 곧장 무녀의 집으로 달려가 연락하여 다시 김진사를 만나 더욱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궁중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날 밤 김진사는 높디높은 궁장(宮墻)을 넘어가서 운영을 만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이룬다. 이후로 김진사는 밤마다 궁장을 넘나들며 운영과 즐거움을 나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이 되자 눈을 밟고 궁중을 오간 김진사의 발자국이 빌미가 되어 두 사람은 궁인들의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마침내 안평대군에게도 의심을 사게 되어 운영은 탈출을 계획하고 김진사의 사내 종 특(特)을 통하여 그의 가보와 집기들을 모두 궁외로 옮기게 된다. 그뒤 그 재보는 특의 간계에 의하여 모두 빼앗기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안평대군은 대로하여 궁녀들을 불러 문초하기에 이른다. 안평대군이 운영을 하옥하자 그녀는 자책감으로 그날 밤 비단수건으로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만다. 여기까지 운영이 진술하자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던 김진사가 이번에는 운영의 뒤를 이어 술회한다.

운영이 죽자 김진사는 운영이 지녔던 보물을 팔아 절에 가서 운영의 명복을 빈 다음 식음을 전폐하고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운영의 뒤를 따라 자결하고 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김진사와 운영은 슬픔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유영이 그들을 위로하여 “인세에 다시 태어나지 못함을 한하느냐?”라고 묻자 그들은 천상의 즐거움이 인세보다 더 큼을 말하고, 다만 옛날의 정회를 잊지 못하여 이곳을 찾아왔다고 말한다. 유영은 바다가 마르고 돌이 녹아도 사라지지 않을 자신들의 사랑을 세인에게 전하여 달라는 당부를 받는다.

이야기가 끝난 뒤 세 사람은 다시 술을 마신다. 유영이 술에 취해 졸다가 문득 산새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새벽이 밝았는데 다만 김진사와 운영의 일을 기록한 책자만이 무료히 놓여 있었다. 유영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상자에 감추어두고, 그 뒤로는 침식을 전폐하고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 마친 바를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의의 : 조선시대의 고대소설 중에서도 남녀간의 애정을 미화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일명 '수성궁몽유록(壽聖宮夢遊錄)', 또는 '유영전(柳泳傳)'이라고도 한다.

내용 연구

 

고전 소설에서는 글 가운데 간혹 가요나 시가가 삽입된다. 이런 삽입 가요나 시가는 등장 인물의 심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므로 원망이나 한탄 등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데 활용된다. 하여간 대체로 그 시는 작품의 내용이나 인물의 정서를 집약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한시의 삽입이 주는 효과

인물의 심리와 정서 전달

사건의 내용, 의미 뒷받침

글의 단조로움 극복

즉 김 진사와 운영이 지은 시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연모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녹아들어 이들의 심리나 정서를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산문으로 이루어진 글에 운문을 삽입함으로써 문체에 변화를 주어 글의 단조로움을 피하는 효과를 얻고 있으며, 사건의 내용, 의미를 뒷받침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는 대군이 서궁 수헌[대군의 명으로 운영이 은성, 자란, 옥녀, 비취와 함께 머물던 곳]에 와서 철쭉꽃이 만발하였음을 보시고 시녀에게 명하여 오언절구를 지어 올리게 하고는 대군이 칭찬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의 글이 날로 발전[일취월장(日就月將) : 날로 달로 진보함]하므로 내 매우 가상히 여기거니와 다만 운영의 시[김 진사와의 사랑을 염원하는 내용의 시]에는 뚜렷이 사람을 생각하는 뜻이 있구나. 네가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김 진사의 상량문[상량식을 할 때에 축복하는 글]에도 의심할 만한 대목이 있었는데, 너는 김 진사를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운영과 김 진사의 시를 읽고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아챔 / 반신반의]

이에 저는 즉시 뜰에 내려 머리를 땅에 대고 울면서 고했어요.

“대군께 한 번 의심을 보이고는 바로 곧 스스로 죽고자 했으나 나이가 아직 이십 미만이고, 또 부모님을 보지 않고 죽으면 구천지하[(九泉地下)죽은 뒤에 넋이 돌아간다는 곳.]에 죽어서도 유감이 있는 까닭[운영이 첫 번째 의심을 받았을 때 스스로 죽지 못한 이유]으로 살기를 도적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다가 또한 이제 의심을 나타냈사오니 한 번 죽기를 어찌 애석히 여기리까.”

하고는 바로 비단 수건으로 스스로 난간에다 목을 매었더니, 대군이 비록 크게 노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정말로 죽이고 싶지 않은 고로[안평대군은 운영을 매우 아낌], 자란으로 하여금 구하여 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진사가 그날 밤 들어오셨으나, 저는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고, 자란으로 하여금 맞이해 들여 술 석 잔을 권하고는 봉서[겉봉을 봉한 편지]를 주면서 제가 말했지요.

 

“이후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니, 삼생[전생(前生)·현생(現生)·후생(後生)을 이르는 말.]의 인연과 백 년의 가약이 오늘 밤으로 다한 것 같습니다. 혹 천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마땅히 구천지하에서 서로 찾게 되겠지요.”

진사는 편지를 받고 우두커니 서서 맥맥히[아무말 없이 갑갑하게] 마주 보다가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갔습니다. 자란은 처량하여 차마 볼 수 없어 몸을 숨기고 눈물을 흘리면서 서 있었습니다.[목불인견 :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음] <중략> - 김 진사와의 관계가 대군에게 발각됨

“바라건대 한 번 말이나 하고 죽겠나이다.”

하고 은섬이 초사(招辭 : 공초, 조선 시대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를 올리니, 대군이 보기를 마치고 나시더니 또 한 번 초사를 다시 펴고 보시는데, 노여움이 좀 풀리는 것 같으므로 소옥이 엎드려 울면서 아뢰었습니다.[운영의 처지를 안타까워하여 살려 줄 것을 청하는 궁녀들]

 

“전날 빨래하러 갈 때에 성 안으로 가지 말자고 한 것은 저의 의견이었으나, 자란이 밤에 남궁으로 와서 매우 간절히 청하기에 제가 그 뜻을 안타까이 여겨 군의를 물리치고 따랐사옵니다. 운영의 훼절[절개를 깨뜨림]은 그 죄가 저의 몸에 있사옵고 운영에게 있지 아니하오니 저의 몸으로써 운영의 목숨을 이어 주옵소서.”

이에 대군의 노여움이 좀 풀어져서 저를 별당에다 가두고 다른 궁녀들은 다 돌려보냈는데, 그날 밤 저는 비단 수건으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 다른 궁녀들을 위해 운영이 자살함

진사는 붓을 잡아 기록하고 운영은 옛일을 당겨서 이야기하는데 매우 자상하였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슬픔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다가, 운영이 진사보고 말하였다.

“이로부터 다음 이야기는 낭군님[김 진사]께서 하옵소서.”

이에 진사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서술자가 운영에서 김 진사로 바뀜]

 

운영이 자결한 후 모든 궁인들이 통곡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부모가 돌아간 것과 같이 했습니다. 저는 공불(供佛)[부처에게 공양함]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 구천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자[운영의 마지막 편지 속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재를 올림] 그 금팔찌와 보경을 다 팔아 사십 석을 사서 청녕사로 보내어 재를 올리고자 하나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 특을 불러 전일의 죄를 사하고[김 진사가 어진 성품으로 특을 용서함],

“내 운영을 위해 초례(醮禮)[전통적으로 지내는 혼인 예식]를 베풀고 불공을 드려 발원[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빎. 또는 그 소원]을 빌고자 하니 네가 가지 않겠느냐?”

특이 즉시 절로 가서 삼 일을 궁둥이를 두드리면서 누워 놀다가, 지나가는 마을 여인을 강제로 끌고 들어와 승당에서 수십 일을 지내고도 재를 올리지 않으므로 중들이 분히 여겨 재를 올리라고 하매, 특이 마지못하여,

“진사는 오늘 빨리 죽고 운영은 다시 살아나 특의 짝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와 같이 삼 일을 밤낮으로 발원하는 말이 오직 이것뿐이었답니다. 그리고 나서 특이 돌아와서 하는 말이,

“운영 아씨는 반드시 살 길을 얻을 것입니다. 재를 올리던 그날 밤 저의 꿈에 나타나서 정성껏 발원해 주니 감사한 마음 이루 다할 수 없다고 하면서 절하고 울었으며[운영이 특의 꿈에 나타나 발원했다는 것은 특의 거짓말임], 중들의 꿈도 또한 같았다고 합니다.”

하기에 저는 그 말을 믿고 있었지요.

저는 독서하고자 청녕사에 며칠 묵는 동안 중들로부터 특이 한 일을 자세히 듣고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목욕 재계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향불을 사르면서 합장하고 빌었습니다. 그랬더니 칠 일 만에 특이 우물에 빠져 죽었습니다[인과응보]. 이러한 후로부터 저는 세상 일에 뜻이 없어 새 옷을 갈아입고 고요한 곳에 누워 나흘을 먹지 않고 한 번 깊이 탄식하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김 진사의 죽음을 나타냄] - 김 진사도 운영의 뒤를 따라 죽음

쓰기를 마치자 붓을 던지고 두 사람은 마주보고 슬피 울면서 능히 스스로 그칠 줄을 몰랐다.

 

[운영전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행복한 결말에 이르지 못하고 '주인공 운영과 김 진사'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 죽음을 맞는 비극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즉, 운영은 궁녀라는 신분 때문에 김 진사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자살하게 되고, 운영 자살 이후 김 진사도 운영의 뒤를 따르는 비극적 상황이 전개된다. 이들의 죽음은 유교적 사회라는 현실적 장벽에 가로막힌 인물들의 좌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당시 사회 제도에 맞선 자아 찾기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비록 작품 내에서 운영과 김 진사가 죽음으로써 조선 시대의 사회적 제약에 묶여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게 되지만, 그러한 틀을 뛰어넘어 자유연애를 구현하려 한 선구적 의식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은영(隱映) :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면서 은은하게 비침

상서(祥瑞) :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

소인(騷人) : 풍류를 즐기어 노래하고 읊는 사람

탕연(蕩然) : 텅 비어 있는 모

유객 : 유람하고 다니던 사람

수재(秀才) : 옛날에 미혼 남자를 존경하여 붙이던 칭호

경개여고 : 잠깐 만나도 오래 사귄 친구와 같음

주찬(酒饌) : 술과 안주

표연(飄然)히 : 매우 가볍게

자하주 : 신선이 마신다는 술

천연 : 하늘이 맺어준 인연

바이 : 아주 전혀

양가 : 지체가 있는 좋은 집안

문묵 : 시문을 짓거나 서화를 그리는 일.

격조 : 격식과 운치에 어울리는 가락

정의 : 서로 사귀어 친해진 정.

장황하다 : 번거롭고 길다

진사 : 조선 시대 과거 중 소과에 급제한 사람

호협 :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함

유체 : 부모가 준 몸.

성시 : 전성기

성상 : 일 년 동안의 세월

전민 : 농토와 백성

상사 : 임금이 상으로 줌

유업 : 유가의 학업

방과 : 제멋대로 놀며 지냄

왕희지 : 중국 진나라 제일의 서도가. 그의 서체를 진체라 함

조맹부 : 송나라 말기 원나라 초기 서도가. 그의 서체를 송설체라 함

재사 : 재주 있는 선비

도성 : 서울

정사 : 학문을 가르치려고 베푸는 집

당명 : 집의 이름

비해 : 게으르지 않음

단 : 높게 만들어 놓은 자리

구축 : 쌓아 올림

칠언 사운 : 한시 형식의 하나.

섬돌 : 집채의 앞뒤에 오르내리기 위하여 만든 돌층계

외람(猥濫)히 : 분수에 지나치게

존명 : 상대방의 이름을 높여 이르는 말

상면 : 서로 대면함

격률 : 체재와 규칙

소자 : 나이 어린 사람

단소 : 동양 음악의 관악기의 한 가지

고운 목소리를 토하기 : 아름다운 시를 짓는 일

유하주 : 신선이 마신다는 술

기재 : 매우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

종장 : 경학에 밝고 글을 잘 하는 사람. 여기서는 '가장 우수한 시인'이란 뜻

향안 : 향로를 올려 놓은 상

곤륜산 : 중국의 전설속에 나오는 산. 서왕모가 살며 불사의 물이 흐르는 신선경이란 믿어졌음

옥액 : 맛이 좋은 술의 비유

경어 : 고래

도서 : 크고 작은 섬들

교룡 : 전설상의 용의 일종

맹호연 :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녹문산에 숨어 시를 즐겼음

시마 : 시를 짓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마력

귀어 : 귀신의 말

두보 : 중국 당시인

속유 : 지식이나 행실이 변변치 못한 선비

회자 : 회와 구운 고기

백체 : 온갖 격식

비흥 : 비유하여 재미있게 말함

사마상여 : 중국 전한의 문인

사마천 : 중국의 역사학자

초하다 : 초안을 잡다

동방삭 : 한 무제 때 사람. 해학과 변설로 유명함

서왕모 : 선녀의 하나. 주나라 목왕이 서쪽으로 곤륜산에 사냥을 가서 서왕모를 만나서 요지에서 노닐며 돌아오는 것을 잊었다 함.

천도 : 선가에서 하늘나라에 있다고 믿는 복숭아

태청궁 ; 옥황상제가 살고 있다는 하늘의 궁

고문 : 내용이 알차고 문장이 세련된 글

악부 : 한시의 한 형식. 인정 풍속을 읊은 것으로 글귀에 장단(長短)이 있음

왕맹 : 왕유와 맹호연

금환 : 금으로 만든 고리. 금반지

불민 : 어리석고 둔해 민첩하지 못함

식언 : 앞서 한 말이나 약속과 다르게 말함

삼생 : 불교에서 전생·현생·내생을 아울러 이르는 말

미진 : 다하지 못함

궁을 나누다 : 서궁과 남궁으로 나누어 거처하다

자못 : 생각보다 많이

형적 : 남은 흔적. 여기서는 '남궁의 구별'이란 의미로 쓰임

우이 : 중국 당대의 우승유와 이종민

조상 : 시들어 상함

쌍연 : 쌍을 지어 나는 제비

박명 : 팔자가 사나움

요대의 잔치 : 서왕모와 주나라 목왕이 노닐며 벌였다는 잔치

항아 : 달 속에 있다는 선녀

영약을 도적질하였음 : 항아가 불사약을 훔쳐 가지고 달나라로 도망갔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성교 : 큰 가르침

유연 :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모양. 저절로 일어나 형세가 왕성함

금석의 약속 : 금석같이 굳은 약속

맥맥히 : 생각이 잘 들지 아니하며, 기운이 막혀

동복 : 사내 아이의 종

장 : 길이의 단위. 한 장은 10자.

대한 : 큰 가뭄

사창 ; 깁으로 바른 창

서안 : 책상

진수기찬 : 맛이 좋고 기이한 음식

재 : 명복을 빌기 위해 드리는 불공

축언 : 비는 말

패악 : 도리에 어긋나고 흉악함

철가 : 죄인의 목에 씌우는 쇠로 만든 형구

십지 : 열 손가락

십지를 ~ 지을 것이며 : 온 몸을 바쳐 불도 수행에 정진할 것이며

거찰 : 큰 절. 대찰

반도 : 선도의 한 가지. 삼 천년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전설상의 복숭아

적강 : 신선이 죄를 짓고 인간 세상으로 쫓겨나 사람으로 태어남

존군 : 유영을 가리킴

연작 : 제비와 참새

우의 : 새의 깃으로 만든 옷. 선녀나 도사가 입는다고 함.

창망 : 아득함

신책 : 신비로운 책. 김생이 운영과의 사랑을 기록한 책을 말함.

망연히 자살하여 :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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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김 진사와 운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함]가 편지를 가지고 궁문에 들어가니, 궁 안 사람들이 모두 그 옴을 괴이히 여기기에, 그 무녀는 권사(權詐 : 권모와 사기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써 대답하고는 틈을 엿보아 들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저[운영]를 끌고 가서 편지를 주더이다. 제가 방으로 들어와서 뜯어 보니 그 편지의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한 번 눈으로 인연을 맺은 후부터 마음은 들뜨고 넋이 나가 능히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오매불망(寤寐不忘) : 자나깨나 잊지 못함.] 매양 성 저쪽을 향하여 몇 번이나 애를 태웠는지요. 이전에 벽 사이로 전해 주신 편지로 해서 잊을 수 없는 옥음(玉音 : 본래는 임금의 음성을 가리키는 말이나 여기서는 상대방의 음성을 높여서 일컫는 말)을 공경히 받아들고 펴기를 다하지 못 하여 가슴이 메이고, 읽기를 반도 못 하여 눈물이 떨어져 글자를 적시기에 능히 다 보지를 못하였으니 장차 어찌하오리까. 이러한 후로부터 누워도 능히 자지를 못하고, 음식은 목을 내려가지 않고 병은 골수에 사무쳐 온갖 약이 효험이 없으니 저승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직 소원은 조용히 죽음을 따를 뿐이오니,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고 신께서 도와 주시와 혹 생전에 한 번이라도 이 원한을 풀어 주게 하신다면 마땅히 몸을 부수고 뼈를 갈아서라도 천지 신명의 영전에 제를 지내겠습니다.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예를 갖추지 못하고 삼가 쓰나이다.” [진실하면서도 죽음을 무릅쓴 사랑의 마음이 담긴 편지]

사연 끝에는 칠언사운(七言四韻) 한 수가 적혀 있었는데, 그 시[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담긴 시]는 이러했지요. (중략)

저는 보기를 마치자 소리가 끊기고 기가 막혀서 입으로는 능히 말을 할 수 없었고, 눈물이 다하자 피가 눈물을 이었습니다.[금지된 사랑으로 인한 고통] 병풍 뒤에 몸을 숨기고서 오직 사람이 알까 봐 두려워했어요.

하루는 대군이 비취를 불러,

“너희들 열 명이 한 방에 같이 있으니 공부에 전념할 수 없다.”

하시고, 다섯 명을 서궁(西宮)에 가서 있게 하셨습니다[김 진사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됨]. 저는 자란, 은섬, 옥녀, 비취와 같이 즉일로 옮겨 갔습니다. 옥녀가 말하기를,

“그윽한 꽃, 가는 풀, 흐르는 물, 꽃다운 수풀이 산가(山家)나 야장과 같으니, 참으로 훌륭한 독서당이라 할 수 있구나.” [서궁에 만족해 하는 옥녀]

하였습니다. 이에 제가 대답하기를,

“산인(山人)도 아니고 중도 아니면서 이 깊은 궁 안에 갇히었으니 정말로 이른바 장신궁(長信宮 : 중국 한나라 때 장락궁 안에 있던 궁전으로 주로 태후가 살았다.)이다.” [궁에 갇혀 김 진사와의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는 운영]

하였더니, 좌우 궁인들 모두가 자탄하고 울적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궁녀의 처지에 대한 공감 : 동병상련(同病相憐) : 같은 병의 환자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동정하고 도움.]

(중략)

“낭군님의 말씀을 어찌 감히 거역하리까마는 자란이와 저의 정이 형제와 같으니 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는 곧 자란을 불러 진사님의 계교(計巧)[담을 넘어 도망가는 것]를 말하였더니, 자란이 크게 놀라 저를 꾸짖어 말하더이다.

“서로 즐거워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어찌 스스로 화근(禍根)을 빨리 오게 하느냐?[담을 넘어 도망가는 것에 대하여 반대함] 한두 달 동안 서로 사귐이 또한 족하거늘 담을 넘어 도망하는 짓을 사람으로서 어찌 차마 할 수 있으리요? 천지는 한 그물 속 같으니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도망간들 어디를 가리요? 혹 잡힐 것 같으면 그 화가 어찌 한 몸에만 그치겠느냐? 몽조[꿈자리]가가 상서롭지 못하다 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만약 길하다고 하면 네가 기쁘게 가겠느냐? 마음을 굽히고 뜻을 누르고서 정절을 지켜 평안이 있으면 천 리(千里)를 듣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너의 얼굴이 좀 쇠하면 대군의 사랑도 풀어질 것이니 사세(事勢)를 보아 병이라 하여 누워 있으면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허락하여 주실 것이다. 이 때를 당하여 낭군과 손을 잡고 가서 백년해로(百年偕老 : 부부가 화락하게 함께 늙음.)함이 가장 큰 계교이다. 그것을 생각하여 보지 못하였느냐? 이제 그와 같은 계교를 당하여 네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으나 감히 하늘을 속일 수야 있겠느냐?”

 

이에 진사님은 일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고는 한탄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나갔습니다.

(중략)

하루는 대군이 서궁 수헌에 와서 철쭉꽃이 만발하였음을 보시고 시녀에게 명하여 오언절구[오언 사구(四句)로 된 시(詩). 당대(唐代)에 성행된 근체시(近體詩)]를 지어 올리게 하고는 그것을 칭찬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의 글이 날로 발전하므로 내 매우 가상히 여기거니와 다만 운영[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로 열정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고, 시 서예를 아는 교양이 있으며, 주변의 충고에 귀 기울줄 아는 현명함도 있음]의 시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뜻[김 진사에 대한 그리움]이 깊은 것 같구나. 네가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김 진사의 상량문(上樑文 :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옮기는 일에 축복하는 글.)에도 의심할 만한 대목이 있었는데, 너는 혹 김 진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대군이 운영과 김 진사와의 관계를 의심함]

이에 저는 즉시 뜰에 내려 머리를 땅에 대고 울면서 고했어요.

“대군께 한 번 의심을 보이고는 바로 곧 스스로 죽고자 하였으나 나이가 아직 이십 미만이고, 또 부모님을 보지 않고 죽으면 구천지하(九泉地下 :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간다는 곳)에 죽어서도 유감이 있는 까닭으로 살기를 도적질하여 여기까지 이르렀다가 이제 다시 의심을 받았사오니 한 번 죽기를 어찌 애석히 여기리까?”

하고는 바로 비단 수건으로 스스로 난간에다 목을 매었더니, 대군이 비록 크게 노하였으나 마음 속으로는 정말로 죽이고 싶지 않은 고로, 자란으로 하여금 구하여 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감 상

이 작품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유영이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김진사와 운영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비극적 연애담을 다 듣고 나서,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성 방식은 몽유록(夢遊錄)의 일반적 구성 방식과 차이를 지닌다. 몽유록의 일반적 구성 방식은 현실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꾸고, 꿈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잠이 깨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이 때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꿈속의 사건에 놓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중심 부분인, 유영이 김진사와 운영을 만나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 부분이 유영이 잠을 깬 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유영이 비극의 주인공들을 만난 것이 꿈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김진사나 운영이 현실의 사람이 아닌, 이미 죽은 사람의 환체(幻體)였다는 점에서 유영이 이들을 만난 것은 환상 체험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런 구성 방식도 작품에 보다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몽유록의 발전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일명 '수성궁 몽유록'이라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몽유록은 일반적으로 액자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유영에 관한 이야기가 작품의 외화라면 김진사와 유영에 관한 이야기가 작품의 내화라 하겠다.

이해와 감상1

 

"운영전"은 안평대군의 궁궐인 수성궁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을 다룬 애정 소설인데, 고전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비극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고전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인 '권선징악(勸善懲惡)'에서 벗어난 개성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성은 작품의 구성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운영전"은 흔히 "수성궁 몽유록"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수성궁 몽유록"이라는 제목이 보여 주듯이 "운영전"은 몽유록계 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영과 김 진사가 나타나 자신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후 유영은 꿈에서 깨어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운영전"은 일반적인 몽유록계 소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몽유록계 소설과는 다른 주인공이 현실과 꿈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운영전'은 현실에서는 유영이 주인공이지만, 꿈속에서는 운영과 김 진사가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의 다원화는 인물의 개성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운영이 자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시점의 혼란이 나타나는 부분도 있다.

또한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 이야기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여 유영과 운영 . 김 진사의 대화 속에서 서술되고 있다. 이는 운영과 김 진사가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직접함으로써 사실성을 부각시켜 감동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성은 궁중 안에 있는 궁녀들의 생활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궁녀들의 갇힌 생활과 그로 인해 몸부림치는 사랑의 한(恨)은 "운영전"의 비극성과 함께 사실성을 한층 더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운영전"은 인간의 본성을 가로막는 제도의 모순과 궁녀들이 억눌린 생활 묘사 등 그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생생히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실제로 역사책에 나오는 '유영'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하여 작품의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기도 하다.

운영과 김 진사는 결국 자유로운 사랑을 구속하는 사회 제도적 올가미에 굴복하고 만다. 그러나 이는 영원한 굴복이 아니었다. 땅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하늘에서마나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이룬 운명과 김 진사의 사랑은 헛되이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부귀, 영화에 대비되어 그 영원성이 더욱 빛나고 있다. 영원히 계속되는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 이처럼 사랑은 죽음을 뛰어넘는 위대한 것이며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운영전"에서는 인간의 본성인 사랑은 영원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는 사회 제도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운영전"은 사람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귀나 영화, 그리고 사회 제도도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자유로운 인간성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 월간 독서평설(96.11)

심화 자료

 

'운영전'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

 

이 작품에서 궁녀인 운영과 김진사는 조선의 봉건적 사회 제도의 모순된 현실을 뛰어넘어 인간 본능의 자연스러운 표출에 따라 사랑을 추구하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쳐 자살하게 된다. 이러한 표면적 이야기로만 본다면 주인공인 운영과 김진사는 비극적 인물이요, 좌절된 인간상이다. 운영은 궁녀라는 신분과 순수한 인간적 애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죽음을 선택하였으며 운영의 죽음은 곧 김진사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영의 죽음을 단순히 현실의 한계에 대한 좌절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이성에 대한 순수한 애정마저 감추어야 하는 유교 사회의 부조리와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하는 궁녀의 억압된 삶에 대한 저항이며, 나아가 인간성의 해방이라는 적극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조선 시대의 현실 속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지만, 이는 비인간적 규제와 형식에 매인 삶을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마지막 방편이었던 것이다.

안평대군

 

이름 용(瑢). 자 청지(淸之). 호 비해당(匪懈堂)·낭간거사(琅뗘居土)·매죽헌(梅竹軒). 세종의 셋째 아들. 1428년(세종 10) 안평대군에 봉해졌고, 1430년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쌓았다. 시문(詩文)·그림·가야금 등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명필로 꼽혔다. 문종 때 조정의 배후에서 실력자 구실을 하며, 둘째 형 수양대군의 세력과 은연히 맞서 있었다. 그러나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꾸며 김종서(金宗瑞) 등을 죽일 때 반역을 도모했다 하여 강화도로 귀양갔다. 그뒤 교동도(喬桐島)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영조 때 복호(復號)되어 장소(章昭)라는 시호가 내렸다.

운영전(雲英傳)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한문 · 한글 필사본. ‘ 수성궁몽유록(壽城宮夢遊錄) ’ 또는 ‘ 유영전(柳泳傳) ’ 이라고도 한다. 한문본과 한글본이 있는데, 부분적인 차이는 있으나 대체의 줄거리는 동일하다. 한문본이 원본이고 한글본은 한문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이본이라 여겨진다.

 

이 작품은 안평대군 ( 安平大君 )의 사궁 수성궁을 배경으로 궁녀 운영과 소년 선비 김진사와의 사랑을 다룬 염정소설(艶情小說)이다. 고대소설에서 보기 드문 비극적 성격의 작품으로 주목되고 있다.

작품 속의 화자 유영을 작자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작자 미상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따라서 〈 운영전 〉 의 저작연대도 선조대로 보는 견해와 실학사상이 싹튼 이후로 보는 두 가지 견해로 갈라진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적 성격 등에 주목하여 후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운영전 〉 은 현존하는 목판본은 없고, 한문 필사본으로는 서울대학교 일사문고본(一蓑文庫本) · 규장각본 · 국립중앙도서관본(2종) · 한글학회본 · 연세대학교본 · 김기동본(金起東本)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한글본으로는 장서각본 · 이재수본(李在秀本)이 있고, 활자본으로는 영창서관 ( 永昌書館 )에서 펴낸 〈 연정운영전 演訂雲英傳 〉 이 있다. 이밖에도 일본의 도요문고본(東洋文庫本) · 덴리대학본(天理大學本)과 영남대학교본 · 정병욱본 · 단국대학교 율곡도서관 나손문고본(구 김동욱본) 등이 전하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이 작품은 구성상 몽유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영이 수성궁터에서 노닐다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김진사와 운영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꿈에서 깨어난다. 분량면에 있어서는 8할 이상이 꿈 속의 일을 다루고 있다. 서술자 유영이 꿈 속에서 김진사와 운영의 말을 듣는 액자형(額字型) 구성을 택하여 작품 내부를 구성하였다. 몽유소설 안에 다시 액자소설이 들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선왕조 세종의 제3자 안평대군의 수성궁은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되었다. 유영이라는 한 선비가 춘흥을 못이겨 그곳을 찾아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잠이 들어 밤을 맞는다.

한 곳에 이르니 어떤 청년이 아름다운 여인과 속삭이다가 유영이 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맞이한다. 여인은 곧 시비를 불러 자하주(紫霞酒)와 성찬(盛饌)을 차려오게 한다. 그 뒤 세 사람이 대좌하여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유영이 그들의 성명을 물으니 청년은 김진사, 여인은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이라 한다. 유영이 안평대군 생시의 일과 김진사의 슬퍼하는 곡절을 물으니 운영이 그들의 사연을 먼저 풀어 놓는다.

안평대군은 풍류왕자로서 궁중에 아름다운 전각을 짓고 풍류 재자(才子)들을 모아 시회를 여는 한편, 운영을 비롯하여 궁녀 10명을 뽑아 가무와 서예를 가르치며 별궁에 두고 즐기게 된다. 하루는 안평대군이 운영이 지은 시를 읽고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상냐고 다그치며 힐문한다.

어느날 안평대군과 궁녀들이 시를 짓고 있는데 김진사가 찾아와 함께 어울려 시회(詩會)를 열게 된다. 그때 운영은 김진사의 재모(才貌)에 마음이 끌려 그를 사랑하게 된다. 김진사 또한 운영에게 정을 보내게 된다. 그 뒤 운영은 김진사를 몰래 사모하다가 그에 대한 연정을 시 한 수에 옮겨, 마침 김진사가 안평대군을 만나러 온 틈을 타 문틈으로 전하한다. 김진사도 수성궁에 출입하는 무녀를 통하여 사랑의 답신을 보낸다. 운영과 김진사의 관계를 눈치챈 안평대군은 궁녀를 나누어 서궁으로 이주시키고 운영을 힐문하지만 운영은 죽을 각오로 사실을 부인하고 자백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중추절에 궁녀들이 개울로 빨래를 하러 나갈 기회를 얻자, 운영은 곧장 무녀의 집으로 달려가 연락하여 다시 김진사를 만나 더욱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궁중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날 밤 김진사는 높디높은 궁장(宮墻)을 넘어가서 운영을 만나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이룬다. 이후로 김진사는 밤마다 궁장을 넘나들며 운영과 즐거움을 나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이 되자 눈을 밟고 궁중을 오간 김진사의 발자국이 빌미가 되어 두 사람은 궁인들의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마침내 안평대군에게도 의심을 사게 되어 운영은 탈출을 계획하고 김진사의 사내 종 특(特)을 통하여 그의 가보와 집기들을 모두 궁외로 옮기게 된다. 그뒤 그 재보는 특의 간계에 의하여 모두 빼앗기게 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안평대군은 대로하여 궁녀들을 불러 문초하기에 이른다. 안평대군이 운영을 하옥하자 그녀는 자책감으로 그날 밤 비단수건으로 목을 매어 자결하고 만다. 여기까지 운영이 진술하자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던 김진사가 이번에는 운영의 뒤를 이어 술회한다.

운영이 죽자 김진사는 운영이 지녔던 보물을 팔아 절에 가서 운영의 명복을 빈 다음 식음을 전폐하고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운영의 뒤를 따라 자결하고 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김진사와 운영은 슬픔을 억제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유영이 그들을 위로하여 “ 인세에 다시 태어나지 못함을 한하느냐? ” 라고 묻자 그들은 천상의 즐거움이 인세보다 더 큼을 말하고, 다만 옛날의 정회를 잊지 못하여 이곳을 찾아왔다고 말한다. 유영은 바다가 마르고 돌이 녹아도 사라지지 않을 자신들의 사랑을 세인에게 전하여 달라는 당부를 받는다.

이야기가 끝난 뒤 세 사람은 다시 술을 마신다. 유영이 술에 취해 졸다가 문득 산새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새벽이 밝았는데 다만 김진사와 운영의 일을 기록한 책자만이 무료히 놓여 있었다. 유영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상자에 감추어두고, 그 뒤로는 침식을 전폐하고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 마친 바를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대부분 고전소설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데, 이 작품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결말이 불행해서 비극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주제가 비극으로 전개되면서 일관되게 구현되어 있다. 정치적으로 불운하였던 안평대군의 영화가 사라진 수성궁이 전란으로 폐허가 되었다는 배경설정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배경에서 신분적인 제약을 넘어서 사랑을 하다가 희생된 주인공의 운명이 봉건사회의 붕괴를 촉구하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 운영전 〉 은 작품창작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사회문제나 인성문제를 관념적으로 안이하게 처리하지 않고, 생생한 경험적 진실로 뚜렷이 제시하였다. 입체적 성격소설로서의 성공적 표현기교를 볼 수 있으며, 궁중에 갇힌 궁녀들의 가련한 정신생활과 몸부림치는 사랑의 한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봉건사회의 궁중이라는 두꺼운 장벽을 뛰어넘어 자유연애를 쟁취할 수 있었다는 과감한 시대의식이 높게 평가된다. 죽음을 앞둔 궁녀들의 초사(招辭) 속에는 유린당한 인권을 회복하고, 사랑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울부짖음이 숨어 있다.

지금까지 〈 운영전 〉 의 연구자들은 이 작품의 몽유구조(夢遊構造) · 환혼구조(還魂構造) · 유명구조(幽明構造) · 액자구조(額字構造) 등에 주목하여왔다. 이러한 특징은 〈 운영전 〉 이 결국 유영이라는 인물이 꿈 속에서 환혼자(還魂者)인 운영과 김진사를 만나 현세에서의 사랑의 체험을 듣고 깨어난다는 틀로 되었음을 일컫는다. 양자의 현세체험이 이 작품의 주제이자 핵심이지만, 환혼자를 꿈 속에서 만난다는 사실은 작품의 표현효과를 강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운영과 김진사는 자유로운 사랑을 구속하는 사회의 제도적 올가미를 제거하려다 희생되었지만, 이들을 다시 천상의 인물로 격상시키고 인간세상에서의 체험을 천상득죄(天上得罪)의 응보로 설정하여 놓음으로써 현실에서는 죄가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들의 죽음은 결국 천상세계로 회귀하는 속죄행위로 실행되어, 두 사람의 도선적 발원(道仙的 發源)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실현시킨 것이라 하겠다. 유영과의 재상봉은 그 보상의 실현을 확인하는 절차라고도 해석된다.

〈 운영전 〉 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구성의 주된 매체가 시라는 데 있다. 오히려 시가 주가 되고, 사건전개는 시를 뒤따르는 느낌이다. 회고시(回顧詩) · 부연시(賦烟詩) · 포도시(葡萄詩) 등 20여편의 사(詞) · 절구 · 율시 등이 작품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 참고문헌 ≫ 운영전(소재영 · 장홍재, 시인사, 1984), 雲英傳攷(金一烈, 어문논총 6 · 7, 경북대학교, 1971), 雲英傳硏究(蘇在英, 亞細亞硏究 41, 1971), 九雲夢과 雲英傳의 比較考察(金一烈, 어문논총 9 · 10, 1975), 雲英傳의 性格(成賢慶, 국어국문학 76, 1977), 雲英傳의 構造(成賢慶, 朝鮮後期의 言語와 文學, 螢雪出版社, 1978), 雲英傳의 構造的 考察(尹海玉, 국어국문학 84, 1980), 雲英傳小考(大谷森繁, 朝鮮學報 37 · 38, 1971).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몽유록(夢遊錄)

 

몽유의 형상을 빌려서 구성된 소설. 주인공이 우연히 날개를 얻어 이계(異界)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한 끝에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결국, 이계에서의 체험이 소설의 본 줄거리가 된다.

이계에 들어가기 이전과 돌아온 이후는 소설 전개를 위한 도입부와 결말에 해당하며 주인공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의 시공(時空 현실)이다.

이계는 비일상적인 몽유의 시공이다. 이계는 공간적으로는 천상·지상·지하·수중·기타가 되며, 시간적으로는 과거·현재·미래 또는 무시간(無時間)의 세계가 된다.

소설구성에 따라서 이계 체험을 처음부터 분명한 꿈 형상으로 설정하는가 하면 당초에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 못하게 하였다가 이계 체험이 끝남과 동시에 꿈을 깨는 것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우리 문학사상 몽유 형상은 몽유록계통의 소설이 출현하기 이전에 벌써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신라 조신(調信)의 설화(三國遺事 卷3, 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 삼국유사 권3,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가 그 대표적 사례가 된다.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 白雲小說≫에도 이규보 자신의 선계로의 몽유가 서술되어 있다.

몽유의 문학적 전통을 이어받아 소설 ‘몽유록’이 나타나는 것을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 金鰲新話≫에서 볼 수 있다.

〈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는 바닷 속의 한 섬인 남염부주라는 이계로의 몽유를 다루었고, 〈용궁부연록 龍宮赴宴錄〉은 용궁에의 몽유를 다루었다. 위의 2편을 포함하여 현존하는 ≪금오신화≫ 5편의 소설은 구성상 한결같이 몽유의 형상을 빌리고 있다.

≪금오신화≫ 이후 이를 계승하여 임제(林悌)의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이 본격적인 몽유록소설로 나타났다. ≪금오신화≫의 몽유가 단순한 환상이요 낭만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원생몽유록〉은 비록 몽유라는 낭만적 수법을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비판적인 사실적 세계를 그려냈다.

 

〈원생몽유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인물이면서 작자의 감정이나 의도로 말미암아 개성적인 인물로 성격화되었다. 전편에 흐르는 분위기는 감상(感傷)과 애한(哀恨)이다.

따라서 인물의 성격도 이 분위기를 분유(나누어 가짐)하고 나타났다. 역사상의 순절 충신들이 옛 임금을 모시고 억울하고 답답하였던 지난날의 일들을 토로함으로써 소극적인 자위(自慰)를 일삼고 있다.

〈원생몽유록〉의 이계는 한을 품은 영혼들이 사는 영계(靈界)였던 까닭에 분위기가 어둡고 쓸쓸하다. 등장 인물 9인이 시를 지어 부름에 따라 비감(悲感)이 고조(高調)된다. 그런 끝에 원생은 홀연히 놀라 꿈을 깬다. 원생이 꿈에서 깨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원생몽유록〉이 나온 뒤에도 몽유록계 소설문학은 독자적인 발달양상을 띠고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대관재몽유록 大觀齋夢遊錄〉은 조선 중종 때의 사람 심의(沈義)가 쓴 한문소설이다.

 

일명 ‘대관재기몽(大觀齋記夢)’이라고 한다. 〈대관재몽유록〉의 문장왕국에서는 문장의 고하(高下)와 관작(官爵)의 고하가 등가적(等價的)으로 형상화됨으로써 작자 자신의 비평의 의도가 고도로 우유화(寓喩化)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 몽유하여 들어간 이계는 최치원(崔致遠)이 천자이고 역대의 문인들이 신하가 되어 있는 문장왕국(文章王國)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대장군이 되어 김시습의 반란을 평정한다.

대당천자(大唐天子) 두보(杜甫)와 조선천자 최치원이 사단(詞壇)에 모여 시회(詩會)를 연다. 주인공은 이 나라에서 부귀와 공명을 누리다가 천자로부터 ‘대관선생(大觀先生)’의 사호(賜號)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색(李穡)이 주인공의 장부(臟腑)를 묵즙으로 쓰기 위하여 금도(金刀)로 찌른다. 그 아픔에 놀라 꿈에서 깨어난다. 꿈을 깨고 보니 현실은 자신의 배가 불러 북과 같았다. 그리고 잔등(殘燈)이 가물거리는 가운데 병든 아내가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다.

〈사수몽유록 泗水夢遊錄〉은 1942년 ≪인문평론 人文評論≫(제2권 제4호)에 이명선(李明善)이 소개한 작자 미상의 필사본이 있고, 장서각(藏書閣) 도서의 〈문성궁몽유록 文成宮夢遊錄〉이 이와 일치한다. 〈사수몽유록〉은 유교주의적 왕도정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중원(中原)에 사는 유생이 공자(孔子)와 같은 대현(大賢)이 뜻을 얻지 못하고 천하를 방황한 것을 원망하고 한탄하였다. 그러던 중에 청의동자(靑衣童子)의 안내를 받아 승천하였다. 거기서 유생은 옥황(玉皇)에게 질책을 받고 공자가 문성왕으로 있는 사수(泗水)의 소국(素國)으로 인도되어 갔다.

 

소국에는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중국 역대의 유학자들과 우리 나라 역대의 유학자 등, 11명이 제각기 관직을 맡아 문성왕을 보필하고 있다. 전후 4차의 양(楊)·묵(墨)·노(老)·불(佛)의 침략이 있었으나 맹가(孟軻)를 비롯한 제장이 그때마다 대전(對戰)하여 승전한다.

문성왕은 제신들과 더불어 유도(儒道)를 강론하고 자공(子貢)으로 하여금 역대의 인물을 논평하게 한다. 끝으로, 자공은 문성왕 치세의 소국을 요순(堯舜)과 비견하였고, 한유(韓愈)는 당우 삼대(唐虞三代; 요순시대와 하,은,주 시대를 이르는 말)에도 없었던 태평성대라 칭송하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기록하여 인간에 전해야 한다고 하였다. 유생에게 적은 것을 주어 돌아가게 하였다. 유생이 그것을 받아 가지고 섬돌을 내려오다가 실족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금화사몽유록 金華寺夢遊錄〉은 한문 필사본으로, ‘금산사몽회록(金山寺夢會錄)’·‘금화사기(金華寺記)’ 등의 표제로 된 3본이 있고, 1921년 세창서관(世昌書館)에서 발행한 국문본이 있다.

위의 4본은 구성·전개는 같으나 자구(字句)에 상이(相異)가 많다. 〈금화사몽유록〉은 중화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유교적 왕도정치를 이상화한 작품이다.

청나라 강희(康熙) 말년에 산동(山東)에 사는 성허(成虛)가 금화사에서 얼핏 졸다가 중국 역대의 제왕들이 일당(큰 집)에 모여 연회하는 자리에 참여한다.

한고조(漢高祖)를 비롯한 한족(漢族)의 창업주들이 다 제왕연(帝王宴)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태조를 초청하지 않았다. 자신을 잔치에 초청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난 원나라 태조는 이들에게 도전한다. 그러자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漢武帝)가 그를 격퇴한다. 날이 새고 닭이 울자 연회가 파했다. 성생은 꿈에서 깨어난다.

그 밖의 몽유록으로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강도몽유록 江都夢遊錄〉, 임진왜란 때 죽은 이의 수장(收藏)을 두고 유불(儒佛)의 논쟁을 다룬 〈피생몽유록 皮生夢遊錄〉, 윤계선(尹繼善)의 〈달천몽유록 達川夢遊錄〉, 〈운영전 雲英傳〉으로 알려진 〈수성궁몽유록 壽聖宮夢遊錄〉 등이 전한다.

≪참고문헌≫ 李朝時代小說의 硏究(金起東, 成文閣, 1974), 古小說通論(蘇在英, 二友出版社, 1983), 夢遊錄小考(張德順, 國文學通論, 新丘文化社, 1960), 夢遊錄의 作者小攷(李家源, 書誌 2-1, 1961), 林悌와 元生夢遊錄(黃浿江, 韓國敍事文學硏究, 檀國大學校出版部, 1972), 金山寺夢遊錄攷(車溶柱, 淸州女子師範大學論文集,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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