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언어의 과학적 용법과 문학적 용법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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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과학적 용법과 문학적 용법

 본문

 국화 : [식] 국화과에 딸린 관상용으로 심는 다년생 풀. 줄기는 조금 목질성을 띠었고 보통 높이는 1m 쯤 됨. 잎은 어긋배겨 붙었고 난형이며 결각 또는 톱니가 있음. 꽃은 두상화로 테두리는 설상화관, 가운데는 관상화관으로 대개 가을철에 핌. 원예 품종은 수백 종이나 되는데 꽃이나 꽃 모양이 여러 가지임. 관상용 외에 잎이나 꽃을 먹는 종류도 있음. 

 

   이것은 어느 국어 사전에 나오는 국화의 정의이다. 이 글은 우리에게 국화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 순전히 정보 전달을 목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 쓰인 낱말이나 문장은 하나같이 무미 건조하다. 기호 자체는 무미 건조할수록 본래의 사명을 다하는 법이다. 국화에 대한 과학적 진술은 대개 의의 글과 비슷할 것이다. 국화에 대해서는 위와 비슷한 말만 할 수 있을 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애송하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틀림없이 국화에 대한 글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국어 사전에서 정의한 ‘국화과에 딸린 다년생 풀’ 에 이런 의미가 주어질 수 있으리라고 서정주 이전에 누가 꿈이라도 꾸었을 것인가! 그런데도 얼마간의 정신적 성숙도를 가진 사람이면 이 전혀 새롭게 첨가된 의미를 옳다고, 아주 멋있게 옳다고 시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 새로운 의미가 옳다고 시인된다는 것은 그것이 그냥 첨가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숨어 있던 것을 발견해낸 것이라는 뜻처럼 된다. 그러나 국화에 그런 의미가 정말로 숨겨져 있었다면, 그래서 서정주의 발견 이후론 그것이 국화의 일반적 의미의 일부가 되었다면, 국어 사전과 식물학 책은 다시 고쳐 써야 할 것이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정주 시의 특수한 의미이고 보편적· 과학적 의미는 아니다. 

 

  이처럼 말은 문학에서 사용할 때 어느 경우나, 어느 날 말이나 다 그렇게 될 수는 없어도, 상당한 분량의 말은 본래 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의미뿐 아니라 그 의미에다 전혀 뜻밖의 특수한 의미, 또는 보통 느끼긴 하면서도 꼭  집에서 말할 수 없던 의미, 사전적 의미에 충돌하는 의미, 합리성을 구하는 실생활에서 멀리하려고 하는 미술적· 미신적 의미 등등이 어울려서 단지 그 한번 그 글 속에서 만 통하는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 문학적 언어 사용의 큰 특징이다. 물론 문학적 언어가 모두 그렇게 새로운 의미들의 연속은 아니다. 상당한 양의 말의 표시적 사용도 없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과학적· 학술적 서술에서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 특수하고도 개별적인 의미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문학이다. 한 마디 말에다 여러 의미를 한꺼번에 포함시키려는 이러한 말의 사용법을 철학적으론 내연(內延, connotation)이라 하지만 우리는 쉽게 ‘말의 함축적 사용’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상섭, '문학의 이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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