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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삼대' - 가족 속의 삶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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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삼대'   -가족 속의 삶

 본문

 염상섭의 '삼대'는 그 표제만으로는 언뜻 가족사(家族史) 소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조의관에 의해서 사당(祠堂)과 금고(金庫)의 승계권자로 지명된 덕기를 중심으로 해서 조의관의 죽음을 전후한 약 1년 간의 시간을 안고 있을 뿐이다. 가족사 소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1년이라는 짤막한 시간에서 뿐만 아니라, 조씨(趙氏) 일가의 가부장(家父長)이요, 덕기로 하여금 동경과 서울, 바카스 술집에서 병화 하숙집까지의 사회적 공간의 향유를 가능케 하는 경제력의 원천인 조의관의 내력이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만석꾼이며 정총대(町總代)를 지냈다는 이력이 희미하게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이 작품에서 부정적 인물로 다루어져 있으며 기독교 신앙 때문에 결국은 상속권을 아들에게 빼앗기고 마는 이대(二代)째인 조상훈의 전락 과정도 희미하다. 교회 안의 인물이요, 미국 유학생이요, 학교 교사로서의 모습은 배경에 흐릿하게 깔려 있을 뿐이며, 그의 횡적(橫的) 인간 관계도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통속 소설의 악역감으로도 구색을 갖추고 있는 그의 사람됨이 비교적 실감 있게 다루어져 있는 것은 경애의 유혹자로서도 아니요, 김의경과 도피 행각을 벌이는 탕아로서도 아니요, 가족끼리 싸움을 벌일 때 가족 속의 인간으로서이다.

 

 '만세 전(萬歲前)'이 1910년대의 한국 사회를 극명(克明)하게 묘사하고 있듯이, 1931년에 발표된 '삼대'는 1920년대의 한국 사회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이 밖에도 두 작품은 몇 가지 공통성을 드러내고 있다. '만세 전'의 나와 '삼대'의 덕기는 다 같이 일본 유학생이고 부잣집 아들이며 치밀한 관찰자이다. 그들은 적극적인 행동파가 되지 못하는 이념형(理念型)이고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또 우울증을 공유하고 있다. 가족 제도라는 큰 테두리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으면서 동시에 얽매여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된다. 차이가 있다면 '만세 전'의 주인공이 유탕적(遊蕩的) 기색이 농후한테 비하여 덕기가 만석꾼의 상속자답게 한결 착실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나이에 비해서 어른스러운 이들은 학생의 신분이면서도 학생치고는 너무나 원숙하다. 이 점에서 그들은 19세기 러시아 소설에 자주나오는 만년 대학생들을 연상시킨다. 현실에 대해서 불만은 많으나 정작 자기들이 담당해야 할 사회 속의 구실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를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고 느끼는 저 우울한 만년 대학생말이다. 이들 만년 대학생과 그들의 애인들은 대개 러시아의 시골에 처박힌 채, 보다 나은 내일과 두고 온 모스크바를 그리워한다. '만세 전'이나 '삼대'의 주인공도 주어진 현실을 벗어 나고 싶은 갈망을 가지고 있다. 사회 속에서 자리를 잡기 이전의 이런 만년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선정함으로써 작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어느 모로 그들은 때묻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삼대'에는 두 갈래 삶의 흐름이 나타난다. 그것은 덕기네 집안의 조의관 부자(父子)가 구현하고 있는 현실 추수적(追隨的), 소비적 삶의 양상과, 한편으로는 김병화가 하숙 들어 있는 필순네 가족을 통해서, 또 덕기와 병화 사이의 교량적 구실을 하는 홍경애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현실에 있어서 반체제 지향적인 이념적 삶의 양상이다. 이것은 1920년대의 억압적인 식민지 현실에 대처할 전형적인 삶의 양식이기도 하였다.

 

 단순화해서 말해 본다면, 조의관 쪽은 가정 속의 일상 인간이요, 병화네 쪽은 이념 인간이다. 사실상의 주인공격인 덕기는 가정 속의 일상인(日常人)과 이념인(理念人)이 적절히 조정되어 있는 중간형이라 하겠다. 이러한 덕기를 위시해서 조의관, 수원집, 덕기 모친, 경애 모친, 창훈, 기타의 군소 인물들이 단단히 조형되어 있어 살아 있는 인물로 여실하다. 이에 비하여 김병화, 이필순, 피혁, 장훈 등의 이념인 내지는 행동인들이 조형에 있어 단단치 못하고 억지로 구색을 갖춘 인물들이라는 무리를 느끼게 한다. 3·1 운동을 전후에서 활약하다 병사한 독립 투사의 딸인 홍경애는 갈팡질팡하는 의식을 반영해서 약간 모호한 구석이 있는데, 이것은 작가의 솜씨보다는 그녀의 복잡성과 접대부라는 직업적 요청의 상승 작용에서 나온 것이고, 이점 조상훈과 성격 조형상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가정 속의 일상인이 살아 있는 인물로 생동감을 주는 것은 대체로 뛰어난 대화 장면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염상섭의 대화 장면은 모든 문학 속의 대화가 그렇듯이 다분히 양식화된 대화이다. 다분히 양식화된 대화 언어가 가장 밋밋한 구체성과 생동성에 도달한 것은 언쟁을 할 때이다.

 

 가족 제도와 가정 속의 일상 인간을 끈질기게 추구한 염상섭이 언쟁의 대화에서 솜씨 자랑을 하게 되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의 대화는 말이 사람들을 맺어 주기보다는 이간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대동보소(大同譜所)의 문제 때문에 조의관 부자가 싸우는 제1충돌, 수원집과 덕기 모친이 싸우는 제2충돌은 집안 싸움의 고전적 장면이라 할 만하다. 이 점에 주목할 때, '삼대'에서 전체적으로 가장 빼어난 부분은 조의관의 사망 직후를 다루고 있는 '소문'이라는 장(章)인 것이다. 특히 필순의 덕기 방문 때문에 빚어지는 덕기와 덕기 모친과의 충돌, 덕기 모친의 히스테리컬한 일방적인 호통은 가히 일품이라 할 만하다.

 

 그러면 반영웅적인 등장 인물들이 정열을 기울여 집안 싸움을 벌이고 또, 음모를 꾸미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삼대'란 제목은 이른바 제너레이션(generation gap)이란 말로 표현되는 세대 간의 대립을 연상시키는 첩경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묘사 능력이 가장 본때 있게 발휘된 영역의 소재는 상속과 재산과 치정(癡情)이다. 세대 사이의 이념적 대립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로 나오는 김병화는 기독교 장로인 부친과 절연(絶緣)해서 집을 뛰쳐나왔고, 신자인 상훈은 제사와 족보 문제로 부친과 충돌하고 승계권을 박탈당한다.

 

 그러나 암시만 되어 있는 병화 부자(父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조의관 부자의 경우에도 전통적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개화된 예수교도의 충돌이라는 형태의 대립보다는 족보와 대동보소와 치산(治山)을 중심한 재산 관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충돌의 직접적 계기가 되어 있다.

 

 재산 관리상의 대립도 상훈 자체가 재산의 합리적 운영을 도모할 위인이 못되는 낭비자이므로 경제적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의 대립도 아니다. 상속에 의해서 제 몫이 될지도 모르는 재산의 손실이 상훈의 주요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조씨 일가의 세대 대립이 근본적으로 이념적인 것이라기보다 구체적인 돈 문제라는 것은, 가령 세대 대립을 다루고 있는 걸작으로 알려져 있고, 또 염상섭이 여러 모로 참고했으리라고 짐작되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과 비교해 보아도 분명해진다. 비자로프와 아르까디의 배부 사이의 우습게 끝난 결투에는 물질적 이해 관계가 끼어 있지 않은 것이다. 돈과 상속은 덕기 부자의 대립의 경우에 더욱 분명하고 추악하게 노출되어 있지만, 여자들끼리의 갈등에서 계속 중요 계기로 남아 있다.

 

 수원집과 덕기 모친의 대립은 연령과 조응(照應)하지 않는 위계 질서,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기갈(飢渴)을 안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울분의 폭발 등의 측면이 있지만, 상속권에 있어서 이해 관계의 대립이 가장 큰 동기가 된다. 비슷한 상황은 필순을 들러싼 덕기 모자(母子)의 충돌에서도 엿보인다. 필순의 방문에서 덕기 모친은 홍경애를 연상하고 자기 연민적인 울분을 토로하는데, 이때도 돈이 개입한다.

 

 언제 안 사람이라구 웬 놈의 정성이 뻗쳐서 의사를 지시해 준다, 담요를 갖다 준다 하더니 그 딸년을 끌어들이는 꼴이 약값 입원료도 좋이 물잇구럭을 해 줄 거라! 제 이 홍경애 아니구 뭐냐? 수원집, 경애, 의경이 그리구 삼대째는 뭐라는 년이냐?

 

  일본에서 돌아온 덕기가 집안의 퀴퀴한 냄새에서 돈동록을 연상하고, 조의관이 수원집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재산을 노리고 덤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데서 분명한 것처럼돈은 가족 속의 일상 인간을 갈등의 소용돌이로 휩쓸어 가는 계기요, 그들의 행동 거지를 일률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공통 인수이기도 하다. 작품의 결말에서 덕기가 '돈이란 뭐냐? 돈은 어디서 나온 거냐?'고 하면서 '돈을 좀 가지고 올걸!' 하고 생각하는 것은 이 작품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돈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싸움에 비하면 여자는 오히려 부수적이다. 이기주의의 한 단위로서의 인간, 그것이 가족 속의 일상인의 싸움을 통해 제시되어 있는 염상섭의 인간관이다.

 

 '삼대'의 놀라운 점의 하나는 거기에 사랑의 묘사가 제대로 없다는 것이다. 4백 페이지가 되는 이 장편 소설에서, 가령 덕기 내외가 내외로서 애정을 교환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한 번도 없다. 내외가 대화 비슷한 것을 나누는 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호통을 칠 때 뿐이다. 이러한 내외 관계는 조상훈 내외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외 간의 애정뿐 아니라 이 작품에는 연애다운 연애 장면도 없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불가사의한 가슴 설렘으로 체험되고 기억되는 환희와 고뇌의 원천으로서의 사랑이 정면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집안의 말싸움에 있어서 그렇듯이 솜씨 자랑을 하는 염상섭이 그럴 듯한 사랑의 장면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상훈의 타락의 계기가 되기도 했던 홍경애와의 사랑의 장면은 '추억'이라는 장(章) 속에 불과 몇 줄로 어리벙벙하게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몰래 펴던 경애는 도리어 김이 빠지었다. 좀더 무슨 뼈진 말이 있을 것같이 생각되었고, 또 그런 말이 없는 것이 이상히도 섭섭하였던 것이다.

 

 한편 덕기와 필순 사이의 감정의 교류와 필순의 덕기 방문이 다루어져 있는 장에 '애련'이란 프랑스 영화의 제멋대로 번역해 놓은 것 같은 표제가 붙여져 있는 것도 오늘의 독자들은 수긍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필순 편에서 덕기에 대한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전후 사정으로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나 기혼한 부잣집 아들과 반찬 가게집 딸의 심상한 대화가 어째서 '애련'이 될 것인가. 위와 같은 말은, 그러나 염상섭이 남녀 관계를 그리는데 무능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남녀 관계를 다룰 때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대개 치정이 되어 버린다. 염상섭에게 본격적인 사랑의 정경이 없다는 것은 그의 어른스러움과 작가로서의 성숙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적어도 염상섭은 이광수(李光洙)처럼 비록 천박한 유혹자의 경우라도 아래와 같은 구절을 적어 놓고 태연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작가는 아니다('삼대'와 이광수의 '흙'은 거의 같은 시기에 똑같이 신문 연재로 발표되었다.)

 

 아아, 내 순례여. 이 세상에 오직 하나인 내 순례여. 그대는 어떻게 이렇게도 내 피를 끓게 하는가. 내게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였던 정열이 어떻게도 그대의 고운 눈자위, 보드라운 살의 감촉으로 이렇게도 불이 타게 하는가. 아 그대의 살의 감촉, 그 체온!          ―'흙'에서―

 

 가정 속의 일상인을 그리는 데 명수(名手)인 염상섭은 끝내 뿌듯한 사랑과 정열을 다룬 작품을 쓰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한 시대의 살림살이와 그 습속(習俗)을 그리는 작가로서는 치명적인 불구 현상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그것은 밋밋한 사랑의 표현을 금기(禁忌)로 삼았던 구도덕과 그 구도덕의 기반이 되었던 구질서가 빚어 내게 마련인 인간성의 망측스러운 왜곡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가 사랑을 그리지는 못하되 치정을 그리기는 했다는 것은 그의 어른스러움이 사실은 구도덕인, 패쇄적인 사랑관(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 것이다. 한편 구도덕이 지배적이었던 상황에서 사랑과 구애(求愛)의 공인된 형식이 없었고 그 때문에 사랑과 구애는 어쩔 수 없이 연극적인 우스꽝스러움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염상섭의 점잖음과 어른스러움은 이 우스꽝스러움을 견디어 낼 수 없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사랑의 정열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한 그가 반비극적이고 반영웅적인 삶의 작가로 일관하였음은 우연이 아니다. 이리하여 그는 고양(高揚)된 인생 의식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가정 속의 일상인의 반영웅적인 삶을 통해 이러한 반영웅적인 삶의 터전이 되어 있는 가족제를 비롯한 구질서의 탁월한 비평가가 될 수가 있었다. 이것이 염상섭 문학이 품고 있는 소극적 가치의 중요 국면일 것이다.

 요점 정리

 작자 : 유종호(柳宗鎬)

 갈래 : 비평

 성격 : 실제 비평, 사회 비평

 요지 : 염상섭의 '삼대'는 가족사 소설인가가 의심스럽다. 표제만으로 보면 가족사 소설같이 보이나 이야기 전개의 시간은 1년 여이고, 조의관의 내력이 불투명한 점, 조상훈의 전략 과정이 희미한 점 등이 가족사로 보는 데 무리가 있다. 조의관 부자의 현실추수적 인물형과 반체제 지향적인 이념형의 인물이 큰 흐름으로 전개된다. 재산에 대한 욕심과 치정 때문에 언쟁을 할 때면 생동감이 느껴지나, 인물들은 이기적인 대립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사랑은 치정 관계로 그려져 있거나 절실한 묘사가 없는데, 이는 작자의 어른스러움 때문이다.

 내용 연구

 

 가족사 소설 : 한 가족의 흥망 성쇠 내력을 다룬 소설을 말하며, 단순히 가족 구성원 간의 문제를 다룬 소설들과는 다르게 취급된다. 가족사 소설은 가족 내의 개인보다는 가족이라는 사회 집단의 움직임과 변화 양상을 중시하며, 여러 대에 걸친 가족의 역사를 추적하기 때문에 연대기 소설의 형태를 띠게 된다.

 

서양에서 골즈워디의 '포사이트 가의 기록' , 토마스 만의 '부덴브루크 일가' , 마르탱뒤 가르의 '티보가 사람들' 등이 가족사 소설에 해당하며,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1930 년대에 비로소 정착되었는데, 염상섭의 '삼대' , 채만식의 '태평 천하' , 김남천의 '대하'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최근에는 박경리의 '토지'가 이 계열의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가족사 소설의 장점은 가족의 역사를 통하여 시대적 변천과 역사의 변모 양상을 밝혀낸다는 점이며, 특히 대가족 제도를 유지해 왔던 시대에 알맞은 소설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가족의 개념이 점차 와해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이기도 하다.

 가부장 : 가장권의 주체가 되는 사람

 대동보소의 문제 : 대동보소는 족보 만드는 곳이다. 여기서의 문제란, 조의관이 거금의 돈을 들여서 족보를 조작하려고 하고, 아들 조상훈은 이를 반대하는 데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제너레이션 갭(Generation gap) : 세대 차이. 세대 간의 생각, 관습, 행동 따위의 차이.

 물잇구럭 : 남의 빚이나 손해를 대신 물어주는 일.

 퀴퀴한 냄새 : 썩고 상하거나 찌들어서 비위가 상할 만큼 구린 냄새.

 돈동록 : 동전이 산화하여 퍼렇게 낀 녹.

 행동거지 : 몸의 온갖 동작.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기갈 :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여 목말라 하는 상태

 삐진 말 :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말.

 심상한 : 대수롭지 않고 예사스러운

 뻔뻔스러운 작가는 아니다 : 낯간지로운 사랑의 표현을 서슴없이 묘사하는 이광수에 대한 작자의 비난의 감정이 담겨 있다. 염상섭이 성숙한 작가임을 나타낸다.

 염상섭 문학의 소극적 가치 : '소극적'이라 함은 '적은 가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반영웅적 일상인으로서의 가족이 보여주는 구질서를 비평한다는 의미.

 이해와 감상

  이 글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사회 현실과 시대상을 극명하게 드러낸 염상섭의 장편 소설 '삼대'를 대상으로 한 실제 비평문이다.

 

 '삼대'는 과연 가족사 소설인가, '만세 전'과 '삼대'의 인물이 보여주는 공통점과 차이점, '삼대'에 나타난 일상인과 이념인의 두 흐름, 가족들이 벌이는 이기적 대립의 양상, 절실한 사랑의 묘사가 거의 없는 점 등에 주목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해 가면서 읽어 보자. '삼대'는 장편 소설이므로 작품의 요소와 줄거리를 정리해 두고 나서 이 비평문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삼대'에 대한 자기 자신의 관점과 이 글의 필자의 관점을 대비해 가면서 읽도록 하자.

 

 염상섭(廉想涉)의 대표적 장편소설인 삼대를 실제 비평과 사회적 비평으로 분석한 글로 '삼대'는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작품으로 서울의 이름난 만석군 조씨(趙氏) 집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에 이르는 삼대가 일제 치하에서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당시의 청년들의 고민을 사실적인 수법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3·1운동 전후의 대지주의 생태, 그 당시 풍미했던 사회주의자들의 군상이 복잡하게 얽혀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할아버지가 죽자 쑥밭이 되는 덕기의 집안, 젊은 사회주의자들의 상호 불신과 반목, 그리고 그들 내부에서의 갈등과 테러가 인상 깊게 묘사되었는데, 자신만의 관점에서 작품을 분석해 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읽어 보면 작품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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