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촌 / 김광균
by 송화은율외인촌 / 김광균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뭍힌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후략>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에는 현대의 도시 문명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과 경험을 중시하는 주지주의 경향이 짙게 나타나 있다. ‘외인촌’이라는 공간 배경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그림을 그리듯 표현되고 있다.
이 시에 나타난 「하이얀 모색, 파아란 역등, 새빨간 노을, 안개 자욱한 화원지, 어두운 수풀의 빛깔을 그려 보고,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 갈대밭, 시들은 꽃다발, 외인묘지, 가느다란 별빛, 공백한 하늘, 고탑, 퇴색한 성교당」 등에서 이국적인 애상의 정경을 떠올려 보자.
▶ 성격 : 회화적, 감각적, 주지적, 이국적
▶ 특징 : ① 이국적 정서
② 도시적 우수
③ 회화적 이미지
▶ 시상 전개 : 시간의 흐름(저녁→밤→아침)
▶ 구성 : ① 저녁 무렵의 산협촌(1연)―원경(遠景)
② 작은 집들과 시냇물, 화원지의 텅 빈 풍경(2,3연)―근경(近景)
③ 외인 묘지의 밤 정경(4연)
④ 성교당의 종 소리(5,6연)
▶ 제재 : 외인촌의 풍경
▶ 주제 :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
<감상의 길잡이> 1
이 시는 주지주의 시로서 회화적 요소를 중시하였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에서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를 느낄 수 있다. 외인촌의 이국적인 정취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낯설고 쓸쓸한 세계를 홀로 떠도는 이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시간적 배경은 ‘저녁→밤→아침’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어둠의 분위기가 화자에게 고독과 우수를 느끼게 하고 있다.
제1연에서 저녁 무렵 산골짜기의 마을을 푸른 등불을 달고 어둠 속으로 잠기듯 사라져 가는 역마차와 산마루ㅅ길에 서 있는 전신주 위에 뜬 구름이 새빨간 노을과 어우러져 고요하고 잠잠한 외인촌의 원경(遠景)이 제시된다.
제2,3연에서는 저물 무렵 창을 닫는 집들, 돌다리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 한낮에 꽃밭에서 웃으며 놀다간 소녀들의 모습과 시든 꽃다발 등 외인촌의 근경(近景)을 묘사하고 있다.
제4,5연에서는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과 그 위에 비치고 있는 별들, 텅 빈 하늘에 매달려 있는 시계, 고탑같이 높은 교회의 지붕에서 울려 퍼지는 종 소리를 묘사하여 이국적인 정취를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 행의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 소리’는 청각적 영상을 시각화한 공감각적 표현으로 비약과 확산의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 2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시인 김광균의 이름이나 「외인촌」이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어쩌면 이 시구절만은 외우고 있을지 모른다. 귀로 듣는 종소리를 눈으로 보는 분수로 나타낸 이 비유는 지금 읽어도 참신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청각에서 시각으로 시를 혁명하려던 30년대의 모더니스트들이 종소리에 파란 색칠을 해놓은 이 대담한 비유를 가만히 놔두었을리 없다. 모더니즘의 선교자였던 김기림은 말할 것도 없고, 시의 繪畵性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시론의 로고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시구는 시각 이미지나 共感覺의 샘플로 인용되었을 뿐 시 전체의 구조를 통해 본격적으로 검증된 적은 거의 없었다. 공룡의 뼈나 발자귀는 그 생체의 구조와 관련되었을 때만이 의미를 갖는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는 「외인촌」의 그 시 전체와 유기적인 연관을 지닐 때 비로소 제 생명의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선 「분수」라는 말부터 보자.
분수가 내포하고 있는 일차적인 意味素는 「물」(水)이다. 그런데 외인촌에는 이와 관련된 바다, 시냇물, 물방울과 같은 물의 물질적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마차가 사라지는 것까지도 「그림 속으로…잠겨 간다」라고 표현한다. 잠긴다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물체가 물속에 침몰하는 것을 뜻한다.
붉게 타는 노을 역시 불이 아니라 물과 관련되어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이다. 사라지는 것을 「잠긴다」고 하고, 타오르는 것을 「젖는다」고 한 것은 종소리를 분수(물)로 비유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외인촌의 풍경 전체와 그 공기는 수족관 처럼 투명하고 차갑고 조용하게 보인다.
그러나 김광균의 물의 물질성은 무거움을 상실한 가벼운 물, 상승하는 물, 그리고 수직의 공간성을 지닌 물이다. 그것이 「분수」의 ‘분(噴)’으로 그 두번째의 의미소를 이루고 있는 「솟구치다」(噴)이다. 「외인촌」에는 「…전신주 위엔」 「…벤치 위엔」 「…어두운 수풀 위엔」 「…언덕 위엔」 「…지붕 위엔」 등 「위」라는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만 해도 무려 다섯개나 등장한다. 그리고 직접 수직성을 나타내는 물질로는 「산마루」 「전신주」 「갈대밭」 「외인묘지」(비석들), 그리고 고탑(古塔)과 성교당(聖敎堂)을 들 수 있다. 마을 전체가 「산협촌(山峽村)」으로 수직적 공간이다. 그러므로 「날카로운 고탑처럼 언덕 위에 솟아있는…」의 구절은 분수의 수직적 상방적 이미지에 선행하는 것으로, 「날카로운」 「솟아있는」의 수식어 등이 모두 그 높이와 수직성을 강조하고 있다.
「분수」의 세번째 속성은 「도시적」 「서구적」 근대문명의 의미소이다. 폭포나 냇물이 「자연의 물」이라고 한다면, 분수는 「인공(人工)의 물」 「도시의 물」이다. 그래서 외인촌의 「마차」는 달구지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처럼 「파란 역등」을 달고 있으며, 「산마룻길」에는 소나무가 아니라 「전신주」가, 그리고 꽃은 노변의 야생화가 아니라 「화원지」와 벤치 위의 흩어진 「꽃다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외인촌의 그 성교당 종소리는 자연히 산사(山寺)의 범종 소리와 그 이미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낙산사나 통도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누가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분수의 물질적, 공간적, 문명적 이미지들이야말로 우리의 전통적인 시골마을과 색다른 외인촌의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중심축인 것이다.
그러나 솟구치는 분수의 이미지는 「흩어지는」이라는 용언에 의해서 다시 역동적 이미지의 복합성을 띠게 된다. 울리는 종소리는 솟구쳐 오르는 분수요, 여운 속에서 사라지는 종소리는 흩어지는 분수의 물방울들이다. 「솟구치다」(噴)와 「흩어지다」(散)의 모순을 지닌 분수의 역동적 이미지는 외인촌 전체의 구조에 간여한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에 앞서 우리는 「…벤치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라는 구절을 읽을 수가 있다.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시각화하여 꽃다발과 같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소녀들이 한낮에 남기고 간 그 웃음소리는 종소리의 사라진 여운보다도 더 들을 수 없는 부재(不在)의 음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흩어지다」의 속성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흩어진 꽃다발의 꽃잎은 흩어지는 분수의 물방울과 같고, 시들어가는 꽃다발은 사라져가는 종소리의 여운과 같다. 그리고 「벤치 위에는」은 「성교당의 지붕 위엔」과 대구를 이룬다. 그렇다면 벤치는 바로 옆으로 누운 성교당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수직의 높이를 잃고 수평화할수록 「흩어짐」의 역동적 이미지는 강화된다.
분수의 마지막 의미소는 「푸른 종소리」의 그 푸른 빛깔이다. 외인촌의 시적 공간은 「하이얀 모색으로…」로 시작하여 「파…란 역등」, 그리고 「새빨간」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푸른 종소리로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그 푸른 종소리의 「푸른 빛」은 분수(물)의 팔레트에서 선택된 물감의 하나일 뿐 외인촌은 먹으로 그려진 동양 산수화 같은 모노크롬과 강력한 대조를 이루는 다채색의 회화공간인 것이다. (그 자신이 외인촌의 풍경을 「그림」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가 연출해 내는 「외인촌」의 그 시적 공간은 한국인들이 전통 공간 속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서구문명 즉 모더니티라는 2차원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의 그 「외인촌」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회색 범종소리」의 우리들 ‘내부의 마을’(內人村)에 의해 차이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인촌은 파리나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라 바로 한국의 시골속으로 들어와 있는 서양인들의 마을이므로 「外-內」, 「성교당/산사」의 그 공간적 대립항 역시 서로 오버랩 되어질 수밖에 없다. 제목은 「외인촌」인데 본문 속에서는 그것이 「산협촌」이라고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은 바로 뒤에 나오는 성교당의 그 종소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대단히 중요한 시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백한 하늘에 걸려있는 촌락의 시계」에 대해서는 전연 언급이 없었다. 촌락의 시계와 야윈 손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리키는 열시가 밤 열신지 열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조각 달(야윈 손)의 위치인지조차 검증되지 않은 채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만을 공염불처럼 외웠다. 우리 촌락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과 외인촌의 종소리가 알리는 그 시간의 시차(時差)…. 그 시차 적응의 긴장 속에 김광균의 진정한 시적 공간이 숨어있는 것이다.
「분수처럼…」의 그 구절이 모더니즘 이론의 표본이 된 것처럼 이제 「외인촌」 한 편의 시는 왜 우리가 지금 다시 한국시를 읽어야 하는 지를 밝혀주는 좋은 본보기로 남게 될 것이다. <이어녕 교수>
<맥락 읽기>
1. 이 시에서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
☞ 나
2.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 산협촌, 외인촌
3. 이 시에서 외인촌은 우리의 전통적인 향토 마을과 같은 곳일까?
☞ 아니요.
3-1. 그럼, 외인촌은 어떤 곳일까?
☞ 외국 사람들이 사는 곳
3-2. 그래서 어떤 느낌을 주나?
☞ 이국적인 느낌
3-3. 그러한 느낌을 나타내주는 시어를 찾아보자.
☞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馬車) / -전신주 /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 / -외인 묘지 /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 / -날카로운 고탑 / -퇴색한 성교당 / -종소리
4. 무얼하고 있지?
☞ 산협촌(외인촌)의 경치를 보고 있어요. (관찰하고 있어요)
5. 하루 중 어느 때일까? 시간이 어떻게 바뀌지?
☞ 저녁→밤→아침
6. 외인촌의 저녁 풍경은 몇 연에 나와 있지?
☞ 1, 2, 3연
6-1. 외인촌의 저녁 풍경은 어떻지? (자세히 묘사하여 말해보자)
☞ 하이얀 모색(저녁 어스름) 속에 있다.
→ 파아란 역등을 달은 마차 한 대가 지나 가고, 전신주 위엔 새빨간 노을에 젖은 구름이 걸려 있다. 바람이 불고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힌 돌다리 아래 작은 시내가 흐르고 있다. 안개 자욱한 화원지의 벤취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시든 꽃다발이 있다.
6-2. ‘나’는 외인촌의 저녁 풍경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 고독하다. 아름답다. 펴온하다. 고독마저도 감미롭다.
6-3. 외인촌의 저녁 풍경을 그려 보자.
7. 외인촌의 밤풍경은 어떠하지?
☞ 외인 묘지의 어두운 수풀 뒤에 가느다란 별빛이 내린다.
7-1. 외인촌의 밤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보자.
8. 외인촌의 아침 풍경은 어떻지?
☞ 빈 하늘에 걸려 있는 마을의 시계가 10시를 가리키고 있고, 낡은 교회당 지붕 위에선 종소리가 울리고 있다.
8-1. 외인촌의 아침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 보자.
9. 만약, 시의 종류를 노래하는 시, 생각하는 시, 보는 시로 나누어 본다면, 이 시는 어느 시에 해당될까?
☞ 보는 시
10. 이렇게 이 시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형체없는 소리마저도 그림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곳을 찾아 보자.
☞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져 있었다.
☞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11. 외인촌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 보고, 정리해 보자.
☞ 이 시는 외인촌의 이국적인 정서를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내고 있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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