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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비인간화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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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비인간화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는 우나무노와 함께 현대 스페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저명한 신문기자의 아들인 그는 철학, 문학, 사회학 등 인문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돈키호테에 관한 성찰><사상과 신앙><대중의 반역>을 비롯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2공화국 시절에는 국회의원에 피선된 바 있으며,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난 뒤론 긴 망명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현상학적 방법 으로 사유를 전개시킨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삶의 철학이라 불릴만하다. 그 때문에 그는 철학을 세속화시킨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20세기의 전반에서 현대 사회 의 변화 양상을 미리 감지한 미래학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생활 주변을 소재로 적절한 예시와 비유를 잘 구사하는 그의 문장력은 강연에까지 이어져 여러 국내외 강연에는 많은 청중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는 우나무노와 함께 현대 스페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저명한 신문기자의 아들인 그는 철학, 문학, 사회학 등 인문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돈키호테에 관한 성찰><사상과 신앙><대중의 반역>을 비롯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2공화국 시절에는 국회의원에 피선된 바 있으며,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난 뒤론 긴 망명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현상학적 방법 으로 사유를 전개시킨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삶의 철학이라 불릴만하다. 그 때문에 그는 철학을 세속화시킨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20세기의 전반에서 현대 사회 의 변화 양상을 미리 감지한 미래학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생활 주변을 소재로 적절한 예시와 비유를 잘 구사하는 그의 문장력은 강연에까지 이어져 여러 국내외 강연에는 많은 청중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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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비인간화> (1925)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현대 예술을 연구해보려는 시도 에서 쓰여진 글이다. 가세트 스스로는 현대 예술(그의 저술에서는 신예술이라 함) 을 분석하는 동기를 진리 탐구를 위한 기쁨이지 결코 현대 예술에 대한 분노나 감 격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는 현대 예술에 긍정적 해명 내지 옹호 를 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신예술이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일어난 전통 파괴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다양한 예술 사조를 가리킨다. 여기서 '신(新)'의 대립 항목은 앞선 세기의 예술적 전통들, 곧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이다. 그가 말하는 신예술이란 상징주의, 표현주의, 미래파, 입체파 등의 사조이다.

가세트는 음악에서는 드뷔시.스트라빈스키, 미술에서는 표현주의와 입체파, 시에 서는 말라르메, 소설과 연극에서는 프루스트.조이스.고메스.지로두.모랑.피란델로 등을 예로 들어 보인다. 이러한 새로운 경항의 신예술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 한다. 신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은 극도의 적대감마저 가진다. 민주주의의 장남으로서 대중으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았던 낭만주의나 부르좌 시민사회의 총아인 사실주의 예술에 길들여져 있던 대중들은 신예술에 대부분 반감을 느낀다. 그래서 가세트는 현대인들을 이 신예술에 대한 이해 여부에 의해 두 계층으로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얘기까지 한다.

신예술엔 낭만주의에서 볼 수 있는 인간적 감정이나 사실주의 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다. 대중들이 신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이것을 예술의 비인간화라고 가세는 말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비인간화'란 윤리적 판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예술의 양상을 현상적 으로 설명하는 개념이다.

과거의 예술에서 보이던 인간적 감정과 인간적 삶의 모습 들이 신예술에선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것을 말함이다. 가세는 앞세기를 지배했던 감수성을 '인간적 감수성'이라 하고, 이에 대하여 신예술의 그것을 '예술적 감수성' 이라함으로써 현대 예술에서 감수성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신예술은 대중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다분히 예술을 위한 예술이다.

시대가 변하면 예술도 변한다

신예술은 현대의 새로운 지적 귀족드의 예술이다. 글면 가세트의 입장은 어떠한가? 가세트는 구예술의 틀에 박혀서 신예술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쪽을 오히려 비판 한다. 가세트는 도덕 관념이 시대에 따라 변하듯이 예술 경향도 시대적 질서에 순응 하여 변화해 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바그너적인 오페라를 새로이 작곡한다거나 자연주의적인 소설을 다시 쓰며누 십중팔구 실패하고 말 현대의 시점에서 곧, 모든 것이 고갈된 이 시대에 새로운 예술이 대두한 것은 행운이라고 그는 쌍수를 들고 환 영한다.

예술에 있어서 신념이라고 하는 것은 그 뿌리가 가장 강하고 확고하였을 때 오히려 그 진실설은 의심스러워지고 그 신념이 우리에게 하나의 한계로서 다가올 때 그것은 감옥이 된다. 그러한 삶의 한계를 학장시키려는 격렬한 열망에서 가세트는 삶의 충실성을 찾으려 한다. 신예술은 바로 이러한 열망의 표출이며 이 새로운 경 향은 더욱 확산되어 가리라고 가세트는 예측한다. 사회주의권과 아시아.아프리카의 제3세계를 제외한 유럽과 미국의 상황에서는 가세트의 분석이 상당히 유의미하고 적중했다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면서 자기 분열과 해체의 양상을 계속해서 보여온 20세기 예수의 운명을 가세트는 세기의 들머리에서 감지했던 것이다. 전 세기의 인간적 감정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신예술의 경향이 바로 가세트가 말하는 "예술의 비인간화"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반(反)사실주의, 반 낭만주의의 경향이다.

가세트는 현실이라는 개념도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저명인사의 죽음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저명인사가 임종 직전에 있다고 가정 하자. 그 옆에는 비탄에 빠져있는 아내가 있고, 직업적 양심에 의해 환자의 고통과 목숨에 관여하는 의사가 있다. 그리고 취재하러 온 기자는 독자들에게 이 장면을 생생하게 전하는 기사를 쓰기위해 애를 쓴다.

마지막으로 화가가 있는데, 그는 죽 음이란 비극적 사건보다 그 방에 비치느 빛, 그림자, 색채 따위에 주목한다. 죽음 이라는 인간적 감정으로부터 아내, 의사, 기자, 화가의 순으로 심리적 거리가 멀어 진다. 슬픔이라는 인간적 감정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아져 있는 것은 화가이다. 이러 한 화가는 '비인간적'으로 비칠 것이다. 아내는 슬픔에 젖어 있고 화가는 아내를 통해 슬픔이란 관념을 응시할 뿐이다. 요컨대 화가는 심리학자의 시선을 지니고 있다.

감수성의 전환을 가져온 신예술의 입장은 바로 이 화가의 입장이다. 가세트의 이 예시를 문예사조에다 적용시켜 보면 아내는 낭만주의, 의사는 계몽주의, 기자는 사실주의, 화가는 현대예술의 사조에 연결시켜 볼 수 있다.

신예술은 현실로부터의 도주

그러면 예술을 비인간화하려는 이러한 열망이 왜 생겨났을까? 생명 있는 형체나 인간적 감정에 대한 혐오감은 왜 생겨났을까. 가세트는 과거 예술에 대한 부정과 공격을 보여주는 신예술이 나오게 된 밑바닥에는 예술 자체에 대한 증오, 국가에 대한 증오, 문화 전반에 대한 증오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신예술은 인간적 현실에 몰입하지 않고 거기로부터 끊임없이 도주한다. 신예술가들은 전 세기에 지배적이었던 예술적 양식에 최대한 혐오감을 느낀다. 비인간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신예술의 기본적인 수법은 은유이다. A라는 사실을 B로 바꾸어 표한하려는 지적행위는 B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A를 회피하고자 하는 소망이다.

은유의 형식은 현실을 회피하려는 욕망에서 나온다. 그래서 현대 예술은 은유와 상징의 기법이 주를 이루고 사실에서 추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는 가히 은유의 고등수학이라 할 만하다 .

그러면 '인간적,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배격하는 새로운 양식의 예술은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이 양식이 보편적인 것이 될 때 그것은 '아이러니'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고 가세트는 보고 있다. 일체의 인간적인 것을 추방하고 예술 그 자체를 지향해 나가는 신예술은 스스로 우스꽝스러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극단의 부정적인 정신은 결국 자기 부정에 이르게 되어 자조(自嘲)의 눈으로 자기의 예술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가세트는 바로 이 자조(自嘲)속에 새로운 영감의 희극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신예술의 조소는 어떤 특정한 대상을 향한 조소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조소이다. 가세는 말한다. "즉, 예술은 이러한 자조 속에서만 그 마술적인 특징 을 최고로 발휘한다." 쉴레겔은 아이러니를 미(美)의 최고 규범으로 삼았다. 가세트는 쉴레겔의 아이러니와 현대예술의 아이러니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이해한다.

아이러니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현대 예술은 광대의 웃음에서부터 빈정거리는 눈짓에 이르기까지 희극성을 띠게 된다고 가세트는 말하고 있는데, 부조리극을 위시한 현대극 에서 희극은 블랙 유머(black humor)가 주된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면 가세트의 미래통찰적 안목이 돋보인다 하겠다.

과거의 예술양식이란 우상을 파괴하는 데에서 출발한 신예술이 새로운 종교를 내세우지 못하고 아이러니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을 그는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부정은 자기 보존 혹은 승리가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아이러니의 운명을 인내심을 가지고 오래 견디는 인물이야말로 신예술의 영웅상이다.

그래서 가세트는 그의 (돈키호테에 관한 성찰)에서 우스꽝스러운 바보짓만을 되 풀이하는 돈키호테를 매순간 최후적으로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지는 최고의 성실한 인간으로 새롭게 해석해내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카뮈는 그와 같은 인간상을, 종국엔 굴러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도 힘들여 바위를 밀고 올라가는 신화속의 인간 시지프스에서 찾아내었다.

마술피리는 예술의 상징

예술의 비인간화가 지속이 되면 예술의 엄숙성이 점차 사라지게 되리라고 가세트는 예측 한다. 전 세기의 예술, 특히 시와 음악은 우리 정신 영역의 거창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다. 종교의 붕괴와 상대주의적 가치관에 직면한 인류를 구원한다는 실로 어마어마한 사업을 떠 맡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예술은 인류에게 존엄성을 부여할 수 있는 인간적 능력 으로 간주되었다. 당시의 위대한 시인이나 음악가의 언동은 대중들에게 엄숙 그 자체로 작 용했다. 그들은 예언자 아니면 종교의 교조, 혹은 세계의 나아갈 방향을 좌우하는 정치가와 같은 존재로 대중들에게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베토벤이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 키 같은 예술가를 떠올리면 가세트의 이 말에 수긍을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상황은 이 와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오늘날엔 예술가 자신이 자기의 예술이 그리 중요한 것 이라고 생각지 않고 있다. 현대의 예술가는 과거의 예술가와 같은 거대한 사명을 걸머지고 그들과 같이 광대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주제를 취급하라고 하면 별로 능력없는 자가 어려운 일을 맡았을 때처럼 곤혹스러워 할 것이다. 현대의 예술가는 현실에서 과거와 같은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경망하다고 할 정도로 경쾌함에 주목한다.

20세기 후반에 오면서 광범하게 해체의 과정을 밝아온 포스트 모더니즘의 예술을 가세트는 미리 내다보고 있는 것 이다. 이러한 예술의 분해 과정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근본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 나 그러난 원인 분석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는 20세기의 예술적 상황을 잘도 예견하고 있 는 것이다. 세기적 전환을 예감한 그는 그러나 이 신예술을 부정적으로 대하진 않는다.

신에술은 예술의 가치나 중요도를 보다 가볍게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교만함에서 온 것 이 아니라 반대로 겸손한 태도에서 온 것이라고 극구 변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로 상품 경제의 논리에 좌우되는 후기 자본주의의 모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20세기말의 현 시 점으로 가세트가 다시 살아온다면 요즘에 예술에 대해 진단을 어떻게 내릴지 미시수이지만, 그는 다음 말로써, 신예술에 대해 아낌 없는 찬사를 하고 있다.

(만약에 예술이 인간을 구제한다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을 엄숙한 상태에서 해방시 켜 일찍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게 해주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 게 되면 저 숲의 입구에서 산양 새기들을 춤추게 한 판(고대 목축 수렵의 신으로 목동의 음 악을 담당했다)의 미술피리가 다시 예술의 상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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