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마천령(摩天嶺) - 박세영
by 송화은율오후의 마천령(摩天嶺) - 박세영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우리 시문학사에서는 아주 드물게 식민지 시대 혁명 전위(前衛)의 역사적 전망을 뚜렷이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지금 오후의 마천령을 넘고 있다. 이 시는 이러한 등정의 길을 따라 구성된다. 시적 화자는 1연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2연에서는 어느새 마을이 산 아래 놓여 있는 위치에 올랐으며, 5연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험한 마천령을 넘어서 6연에서 드디어 그는 마천령 위에 올라 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가 힘들게 올라온 꼬불꼬불한 길은 위에서 내려다보니, 영어의 W자 I자 N자 등으로 생겨 마치 WIN의 의미로 보인다. 이는 시적 화자의 성취감과 전위의 혁명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이 시의 주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전망이 확보되었을 때, 시적 화자의 마음은 자신을 ‘내려다보든 이 산이나 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마음껏 ‘장쾌함’과 ‘위대함’을 느끼고, 결연한 의지로서 ‘언제나 이 마음을 사랑’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직접 ‘나’의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 보인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감 없이 산을 오른다. 그의 길은 ‘조그만 산기슭에 숨어버리고’ 그는 ‘산을 싸고 도는 길이 있으면, 백리라도 돌고 싶’은 심정이며, ‘장엄한 대자연에 눌리어 / 산 같은 물결에 삼켜지는 듯’ 마음이 떨린다. 그러면서 그는 ‘이리구도 천하를 근심하였나, 스스로 마음 먹’으며 자신을 반성해 본다. 그리하여 그는 강한 의지로 ‘기어이 고개길로 발을 옮’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나약한 패배주의적 감상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비록 그는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북쪽’으로 활동 중심을 옮기고 있지만, 이제는 ‘겁나던 마음이야 옛일 같’아 ‘갑옷을 입은 전사와 같이 / 성난 이리와 같이 / 고갯길을 쿵쿵 울리고’ 고개를 넘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고갯마루에 올랐을 때 그는 ‘장쾌함’과 ‘위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이처럼, 기존의 여성적 편향의 고향 상실을 노래하는 작품이나, 북방 정서를 바탕으로 유이민의 비애를 노래하는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혁명 의지와 역사적 전망이 강하고 장중한 남성적 어조를 바탕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시로 꼽힌다.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