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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에서 현재성이 중요하나? / 강만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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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에서 현재성이 중요하나? / 강만길


   역사를 흔히 '인류생활의 과거에 일어난 일' 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또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생각도 옳은 것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이들 두 자기 생각은 얼핏 보기에는 서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과거에 일어난 일 바로 역사의 현재성이 무엇인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역사의 현재성이 무엇인가를 옳게 알려면 먼저 역사에서 과거가 무엇인가를 해명해둘 필요가 있다. 역사에서 과거란 우선 현재 이전에 일어난 모든 일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문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을 구별하여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인류생활의 과거에는 수많은 일들, 즉 사실(事實)들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죽어간 수많은 개인의 일상생활이나 한 집단, 한 민족의 지난날에도 도저히 셀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총망라한 것이 곧 역사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역사란 그 많은 사실들 중에서 그야말로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사실들, 즉(史實)만을 뽑아 모은 것이라고 우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선이라고 한 것은 다음에서 말하겠지만 사실(史實)을 뽑아 모으는 일만이 역사의 전부는 아니기 떄문이다. 사실들 속에서 사실(史實)만을 선택해내는 것이 역사를 성립시키는 1차적인 작업이라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그것을 선택해내는 기준이 문제가 된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수많은 사실들 속에서 사실(史實)을 가려내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사람과 시대에다 기준을 둘 수밖에 없다.
  사실(史實)을 뽑아내는 작업은 주로 역사가들의 주관적인 안목에 의하여 이루어지지만, 가능한한 같은 시대의 다른 사람들과, 더 나아가서 미래의 사람들에게까지 옳게 뽑았다는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만 역사발전의 바른 노정에 합치될 수 있는 역사가로 평가될 수 있으며, 그가 뽑은 사실(史實)이 객관적 진실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역사가가 객관적 진실성이 더 높은 사실(史實)을 뽑아 내기 위해서는 우선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실(史實)이 무엇인가를, 더 넓게 말하면 그 시대가 가진 역사적 요구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쉬운 예를 들면 조선시대의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문익점이 책을 읽은 일이나 글씨를 쓴 일은 흔히 있는 사실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목화씨를 가져온 일만이 사실(史實)로 보였다. 고려 말기에 전래되어 극히 제한된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고 있던 목화를 전국적으로 확대 재배하여 의생활의 변혁을 이루려 하였던 조선시대였으므로, 당시의 역사가들에게 있어서 문익점의 목화씨 전래를 사실(史實)로 뽑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의 선택은 대단히 적절한 것이어서 오늘날에도 목화씨를 가져온 일은 중요한 사실(史實)로 뽑히고 있다.


   문익점이 글을 읽은 일이나 붓대 속에 목화씨를 넣어온 일은 모두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역사가의 현재적 요구에 필요한 목화씨의 전래만이 사실(史實)로서 뽑혔음을 생각해보면, 좁게는 역사가의, 넓게는 그와 함께 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의, 더 나아가서는 미래 사람들의 현재적 요구에 필요한 일만이 옳은 사실(史實)이 될 수 있으며, 여기에 과거의 일을 다루는 역사가 가지는 현재성이 있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사실(史實)을 가려내는 기준이 언제나 그 당시의 현재적 요구,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삼는다는 문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면 어느 한 시대의 현재적 요구에 의하여 선택된 사실(史實)은 영원히 사실(史實)로서의 가치를 가지느냐, 혹은 다음 시대의 현재적 요구 때문에 앞 시대의 선택된 사실(史實)이 그 가치를 잃고 하나의 사실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물에 대한 가치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과 같이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역사적 입장에서의 판단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며, 따라서 일단 사실(史實)로 선택되었던 일이 다른 시대의 현재적 요구에 의하여 사실로 떨어져버리는 경우도 있으며 또 그 사실(史實)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가 변화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史實)에 대한 가치판단은 변한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역사가들은 일식·월식·성변(星變) 등의 자연현상을 중요한 사실(史實)로서 선택하여 사서(史書)에 충실히 기록하였다. 이 경우는 천문학적 통계를 위한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지배자가 정사를 잘 돌보지 못하여 그에 대한 유일한 제재자인 하늘이 경고하는 방법으로 나타내는 현상이라 믿고 선택한 것으로서 정치적인 의미가 높은 사실(史實)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식·월식은 천문학상의 기록은 될지언정 자연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사실(史實)로서 선택될 수 있었던 일이 한낱 사실로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까지도 왕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계급의 동태가 가장 값 높은 사실(史實)로 생각되어 그것이 역사기록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민중생활에 관한 일은 지배목적 상 필요한 때나, 혹은 그들이 지배질서를 위반하였을 때만 약간의 가치를 가지는 사실(史實)로서 선택되었다. 그러나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된 오늘날에 있어서는 지난날의 사실 속에서 민중사회의 동태를 다룬 사실(史實)의 가치가 대단히 높아지고 있다.


  사실 속에서 사실(史實)을 뽑아내는 일에만 역사의 현재성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선택된 사실(史實)이 다시 사실로 떨어져버리는 일도, 그리고 뽑아진 사실(史實)에 대한 가치판단이 달라지는 것도 모두 그때마다의 현재적 요구를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역사의 현재성이 가지는 의미는 여기서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는 사실(史實)을 뽑아내어 그것을 될 수 있으면 원형대로 재생시켜 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오랫동안 통용되었다. 역사가는 사실 속에서 사실(史實)을 뽑아낼 뿐 그것을 해석하여 그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금물로 여겼다. 그렇게 하면 사실(史實)의 본래적인, 객관적인 모습을 그르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사실 중에서 사실(史實)을 뽑아내는 데 적용되는 역사가의 주관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사실(史實)의 의미를 추구하는 데 개입될 역사가의 주관성은 배제시켜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나 역사가의 주관적 안목 없이 사실(史實)을 원형대로 재생시키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史實)을 뽑아 원형대로 재생하는 일만으로는 수많은 사실 속에서 모처럼 사실(史實)을 뽑아낸 보람이 그다지 살아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역사가 사실(史實)을 재생시키는 일에 한정되면,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삼국사기」는 김부식 등에 의해 씌어졌고 임진왜란은 1592년에 일어났다는 정도의 사실(史實)들로만 엮어지기 쉽다. 바꾸어 말하면 사실(史實)의 집적만이 역사가 될 것이며 그것들을 잘 기억하는 일만이 역사 공부가 되기 쉬울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려고 하는 이유는 선택한 사실(史實)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서 인류역사 전체를 통해 흐르고 있는 법칙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데 있다. 사실(史實)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사실(史實)을 해석하여 뽑아내는 일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사실(史實)을 해석하여 의미를 알아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史實)을 해석하는 데는 그것을 뽑을 때보다 더 강한 현재적 요구가 요청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글창제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한글이 창제된 일이 조선시대 이후 계속 사실(史實)로서 선택되어 왔음은 더 말할 것 없지만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조선시대에는 한글창제라는 사실(史實)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주로 한문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을 어여삐 여김에 한정되었다. 고유의 우리글인데도 불구하고 국문이 되지 못하고 언문으로 행세했고 따라서 문자를 창제한 일도 세종의 업적 중 그다지 높은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근대화를 지향하던 개항기에 들어오면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란 생각이 높아짐에 따라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한글이 언문에서 국문의 지위로 올라갔고 그것을 창제한 일은 세종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부각되었다. 한편 일제시대에는 한글을 연구하고 사용하는 일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생각되었고 세종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적인 제왕의 하나로 추앙되었다.  해방 후에도 상당한 기간 어여삐 여김이 중심이 된 한글창제의 의의가 그대로 계속되었고 세종의 역사상의 지위도 그대로 높여지기만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보는 눈'을 지배자 중심의 관점에서, 혹은 영웅주의적 관점에서 조금 다른 각도로 돌려보면 한글창제의 의의가 달라질 수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역사를 제왕이나 영웅의 업적 중심으로 보는 경향을 지양하고 역사발전에 있어서 민중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한글창제의 주된 동기도 제왕이 백성을 어여삐 여긴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데 있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글을 가르치지 않고는 다스릴 수 없을 만큼 백성세계의 의식수준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한글을 창제하였다는 한 가지 사실(史實)을 두고도 언제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 해답은 비교적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왜 만들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고 사실(史實)을 해석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면 그 해답은 시대의 발전에 따라, 그때마다의 현재적 요구에 따라 계속 변화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이유는 바로 역사의 현재성 때문인 것이다.

  역사는 늘 새롭게 선택되고 해석된다            

  역사의 현재성 때문에 사실(史實)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기준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이해하고 나면, 이와 같은 현재성에 의한 변화라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시대에 따라 사실(史實)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 즉 그 객관적 진실성에 점점 가까워져 가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또 인류역사의 올바른 발전에 발맞추어 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인류역사상에 일어났던 가지가지의 사실(史實)들은 인간의 무지에 의해, 혹은 권력의 횡포에 의해, 종교적 독단에 의해 그 객관적 진실성이 많이 엄폐되어 왔다. 일식과 월식이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하늘의 의지로 생각되었는가 하면, 종교적 독단 때문에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도는 것이라는 믿음이 강요되기도 했고, 정치적 권력의 강제에 의해 역사란 지배자의 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 가르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역사시대를 통해 인류는 기성의 역사관과 요구된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마다의 새로운 가치관을 수립해 나감으로써 사실(史實)의 선택이나 해석에 있어서 항상 그 객관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과 희생을 다해왔다. 그때마다 역사는 새롭게 선택되고 해석되어온 역사적 과거의 집적이며 사실(史實)에 대한 진실성 추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역사는 항상 새롭게 이해되고 기술되어왔던 것이다.

  한편 사실(史實)의 객관적 진실성을 추구하는 기준이 바로 역사의 현재성에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 진실성이란 결코 선험적이고 영구 불변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현재적 입장에 선 사가들의 사관에 의해 항상 새롭게 방향 잡힐 수밖에 없으며, 그 사관은 곧 시대성·현재성에 의해 규제됨으로써 객관성이 추구될 수 있는 것이다.
   신의 의지에 순종하는 일이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던 사관은 신이란 곧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서 스스로를 속박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 때 무너져 갔고, 인간의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혹은 인간사회의 계급적 질곡을 타파해나가는 것이 객관적 진실을 추구하는 방향이라 이해한 사관도 나왔었다.

   역사의 객관적 사실              

  현재성에 의한 사실(史實)의 선택과 해석이 곧 그 사실(史實)이 가지는 객관적 진실에 접근하는 일이며, 그것은 곧 인류역사의 바람직한, 건설적인 방향을 추구하는 길과 연결된다고 생각해보면 역사의 현재성이란 곧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발판이 됨을 알 수 있다.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과거의 사실(史實)을 오늘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해석하는 일이라 거듭 강조했지만, 이 일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표현되기도 했다. 그리고 왜 이와 같은 끊임없는 선택, 해석 및 대화가 필요한가 하고 물으면, 역사의 객관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이며 그것은 곧 현재를 보다 역사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는 곧 미래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 진실에 접근시키는 일은 미래를 보다 나은 것으로 창조하는 일과 연결되는 것이며, 현재가 설령 만족할 만큼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했다 해도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발판은 역시 현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를 보다 바람직하게 만들기 위해 현재적 입장에서 과거의 사실(史實)을 선택하고 해석한다는 점에도 역사의 현재성이 가지는 의미가 있지만, 더 나아가서 보다 바람직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발판이 바로 현재적 입장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현재성이 가지는 한층 더 높은 의미가 들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뒤만 돌아보는 역사가 아닌, 앞을 향한 역사를 체득하는 지름길 역시 각 시대마다의 역사적 현재성을 철저히 인식하는 데 있음을 명심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지난날에도 많은 사실(史實)이 일어났으나 그 가운데서 주로 우리 문화를 살찌우고 특징짓는 데 영향을 준 일들, 민족적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직접·간접으로 관계된 일들, 우리 생활을 향상·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 일들이 사실(史實)로서 선택되어 우리의 역사를 이루고 있으며, 그들 사실(史實)에 대한 해석이 쌓여서 우리의 현실을 가름하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실(史實)의 선택과 해석이 끊임없이 거듭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의 현재와의 대화에 절실하지 않은 일이 사실(史實)로서 이해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가 하면 반대로 불가결한 사실(史實)들이 아직도 사실(事實)로서 묻혀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우리의 역사적 현재성이 아직 철저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떠오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지난날 거의 묻혀져 버렸던 구석기문화·청동기문화가 찾아졌고, 실학사상과 조선후기의 사회적·경제적 발전상이 다시 빛을 받았으며, 민중세계의 역사적 역할이 다시 평가되었고, 독립운동이 가장 중요한 사실(史實)로 선택되고 이해된 것은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민족의 역사가 가진 현재성이 그만큼 제 구실을 한 결과였다.

  그러나 해방 후의 우리 역사는 식민상태에서 해방된 민족의 역사인 동시에 분단민족의 역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시기 우리 역사의 하나의 지도이념인 민족통일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민족사회의 현재적 요구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민족통일을 저해하는 사실(史實)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재통일에 직접·간접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사실(史實)의 적극적인 개발, 더 나아가서 통일을 위한 사론(史論)의 수립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역사적 현재성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역사가 현재적 요구에 충실하는 길은 곧 미래를 밝고 바르게 창조해나가는 출발점을 마련하는 것이라 이해한 것과 같이, 민족사의 현재성을 가장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길은 곧 민족통일을 앞당기는 일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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