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오유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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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권(吳有權)의 작품 세계 - 土俗에 세운 反文明的 理想鄕

張伯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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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듬기에 앞서 그 작가의 작가적 경력부터 살펴가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작가적 경력은 곧 작품의 경로를 밝혀 주기 때문이다. 다시 그것은 작가의 이해 접근에 있어 좋은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작가 오유권씨는 전남 나주(羅州)산으로, 1928년 8월 18일(음) 빈농의 집에서 태어난 그는 7세 때 마을 서당에서 《사략(史略)》등 한문을 수학했으며, 영산포 남국민학교를 졸업, 이어 영산포 서공립국민학교 급사로 일했다(1943∼44). 이어 부산 체신리(遞信吏) 양성소 전화과 2부생으로 수료, 영산포 우체국으로 발령, 우체 업무에 종사했다.

  20세 때 작가(소설가)가 될 뜻을 굳히고 독학으로 문학 공부에 전념했다. 6·25로 우체국을 그만두고 해병대에 입대, 부산에서 김동리(金東里) 씨를 만나 그의 지도(소설)를 받는 한편, 문인들과 교유했다. 그 후 해병으로 여수 동해부대에 복무했고, 이어 서부전선으로 이동했으며, 소설가 황순원씨에게 문학지도를 받았고 27세 때 카톨릭 영세를 받았다.

  1955년 4월 단편 <두 나그네>와 12월 단편 <참외> 등으로 《현대문학》지에 황순원씨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으며, 이후 단편 <옹배기> <쌀장수> <대숲안집 고부(姑夫)>등의 토속적 세계를 즐겨 그린 단편들을 발표하여 문단의 각광을 받았다.

  이어 단편 <삼인군상> <호식(虎食)> 등을 발표했고, 제 3회 전남 문화상 장려상을 수상(1957·12)했다. 수상 이후에도 그는 계속 괄목할 만한 단편을 남겼으니, 혼기를 앞둔 시골 처녀가 무고한 소문으로 파혼(破婚)에까지 이르는 일종의 풍속도인 <소문>을 비롯하여, 아들을 얻기 위해 투장(偸葬)소송을 일으킨 이른바 묘지(墓地)사건을 그린 단편 <혈(穴)>, 과학과 문명을 대조시켜 샤머니즘의 신비 세계를 긍정적으로 보여 준 <돌방구네>, 물질 문명의 침해를 항거하는 한 노인의 심경을 서정적으로 그린 단편 <기계방아 도는 마을>, 가난한 두 형제가 가난과 박대로 피해를 입는 모습을 그린 <가난한 형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역작은 현대 문학 신인상을 수상(1961)케 했고, 그와 더불어 그 나름대로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 가기에 이르렀다.

  그 후 문학에 전념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시 우체 업무에 취직, 광주(光州)체신청에 근무했고, 이어 영산포 우체국, 서울 중앙 전신국, 영산포 우체국 등으로 전근했다가 1966년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자리를 물러났다. 펜클럽 작가 기금으로 《황토(黃土)의 아침》을 간행했고, 이어 문공부의 창작 기금을 받기도 했다.

  그는 현재도 계속 작가 생활을 영위하면서 괄목할 만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보여 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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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문단 데뷔 이래 그는 실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전기 외에 <황노인(黃老人)> 네 일가(一家)를 비롯하여 <호식(虎食)> <아침 햇살> <황량한 촌락> <사람 사는 곳> <달밤의 총성> <예쁜 색시> <월광> <목과수(木瓜樹) 밑에서> <새로난 주막> <강아지> <이구(泥丘)> <이역(異域)의 산장> <슬픈 희생자> <유형족(流刑族)> <수리산> <두 산 비탈에서> <사랑스런 사람들> <분노> <너와 나의 정점(頂點)> <백의(白衣)의 기치(旗幟)> <황노인네 후손> <소담 강변에서> <여한(餘恨)> <연대 타살(連帶他殺)> <두 죽음> <출항(出航) 오분전(五分前)> <성격 소묘(性格素描)> <관동댁과 그 아들 내외> <이 마을의 연고> <시골 의사> <어촌> <토착민> <몸으로> <이향민(離鄕民)> <솔개마을의 암(癌)> <지옹(池翁)의 휴일> <가랑잎새> <일가(一家)의 몰락> <두 노인> <촌부(村婦)> <공황(恐惶)> <개척자> <민촌(民村) 마을> <농지정리(農地整理)> <이삭 줍는 사람들> 이 밖에도 그의 작품은 많다.

  이상의 소설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그의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그 대다수가 농촌 배경의 농촌물이다. 이른바 농민 작가로서의 농촌의 생활상을 즐겨 다루고 있다.

  그의 출생지가 영산강 유역이듯, 그의 농촌소설의 대부분은 이 영산강 유역의 농민들의 애환이 주로 담겨져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그의 문학적 특성은 소박하고 천진한 농촌적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풍속과 인간성, 급증하는 물질 문명의 피해상, 가난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일관한 반문명적 자연주의, 전원주의의 작가라 할 것이다.

  그가 이러한 문학 세계를 구축하기까지에는 방금 말한 바 그의 고향 영산강의 농촌의 배경과 체험을 무시할 수 없다.

  영산강, 그 강은 한국의 사대강(四大江)의 하나로 바로 예부터 전라 평야의 젖줄이 되어왔다. 하늘의 뜻이 고를 때는 곡창을 이루어 왔으나 강우량이 심해 홍수를 이룰 때는 이 곳의 농토는 물바다를 이루었고, 그 범람과 더불어 농민의 목숨은 한 줌의 흙으로 화해 갔다. 물을 바라보며 통곡했던 농민들, 홍수로 떠내려가는 지붕을 바라보며 몸부림치던 한국 농촌의 비극이 여기에도 있었다면 영산강 유역의 비극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비극의 하나일 것이다. 약 백년 동안 면면히 흘러오던 영산강의 지난날의 비극사(悲劇史), 바로 그것을 작가 오유권 씨는 어려서부터 보아 왔다. 아니 보는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몸소 그 비극을 체험하며 자라 왔다. 그의 작품 속에 한결같이 흐르고 있는 농촌의 가난하고 애달픈 인간사는 바로 이 체험으로부터 얻어진 것들이라 할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는 농촌에서 울고 웃으며 자라 온 농민의 아들이었다. 영산강의 슬픔과 괴로움과 기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 영산강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 온 작가였다. 그래서 영산강에 얽힌 농민의 비극을 대하 소설로 그릴 수 있는 작가란 오유권 씨를 빼놓곤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 한결같이 흐르고 있는 인간애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도 슬픈 울음도 애타는 몸부림도 모두 다 영산강에 고향을 둔, 그로부터 태어난 소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영산강의 이해는 곧 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함도 바로 여기에 그 소이가 있다. 또한 바로 이것이 그로 하여금 농촌 문학을 낳게 한 배경임도 잊지 말  일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문학의 고향이 영산강이었다면 그 영산강은 그로 하여금 문학(소설)을 낳는 어머니의 괴롭고 슬픈 인간사(事)의 발자취를 그는 그의 문학에 담은 셈이다. 그 인간사의 경로를 그린 것이 된다. 그로부터 야기되는 농민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증언해 왔으며 그것을 역사적 의식에의 안목에서 농촌의 구제를 작품으로 그려왔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영산강의 비극적 사실을 대변했고 그 대변으로써 비극의 구제를 호소해 왔다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산강 유역의 농민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농민 작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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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에서 말한 바 그의 농촌 문학으로서의 생생한 얼굴을 이 소설집에 수록된 일련의 작품에서도 역력히 엿볼 수 있다. 소박하고 천진한 농민의 얼굴 속에서 따스한 인간애를 엿볼 수 있고, 가난하고 학대받았던 지난날의 인간성에 대한 연민과 동정, 그리고 그런 생활 안에서 전개했던 반문명적 자연주의, 전원주의의 문학 정신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그의 작품 세계 하나 하나를 살핀다.

  <절도(絶島)>는 전기(前記)한 바의 문학 세계에서 예외라 할이만큼 이색적인 경향을 이룬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의 이상주의를 보인 작품이라고나 할까. 이른바 소왕국의 이상향을 이루어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현실 참여의 반대어가 현실 도피라면 그런 경향이 없지도 않으나 그런 대로 이 소설 속엔 그 나름대로의 꿈을 심고 있다.

  무대는 남해(南解)의 가상의 외딴 섬이고, 이 외딴 섬에다 그는 이상향의 실현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이상국을 실현함에 있어 통치 위원회가 있고, 율법이 있으며 말 그대로서의 꿈나라를 이루어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절도>는 까닭없는 이상향이라고만을 할 수 없다. 그가 그린 이상향이 출산되기까지에는 그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주지한 바 그는 지난날 농촌의 비극 속에서 자라 왔다. 그 비극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반대 급부로 그려 본 것이 이 이상향의 탄생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비극을 보았기 때문에 비극 없는 낙원을 그리워하게 되고, 농촌의 가난을 보았기 때문에 가난이 없는 낙원을 동경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 땅의 농촌이 그의 이상향에서 보여 준 낙원이 되어 줄 것을 동경한 데서 비롯된 그의 이상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현실을 보되 오늘의 현실보다 더 좋은 현실 창조에의 꿈을 그리며 동경한다. 그것을 문학으로서 추구한다. 여기에 작가가 동경하는 꿈이 펼쳐지고 그것에의 추구에 이상을 둔다. 작품 <절도>는 바로 그것에의 소산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농촌이 그런 이상향이 되어 줄 것을 염원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가을 길>은 일인칭 소설로써 소박하고 천진한 농촌적 인간애를 보여 준 작품이다. 여기엔 지난날의 우리 가정의 애환이 있고 농촌의 정서를 뼈로부터 맛보게 한다.

  줄거리는 어머니와 아들이 외가에 가는 길에서 주고  받는 모자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는 지금 아들과 함께 걷고 있는 이 길을 통해 시집을 갔고, 오늘은 그 길을 아들과 함께 걷고 있다. 생각하면 감회가 어린 길이 아닐 수 없다.

  친정으로 가는 어머니의 길은 감회가 깊다. 그 길을 걸으며 어머니는 아들에게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 이야기 속엔 회포가 있고, 그 회포 속에서 어머니는 세대의 변천을 읽는다. 어머니가 들려 준 이야기는 이모의 시집살이 이야기이다. 오늘의 시집살이가 맵다 하지만 옛날의 시집살이에 비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런 시집살이 속에서 어머니들은 살아왔음을 아들에게 들려 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단편은 외가로 가는 길을 통해 옛날을 회고하고, 그 회고 속에서 세대의 변천과 세태의 변화를 깨닫게 한다. 그것에의 소설화라 하여 틀림없다.

  젊어선 희망에 살고, 늙어선 회상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의 회상 속엔 옛 한국의 얼굴이 있고, 아들의 모습 속엔 오늘의 얼굴이 있다. 그것을 어머니와 아들의 얼굴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젊은 홀어미들>에 이르면 6·25로 인한 젊은 홀어머니들의 인간적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 또한 그 배경은 농촌이다.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이 농촌의 마을에도 빨갱이들의 만행은 극심했다. 남편들을 빨갱이들에게 잃은 과부들의 인간적 비극, 바로 그것에의 소설화이거니와 우리는 이러한 마을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있다.

  작품의 마을엔 현재 빨갱이들에게 남편을 잃은 홀어머니들이 셋이나 있다. 같은 처지이면서도 젊은 여인으로서의 인간적 욕구(생리적)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리적 욕망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머슴 하나가 차례로 그 홀어미들을 건드리고, 그 자극에 머슴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만다. 성(性)을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그 본능의 일면을 이 소설을 통해 역력히 짐작케 한다.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건 역시 인간으로서의 생리적 욕망인가. 이 소설은 인간으로서의 본능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보여 준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의의를 제시하고 있는 소설이라 할 것이다.

  농촌이란 농사를 업으로 삼고 사는 마을을 말한다. 그런 농촌에는 농촌으로서의 생활이 있고 도덕 규범이 있으며 그들만의 습관과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 예부터 불륜은 금기되어 온 것이 우리의 윤리이고, 만일 이를 어겼을 때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음은 잘 알고 있는 터다. 그래서 부도(婦道)는 생명과 다름이 없었고, 정조의 정결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다.

  그런 농촌에 빨갱이의 만행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도의마저 짓밟은 셈이니 이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 속에 야기된 여인으로서의 비극은 곧 남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의 비극이라 할 것이다. 이 비극 속에서 생리적 욕구로 몸부림치는 얼굴들이 바로 농촌의 홀어미들이고, 이것이 또한 6·25로 인한 문제점이라 할 때 이 작품이야말로 그 문제점을 생리적 욕구라는 면에서 파헤쳤다 아니 할 수 없다. 즉 인간으로서의 본능을 사실적으로 파헤쳤다 할 것이다.

  한편, <돼지와 외손주>에 이르면, 다시 농촌에서만이 엿볼 수 있는 삶에의 모습을 찾게 한다. 부모 없는 손자를 키워 보겠다는 할머니의 끈질긴 삶에의 의욕을 읽게 한다.

  가난한 농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부모 없는 손자를 키운다. 부모 없는 손자를 키워 보겠다는 할머니의 열의는 불같다. 돼지를 키워 그것을 교육의 밑천으로 삼겠다며 거기에 바친 할머니의 정성은 눈물겹기까지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열의와는 반대다. 술을 좋아하고 보니. 노상 술타령이요, 술을 즐기다 보니 손자의 교육 따위는 안중에 없다.

  어느 날 할머니는 애지중지 기른 돼지를 산 채로 팔아 손자의 학비에 보태 쓰려고 하지만, 고기가 먹고 싶은 영감은 집에서 도살해 팔자고 한다. 그래서 영감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잡아 팔지만 산 채로 판 것보다 근수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고깃값마저 잘 걷히지 않는다. 더욱이 주막에서 가져 간 고깃값은 영감의 외상 술값도 못 되는 형편이라 할머니는 애가 달는다. 이럴 때 손주놈이 중학 입학 시험에 이등으로 붙어 모든 것은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 이것이 이 작품의 대충의 줄거리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돼지를 통한 할머니의 인정을 그린 것이고, 그 인정이 할아버지의 소행에 그만 무너지고 말았을 때의 슬픔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한다. 그런 뜻에서 일종의 애환 소설이라 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그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다. 생활 그것은 바로 삶에의 바탕이며 길이기도 하다. 인간은 바로 그 길을 위해 산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생활 그것이 삶에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기 마련이다. 그 생활의 터전이란 방금 말한 바 돼지의 사육이고, 그 사육을 통해 꿈을 키워 왔다. 그 꿈이란 손자 하나를 키워 보겠다는 것이고, 그 꿈을 이해 온갖 고생을 이겨내며 그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아 온 터다. 그런데 그 꿈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때 삶의 허망은 그로부터 오기 마련이니, 할머니의 슬픔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실감하게 될 것이다. 희망이 무너질 때의 슬픔, 바로 그것의 의미를 캐게 한다.

  이어 작품 <사토기(沙土記)>에 이르면 우리로 하여금 조상의 얼을 되찾게 한다. 사토란 무덤을 만드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무덤의 손질이니, 패이고 흙이 무너진 무덤에 다시 손질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토는 바로 조상의 얼을 추모하고, 그 추모의 염(念)으로부터 발로된 무덤의 손질일 것이다.

  오늘날 도시인의 생활은 조상의 무덤을 잊고 산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조상에 대한 공경 정신이 땅에 떨어진 지도 이미 오래다. 이러한 오늘의 상황 속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준다. 조상의 공경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왜 우리가 우리 조상의 무덤을 가꾸어야 하는가를 근원으로부터 깨우쳐 주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사실적 체험을 소설화한 것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면서 한 가닥 효심(孝心)을 보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조상의 묘를 찾는 일일 것이다. 고향을 떠난 자의 성묘는 기실 기약이 없다. 언제 되돌아올지 모르는 타향에의 길목에서 조상의 묘를 찾는다는 것은 물보다도 진한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요, 그 피가 있어 우리는 혈연의 정을 나누고 있다 할 것이다.

  기실 생각하면 이 모습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 작품은 사토의 과정에서 암암리에 그 정을 보여 준다. 아니, 그 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상에 대한 공경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그것이 또한 이간으로서의 도(道)임을 보여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야말로 피의 아름다움을 읽게 한다하여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조상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왜 사토를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교시적 의미 내포에의 소설의 하나일 것이다.

4

  이상에서 필자는 오유권 씨의 소설 내용을 대충이나마 살펴보았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소설의 고향은 농촌임을 엿보았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자라 흙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바로 그의 문학 정신이고, 그 문학 정신을 그림에서 있어 농촌의 생생한 인간사를 통해 보여 주고 있음도 엿본 셈이다. 문제는 소박하고 천진한 농민의 얼굴을 통해 때묻지 않는 우리의 참다운 얼굴을 찾는 일이다.

  농촌의 이해는 곧 나의 순수한 얼굴을 찾는 작업이 될 것이다. 농촌 그 곳이 곧 우리의 삶에의 터전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한 줌의 흙으로 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영위해 왔고 또 오늘도 그 터전 위에서 삶에의 꽃을 피워 가고 있기 때문이다.

  흙(고향)이 없이는 생물이 없듯, 농촌 없는 고향이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농촌의 얼굴이야말로 우리의 얼굴이고, 그곳의 삶이야말로 우리 생활의 근원지가 아닌가. 오유권씨는 바로 그 고향(농촌)의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 주면서 동시에 새로운 고향상(故鄕像)을 찾고 있다. 이것이 그의 농촌 문학으로서의 이상이라 할 것이다.

  풀 한 포기가 자라는 과정을 모르고 어찌 농촌을 이해한다 할 수 있을까, 소박하고 순박한 농민의 얼굴을 모르고 어찌 나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농촌을 모르고 어떻게 자연을 읽었다 할 수 있을까. 농촌 그 곳이야말로 나를 낳은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로 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을 키워 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오유권의 문학이야말로 어제의 얼굴 속에서 새로운 내 얼굴을 찾게 하는 하나의 길잡이라 하여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의 문학은 바로 그것을 말해 주면서 나로 하여금 새로운 고향(농촌) 길을 찾게 한다.

참고 자료

오유권의 소설은 농촌 현실을 직시하는 무제 의긱이 두르러진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농촌 현실과 농민의 삶을 그 현장에서 체험한 결과를 바탕으로 꾸밈이 없이 그려냄으로써 그의 소설은 전후의 한국 문학사에 독특한 면모를 보여 주었다.

오유권의 소설은 보통 세 단계의 변화를 거친 것으로 평가된다. 첫 번째 시기는 초기 작품부터 「방아골의 혁명」이 쓰여지기 전까지의 기간으로 농촌의 현실을 세밀하게 재현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두 번째 시기는 초기 작품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한 이후의 작품군이 쓰어진 기간이다. 농촌의 현실을 6.25의 역사적 체험과 결부시킴으로써 과거의 연속선상에 놓인 현재의 의미를 묻는 방식을 통해 그의 소설적 세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6.25라는 역사적 체험을 농촌이라는 공간 속에서 형상화함으로써 한국 현대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특히 「방아골의 혁명」은 농촌 속에서 6.25가 어떤 체험의 양상으로 나타났는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이다. 세 번째 시기는 두 번째 시기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관념적 해결의 태도를 넘어서 사회 비판과 근대성의 횡포에 관한 문제를 소설적 주제로 완성하기 시작한 시기에 해당된다.

 그의 작품이 지닌 세 가지 특성은 한국 문학사에서 준후 문학의 한계를 극복해 가는 한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흔히 대부분의 전후 소설은 휴머니즘의 단계나 실존적 허무의식의 표현으로 굳어진 채 더 이상의 진전이나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오유권의 60년대 후반 이후 작품은 현실 비판과 역사 의식을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 투영함으로써 농촌 사회를 피폐화시키는 허구적 근대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는 데 주력한다. 관 주도의 개발 독재가 근대화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에서 오유권의 소설은 전통적인 농민의 정서를 이와 반대의 위치에 자리매김하여 그 소설 세계의 구도를 완성한다. 「돌방구네」는 비록 초기의 작품에 해당되지만 전통적 정서의 세계와 이질적 문화의 침입을 다룸으로써 근대라는 문화의 실체와 전통의 문제에 집착하는 그의 소설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후의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된는 이런 특징은 한국의 근대가 지닌 파행적 속성에 대한 체험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유권의 소설에서 문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확인되는 구체적인 실체이고 동시에 현재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돌방구네」에서 가톨릭 교회와 남편의 제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돌방구네의 존재는 근대의 물질적 혜택과 전통적 정서의 세계가 실제의 생활 속에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구적 근대화가 한국 사회와 민중들에게 가져다 준 인식은 물질적 혜택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근대의 영향력은 한국인에게 문화적, 정서적으로 인식되기보다는 물질적 이익 관계의 눈뜸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농촌 사회의 정서적 세계와 물질적 혜택은 계약 사회와 농촌 공동체 사회의 이질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이다. 문화적 혜택보다는 물질적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근대적 사유 방식은 오유권의 후기 소설로 갈수록 그 갈등의 형상화가 좀더 치열하게 나타나며 그 갈등의 폭은 한국 정치의 폭력적 근대화 구호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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