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간

 

역사의 시간 / 장수한

이 글은 장수한의 <역사 에세이> 속의 한 장으로 편성된 '역사의 시간과 공간'에 나오는 내
용으로써 필자의 안목과 사관의 일관성을 탐색하고 역사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넓힐 수 있
다.

역사의 시간은 단순히 길이에 따라 나뉘어지는 '자연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경험
그리고 적극적 행위와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로 채워진 시간을 말한다. 즉,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들만 역사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역사의 시간은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나타난다.

먼저, 역사의 시간은 상대적이다. 그것은 사회적 변화와 발전에 따라서 측정되며, 인류 사회
가 변화하듯이 발전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변화와 발전에 대한 가치 평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한 점에서 석기 시대와 프랑스 혁명은 좋은 대조가 된다.

역사의 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에 가속도가 붙는다. 이것은 역사의 시간이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사회, 중세 사회,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사회의 발전이 크게 촉진되었으며, 따라서 역사의 시간이 갖는 내용도 더욱
풍부해졌다.

물론 역사의 시간은 발전의 연속만은 아니다. 역사의 폭팔적인 발전의 시기에도 그 발전을
되돌리려는 음모가 끊이지 않았으며, 그러한 음모는 역사의 시간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의 시간은 장기적으로 보면 일시적인 정체와 후퇴를 벗어나 언제나 다시 앞으로
움직여 온 발전하는 시간이다.

본문 읽기

우리는 흔히 시간이라고 하면 시계의 초침과 분침, 시침이 움직여 간 거리를 떠올리게 됩니
다. 1시간, 2시간, 1주일, 2주일, 1달, 2달, 1년, 2년, 혹은 100년, 200년 등은 모두 이러한 시
간입니다. 이런 시간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그저 시계의 침이 움직인 거리를 똑같은
크기로 나눈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똑같은 크기의 시간이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
미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즐겁게 보낸 시간이 있는가 하면 지겨
운 시간도 있고, 보람차게 보낸 시간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흘러간 시간도 있
습니다.

'시간'에는 이처럼 그 길이에 따라 나눈 '자연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사고와 경험
그리고 적극적인 행위로 채워진 시간이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경험 또는 행위로 채워진 시간은 그 내용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정한 길이로 나누어진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같은 비
중을 갖는 내용으로 채워진 시간들을 각각 하나의 매듭으로 하여 우리의 삶을 엮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사회적 변화와 발전이 없는 시간은 그것이 아무리 길더라도 역사에
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반대로 어떤 때에는 한 달 또는 단 며칠이 대단히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의 변화는 자연의 시간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인류 역사에서 석기 시대는 약 200만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러나 그 동안 인류 사회에 일어난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발
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컨대 프랑스혁명을 거친 수 년 동안의 변화는 인류 역사에
서, 시간의 크기가 아니라 그 변화의 내용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처럼
역사의 시간은 사회적 변화와 발전에 따라서 측정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역사의 시간은
인류사회가 발전하듯이 발전하는 시간입니다.

대체로 고대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역사의 시간은 그다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
지 않습니다. 진보와 발전이 전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변화가 대단히 느리게 이
루어져 인류의 삶의 내용이 오랫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나타나기 바로 전에 있었던 봉건 사회에서도 같은 사회 상태가 지역에 따
라 차이는 있지만 1,000여 년 이상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단기간에 실로 엄청날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
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생산력이 나날이 높아 감에 따라서 사회의 전면적 발전이
크게 촉진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시간이 갖는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예로, 동력의 발전이 개인의 시간을 어느 정도 풍부하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처
음, 인류는 자신의 튼튼한 어깨와 팔을 동력으로 이용했습니다. 그 때 인류의 시간은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는 속도만큼의 내용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동물이나 물과 바람을 동력으로 이용하던 시기를 거쳐 석탄과 증기 기관 및
디젤 기관, 나아가 전기와 천연 가스 그리고 원자력 발전을 이용하면서 인류의 시간의 내용
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면, 전에는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는 데 몇 달을 허비했지만
지금은 겨우 몇 시간이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길을 걷고 있을 숱한 시간에 우리는
개인적 생활을 즐기고 사회 활동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노예나 농노로서 모든 시간
을 강제 노동에 바쳐야 했던 민중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이제는 자기 시간을 찾음으로써
역사의 시간은 크게 발전했으며, 발전한 역사의 시간에 힘입어 민중은 사회에 대한 이해와
영향력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회 발전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으며, 이
는 역사의 시간이 발전한다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역사의 시간은 하나의 직선으로 그려지는 발전의 연속일까요?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역사의 시간은 일시적으로 정체 상태에 머물거나 거꾸로 돌아가는 때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역사의 시간은 때로는 산과 바다로 가로막혀 돌아가기도 하고, 어두운 숲과 계곡에
서 헤매기도 하는 먼 여행길과 같은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의 폭팔적인 발전의 시기에도 실은 역사의 발전을 되돌리려는 많은
음모가 끊이지 않았고, 그러한 음모들은 역사의 시간을 지연시키기도 했습니다. 세계 대공
황, 파시즘이 휘두른 폭력과 세계 대전 등은 인류 역사의 명백한 후퇴였습니다. 앞으로도 역
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때마다 어떤 사람들
은 역사의 시간은 시계추처럼 그저 반복될 뿐이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주장을 꺼내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시간은 장기적으로 보면 일시적인 정체와 후퇴를 벗어나 언제나 다시 앞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세계 대전이 끝나자 식민지 상태의 민족들이 민족 해방을 되찾았듯이 정
체와 후퇴를 뒤이어 새로운 발전이 언제나 있게 마련입니다. 한때 정체에 빠지거나 후퇴하
더라도 그것은 이미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정체와 후퇴를 경험한 새로운 내용의 시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의 역류는 언제나 한때일 뿐 다시 아래로 흘러 결국 강을 거쳐 바다로 흘러드는 것과 마
찬가지로 역사의 시간은 더욱 풍부한 내용을 갖추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
다. 그리고 그 속도 역시 전보다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용이 풍부해지는 만큼, 무
거운 물체일수록 가속도가 더욱 큰 것과 같은 이치로 역사의 발전에도 가독도가 붙기 때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