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영어 공용화 논쟁에 대한 견해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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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영어 공용어(公用語)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다. 다음에 제시된 상반된 두 주장의 글을 읽고 어느 한 입장을 택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1 : 배타적 민족주의는 열등의식의 발로이다. 만일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이 올바른 것, 즉 보편 타당한 것이라면 꼭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내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 타당한 것이라는 자신이 없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문화 교류에 있어서도 궁극적인 기준은 객관적인 옳고 그름일 수밖에 없다. 물론 국제화 사회에서의 보편성이란 곧 '강자의 것'이라는 냉소적인 주장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강대국이나 할 수 있다. 강대국에 둘러 싸여 있는 약소 민족국가가 생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인 가치와 원칙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뿐이다.

 

실제로 한민족은 이러한 원칙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생존과 번영을 기약해 왔다. 우리는 예로부터 내려오면서 보편적인 사상과 철학,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삼국 시대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는 불교를, 조선에서는 유교를, 근세에 들어와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가장 보편적이고 수준 높은 문명을 적극 수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사상과 제도는 특정 민족과 사회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토착화 과정을 거치면서 굴절되고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래 문명과 문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문화를 살찌워 왔다는 역설 아닌 역설이 성립된다. 불교와 유교는 '외래' 문명이지만 우리 특유의 모습으로 일구어 왔다. 팔만대장경과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한문, 즉 중국 글자로 되어 있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보물들이다. 그러면서도 한문이라는 국제어로 쓰여졌기에 보편성도 확보하고 있다.

 

민족문화는 결코 불변의 고정태가 아니다. 늘 바뀌고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얘기는 결코 무국적의 보편주의자나 자유주의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우리의 문화', '우리 민족'의 번영과 미래를 기약해보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얘기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민족주의자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어떻게 우리에게 맞게 수용하는가 이다. 복거일씨는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새로운 사상과 체제를 보다 빠르고 올바르게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를 보다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역설이 있고 동시에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사상적 도전이 있다.

 

그렇다면 영어를 국어와 함께 우리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 그것이 진정 한민족의 번영을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과거에 한자를 도입하였듯이 영어를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도입한다면 그 결과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의 변형은 역시 한국의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와 한글, 한자어와의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사용과 발전을 전제로 한 도입은 한국인의 인식의 지평을 다시 한번 세계적인 차원으로 넓혀 주는 기폭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표현된 한국 문화는 그만큼 보편화될 수 있다.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 고유의 사상과 미풍양속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볼 때 영어라는 국제어의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영어공용어 채택 여부는 철저하게 민족과 국가의 실익(實益) 차원에서 따져야 할 문제이지 반 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함재봉>

 

2 : 지난 반세기 민족주의는 아무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 권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터부에 도전하는 복거일의 용기는 대담하다. 한 사람의 언어는 곧 그 사람과 구별될 수 없으며, 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어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럼에도 영어공용어화를 계획해야 한다는 그의 논지는 혁신적이며 이를 전개하는 방식은 통쾌하다.

 

세계화는 가속화하고 있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이다. 세계화는 다양한 문명권들이 '세계제국'으로 부를 수 있는 하나의 인류 문명권으로의 통합 과정이며 세계 제국은 특히 미국을 축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싫건 좋건 참여하지 않고서는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고립화, 주변화, 퇴화 그리고 화석화를 면할 수 없다. 세계화에의 참여는 국내적 혹은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 국제적 차원에서의 밀접하고 신속한 정보 교환을 전제로 하며, 이러한 정보 유통은 모든 민족과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언어, 즉 국제어를 필요로 한다. 싫건 좋건, 부당하건 정당하건 상관없이 앞으로 몇 세대 아니 몇 세기 더 전개될 인류 공통 '모국어'가 영어가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계사의 흐름, 그리고 그러한 맥락 속에서 한국의 위상에 대한 냉철한 인식, 새로운 인류 문명을 창조하는 '세계제국'에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그러한 참여를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서의 영어 문제 등에 대해 우리는 가정적으로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혁명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우리를 감정의 게토 속에 가두어 놓아 객관적 현실을 왜곡시키고, 새로운 인류 문명에 세계인으로서, 인간으로서의 동참의 길목들을 막아 놓고 있다는 것이다. 복거일의 폐쇄적인 민족주의 비판은 민족주의가 산을 못 보게 하는 나무와 같다는 데 있다. 그의 민족주의 비판은 투명하고 옳다.

 

그러나 세계화의 구체적 그리고 기본적 방법을 위한 영어 공용어화론이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더 기본적 의사소통 매체로 삼자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의 영어 공용어화론은 그의 민족주의 비판만큼은 설득력이 없다. 중세 유럽 지식인들이 학문과 문명화를 위해 지방어를 버리고 '라틴어'를 공용어로 택한 것은 현명한 일이며 또한 그들은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사정은 그와 똑같지 않다. 설사 공용어화가 바람직하다 해도 그것은 몇 세기 후 영어가 널리 자연적으로 보급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더구나 그러한 공용어화가 가능해서라도 7천만이 반만년 동안 물려온 정신적 유산을 담은 민족어를 생판 외국어로 대치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가는 심각히 더 논의될 문제이다. 저자가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언어는 도구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복거일은 우리 주위에서 보기 드물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의 영어 공용론의 합리성은 의심스럽다. <포항공대 철학과 교수 박이문>

 

 : 백년 후 사정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확실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는 미국에 의해 주도되며 세계화되는 문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뿐만 아니라 낙오하지 않고 생존하자면 영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은 모든 사람들도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역사적 현실이다. 자신의 모국어 대신에 남의 모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사실은 문화적 자존심을 떠나서도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데 ,드는 시간적 낭비와 심리적 고통이 크게 따른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아무리 큰 대가를 치루어도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은 자녀들에게 영어 조기 교육이나 영국으로 조기 유학을 서두르고 있는 학부모들의 의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비영어권의 모든 나라에 적용된다. 문화적 그리고 특히 자신의 언어적 우월성에 대한 자존심으로 영어 사용에 남다르게 저항해 왔던 프랑스 사람들도 최근에는 영어 배우기에 누구보다도 열중하고 있다.

 

누가 아무리 무어라고 반발해도 그리고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든 영어는 이미 랑과 프랑카 즉 세계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영어권에 사는 한국인은 영어를 어느 정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인가? 이 물음은 곧 영어 "공용론" 곧 영어를 한국어 대신 자신의 주된 표현 도구로 즉 公用어로 사용해야 하느냐, 아니면 한국어와 병행 즉 共用하여 사용해야 하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에 앞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개인의 차원에서 보느냐 아니면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전혀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 대답은 아주 간단하고 선명하다. 개인의 차원에서 볼 때 그의 필요에 따라 배울 수도 있고, 숫제 배우지 않을 수도 있고, 조금 배울 수도 있고, 모국어만큼 자유롭게 될 만큼 배울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모국어를 배우지 않더라도 영어만은 능통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민족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비영어권 지역 출신들 가운데에서 많은 학자나 작가들이 자신의 모국어 대신에 영어로 저술 활동을 해야할 수밖에 없거나, 꼭 그렇게 해야하지 않더라도 영어로 저술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예가 오래 전부터 많다. 한국어 대신 영어로 국제학술지에 학술지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들은 비판할 수 있겠는가? 한국어보다 영어에 더 능통하다고 해서 한국의 외교관, 사업가들은 비난할 수 있는가? 영어로 쓴 문학작품을 통해서 알려진 폴란드인 콘라드, 나바코프, 김은국이나 영어로 미국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철학 논문을 쓰면서 활동하는 김재권을 모국어를 버렸다거나 모국어를 거의 잊고 있다는 이유로 각기 폴란드나 러시아나 한국이 비난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언어 선택이 절대적인 찬사의 대상이 될 수도 없지만 규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의 언어 선택은 전적으로 각기 개인의 문제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볼 때 영어 공용론은 개인적 선택의 사항일뿐 공공적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영어 공용론은 국가적 문화집단적 관점에서만 해결을 요청하는 문제로 부각된다. 공용론은 公用론일 수도 있고, 共用론일 수도 있는데 公用어의 개념과 共用어의 개념을 분명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한 국가의 공식적 공공적 공통어라는 하나의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는 관계 개념이다. 公用어는 구체적으로 정부를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며, 그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단 하나일 수도 있고, 영어와 불어가 共用되는 캐나다, 영어와 힌두어가 共用되는 인도의 경우처럼 두 언어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영어 公用론이 영어 共用론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영어 공용론은 한국의 경우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입장 중 하나를 정책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1.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公用으로서 共用한다. 이러한 입장의 선택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公用어로서 共用하는 캐나다, 힌두어와 영어를 공용어로서 공용하는 인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복거일의 초기 단계로서의 한국어와 영어 共用론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복거일이 지향하는 주장은 단 하나의 영어 공용론이다.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언어를 공용어로 공용하는 데에 따른 물질적 낭비와 정신적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어와 영어 공용을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절대적으로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오늘의 역사적 현실에서 잠정적인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상은 단 하나의 영어만을 공용으로 하는 데 있다.

 

2. 公用어로서 민족어 즉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만을 사용한다. 이 선택의 예는 홍콩과 싱가폴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언어를 오로지 도구적 존재로만 보고, 영어의 세계적 언어 지배가 더욱 분명해지게 될 앞으로의 세상에서 세계의 모든 작가들이 영어로 작품을 쓰게 되리라고 예측하는 복거일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입장이다. 복거일식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어야 전술적 관점에서 세계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째, 언어는 사용자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고, 둘째, 실용적 즉 경제적 가치가 인간이 추구할 가치의 전부일 수 없으며, 셋째, 위와 같은 두 가지 문제를 떠나 실용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도 당분간 한국어와 영어를 모든 공공기관에서 공용어로서 사용하는 데 들어갈 시간적, 심리적 및 경제적 막심한 손실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어만을 공식어로 쓰면서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영어를 사용하는 데 들어가는 번거로움과 손실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이 크다.

 

3.한국어만을 公用어로 사용하고 영어를 되도록 쓰지 않는다. 이 입장은 복거일의 입장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영어뿐만 아니라 외국어의 公用화는 물론 적극적인 사용에 강한 반발을 하며 주체성을 강조하는 언어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선택의 문제는 객관적 오늘의 세계 현실을 무시하는 데 있다. 이미 하나의 마을이 된 세계에서 어느 국가도 고립해서 존재할 수 없으며, 영어가 국제어로 된 객관적 현실에서 영어를 모르고는 번영은커녕 생존할 수 없게 되어 있는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정당화 될 수 있는 폐쇄적 민족주의 발상이라는 데 있다.

 

4.한국어만을 公用어로 삼되 영어를 非公用語 共用한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 대부분의 비영어권의 국가에서의 정책과 국민의 정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시호의 책 21세기의 세계 언어 전쟁의 주제의 초점은 책의 제목과는 달리 책의 부제인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천착하는 데 있고, "열린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네 번째의 선택, 한국어만을 公用어로 하되 영어를 非公用어로서 共用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이러한 선택을 위해서 영어 교육의 강화를 주장하는 데 있다. -<박이문,보스톤 시몬수대학 명예철학 교수,[영어공용론의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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