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시(軟柿) - 박용래
by 송화은율
연시(軟柿) - 박용래
<감상의 길잡이>
박용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향토적 정서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다. 아무리 작은 자연 현상조차도 예사로이 넘기지 않는 관찰력과 언어의 군더더기를 일체 생략하고 시적 압축으로써 보여 주는 섬세하고 간결한 함축미는 그를 70년대 중요한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게 하고 있다.
이 시는 감이 한여름의 땡볕에 붉어지고 가을 서리에 익어서 눈 오는 겨울 어느 날 밤 제상(祭床)에 오른 것을 노래하고 있다. 단 2개의 문장을 14연으로 배열하여 전체적으로 언어의 절제와 표현의 간결성을 추구하고 있으며, 시각적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여 한 폭의 생동하는 소묘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구성은 상당히 치밀하고 적잖은 변화를 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격을 보면 1~2음보로 한 연을 형성하고 있지만,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11연의 경우 의미상 10연에 연속되는데 음절 수가 10연에 비해 반으로 줄어 휴지(休止)가 길게 붙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의미 단락상 1․2․3 / 4․5․6 // 7․8․9 / 10․11 / 12․13․14연으로 구분됨으로써 10연과 11연의 위치가 전체 시상 전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오게 된다. 또한, 감이 여름에 익고 가을 서리를 맞고 있다가 겨울에 제사상에 오르는 시간적 추이 과정에 입각한 시상 전개에 맞춰 공간적 배경의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즉, 전반부에서는 ‘비름잎에 꽂힌 땡볕’이 ‘돌담 위 연시’로 익었다고 하여, ‘꽂힌’의 하강과 ‘위’라는 상승의 대조를 드러내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도 ‘깊은 잠’의 하강과 ‘깨어나’․‘빛나다’의 상승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전반부의 주어는 ‘땡볕’이고, 후반부의 생략된 주어는 ‘감’, 서술어는 ‘빛나다’로 되어 있어 전반부의 주어인 ‘땡볕’에 연결됨으로써 내용이나 형식이 고도의 치밀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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