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藥)과 악(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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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藥)과 악(樂)

 

약(藥)과 악(樂)은 퍽 닮았다. 그 닮은 점은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藥’과 ‘樂’의 글자 생김새부터가 비슷하다. 사물의 모양새나 뜻을 따서 만든 한자의 생김새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약’과 ‘악’은 소리 글자인 한글의 모양과 우리 말의 발음이 비슷한 것이다. 이 둘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약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지만, 그렇지 못한 ㉡약은 우리 몸을 해칠 수도 있듯이, 좋은 음악은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고 인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꿀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음악은 인간의 정서를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청소년 교육이나 우리 나라 화랑도의 수련 과정에서 음악이 맡았던 중요한 역할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심리적 교정 과정에서 음악의 역할이나 최근에 활발하게 전개되는 음악 요법에 관한 의학계의 연구 성과들은 음악이 인간의 내면 세계뿐만 아니라, 인체의 건강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의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술 음악이라든가, 우리의 민족적인 정서를 표현한 전통 음악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상업주의에 바탕을 둔 대중 음악에 심취한 인구가 더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게다가 외국의 저급한 음악이나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와는 다른 외래 음악이 오늘날 이 땅의 대중 음악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며, 많은 청소년들이 이들 음악에 편향된 관심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이들 음악이 우선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약의 질을 맛으로는 평가할 수 없듯이 음악의 질도 귀에 들리는 즐거움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인의 체질에 맞게 만든 ㉢약이 우리의 체질에 꼭 맞으라는 법이 없듯이, 외래 음악이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약이 인류의 삶을 건강하게 지키듯이, 좋은 음악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가꿀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빚어 놓은 예술 음악이나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담겨 있는 전통 음악과 같이 좋은 음악이야말로 우리의 정서를 가꿀 좋은 ㉤약이다.

 

- 1994학년도 1차 수능 기출문제 지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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