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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덕적으로 행위해야 하는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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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덕적으로 행위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하게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도 항상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아니다. 절도, 강도,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대개의 경우 도덕적으로 그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행동을 하고, 보통의 사람들도 때로 거짓말과 같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행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덕적 행위와 자기의 이익이 상충되는 상황에서는 도덕적으로 행위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도덕적 행위는 자기 이익과 갈등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당장에 보여지는 상황이 그런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아서는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가령,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것과 같은 도덕적 행위는 당장 보기에는 자기에게 손해를 가져오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어 오히려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라는 격언은 이런 생각을 밑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전체적으로 볼 때 자기의 이익과 부합하기 때문에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수십 년 간 어렵게 모은 돈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탁한 익명의 독지가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이런 경우라도 이 독지가의 도덕적 행위는 당장에 보기에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지만, 그 일이 세상에 알려져서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독지가 자신은 자신의 도덕적 행위가 장기적으로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을 예상하거나 바라고 그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독지가가 선행을 베푼 이유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행위에 대한 직관과 자기 결단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우리의 직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자기 이익만을 위해 사는 사람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라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훌륭하고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겠다는 일종의 자기 결단인 것이다.

 

 

도덕적 문제 상황

 

인간은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상황 중에는 도덕과 무관한 상황도 있고, 특히 도덕적 선택이 걸려 있는 도덕적 상황도 있다. 한 벌의 옷을 선택하는 경우나 멋진 주말을 계획하는 상황, 아름다운 황혼을 즐기거나 깊은 명상에 잠기는 상황은, 도덕과 전혀 상관없다고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대체로 도덕과 무관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덕적 상황이란 어떤 것이며 다른 상황과 구별되는 도덕적 상황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당면하는 도덕적 상황은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우선 가장 일반적으로 당면하게 되는 도덕적 상황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그것을 곧바로 행동에 옮기게 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고, 규정된 대로의 법규를 지키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큰 희생이 요구되지 않는 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경우들이다. 이런 상황은 분명하게 혹은 암암리에 어떤 도덕적 의무나 도덕 규칙과 관련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복잡한 도덕적 상황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갖가지 유혹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 우리는 도덕적 양심과 이해 타산,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되고 결심을 주저하게 되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의지의 나약함을 간파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이성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실천하게끔 의지를 단련시키고 습관화함으로써 덕의 습득을 강조했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 상황을 이성과 욕망, 선의지와 자연적 성향간의 갈등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갈등 속에서 투쟁을 통해 인간 이성과 선의지가 승리하는 것에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의욕하는 것이 언제나 선에만 적중하는 선의지가 가장 지고한 선이나, 인간의 의지는 욕망이나 성향의 간섭으로 인해 대체로 선의 과녁에서 빗나가는 까닭에 칸트는 일종의 강제에 바탕한 의무의 개념을 강조하게 된다. 그런데 도덕적 의무와 이해 타산적 선택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이러한 상황만이 도덕적 딜레마의 전형적인 경우는 아니다.

 

 

도덕적 딜레마

 

도덕적 딜레마는 의무나 도덕 원칙 사이의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경우에 생겨난다. 때때로 우리는 마땅히 어떤 일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면서 동시에 그것을 행해서는 안 될 도덕적인 이유를 갖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을 행해야 할 의무와 동시에 다른 의무를 행해야 할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온 예를 들면, 어떤 친구가 나에게 무기를 맡기면서 그가 필요할 때 그것을 돌려주기로 약속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흥분된 상태로 찾아와 부정한 아내를 죽이겠다면서 무기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약속을 한 이상 나는 그것을 돌려줄 도덕적인 의무, 즉 약속을 이행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는 살인을 방조하는 셈이 되고, 이는 생명을 존중히 여길 의무에 위배되는 것으로,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가끔 두 가지 도덕 원칙이나 도덕적인 의무가 상충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각각으로 보면 모두가 그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를 갖지만 동시에 두 가지 모두가 행해질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 하는 하나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이러한 도덕적인 갈등은 일반적으로 상충하는 두 가지 의무나 원칙 사이에 우선 순위를 발견하거나 이들보다 다 고차원적인 어떤 제3의 기준에 의해 해결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할 때, 우리는 선배나 친구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과거의 비슷한 사례에 대한 관계를 알아보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해결책 중의 하나는 행위의 목적, 다시 말하면 각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살피는 일이다. 앞에서 든 예에서 내가 무기를 돌려주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두 가지 행위 중에서 예견되는 결과가 보다 좋은 쪽을 택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모든 도덕적 상황이 이런 식으로 쉽사리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경우가 보다 복잡하거나 극단적인 것이어서 그야말로 진퇴 양난의 형세, 즉 문자 그대로의 딜레마에 처할 때도 있다. 행위의 목적을 위시해서 모든 고려 사항을 검토해 본 이후에도 상충하는 대안들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할 결정적인 근거나 단서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의무들 간의 우선 순위를 정할 수도 없으며 보다 고차원적인 제3의 기준이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든 다음과 같은 예는 이러한 난국의 좋은 사례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 프랑스 청년은 의지할 곳 없는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는 일과 자유 프랑스 군에 가담해서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부모에게 효도할 의무와 나라에 충성해야 할 의무가 서로 충돌하게 된 것이다. 그는 각 행위가 가져올 미래의 결과에 대한 정확한 예견에도 자신이 없었고, 따라서 어느 것이 자신의 진정한 의무인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괴로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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