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부전
by 송화은율용부전
용부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하는 짓이라고는 모두 게으른 짓뿐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를 용부(게으름뱅이)라고 부른다. 벼슬은 산관으로 직장에 이르렀고. 집에는 책이 오천 권이나 있었지만, 게을러서 책을 펴보지 않았다. 머리가 헐고 몸에 부스럼이 났으나 게을러서 치료를 받지 않았으며, 방에서는 앉아 있는 것이 귀찮고 길에서는 걷기가 귀찮아서, 멍청하게 서 있는 것이 똑똑치 못하고 흐리멍덩하여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허수아비와 같았다. 온 집안이 용부를 염려하여 무당에게 데리고 가서 빌기까지 하였으나 끝내 어쩌지는 못했다.
근수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미 학문이 높은 수준에 이르러 개연히 사람들을 구제해 보겠다는 뜻을 가졌다. 용부는 마침 게으름의 병으로 다리는 쭉 뻗고 머리는 풀어헤친 채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앉아 있었다.
근수자가 용부의 게으름을 깨우치려고 말을 꺼냈다.
"예로부터 사람이란 부지런해야만 살고 게을러서는 실패하지 않는 법이 없네. 그러므로 성인은 모두 부지런함으로 자신의 몸을 지켰네. 문왕은 해가 기울 때까지 쉴 겨를이 없었고, 우 임금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서 썼네. 부지런함은 이와 같이 편안히 지낼 수 없는 것이네. 봄에 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비가 내리며, 가을에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일이 사철에 따라 두루 영향을 미쳐 세상 만물을 길러 내는 것은 하늘의 부지런함일세. 이러한 하늘의 뜻, 곧 부지런함은 배우고 따라야 하는 것으로 어겨서는 안 되는 것 이네. 하늘의 뜻을 거스름은 좋지 못한 일일세."
용부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가르치려 했는데 도리어 그대가 어찌하여 나를 가르치려 하는가? 백 년도 못 사는 우리네 인생에 마음과 몸이 다 피곤하여 낮에는 헉헉거리며 일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다니면서 쉬지 못하고 밤에는 지쳐서 푹 잠들지 못하고 자는 둥 마는 둥 잠꼬대하다가 깨어나게 되니 그대가 말하는 부지런함이 다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덕이 높은 사람은 이러하지 않다."
그리고는 창을 들고 그를 내쫓았다.
요점 정리
작자 : 성간,
작품 해제 : '용부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처음에는 용부의 게으름을 과장되게 묘사한 부분이 나오고, 둘째 부분은 용부와 정반대의 인물로서 근수자가 등장하여 애써 용부의 게으름을 고치려고 하는 부분이 이어진다. 하지만 용부는 근수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창을 들고 근수자를 쫓아 낸다. 셋째 부분은 근수자가 술과 음악을 준비하여 용부에게 함께 풍류를 즐길 것을 청하여 용부가 이에 응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던 용부의 게으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이 세 부분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될 수 있다.
첫째부분 : 용부의 사람된(게으름)〈正〉
둘째부분 : 용부와 근수자의 대립 〈反〉
셋째부분 : 용부와 근수자의 화해 〈合〉
'용부전'은 전체적으로 변증법적 구조를 띠고 있다. '용부전'이 개인과 개인이 다툼이라면 굳이 변증법이라는 거창한 인식의 틀을 도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용부전'을 이끌어가는 두 중심 인물인 '용부'와 '근수자'는 각각 '용(傭)'과 '근(勤)'의 인간관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이기에 이러한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작가 소개 : 성간(成侃, 1427~1456) : 조선 전기의 문신.문인 자는 화중(和仲).호는 진일재(眞逸裁). 집현전 박사로 문명(文名)을 떨쳤으며, 작품에 '궁사(宮詞)', '신설부(新雪賦)' 등이 있다.
(1) 이 글에서 '용부'와 '근수자'에 해당하는 인물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자.
교수.학습 방법 : 두 인물의 성격을 작품 내용을 통해 정리해 본다. 그런 다음 주변의 다양한 매체- 심문, 방송 기사, 영화, 드라마, 소설 등-와, 친구, 선생님, 친척 등 주변 인물에서 유사한 성격의 인물을 찾아보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용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모든 일에 시큰둥함. 반면 인생의 여유를 즐기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근수자-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
(2) 이 글을 통해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를 자유롭게 말해보자.
교수.학습 방법 : 작품의 제시된 부분에서는 '용부'와 '근수자'라는 대조적인 두 인물의 성격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 어떤 인물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평가는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이러한 특정상 학생들은 '용부'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고 반대로 '근수자'의 생각에 동조할 수도 있다. 주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작품이므로, 학생들 스스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다양하게 제시해 보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게으름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으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게으름과 부지런함은 개인의 선택 문제이다.
모든 일에 게으르고 시큰둥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설교도 의미가 없다.
부지런한 사람이 게으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3) 이 글에서 '용부' 혹은 '근수자'의 입장에서 상대의 삶의 태도를 비판하거나 찬성하거나 찬성하는 견해를 발표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작품에서 '용부' 혹은 '근수자'는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하여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상대방을 설득시키려 한다. 두 인물 중 한쪽의 입장을 선택하여 상대의 삶의 태도를 비판하거나 찬성하는 견해를 발표하도록 한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제시된 근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근거의 부당함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각자의 견해를 제시하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용부의 입장 : '백 년도 못 사는 우리네 인생에 마음과 몸이 다 피곤하여 낮에는 헉헉거리며 일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다니면서 쉬지 못하고 밤에는 지쳐서 푹 잠들지 못하고 자는 둥 마는 둥 잠꼬대하다가 깨어나게' 된다고 하는 말은 속도와 경쟁에 쫓겨 인생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용부의 말은 부지런함이라는 명목으로 정작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용부의 게으름은 인생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의미있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근수자의 입장 : '성인이 모두 부지런함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고, 세상 만물을 길러 내는 것은 하늘의 부지런함'이라는 말은 삶의 진리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을 하는 데 있어서도 실용적인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하며,그러한 부지런함의 결과로 인생이 윤택해지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조선 전기에 성간(成侃)이 지은 한문 전기소설 ( 傳記小說 ). ≪ 동문선 ≫ 제101권과 작자의 문집 ≪ 진일유고 眞逸遺藁 ≫ 권4에 각각 전한다. 작자가 자신이라 자칭하지는 않았으나, 작중인물의 이력에서 보이듯 자신의 상황을 가탁(假托)해서 내용을 구성한 일종의 ‘ 탁전(托傳) ’ 이라 할 수 있다.
성간은 명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이름을 떨쳤으나, 자기가 불우하다고 생각하며 고민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그와 같은 심정을 이 작품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용부( 弁 夫) ’ 는 게으름뱅이라는 뜻으로, 세상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알고, 부귀를 자랑하는 무리에 대하여 반감을 느끼지만, 그런 장애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자신이 없어서 작중 인물은 게으름뱅이가 되었다고 하였다.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살다가 어느날 문학이야말로 가장 큰 위안거리임을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멍하니 살아가는 꼴을 주위에서 보다 못하여 무당을 불러보기도 하였지만 치유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학문을 이룬 근수자(勤須子), 곧 부지런한 사람이 나타나 그 게으름병을 고쳐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용부는 근수자가 주장하는 부지런함의 효용을 반박하고 게으름의 유용함을 역설한다. 그러자 근수자는 술과 여자를 통하여 세상을 즐길 것을 권유하여 함께 놀이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쉽사리 판단할 수 없으나 작자의 생활양식의 예시로 보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자연스런 삶을 추구하였던 성간의 정신세계는 모든 현실세계의 욕망으로부터 이탈하여 문학을 통한 정신의 구원으로 이어졌을 것 같다. 문인이 자기의 개성과 고민을 표출시킨 탁전의 한 좋은 예이다.
≪ 참고문헌 ≫ 東文選, 眞逸遺藁, 한국문학통사 2(조동일, 지식산업사, 1983).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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