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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해설 / E.H. 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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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지금까지 콜링우드 사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견해의 일부를 설명해 왔는데, 다음에는 거기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위험을 고찰해 보자.

역사 서술에 관한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할 경우 그것을 논리적 귀결까지 끌고 가면, 결국 객관적 역사를 배제하게 되고, 역사는 역사가가 만들어내는 것이 되어버린다. 확실히 한때 콜링우드는(그의 저작의 편찬자가 인용한 한 미발표 노트에서 안 사실이지만) 이런 귀결에 도달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초대 그리스도교도의 관점에서, 티유몽은 17세기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기번은 18세기 영국인의 관점에서, 몸젠은 19새기 독일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어느 것이 올바른 관점이냐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관점이나 그것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유일 가능한 관점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완전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어, 프루드(J.A.Froud ; 영국의 역사가. 1814~1894)의 말처럼 '역사란 어린아이의 글자 맞추기와 같아서 무엇이나 좋아하는 말을 이어가면 된다'는 식으로 되어버릴 것이다.

콜링우드는 '가위와 풀의 역사', 곧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편찬이란 역사관에 반대하는 나머지, 이번에는 역사를 인간이 머리 속에서 엮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위험성에 다가가서,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이것은 내가 앞서 인용한 문장에서 조지 클라크가 암시하고 있지만) 되돌아가는 것이다.

역사에는 의미가 없다는 이론 대신 무한의 의미가 있다는 이론이 주어지고, 어느 쪽 의미가 더 정당하다는 것도 없이 결국 어느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1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제2의 이론도 지지하기 어렵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산의 모양이 달라 보인다고 해서 산은 원래 객관적으로 형태가 없다든가, 무한한 형태가 있다든가 할 수는 없다. 역사상의 사실을 설정할 때에 필연적으로 해석이 작용한다고 해서, 또 현존하는 해석이 어느 것이고 완전히 객관적이 아니라고 해서 어느 해석이든 차이가 없다든가, 역사상의 사실은 원래 객관적 해석에 의해서 다루어질 수 없다든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의 정확한 뜻은 후에 다시 고찰하기로 하자.

그러나 콜링우드의 가설에는 더 큰 위험이 감춰져 있다.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는 시대를 볼 때 반드시 자기 시대의 눈을 통해서 보고, 과거의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현재의 문제에 대한 열쇠로서 연구하는 것이라면, 역사가는 아주 실용주의적인 사실관에 빠져서, 현재의 어떤 목적에 대한 적합성이야말로 옳은 해석의 기준이라고 주장하게 되지 않겠는가? 이런 가설을 받아들이면, 역사상의 사실은 무가 되고 해석이 전부라는 결론에 이른다.

니체는 일찍이 이러한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의견이 틀린다는 것이 곧 그 의견에 대한 반박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생명을 복돋아주고, 생명을 보존하고, 종족을 보존하고, 다시 종족을 창조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박력 있는 신념은 볼 수 없지만, 미국의 실용주의자도 같은 노선을 취하고 있다. 지식이란 모두 어썬 목적을 위한 지식이라는 것이다. 지식의 타당성은 목적의 타당성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이 표명되지 않았다 해도 이에 못지 않은 불안감을 줄 경우는 너무나 허다했다. 나 자신의 연구 분야만 해도 사실을 짓밟아 버린 터무니없는 해석의 예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이상과 같은 위험성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서술에 있어서의 소비에트 학파와 반소비에트학파의 가장 극단적인 저작 몇 구건만 통독해 보면 순수 사실이라는 19세기의 환상적인 안식처가 때로는 그리워지기까지 되는데, 이것도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세기 중엽에 들어선 오늘날,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의무를 어떻게 규정하면 좋을 것인가. 과거 몇 해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문서를 쫓아다니고 문서를 읽고 역사 서술에서도 각주(脚註)에 열심히 사실을 담고, 그리하여 사실이나 문서에 대해서 오만한 태도를 취한다는 비난을 면하려고 애써 왔다.

사실을 존중해야 하는 역사가의 의무는 그 사실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알려져 있는 것이거나 알려질 수 있는 것이거나,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나 기도하고 있는 해석과 어떤 의미에서나 관련된 사실은 남김 없이 그려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을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으로 그리려고 할 경우, 역사가는 1850년 스탤리브리지 웨이크스에서 일어난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반대로 역사의 생명인 해석을 제거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대학 관계자가 아니거나, 대학 관계자라도 전공이 다른 아마추어 여러분들은 흔히 역사가가 역사를 쓸 때의 작업방법을 나에게 묻곤 한다.

아마도 극히 상식적으로는, 역사가는 그 점에 있어서 명확히 구별할 수 있는 두 가진 단계 또는 시기로 갈라놓고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즉, 우선 역사가는 사료(史料)를 읽고 노트 가득히 사실을 기록하는 데 긴 준비기간을 소비한 다음, 이 사료를 옆으로 밀쳐놓고는 노트를 들고 단숨에 책을 써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로선 납득이 가지 않고, 또 있을 법도 하지 않은 광경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하면, 내가 주요 사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조금만 읽기 시작하면 그만 손끝이 근질근질해져서 그대로 쓰기 시작하게 된다. 이것은 쓰기 시작할 때뿐만이 아니다. 어디에서나 그렇게 된다. 아니, 어디에서나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읽는 것과 쓰는 일이 동시에 진행된다. 읽어나가면서 써 보태고, 깎고, 고쳐 쓰고 제거하는 것이다. 또 읽는 것은 씀으로써 인도되고, 방향이 잡히고, 풍부해진다.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을 한층 더 깊이 잘 알게 되고, 내가 발견한 것의 의미나 중요성을 한층 더 이해하게 된다.

역사가들 중에는 펜이나 종이나 타자기를 쓰지 않고 이런 초고를 모두 머릿속에서 끝내버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마치 장기판이나 장기말에 의지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장기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러운 재능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흉내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바에 의하면, 역사가라는 이름을 가질 만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경제학자가 '인푸트(in put)' 와 '아웃푸트(out put)' 라고 부르는 두 가지 과정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고 실제 있어서는 이것은 하나의 과정의 두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양자를 분리하려고 한쪽을 다른 쪽 위에 놓으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두 가지 이단(異端)설 중의 하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즉, 의미도 중요성도 없는 풀과 가위의 역사를 쓰거나, 아니면 선전소설이나 역사소설을 써서 역사와는 무관한 어떤 종류의 문서를 장식하기 위해 다만 과거의 사실을 이용하거나 하는 둘 중의 한 가지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 사이의 관계를 음미해 보면, 우리는 두 가지 난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항해하는 듯한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가진 난관이란 역사를 사실의 객관적 편찬이라 생각하고 해석에 대한 사실의 무조건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지지하기 어려운 이론의 난관과, 역사란 역사상의 사실을 밝히고 그것을 해석과정을 통하여 정복하는 역사가의 주관적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또한 지지하기 어려운 이론을 말하는데, 즉 역사의 중심은 과거에 있다는 견해와 역사의 중심은 현재에 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곁으로 나타난 것만큼 불안정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실과 해석이라는 이상과 같은 대립이 강연을 통해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서 특수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 경험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Edward Hallett Carr;What is History에서

 

 

이해와 감상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은 1961년에 있었던 케임브리지대학의 연속강연에서 발표된 것으로서 후에BBC방송이나 주간지 리스너(Listner)를 통해서도 일반에게 보급된 바 있다. 단행본으로서는 먼저 1961년에 맥밀란사에서 출간되었다.

1. 근대 역사학의 확립자 랑케는 "역사가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djEJ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그 지상과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역사적 사실들. 그 자체에 큰 비중을 두었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되는 역사인식론이 금세기에 크로체(Benedetto Croce)나 콜링우드(Robin G. Collingwood)에 의해 피력되었었다. 즉 "모든 역사는 현대의역사(contemporary history)다" "모든 역사적 판단을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이기때문에 모든 역사에는 현대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아무리 먼 시대의 것이라고 할지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 및 현재의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서 메아리 칠 따름이다."라는 글들에서 보듯이 역사랑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E.H. 카는 그러나 중심을 과거에 두는 역사관과 중심을 현재에 두는 역사관의 중간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과는 평등의 관계에 있는 것이며 말하자면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의 관계에 있다.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오, 억압적인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형성하고 자기의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고 하는 끈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다. 요컨대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하다, 사실을 못 가진 역사가는 뿌리를 박지 못한 무능한 존재이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없는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역사란 결국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카의 첫째 해답인 것이다.

2. 사회와 개인은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필요한 보충관계에 있다. 역사가도 하나의 개인이다. 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하나의 사회현상이며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이다. 바로 이러한 자격으로 역사가는 역사적 과거의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부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 동시에 그 입장 자체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카의 다음과 같은 언급들은 의미심장하다. 즉,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요컨대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와의 대화인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3.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의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카는 역사를 과학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과학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견해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카의 반론은 이렇다.

 

첫째, 역사는 특수와 개별을 취급하고 과학은 일반적인 것, 보편적인 것을 취급한다. 고로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즉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즉, 어떤 한 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셋째, 역사는 예언할 수 없다. 그러나 소위 과학적인 법칙이란 것도 하나의 경향성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個別的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 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넷째, 역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과학 분야도 어느 정도까지는 지각하는 주체(인간)와 지각되는 객체(자연력)간의 상호관계와 의존관계를 내포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내포한다. 그러나 역사와 종교와의 관계에서, 진지한 역사가라면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을 수는 있겠지만 낮시간을 연장시킨다거나 하는 구약성서식의 신을 믿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 역사와 도덕과의 관계에서, 역사가는 과학자와는 달리, 취급하는 자료의 성질상 도덕적 판단의 문제 속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것이 곧 역사가 가치라고 하는 초역사적인 규준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많은 원인의 복합체를 취급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기가 작성한 여러 원인의 목록을 앞에 놓고서는, 그것을 질서지여야 하겠다. 제 원인의 상호관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거기에 상하관계를 설정해야 하겠다. 혹은 "결국에 가서는""궁극적으로는" 어떤 원인과 어떤 종류의 원인을 최종 원인, 즉 모든 원인 중의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지어야 하겠다는 직업적인 강박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다.

결국 역사란 역사적 의의라는 견지에서 행하여지는 선택과정이다. 역사가는 다수의 인과연쇄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의의있는 것들을, 아니 그것들만을 빼내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 의의에 대한 규준이 되는 것은 자신의 합리적 설명과 해석의 원형 속에 인과연쇄를 맞추어 넣는 역사가의 능력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은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한 것이었다. 훌륭한 역사가들은 역시 미래라는 것을 뼈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이다.

5. 19.세기의 사상가들은 흔히 역사의 진보에는 확실한, 명백히 규정 할 수 있는 목표가 있다는 생각을 자명한 이치로 삼아 왔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념은 부당하고 무용하다. 진보를 믿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즉, 전진과정에 있어서만 비로소 규정될 수 있고 그 유효성도 달성과정에 있어서만 비로소 증명될 수 있는 그러한 목표를 향한 무한한 진보-즉 필요성이나 상징에 따른 한계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역사는 과거의 제사건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제 목적과의 대화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역사가가 직면한 난관은 인간 본성의 한 반영이다. 갓 태어난 유아기라든가 아주 고령인 경우는 아마 다르겠지만, 인간이란 결코 완전히 환경에 휘말려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환경에 순종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에 인간은 또 환경에서 완전히 독립된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주인도 아니다.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주제의 관계다.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고, 군림하는 주인도 아니다.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는 기브 앤드 테이크의 평등한 관계이다.

역사가가 실제로 생각하고 쓰고 할 때의 자기 자신의 작업태도를 조금만 반성해 보면 알 일이지만, 역사가는 자신의 해석에 따라서 자신의 사실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사실에 따라서 자신의 해석은 만들어내는 연속적인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쪽을 다른 쪽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가는 사실의 일시적 선택과 일시적 해석으로(이 해석에 입각하여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일시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출발하는 것이다. 일이 진척됨에 따라 해석도, 사실의 선택과 정리도, 그 상호작용을 통하여 거의 무의식적인 미묘한 변화를 입게 된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므로, 이 상호작용은 또한 현재와 과거의 상호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을 소유하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도 없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 역사가가 없는 사실은 생명도 없고 의미도 없다.

 

이러하여 '역사란 무엇이가?'에 대한 나의 최초의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되겠다. 역사란 역사사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참고 자료

카(1892~1982)

영국의 정치가, 역사학자.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였다. 1916년 외무성에 들어간 적이 있고, 그 후에는 웨일스대학 국제정치학 교수(1936~1946)를 지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정보성 외교부장(1939~1940), 런던 타임스 논설위원(1941~1945)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1)에서 소비에트형과는 다른, 자유와 평등을 기조로 하는 사회주의의 실현을 시사하는 한편, 아시아의 민주주의운동을 유럽인들도 이해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밖에도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1961) 《칼 마르크스 Karl Marx》(1934) 《위기(危機)의 20년 Twenty Years’ Crisis》(1939) 《서구세계에서의 소비에트의 충격 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1947) 《볼셰비키 혁명 The Bolshevik Revolution》(1958) 등 많은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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