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영원한 노동 - 시지포스 이야기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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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노동 - 시지포스 이야기

 

일찍이 호메로스가 교활한 인간 가운데서도 가장 교활한 인간이라고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시쉬포스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시쉬포스는 시지프스라고 불리기도 하고 프랑스식으로 시지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시쉬포스가 이 땅에 산 것은, 제우스가 난봉을 일삼던 시절, 전령신 헤르메스가 태어나던 시절이니 참으로 아득하게 먼 옛날 일입니다. 시쉬포스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아들입니다. 아이올로스는 아이올리아 섬을 놋쇠 벽으로 막고 동풍, 서풍, 남풍, 북풍을 동굴 안에다 가두어두었다가 강약과 완급의 조화를 마음대로 부리면서 때로는 순풍, 미풍, 때로는 질풍, 태풍으로 내보내는 바람의 신입니다.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아들 시쉬포스는, 신들 편에서 보면 엿보고 엿듣기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하는 짓에 종작이 없는 인간이었고, 같은 인간 편에서 보면 감히 신들의 일에 끼어들어 인간을 이롭게 하고, 바른 말을 잘하고, 지혜롭고, 임기응변과 수시 변통에 능한 인간이었지요.

 

도둑질의 원조이자 도둑과 소매치기의 수호신 헤르메스가, 그 어머니 태를 열고 이 세상에 나온 날 해질녘에 살며시 강보를 열고 나가 이복형이 되는 아폴론의 소를 훔친 일이 있습니다. 교활한 아기 헤르메스는 소를 몰고 동굴로 가면서 소 발에는 떡갈나무 껍질로 신을 삼아 신기고 소꼬리에는 싸리 빗자루를 매고 땅바닥에 끌게 하여 발자국을 말끔히 지운 다음 천연덕스럽게 다시 동굴로 들어가 아기 행세를 했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요. 신화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아폴론은 그 괄괄한 성미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귀양살이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소를 돌보는 일을 했지요. 헤르메스는 태어난 그날 도둑질을 한 것으로 유명한 신입니다.

 

하여튼 이것을 엿보고 있다가 아폴론에게 도둑질한 범인을 일러바친 자가 바로 시쉬포스입니다. 아폴론이 헤르메스를 제우스 대신에게 고발하자 제우스가 묻습니다.

 

어린 것이 기특하게도 소 발에는 신을 삼아 신겨 소리를 지우고 꼬리에는 빗자루를 달아 흔적을 지웠는데, 네가 어떻게 소 있는 곳을 알았느냐?”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아들 시쉬포스가 일러주더이다.”

아폴론이 대답하자 제우스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립니다.

신들의 일을 엿보다니, 그놈이 분수를 모르는구나.”

이 일로 시쉬포스는 제우스의 눈 밖에 납니다.

그 뒤의 일입니다.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한 뒤 아이기나라는 참한 요정을 채어가 섬 그늘에서 사랑을 나눈 일이 있습니다. 시쉬포스는 이것마저 엿보고 있다가 요정의 아버지이자 강의 신인 아소포스를 찾아갑니다. 시쉬포스는 독수리에 채여간 딸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던 아소포스를 찾아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네메아 근처에다 도시를 하나 차렸는데, 백성이 물 걱정을 몹시 하니 차리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하오. 여기에 물을 좀 나누어주겠다면 따님 행방을 일러드릴 것이나 물을 나누어주지 못하겠다면 나도 본 것을 안 본 것으로 할 것이오.”

아소포스가 뜨악한 얼굴을 합니다.

그곳은 원래 도성 자리가 아니오. 도성 자리라고 하더라도 강의 신인 내가 그 높은 땅으로 오르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오만…….”

아소포스는 시쉬포스에게 그러마고 약속하고 급히 시쉬포스가 일러주는 그 섬 그늘로 딸을 찾으러 갔지요. 아소포스가 그 섬 그늘에 이른 것은, 독수리로 둔갑했던 제우스가 둔갑을 풀고 막 요정을 취하고 있는 참이었지요. 요정의 아버지가 나타나자 제우스는 대체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었지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아들 시쉬포스가 일러주더이다.”

아소포스의 대답을 들은 제우스는 두 번째로 시쉬포스를 별렀습니다. 제우스는 시쉬포스를 단단히 잡도리하기로 결심을 했을 법합니다.

 

하여튼, 시쉬포스가 이렇게 아소포스로부터 물을 얻은 샘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페이레네 샘이요, 그 전에 시쉬포스가 차렸다는 도시가 코린토스라고 합니다.

 

제우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보내어 시쉬포스를 데려오게 합니다. 임기응변과 수시 변통에 능할 뿐만 아니라 남의 의중 짚어내기를 제 주머니에 든 물건 꺼내듯이 하는 시쉬포스는 제우스 대신의 보복이 있을 것을 짐작하고 있다가 타나토스가 나타나자 사슬로 꽁꽁 묶어 창고에다 가두고는 문에다 납으로 만든 쇠통을 채워버립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타나토스가 시쉬포스의 창고에 갇혀 있을 동안만은 세상에 죽는 사람이 없었을 테고,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가둔 시쉬포스를 신으로 떠받들어 찬송했을 법하지요.

 

이 소식을 들은 제우스는 어이가 없었던지 처음에는 실없이 웃다가 곧 낯색을 바꾸었지요. 화가 난 제우스는 전쟁신 아레스를 보내어 타나토스를 구하고 시쉬포스의 목숨을 타나토스에게 맡기게 합니다. 이제 시쉬포스는 죽은 목숨이지요. 하지만 시쉬포스는 이것까지도 짐작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시쉬포스는 아내 멜로페를 불러 은밀하게 일러둡니다.

제우스 대신이 기어이 아레스를 보내어 타나토스를 구하고 내 목숨을 타나토스에게 붙일 모양이오.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하시오. 내가 숨을 거두거든 짐짓 애곡하되, 첫째로는 육축의 피와 생고기로 사자밥을 마련하지 말 일이오, 둘째로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나를 화장도 매장도 하지 말 일이니, 그러면 장차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오.”

창고에서 풀려난 타나토스 손에 덜미를 잡히는 순간 시쉬포스는 숨을 거둡니다. ‘타나토스의 손에 이끌려 저승으로 감은 곧 죽음과 동의어인 것이지요.

 

그런데 저승으로 끌려간 시쉬포스는 엉뚱하게도 왕비 페르세포네에게 하소연합니다. 아내 멜로페가 육축의 피와 생고기로 사자밥을 마련하지도 않고, 장례 예식도 치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신을 화장도 매장도 않고 있으니, 사흘 말미만 허락하면 아내의 죄를 단단히 물은 연후에 다시 오겠노라고 한 것입니다.

 

페르세포네가 이 시쉬포스의 말장난에 넘어가서 그랬는지 하여튼 그는 사흘 말미를 얻어 이승으로 올라올 수 있었지요. 시쉬포스는 이로써 아내 멜로페에게 자기가 누구인지를 보여준 셈입니다.

 

시쉬포스는 페르세포네와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신들의 노여움을 사면서까지 코린토스의 백성에게 물을 벌어준 시쉬포스에게 백성들과 살을 비비며 사는 이승의 삶이 너무 소중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시쉬포스는 페르세포네를 속이고 이승에 눌러앉아, 살아도 오래 살았습니다. 얼마나 살았는가 하면 어머니 태를 열고 나온 날에 소 도둑질을 하던 헤르메스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외손자를 볼 때까지 살았으니까 굉장히 오래 산 셈이지요.

이 헤르메스의 아들이 바로 아우톨뤼코스입니다. 아버지를 닮은 데다가 아버지로부터 거짓말과 도둑질을 배워 그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오죽하면 후세 사람들이 아우톨뤼코스의 손길이 닿는 족족 그 물건은 인간의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했을까요.

 

이런 아우톨뤼코스와 시쉬포스가 한 산자락에 서로 소 떼를 풀어놓고 기른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도둑질의 명수이자 인간 중에서도 가장 교활한 인간 아우톨리코스와 저승의 왕비 페르세포네까지 속여먹은 임기응변의 명수가 이 산자락에서 만난 것입니다.

 

아우톨뤼코스는 상대가 시쉬포스인지도 모르고 그의 소를 훔쳐 번번히 제 우리에 넣되, 소 임자가 알지 못하게 늘 털 색깔은 바꾸고, 있는 뿔은 없게 하거나 없는 뿔은 있게 했다는군요. 어느 날 시쉬포스는 아우톨뤼코스의 소 머릿수는 나날이 늘어가는데 제 소 머릿수는 나날이 줄어드는 걸 알고 가만이 계산을 맞추어보고는, 아우톨뤼코스의 소 머릿수는 정확하게 줄어드는 자기 소 머릿수만큼 늘어가고 있는 것을 알아내지요. 그러나 시쉬포스는 아우톨뤼코스의 소 떼 중에서 제 소를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시쉬포스는 소의 발굽 바닥에다 제 이름의 두문자 ‘S'를 새겨놓고는 물증이 잡히기를 기다렸지요. 그러나 소 머릿수는 자꾸 줄어드는데도 아우톨뤼스의 소 떼 중에 발굽 바닥에 시쉬포스 이름의 두문자가 세겨진 소는 한 마리도 없더랍니다. 그럴 수밖에요. 아우톨뤼코스가 이를 알고 소를 훔칠 때마다 발굽을 갈아버렸기 때문이었지요.

 

시쉬포스는 이번에는 소 발굽 갈라진 곳에다 납을 붓고 그 납에다 글씨를 세겨넣었지요. 이런 절묘한 내용입니다.

아우톨뤼코스 손에 끌려간다.’

소 발굽을 거친 돌로 갈 줄만 알았던 아우톨뤼코스는 시쉬포스의 이 수법에는 당하지 못하고 꼬리를 잡히고 말았지요. 그가 소를 끌고 간 길 바닥에, ‘아우톨뤼코스 손에 끌려간다.’는 글귀가 그 우리에 이르기까지 찍힌 것이지요.

 

아우톨뤼코스는, 최초로 문자를 이용하여 자기의 도둑질 기술을 무력화시킨 이 시쉬포스에게 제 딸 안티클레이아를 줍니다. , 이렇게 더할 나위 없이 교활한 인간 아우톨뤼코스의 딸과, 저승의 왕비 페르세포네까지 속여먹은 이 임기응변의 명수 시쉬포스가 동침했으니 어떤 자손이 태어날까요? 뒷날 트로이아 전쟁 당시 그리스 연합군의 꾀주머니라고 불리는 이타케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바로 이 핏줄이랍니다.

 

하지만 시쉬포스는 인간이지요. 이 말은 그가 영생불사하는 존재일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시쉬포스가 땅에서 천수를 다하고 타나토스 손에 덜미를 제대로 잡혀 한 번 가면 못 올 길을 가자, 저승왕 하데스는 그에게 벌을 내립니다.

 

저승에는 마침 시쉬포스 고향의 아크로코린토스 산과 그 모양이 비슷한 바위산이 하나 있었는데, 하데스는 시쉬포스에게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밀어 올려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아폴론에게 헤르메스가 한 도둑질을 고자질했고, 제우스가 요정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훔쳐보았고, 타나토스를 창고에 가두었고, 페르세포네를 속여넘긴 시쉬포스에게 바위 하나를 산정으로 밀어 올리는 노동은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로 보였을지도 모르지요.

 

사실, 영원한 갈증에 시달리는 탄탈로스, 영원히 도는 불바퀴에 묶인 이크시온, 영원히 밑 빠진 독에 물을 길어다 붓는 다나오스의 딸들에 견주면 시쉬포스가 받아야 하는 벌은 지나치게 가벼워 보일 법하기도 합니다.

 

시쉬포스는 빰을 그 바위에 대고, 손으로는 바위를 밀고 대지를 밟던 그 발로는 바위산 사면을 버티며 바위를 산정으로 밀어 올립니다. 하지만 그 바위는 산정에 오르는 순간 그 엄청난 질량에 걸맞은 속도로 다시 기슭으로 굴러 내립니다. 시쉬포스는 다시 바위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위는 저승의 법, 하데의 명계의 법에 따라 그 산정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쉬포스는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길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 다시 바위를 굴려 올립니다. 바위는 또 굴러 내려오고, 시쉬포스는 또 내려와 바위를 굴려 올립니다. 따라서 시쉬포스는, 저 영원한 갈증에 시달리는 탄탈로스나, 영원히 불바퀴에 달린 채로 돌아야 하는 이크시온이나, 밑 빠진 독에다 물을 채워야 하는 다나오스의 딸들처럼 영원히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수고를 계속해야 합니다. 탄탈로스, 이크시온, 다나오스의 딸들, 그리고 시쉬포스가 이 영원한 겁벌의 업보에서 잠시, 아주 잠깐 벗어난 것은 저 신화 시대의 절창 오르페우스가 명계로 내려와 수금을 뜯으며 노래를 불렀을 때뿐이라고 하지요.

 

시쉬포스가 다시 굴러 내리게 되어 있는 바위를 산정으로 굴려 올리는 광경은, 저 로마 사람 오크누스가 영원히 새끼줄을 잘라 먹는 당나귀 옆에서 끝없이 새끼줄을 꼬고 있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헛된 수고를 시쉬포스의 바위오크누스의 새끼줄에다 견주어 말합니다.

 

지금도 바위를 굴려 올리는, 무익한 수로를 계속하고 있는 시쉬포스의 신화는 인간에게 어떤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후세의 눈 밝은 소설가 알베르 까뮈는 시쉬포스적 오만과 시쉬포스적 비극의 의미를 이렇게 읽고 있군요.

 

……시쉬포스는 고통을 느끼며 바위산을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 두근거리며 바위산을 내려왔을 수도 있다. 이것은 지나친 말이 아니다.……산기슭에 있는 시쉬포스를 상상해보자. 인간적인 모든 것은, 완전히 인간적인 기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하는 인간, 눈뜨고 보고 싶어하면서도 어둠에는 끝이 없음을 알고 있는 이 인간……, 이 인간에게는 우주가 무익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는, 시쉬포스가 그 순간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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