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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 봄 -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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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 봄 -

윤선도(尹善道)

춘사(春詞)

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해 비췬다

배떠라 배떠라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江村) 온갓 고지 먼 비치 더옥 됴타

날이 덥도다 믈 우희 고기 떳다

닫드러라 닫드러라

갈며기 둘식세식 오락가락 하느고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낫대는 쥐여잇다 탁쥬ㅅ병(濁 甁) 시럿나냐

동풍(東風)이 건듣 부니 믉결이 고이 닌다

돋다라라 돋다라라

동호(東胡)를 도라보며 셔호(西湖)로 가쟈스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압뫼히 디나가고 뒷뫼히 나아온다

우는 거시 벅구기가 프른 거시 버들숩가

이어라 이어라

어촌(漁村) 두어 집이 냇속의 나락들락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말가한 기픈 소희 온갇 고기 뒤노나다

고운 볃티 쬐얀는듸 믉결이 기름갓다

이어라 이어라

그믈을 주어듀라 낙시를 노흘일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탁영가(濯영歌)의 흥(興)이 나니 고기도 니즐로다

셕양(夕陽)이 빗겨시니 그만하야 도라가쟈

돋디여라 돋디여라

안류(岸柳) 뎡화( 化)는 고비고비 새롭고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삼공(三公)을 불리소냐 만사(萬事)를 생각하랴

방초(防草)를 발와 보며 난지(蘭芷)도 뜨더보쟈

배셰여라 배셰여라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시른 거시 므스것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갈 제는 바뿐이오 올 제는 달이로다

취(醉)하야 누얻다가 여흘 아래 나리려다

배매여라 배매여라

락홍(落紅)이 흘러오니 도원(桃源)이 갓갑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인세홍딘(人世紅 )이 언메나 가렷나니

낙시줄 거더노코 봉창( 窓) 이 달을 보쟈

닫디여라 닫디여라

하마 밤들거냐 쟈규(子規)소리 말게 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나믄 흥(興)이 무궁(無窮)하니 갈 길흘 니젓땃다

내일(來日)이 또 업스랴 봄밤이 몃덛새리

배브텨라 배브텨라

낫대로 막대삼고 시비(柴扉)를 차자보쟈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부 생애(漁父生涯)는 이렁구리 디낼로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윤선도

연대 : 조선 효종 때

갈래 : 평시조, 연시조(전 40수), 정형시

성격 : 강호한정, 자연친화적

어조 : 속세를 잊은 여유 있는 목소리

심상 : 시각적, 청각적

표현 : 초장과 중장, 중장과 종장 사이에 고려 가요처럼 후렴구가 있음

대구법, 반복법, 의성법, 원근법 등의 다양한 표현법을 사용함.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림(특히 춘사4)

선명한 색채 대비를 통해 자연의 모습을 그려 냄

구성 : 계절의 흐름에 따른 전개

고기잡이를 떠나는 광경 - 고기잡이를 떠나는 어부의 모습과 흥겨움

소박한 어옹의 생활 - 소박하고 욕심 없는 어옹의 생활과 안분지족의 정서

속세를 떠나 자연과 동화된 생활 - 자연에 동화된 생활에서 느끼는 속세에 대한 거부감

은유를 써서 정계에 대한 작자의 근심하는 마음 - 정계에 대한 근심과 자연을 예찬하는 마음

제재 : 어부의 생활

주제 : 사계절의 자연 경치를 즐기는 강호의 한정,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여유와 어부의 흥취[여기서 어부는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하는 업으로 하는 '어부'가 아니고 진짜 어부가 아니면서 어부처럼 지내는 사람으로 속세를 떠나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결국 '어부사시사'의 '어부'는 정계 또는 세상의 속사를 잊어 버리고 강호에 묻혀 지내며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이던 사대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부가의 형성과정 : 어부가(漁父歌, 고려, 작자 미상) → 어부가(漁父歌, 조선, 이현보 개작)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조선 후기, 윤선도)

= 이현보의 '어부가'는 화자가 세속의 삶에 대한 욕구를 떨쳐 버리지 못하여 강호의 즐거움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것과 대비되어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화자는 강호에서 누리는 나날의 넉넉함과 아름다움에 집중되어고양된 기쁨과 충족에서 오는 흥겨움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인다.

어부가

어부가

어부사시사

고려/작자 미상

조선 중종/이현보 개작

조선 효종/윤선도

장가 11장(악장가사)

단가 10장(인멸)

9장(장가)┐개작

5수(시조)┘(농암집)

춘하추동 각 10수 총40수 시조

은일적/도피적/딱딱함

사실적/현실감/유려함

어부 생활 동경

어부 생활 사실적으로 그림

특징 : 각 작품은 초장과 중장, 중장과 종장 사이에 여음이 있고, 중장과 종장 사이의 여음은 모두 같으나, 초장과 중장 사이의 여음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모든 수에서 동일한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와 각 수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배 떠라 배 떠라'와 같은 여음이 시조 형식 사이에 삽입되어 있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는 노를 저을 때 나는 소리를 그 음을 살려 한자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각 계절에 맞추어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후렴구가 흥취를 돋으며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고, 다양한 표현 기교(대구, 반복, 의성법)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어미 활용과 어휘 선택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있다. 그리고 선명한 색채 대비를 통해 자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출전 : 고산유고

내용 연구

고기잡이를 떠나는 광경

春詞(춘사) 1

앞포구에 안개가 걷히고 뒷산에 해가 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흥취를 돋우고, 사실감을 부여하는 후렴구임]

썰물은 거의 빠지고 밀물이 밀려온다[동적인 이미지]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찌그덩 찌그덩 어여차'로 하던 의성어에 해당 - 흥취 조성과 사실성 부여)

강촌[물가 마을 - 화자가 있는 보길도]에 온갖 꽃[백화만발(百花滿發)]이 먼 빛으로 바라보니 더욱 좋다[기본형은 '둏다'이고, 당시에 '좋다'는 '깨끗하다'임] - 강마을의 풍경

 

날씨가 덥도다 물 위에 고기 떴다[수면 위로 고기가 떠오르는 봄의 정경]

닻 들어라 닻 들어라[여음, 조흥구]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 하는구나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낚싯대는 쥐고 있다 탁주병[풍류적 태도] 실었느냐 - 출항을 준비하는 상황

春詞(춘사) 3

동풍이 잠깐 부니 물결이 곱게 이는구나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쪽호수(東湖)를 돌아보며 서쪽호수(西湖)로 가자꾸나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온다

 

春詞(춘사) 4

우는 것이 뻐꾸기[청각, 동적 이미지]인가 푸른 것이 버들숲[시각적, 정적 이미지]인가[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심상이 짝을 이루어 한가롭고 평화로운 어촌 마을의 봄경치가 잘 나타나 있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여음, 조흥구]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나왔다 들어갔다 - 보였다 안 보였다]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노를 저을 때 나는 마찰 소리와 어부의 힘쓰는 소리로 볼 수 있으며 마찰 소리를 의성화한 것이다 ]

맑은 깊은 연못[沼]에 온갖 고기 뛰논다[이 시의 시상이 집중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온갖 고기가 뛰노는 것'에서 약동하는 봄의 생기를 느낄 수 있다. / 봄의 생동감, 역동적 이미지] - 어촌의 생동감이 넘치는 봄 풍경

 

고운 볕[고운 햇볕] 쬐이는데 물결이 기름 같다[햇빛에 반짝이는 수면을 개성적으로 표현]

배 저어라 배 저어라[여음, 조흥구]

그물을 던져 둘까 낚싯대를 놓으리까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탁영가[굴원의 어부가(漁父詞)에 있는 노래로 '탁영'은 갓끈을 씻는다는 뜻이다.]에 흥이 나니['탁영가에 흥이 나니'라는 말에는 시인이 둘러싼 환경에 더없이 맑고 깨끗하여 만족스러워하는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고기도 잊겠도다[고기잡이도 잊을 만큼 평화롭고 풍요로운 봄의 정취를 그림] - 맑고 아름다운 봄의 강과 흥취

 

석양이 기울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물가의 버들 꽃은 고비고비 새롭구나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정승도 부럽잖다 만사(萬事)를 생각하랴

 

방초(芳草)[향기롭고 꽃다운 풀]를 밟아보며 난지(蘭芷)[난초와 지초]도 뜯어 보자

배 세워라 배 세워라

일엽편주[나뭇잎처럼 작은 배]에 실은 것이 무엇인가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갈 때는 안개더니 올 때는 달이로다[대구법]

 

취(醉)하여 누웠다가 여울 아래 내려가려다가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떨어진 꽃잋이 흘러오니 신선경(神仙境)[무릉도원 - 이상향, 선경]이 가깝도다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인간의 홍진[붉은 티끌 - 속세의 더러움] 얼마나 가렸느냐 - 속세를 떠난 자연에서의 삶

낚싯줄 걸어 놓고 봉창의 달을 보자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벌써 밤이 들었느냐 두견 소리 맑게 난다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남은 홍이 무궁하니 갈 길을 잊었더라

 

내일이 또 없으랴 봄밤이 그리 길까 / 봄밤이 얼마나 될까

배 붙여라 배 붙여라[욕심 없는 - 화자 자신의 객관적 상관물]

낚싯대로 막대 삼고 사립문을 찾아보자[밤이 되어 귀가하는 화자의 상황]

삐그덕 삐그덕 어기여차

어부의 평생[어부로 살아가는 한 평생]이란 이러구러[이럭저럭, 일이나 사건이 진행되는 모양] 지낼러라 - 어부로서의 유유자적한 삶

압개예 : 앞 강변에. 앞 개울에

배떠라 : 배 띄워라. '떠라'는 '띄워라'의 오기인 듯함

지국총 : 닻을 감을 때 나는 소리. '어부가'의 후렴으로 쓰임.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의성화.

어사와 : 배를 젓는 소리의 의성어. 엇샤. 어와. 이것을 한자로 쓴 것은 그 음을 차용하였을 뿐 아무 뜻이 없다.

닫드러라 : 닻을 들어라.

건듣 부니 : 얼핏 부니. 문득 부니.

돋다라라 : 돛을 달아라.

이어라 : 흔들어라. 노를 저어라. 배를 저어라

돋디여라 : 돛을 내리어라.

뢰택양거 : 뇌택은 연못이름.

뱃대를 : 돛대를.

슈됴가 : 뱃노래.

셩듕 :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뱃노래

만고심 : 뱃노래 가운데 배어 있는 옛 사람들의 풍류

빗겨 있다 : 비스듬히 걸려 있다.

벽슈앵셩 : 푸른 나무에서 들리는 꾀꼬리 소리

몰괘 : 모래

둠 : 뜸. 풀로 거적처럼 엮음 물건.

모괴를 : 모기를

창승 : 쉬파리

간변유초 : 물가에서 자라난 그윽한 풀

구실 : 직분. 맡아 보는 일. 할 일

물외 : 속세의 바깥. 세상 물정에서 벗어난 것

사시흥 : 사계절의 흥겨움

슈국 : 강촌. 물이 많은 곳. 여기서는 보길도

용여하쟈 : 마음껏 놀자. 한가롭게 노닐자.

백빈홍료 : 흰 마름 풀과 붉은 여뀌

바애니 : 눈부시게 빛나니.

은슌옥척 : 크고 좋은 물고기

딜병 : 질흙으로 구워 만든 술병

명색 : 저물어 가는 빛. 황혼.

쳥흥 : 고상한 흥취. 맑은 흥겨움

빋견는데 : 비스듬히 가로 걸려 있는데

봉황루 : 임금이 계신 궁궐

셔풍딘 : 서풍으로 날아드는 먼지

숑간셕실 : 소나무 숲 사이 돌로 지은 작은 건물

주대 : 줄과 대. 낚시줄과 낚시대.

동뎡 : 중국 호남성에 있는 소상강과 동정 호수

바탕 : 바다. 일터. 어장.

곧다오면 : 낚싯밥이 좋으면. 미끼가 좋으면

만경유리 : 유리같이 잔잔하고 아름다운 바다. 겨울바다

천텹옥산 : 겹겹이 쌓인 구슬같이 아름다운 산. 겨울산

혜여본고 : 생각해 보았던고

자자뎓다 : 자욱하게 서려 있다.

아압디 : 거위와 오리가 모여 사는 못

초목참 : 초목까지도 부끄러움을 당한 치욕

단애취벽 : 단풍든 낭떠러지와 푸른 절벽

화병 : 그림 병풍.

파랑셩 : 파도 소리

딘휜 : 세속의 시끄러움

챵쥬오도 : 강호에서 우리들이 즐겨하는 일

손 고븐 제 : 손꼽아가며 날을 보낼 적에

연식 : 편히 쉼

블근 곳 : 쌓인 눈이 석양 놀에 반사되어 붉게 보이는 것

셜월 : 눈 내린 밤에 비치는 달

숑창 : 소나무가 서 있는 창문.

비겨 잇쟈 : 비스듬히 앉아 있자꾸나.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을 알기 위해서는 '어부(漁夫)'아닌 '어부(漁父)'의 생활이 멋스럽고도 활달하게 그려진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어부(漁父)'는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사람으로 '어부(漁夫)'는 생계를 위해서 고기를 잡는 사람이지만, '어부(漁父)'는 강태공처럼 자연을 즐기고 세월을 낚는 은사를 나타내는 말로 '어옹(漁翁)'과 같이 쓰이고, 취미로 고기잡이를 하는 풍류객으로 보면 된다.

일설에 의하면 태어날 때 '죽은 용'을 태몽으로 하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집안에서는 일생이 복잡하겠구나 했다고 하는데 사실 정치적으로 그는 복잡한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정치적으로 기복이 심했던 윤선도가 정계와 멀리하면서 자연 속에 묻혀 살고자 했던 열망이 담긴 작품이다. 물론 윤선도는 끊임없이 관직과 인연을 맺으면서 유배와 추방을 거듭 당했다. 그런 그의 일부 삶이 담긴 작품으로 이 작품은 고려 때부터 전하여 온 어부사를 중종 때 이현보가 어부가 9장으로 개작하였고, 이것을 다시 고산이 후렴구만 그대로 넣어 40수로 고친 것이다. 이현보의 어부가에서 시상을 빌어 왔다고 하나, 후렴만 떼고 나면 완전한 3장 6구의 시조 형식을 지니면서, 전혀 새로운 자기의 언어로써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 시조이다.

 

봄 아침에 어부들이 고기잡이 배를 띄우고 강촌을 떠나가는 광경을 노래한 것이다. 앞 포구에는 안개가 걷히고, 뒷산에는 햇살이 비치며, 밤 사이의 썰물이 물러가고 밀물이 밀려온다. 생기가 돋고 희망에 넘치는 분위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윽고 배가 바다로 밀려 나가자 멀리 보이는 강촌의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봄이 돌아오자 산과 들은 파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싱그렇고 맑은 대기 속에서 제일 먼저 우는 것은 뻐꾸기다. 이 뻐꾸기는 신록이 한창 우거질 때까지 계속해서 우짖는다. 어촌의 춘경을 노래하되, 첫 구절에 뻐꾸기를 등장시켜 어촌(그것은 농촌이라도 좋다의 봄 풍경을 노래한 것은 작가만이 나타낼 수 있는 예리한 감각이다. 특히 문장에 도치법을 써서 표현의 모를 더욱 더 살려 놓았다. 그리고, '안개 속에 나락들락하는 어촌의 두어 집','온갖 고기가 뛰노는 맑은 소' 등 티끌 세상과는 완전히 절연한, 선경과도 같은 어촌으로 부각해 놓아,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끝 구절 첫마디에서 '맑은'으로 하지 않고 '말가한'이라고 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심화 자료

'어부사시사'의 구성상 특징

'어부사시사'는 보길도의 춘하추동 각 계절의 경치를 노래한 것으로 각 작품에는 계절마다 펼쳐지는 어촌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부 생활의 흥취가 여음(餘音)과 더불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초장과 중장 다음에 여음이 들어 있는데, 중장 다음에 나오는 여음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는 전편(全篇)이 일정하나, 초장 다음의 여음은 각 계절의 10수가 모두 다음과 같다.

연강첩장도시

 

'연강첩장'의 뜻은 안개 낀 강과 첩첩이 겹친 산봉우리로 중국 북송 때 왕 진경이 그린 '연강첩장도'를 보고 소 식이 찬으로 쓴 시. 그 시에 '강위에는 수심이 깊었고 산은 첩첩인데, 공중에 높이 뜬 푸른 봉우리는 구름인가 운애인가'라는 구절이 있다. 소 식은 그림 속의 풍경을 시로 나타냈고 마침내 이 아름다운 그림 속의 사람이 되어 산속으로 돌아가자는 감상으로 이 시를 끝맺었다.

천년노도

 

오 자서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고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 자서는 춘추 시대 때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원이다. 아버지와 형이 평왕에게 죽임을 당하자 오나라로 가 오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쳤다. 이 때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고 그의 시체를 300번이나 매질했다. 그 뒤 오나라가 월나라를 치자, 월왕 구천이 용서를 청하여 옴으로 오왕부차는 이를 허락하였다. 그러나 자서는 이의 불가함을 충간하다가 도리어 재상의 참소로 자결하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이에 오 자서는 사인에게 이르기를 '내 눈을 도려 내어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 놓아라. 훗일 월나라가 쳐들어와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겠노라.'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오왕은 그의 시체를 가죽 부대에 넣어 오강에 띄워 버렸다. 이 때에 강물이 노하여 큰 파도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9년 뒤 그의 말대로 월나라에 의하여 오나라는 멸망하였다. '천년노도'란 여기에서 생긴 말로 오 자서의 충성심을 이르는 말이다.

어복 충혼

 

중국 춘추 시대에 초의 굴 원이 지은 어부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굴원의 본명은 평으로 초나라 희왕때 삼려대부가 되어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러나 참소로 인하여 왕이 멀리하므로 '이소'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뒤 경양왕 때에 다시 참소를 받아 양자강변으로 유배되었다. 이 곳에서 어부사를 지어 충성심을 밝히고 멱라수에 빠져 목숨을 끊었다. 그의 어부사 속에 '차라리 상수에 가서 강물에 몸을 던져 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하여 이 결백한 몸에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둘러쓴단 말가'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어복 충혼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충신의 절조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1651년(효종 2) 윤선도(尹善道)가 지은 단가(短歌). 보길도(甫吉島)를 배경으로 지은 40수의 단가로, ≪고산유고 孤山遺稿≫에 실려 전한다. 이 노래는 작자와 제작연대 미상인 고려 후기의 〈어부가 漁父歌〉(이 계통의 노래 가운데 현전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됨)와 직접적 전승관계에 놓인 이현보(李賢輔)의 〈어부사 漁父詞〉에 그 창작 연원이 맞닿아 있다. 작자 미상의 〈어부가〉는 ≪악장가사 樂章歌詞≫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현보의 〈어부사〉는 〈어부가〉를 창작적으로 개작한 것이다.

춘하추동에 따라 각 10수씩, 총 40수로 되어 있고, 작품마다 여음(餘音)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여음은 출범에서 귀선까지의 과정을 조리정연하게 보여준다. 즉, 먼저 배를 띄우고, 닻을 들고, 돛을 달아놓고 노를 저으며 노래를 읊는다. 그러다가 돛을 내리고 배를 세우고, 배를 매어 놓고, 닻을 내리고, 배를 뭍으로 붙여놓는 것으로 여음이 짜여 있다.

우리의 고전시가에 ‘어부가’ 계열의 시가가 상당수 전해지는데, 고산의 〈어부사시사〉가 지닌 시적 감각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되어 왔다. 〈어부가〉와 〈어부사〉는 모두 자연을 관조하고 그것을 완상하며 즐기는 관찰자 시점, 혹은 유람자 관점으로 어부생활을 읊은 것이다. 이들 작품이 표방하는 어부는 고기잡이를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 진짜 어부가 아니라 강호자연을 즐기는 사대부계층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부생활을 통한 생계유지 혹은 생명의 위협 같은 것은 작품에 나타나지 않는다.

윤선도도 이러한 어부가 계열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가어옹(假漁翁)의 입장에서 〈어부사시사〉를 재창작하였기에 관찰자 혹은 강호한미를 누리는 사람으로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연에서 추상된 관념의 내포, 즉 의미를 찾는 탐구자적 관심도 상당히 드러낸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는 아름답게 파악된 자연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서경 지향성이 상당히 높다.

“우는거시 벅구기가 프른거시 버들숩가/이어라 이어라/漁村(어촌) 두어집이 냇속의 나락들락/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말가한 기픈소희 온갇고기 뛰노나다.”(春詞, 제4연)

여기서 ‘뻐꾸기’, ‘버들 숲’, ‘어촌(漁村) 두어 집’, ‘맑고 깊은 소(沼)’, ‘온갖 물고기’ 등의 시어는 구상적 자연을 형상할 뿐, 그것이 시적 화자인 ‘나’에게 뭐 어떻다는 심정의 표출 따위는 아예 배제되어 있다.

또 “人間(인간)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옥됴타.”(秋詞, 제2연)와 같이, 거기에는 자연의 아름다운 서경만이 존재하고 인간의 존재는 부정되는 듯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孤舟侶笠(고주사립)에 興(흥) 계워”(冬詞, 제7연) 앉아 있는 화자와 마주치기도 한다.

화자는 무심(無心)의 낙(樂)·흥(興)에 젖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강호자연에 노니는 한가한 ‘흥’이 현실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니어서, 이러한 생활 역시 임금의 은혜로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윤선도는 〈산중신곡 山中新曲〉 중의 〈만흥 漫興〉을 이 작품의 여음(이때의 여음은 가창방식상의 여음이다.)으로 채택하여 각 편의 끝에 노래부르게 하였다. 즉 “江山(강산)이 됴타한들 내分(분)으로 누얻나냐/님군 恩惠(은혜)를 이제 더옥 아노이다/아무리 갑고쟈 하야도 하올일이 업세라”라는 〈만흥〉의 여음이 〈어부사시사〉의 가창 끝에 놓임으로써, 이 작품에 보이는 현실과의 단절이 참다운 의미의 단절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한다. 결국,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 사회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하고 있다 하겠다.

≪참고문헌≫ 尹孤山 硏究(李在秀, 學友社, 1955), 尹善道作品集(尹星根, 螢雪出版社, 1977), 韓國古典詩歌의 形象性(崔珍源, 成均館大學校 大東文化硏究院, 1988), 假漁翁(崔珍源, 成均館大學校論文集, 1960), 〈漁父四時詞〉의 終章과 變異形(金興圭, 民族文化硏究 제15집,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80), 〈漁父四時詞〉에서의 ‘興’의 性格(金興圭, 한국고전시가작품론, 集文堂, 199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윤선도(尹善道)

 

1587(선조 20)∼1671(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시조 작가.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약이(約而),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유심(唯深)의 아들이며,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유기(唯幾)의 양자다. 유기는 유심의 동생으로 큰댁에 입양되었고, 선도는 유기에게 입양되어 가계를 이었다.

당시 금서(禁書)였던 『소학 小學』을 보고 감명을 받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18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20세에 승보시(陞補試)에 1등 했으며 향시와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였다.

1616년(광해군 8) 성균관 유생으로서 이이첨(李爾瞻)·박승종(朴承宗)·유희분(柳希奮) 등 당시 집권 세력의 죄상을 격렬하게 규탄하는 『병진소 丙辰疏』를 올렸다. 이로 인해 이이첨 일파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견회요 遣懷謠』 5수와 『우후요 雨後謠』 1수 등 시조 6수를 지었다.

1년 뒤 경상남도 기장으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이이첨 일파가 처형된 뒤 풀려나 의금부도사로 제수되었으나 3개월만에 사직하고 해남으로 내려갔다. 그 뒤 찰방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1628년(인조 6) 별시문과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해 봉림대군(鳳林大君)·인평대군(麟坪大君)의 사부(師傅)가 되었고, 사부는 관직을 겸할 수 없음에도 특명으로 공조좌랑·형조정랑·한성부서윤 등을 5년간이나 역임하였다. 163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예조정랑·사헌부지평 등을 지냈다. 그러나 1634년 강석기(姜碩期)의 모함으로 성산현감(星山縣監)으로 좌천된 뒤, 이듬해 파직되었다.

그 뒤 해남에서 지내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항복하고 적과 화의했다는 소식에 접하자, 이를 욕되게 생각하고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甫吉島)의 수려한 경치에 이끌려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착한 그 일대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격자봉(格紫峰) 아래 집을 지어 낙서재(樂書齋)라 하였다. 그는 조상이 물려준 막대한 재산으로 십이정각(十二亭閣)·세연정(洗然亭)·회수당(回水堂)·석실(石室) 등을 지어 놓고 마음껏 풍류를 즐겼다.

그러나 난이 평정된 뒤 서울에 돌아와서도 왕에게 문안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1638년 다시 경상북도 영덕으로 귀양갔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이로부터 10년 동안 정치와는 관계없이 보길도의 부용동과 새로 발견한 금쇄동(金鎖洞)의 산수 자연 속에서 한가한 생활을 즐겼다.

 

이 때 금쇄동을 배경으로 『산중신곡 山中新曲』·『산중속신곡 山中續新曲』·『고금영 古今詠』·『증반금 贈伴琴』 등을 지었다. 그 뒤 1651년(효종 2)에는 정신적 안정 속에서 보길도를 배경으로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를 지었다.

다음해 효종의 부름을 받아 예조참의가 되었으나 서인의 모략으로 사직하고 경기도 양주 땅 고산(孤山)에 은거하였다. 마지막 작품인 『몽천요 夢天謠』는 이곳에서 지은 것이다.

1657년, 71세에 다시 벼슬길에 올라 동부승지에 이르렀으나 서인 송시열(宋時烈) 일파와 맞서다가 삭탈관직되었다. 이 무렵 『시무팔조소 時務八條疏』와 『논원두표소 論元斗杓疏』를 올려 왕권의 확립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1659년 효종이 죽자 예론 문제(禮論問題)로 서인파와 맞서다가 패배해 삼수에 유배되었다가, 1667년 풀려나 부용동에서 살다가 그곳 낙서재에서 85세로 죽었다.

정치적으로 열세에 있던 남인 가문에 태어나서 집권 세력인 서인 일파에 강력하게 맞서 왕권 강화를 주장하다가, 20여 년의 유배 생활과 19년의 은거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화려한 은거 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그의 탁월한 문학적 역량은 이러한 생활 속에서 표출되었다.

그는 자연을 문학의 제재로 채택한 시조 작가 가운데 가장 탁월한 역량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문학적 특징은 자연을 제재로 하되 그것을 사회의 공통적 언어 관습과 결부시켜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개성적 판단에 의한 어떤 관념을 표상하기 위해 그것을 임의로 선택하기도 한 데에 있다.

또, 대부분의 경우 자연은 엄격히 유교적인 윤리 세계와 관련을 맺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연과 직접적인 대결을 보인다든가 생활 현장으로서의 생동하는 자연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자연이 주는 시련이나 고통을 전혀 체험하지 못하고 유족한 삶만을 누렸기 때문이다.

문집 ≪고산선생유고 孤山先生遺稿≫에 한시문(漢詩文)이 실려 있으며, 별집(別集)에도 한시문과 35수의 시조, 40수의 단가(어부사시사)가 실려 있다. 또, 친필로 된 가첩(歌帖)으로 『산중신곡』, 『금쇄동집고 金鎖洞集古』 2책이 전한다.

정철(鄭澈)·박인로(朴仁老)와 함께 조선시대 삼대 가인(三大歌人)으로 일컬어지는데, 이들과는 달리 가사(歌辭)는 없고 단가와 시조만 75수나 창작한 점이 특이하다.

≪참고문헌≫ 孤山遺稿, 記言, 孤山硏究(李在秀, 學文社, 1955), 松江과 孤山의 詩境(崔珍源, 成均館大學校論文集 3, 1958), 高麗末·李朝初의 漁父歌(李佑成, 成均館大學校論文集 9, 1964), 尹孤山論(鄭炳昱, 月刊文學 9, 1969), 尹善道의 自然觀(尹星根, 文化批評 7·8, 1970).(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몽천요(夢天謠)

 

1652년(효종 3) 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연시조. 모두 3수. ≪고산유고 孤山遺稿≫ 권6 하 별집에 실려 있다. 〈어부사시사〉를 지은 이듬해 성균관 사예(司藝)로 특소(特召)되어 승지에 제수(除授)되었으나, 주위 신하들의 심한 시기와 노환으로 인하여 물러나 양주(楊州) 고산(孤山)에 머물러 있을 때 지은 작품이다.

〈몽천요〉에는 발(跋)과 함께 한역가가 실려 있다. 발에 보면, “무릇 내가 탄식하고 영탄하는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것이 소리로 나와 길게 말하니 동학들이 희희거리며 놀리거나 꾸짖음이 어찌 없으리요마는, 내가 진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은 이른바 ‘내 옛사람을 생각하여 진실로 내 마음을 알았도다’라는 것이다.”라고 하여 작품을 짓게 된 심정과 자신의 처한 환경을 적고 있다.

제1수에서는 꿈엔지 생시엔지 올라간 백옥경에서 옥황은 자신을 반겨주나 뭇 신선은 꺼린다고 하며, 그렇다면 다 그만두고 다시 오호연월(五湖烟月)로 돌아가겠노라고 하였다. 뭇 신선의 꺼림 속에 있느니 차라리 강호 속에 묻혀 시비를 잊고 지내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것이다.

제2수는 제1수의 부연·확장이며 은거지로 물러난 현재의 처지를 더욱 안타까운 심정으로 노래하였다. 제1수의 옥황의 반김이 웃음으로, 군선의 꺼림이 꾸짖음으로 바뀌어 태도의 강화가 드러난다. 끝 구에서는 백억만 창생에 대한 근심을 말하여 결국 옥황은 임금이고, 군선은 조정의 신하들임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었다.

제3수에는 군선은 보이지 않고 옥황만 나타난다. 역시 우의적 표현으로 현실에 커다란 환란이 닥치거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고 임금에게 물어보려 하였으나 채 묻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17년 만에 “머도록 더옥 됴타”던 인간세상에 돌아왔으나 여전히 시기와 헐뜯음으로 그를 맞이하는 세상에 대한 허탈한 마음을 담아 노래한 것이다.

은거 끝에 현실에 돌아와서 받는 그의 실망과 좌절감을 우의적인 언어로 잘 표현하였다. 지은이가 겪는 강호와 현실 사이에서의 이러한 갈등은 〈어부사시사〉에서의 강호가도(江湖歌道)의 표방과 함께 조선조 사대부들의 처사접물(處事接物)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시사를 준다.

≪참고문헌≫ 尹孤山硏究(李在秀, 學友社, 1955), 國文學과 自然(崔珍源,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77), 孤山硏究(孤山硏究會, 198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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