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우리말과 우리 생각의 유형 / 서정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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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우리 생각의 유형 / 서정수

 

  우리말과 우리 한국인의 사고 유형이 관련이 깊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부 낱말의 쓰임에서도 그런 관련성이 드러나지만 문장 구조의 특성을 통하여 그 관계는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여기서는 우리의 생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문장 구조의 경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미괄형 문장과 점층적 접근 의식

  우리말의 어순은 다음 ⑴과 ⑵처럼 종속절이 앞에 오고 주절이 뒤에 오는 󰡐미괄형 문장󰡑 구조 유형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영어 등 인도 - 유럽어의 󰡐두괄형󰡑의 구조인 ⑶, ⑷와는 반대되는 특성이다.

 

⑴ 네가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너를 좋아한다.

⑵ 내가 없는 사이에 누가 전화했니?

⑶ 내가 너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네가 나를 좋아하니까.

⑷ 누가 전화했니? 내가 없는 사이에.

 

  곧 우리말에서는 이유, 조건 등을 나타내는 종속절이 앞에 오고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담은 주절이 뒤에 놓인다. 인도 - 유럽어에서는 주절, 곧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먼저 오고 그런 요지의 근거나 조건 등이 뒤에 오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한 문장의 어순 관계 유형은 문단이나 긴 글의 구조 유형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우리의 글에는 미괄형 문단이 많은 데 비하여 서양 글에서는 두괄형 문단이 압도적으로 많다.

 

  땅은 우리가 발을 딛고 걸어다닐 수 있는 길과 집을 짓고 사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 푸르고 아름다운 산과 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초목과 꽃들을 선사해 주는 것도 땅이다. 그뿐이겠는가. 온갖 곡식과 과일과 채소를 가꾸어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리는 것도 알고 보면 땅이 말없이 베풀어 주는 은덕이다. 우리 인간에게만이 아니고 숱한 자연의 생명체, 하다못해 벌레 같은 미물까지도 그 가슴에 품어서 추운 겨울에도 온기를 주어 살리는 것도 땅의 미덕이다. 이처럼 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는 어머니와도 같다.

 

  우리의 글에서는 위에서 보듯이 결론적인 서술이 맨 마지막에 나타나고 그 전에는 그 명제를 순리적으로 이끌어 내는 예비적 서술이 펼쳐지는 미괄형 문단인 경우가 많다. 이와는 달리 서구의 글에서는 결론적인 서술이 맨 앞에 놓이는 두괄형 문단 구조가 되어서 그 요지를 분명히 제시한 다음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나 설명 등을 필요한 만큼 뒤에 배열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의 미괄형 문장과 문단 구조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로, 이런 미괄형 언어 표현은 순리적인 사고 유형을 낳는다는 점이다.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부터 더 중요한 것으로 발전하여 가는 자연스런 접근 의식은 이런 미괄형 구조와 연관을 가지고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속담에서 말하는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운다.󰡓라는 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매사에 조심성을 드러내는 접근 태도이기도 하다. 둘째로, 이런 미괄형 구조는 절정감을 형성하는 이점이 있다. 주변적인 것을 서술하면서 점차 분위기를 고조해 나가다가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것을 드러내어 절정감을 이루는 수법을 흔히 점층법이라 하는데, 우리말은 어순 자체가 절정감을 일으키는 데 안성맞춤이라 할 것이다. 셋째로, 심리적인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거절이나 부정의 표현 등에서 우리는 결정적인 표현을 뒤로 미루기 때문에 충격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잘못을 지적할 때, 충고나 싫은 소리를 할 때에도 상대방의 거센 반응을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영국의 어떤 심리학자는 거절하는 방식은 동양의 것이 심리학적으로 더 낫다고 지적한 일이 있는데, 이는 우리말을 비롯한 동양어의 우회적 어순과 관련되는 것이다. 넷째로, 대화의 내용을 끝까지 경청하는 태도를 길러 준다. 곧, 중요한 내용이 끝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기대하면서 남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요지를 파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 생략 문장과 점의 논리

  우리말은 필요한 말만 나타내고 웬만한 말은 생략해 버리는 특성이 있다. 주어니 서술어니 하는 요소를 다 갖추지 않고 상황에 따라 꼭 있어야 하는 말만 써도 자연스런 문장이 되는 것이 우리말의 한 특색이다. 가령, 󰡒먹었어. 너는?󰡓, 󰡒너 알지?󰡓, 󰡒알기는 무얼 알아.󰡓와 같이 상황에 따라 아주 짧은 표현을 해도 무방하다. 문장의 형식을 갖추게 되면 오히려 어색한 경우도 있다. 가령, 󰡒다녀왔습니다.󰡓라고 하면 충분하고도 자연스런 말이 되는데, 󰡒아버지, 어머니, 복남이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와 같이 주어 등을 다 갖추어 말한다면 얼마나 어색하게 들리겠는가? 이런 생략 현상은 인도 - 유럽어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들 언어에서는 상황이야 어떻든 대부분 주어와 목적어 그리고 서술어를 갖추어 주기 때문이다.쪹우리말의 이런 생략 현상은 󰡐점의 논리󰡑라는 사고 유형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점의 논리란, 구정보(舊情報)는 과감히 생략하고, 신정보(新情報)만을 언급하는 표현 원리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말이나 글에서 청자나 독자가 이미 알고 있거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내용은 과감히 생략해 버리고, 청자나 독자가 모르고 있거나 알려 주어야 할 내용만을 언급함으로써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이 필요한 내용만을 언급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점의 논리는 서양말에서 볼 수 있는 󰡐선의 논리󰡑와는 대조를 이룬다. 선의 논리란, 정보 전달에 필요한 문장 성분을 모두 실현시킴으로써 문장 성분 간에 선적 연결이 이루어지도록 언급하는 표현 원리를 뜻한다. 󰡐I love you.󰡑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말에서는 󰡐사랑해.󰡑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영어의 경우 󰡐love󰡑의 주체인 󰡐I󰡑와 󰡐love󰡑의 대상인 󰡐you󰡑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주어-목적어-서술어󰡑가 다 갖추어지는 선적 연결을 보인다. 이와 같이 서양말에서는 일부의 문장 성분을 생략하는 것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으므로, 점과 점이 이어져서 선을 이루는 것과 같이 문장 성분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문장 구조를 이루게 된다.

 

  다음으로 점의 논리가 가진 장점을 살펴보자. 첫째로, 점의 논리는 말의 함축미나 은근한 맛을 자아내는 근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말과 말 사이가 이어지지 않고 적절히 끊어지기 때문에 그 여백에 여운이 남고 농축이 서려서 오히려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죽도록 사랑하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또한 죽도록 피하는 것이 우리다. 우리의 민족성으로 알려진 은근과 끈기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의 논리와 뿌리를 같이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로, 점의 논리는 둥글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감성적 성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점이란 본시 선을 이룬다기보다는 여기 저기 흩어져서 여러 모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것이다. 셋째로, 우리 겨레가 아름다운 정서와 유다른 시적 감흥을 지닌 것도 이런 점의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산문이 선적인 것이라면 시는 언어의 절약으로 풍기는 운율과 함축미를 그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말과 우리 한국인의 사고 유형이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문장 구조의 특성을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우리말이 우리 한국인의 사고 방식을 상당 부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국어를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를 길러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려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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