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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의식의 개혁 / 박이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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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의식의 개혁 / 박이문

 

역사 의식 이란 그 외연이 너무도 넓고 애매한 말이어서 학술적 용어로 쓰기에 부적절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역사학에서는 객관적 사실 그 자체보다는 역사를 보는 쪽의 주관이 매우 중요하므로 의식의 문제가 사실상 모든 역사 연거와 해석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역사 의식 중에서도 19세기 이후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지배적인 역사의식인 역사주의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 개념 속에 내재된 몇 가지 모순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역사 전개의 과정에서 볼 때, 이러한 역사적 개혁에의 모든 의지까지 막아 버리는 필연론이나,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를 조장하여 역사를 비판할 어떤 절대적 기준이나 가치도 부인하는 역사정 상대주의는 재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역사를 선택 가능한 것으로 보는, 역사의 전개 과정을 필연성이 아닌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결국, 역사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초역사적 가치와 윤리가 역사의 의미와 목적으로 설정되어야 하며, 인간과 인간이 놓인 상황의 이해를 위한 역사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 항간에 역사 의식(historical comsciousness)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역사 의식은, 정치 의식과 함께, 진정한 시민 의식을 갖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역사 의식이란 말은 그 외연이 너무나 넓다. , 아주 낮게는 역사적 감각(historical sence)이란 뜻으로도 쓰이고, 높게는 역사관(historical view)이란 뜻으로도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넓은 외연을 가진 말은 엄격한 학술 용어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한 법이다. 그러나 역사학에서는 자연 과학과 달리 객관적 역사 그 자체보다 역사를 보는 쪽의 주관이 매우 중요한 측면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의식의 문제가 사실상 모든 역사 연구와 해석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유명한 영국사가(英國史家) 내미어는 역사학의 최고의 성취는 역사 의식이다. 그 최종 결론은 직관적이다.” 고 말했던 것이다.

 

역사 의식은 인간의 현실관을 좌우하는 관건이기 때문에 고도의 역사 의식을 성취하는 일은 개인의 경우에 있어서나 민족의 경우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역사 의식은 원시 시대로부터 서서히 성장하고 발전하여 왔다. 당초에 인류는 무역사적 상태에서 생존하였다. 이런 원시 민족을 무역사 민족이라 부른다. 역사 의식을 결여한 사람에게는 옛날 옛날 어느 임금이....”라는 동화식으로 역사를 설명할 수밖에 없다.이런 단계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유치한 역사 의식은 오랫동안 종교, 신화, 철학이 섞여 이렇다 할 뚜렷한 내용을 갖지 못하다가, 19세기에 이르러 갑자기 각광을 받아 하나의 시대 정신으로서, 또 세계관으로서 깊숙이 럽민중 의식 속에 뿌리박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서유럽에서 확립된 지배적인 역사 의식을 역사주의(historicism)라 한다.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되는 정치적 격동과, 산업 혁명으로 인한 근대 산업의 급성장은 유럽 인의 역사 의식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그들은 역사적 시간이 지닌 역동적이고 활성적인 힘을 발견하고, 역사를 무한히 발전하고 진보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인도인의 역사 의식은 너무나 정적(靜的)이고 고요했다. 고대 그리스인의 경우도, 변하지 않고 반복적인 것을 역사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근대 문명의 외형적 변화에 놀란 서구인은 모든 역사를 변화와 발전과 진화의 연속이라 풀이하기에 이른 것이다.

 

역사주의라는 개념 속에는 이처럼 진보관이 숨어 있는데, 그 밖에도 많은 요소가 포함되고 있다. 그 하나는, 필연론이다. 이 필연론에 따른다면 모든 역사적 사실은 그것이 윤리적으로 나쁜 일이었건 아니건 역사적 필연이라 풀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왕에 벌어진 기정 사실은 모조리 역사적 필연성이란 이름 아래 합리화되고 호도되고 마는 것이다. 그 결과, 비판과 반성을 통한 재해석뿐만 아니라 역사적 재해석에 의한 현실적 개혁에의 모든 의지까지 봉쇄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반성하고 재해석할 수 없다는 것은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19세기의 역사주의가 비판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형이상학의 역사화라 불리우는 역사적 상대주의다. , 역사적인 모든 사실은 상대적이고 그 자체로서 타당하다는 해석이다. 이같이 볼 때, 역사주의는 일종의 니힐리즘(nihilism,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며, 역사를 비판할 어떤 절대적 기준이나 가치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빠진다.

 

이리하여, 역사주의는 과거를 악용하여 근대 국가주의의 온갖 부당한 주장과 요구를 정당화시켜 주었으며, 인류가 이룩한 문명적 가치를 부정하고 본능과 신화를 찬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주의의 내재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재는 과거의 소산이다.”는 의식을 심어 주는 데 기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깨우쳐 주고, 인간이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가를 알려 주었다. 또한,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미래라는 것이 얼마나 개방적인 것인가 하는 사실도 가르쳐 주었다.

 

, 현재는 과거의 필연적 결과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는 현재의 필연적 결과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역사가를 과거로 향한 예언자라 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도 역사가는 완전 무결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예언자란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역사적 미래에 대한 역사가의 예언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재인식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현실은 우리의 역사적 과거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은 과거에 우리에게 주어졌던 여러 가지 선택 가능한 길 가운데 우리들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었던 것이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역사적 현재는 어떤 예정된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앞에는 몇 가지 선택 가능한 미래가 놓여 있는 것이며, 그 어느 것을 우리의 미래로 삼느냐 하는 결정권은 항상 우리들 자신의 마음과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에 우리나라는 개국개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록 이 과정이 외세에 의한 것이기는 했으나, 그 결과는 반드시 1910년의 한일 합방이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물론, 지금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망국은 반드시 저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역사의 전개 과정을 그 필연성에서가 아니라, 그 가능성에 있어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인식하여야 하는 것이다.

 

일찍이, 랑케는 역사가의 사명을 있는 그대로를 발견하고 서술하는 것이라했다. 역사적 진실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과업이라 믿어진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분명치 않았던 사실(事實) 관련은 밝히는 일은 확실히 역사 연구의 기쁨 있는 성과다, 그러나 역사학은 있는 그대로를 밝히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과연, 역사가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빈틈없이 재생시킬 수 있을까? 역사적 사실은 무한하다. 단 일 년, 단 하루의 역사라도 완전 무결하게 서술할 수 없다. 그래서 역사가는 무한한 역사적 사실 가운데서 특정 사실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역사가 개개인의 관심과 가치관에 따라 이루어진다. 역사란, 따라서 이렇게 선택된 사실들을 역사가의 어떤 주관적 논리에 따라 배열한 일종의 허구와 다름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무수한 조명이 있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조명이 비추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탐조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옷자락 이라 일컬어 지는 역사의 전모가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참다운 인류의 서사시오, 세계의 성서라 불리는 역사가 과연 인간 지식의 피안에 있는 것인지 아닌지 의문시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있었어야 할 과거, 실제 있지는 않았지만 마땅히 있었어야 할 우리의 망실된 역사 다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다는 입장에서 역사가 재조명될 때, 우리가 현실에서 잃어버린, 그러나 미래에 있어 되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우리에게 역사와 역사학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제기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사에는 역사를 초월한 어떤 영원한 가치와 윤리가 그 의미와 목적으로서 뚜렷하게 설정되어야 한다. 비록 19세기적 발전 사관이 허구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인류 역사가 궁극적으로 진보한다는 데 대한 소망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 역사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서유럽적 역사관은 유대, 기독교적 역사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역사를 이른바 구제사로 보는 입장인 것이다. 종래 과학이라는 이름 밑에, 역사는 자칫하면 숙명론에 빠져 절망의 유토피아를 낳기도 하였다.

 

우리는 역사가 단지 역사적 지식을 양적으로만 늘려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인간이 놓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 사상, 제도는 항상 다르고 새롭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새롭고 특수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교훈적이다. 로마의 역사가 트라야누스가 그러므로 그 역사를 읽는 사람은 한 민족에 국한된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라고 한 말은 지금도 여전히 옳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의 폭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역사 지식 속에는 객관적 사실이란 허명 아래 허다하게 왜곡되고, 또 심지어 날조되기까지 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 이러한 역사가 버젓이 교과서나 신문, 잡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적 허구를 단죄할 마지막 법전은 결국 가치에 있다.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상황과 환경의 노예다. 그러나 그 상황과 환경을 만든 자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다. 역사는 무수한 인간의 인격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의 죄악은 인간에 의해서만 판단되고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의 궁극적 가치는 근원적인 곳에서, 또 절대적인 차원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나, 심지어 한 민족에 있어서만 타당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세계사에 있어서 일국적 현상이 없듯이 진리는 반드시 코스모폴리탄적이며, 그 가치는 국가나 민족이 아닌 세계와 인류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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