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가
by 송화은율심청가
(전략)
집안일 정리
모친 묘지 참배 및 하직.
부친과의 마지막 밤
부친에 대한 마지막 진지 봉양
요점 정리
형식 : 판소리 사설
성격 : 교훈적, 비현실적, 우연적
표현 : 사설적 표현, 효심을 극화
내용 : 인당수 제수로 팔려가는 심청이가 행선날 심봉사와 이별하는 장면
내용 연구
요점 정리
성격 : 비극적, 애통적
주제 : 사당에 하직 인사하는 심청과 심봉사의 이별
내용 연구
그 날 밤 꿈을 꾸게 하니, 이것은 자식과 아버지의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꿈자리가 있던 것이었다.
조상의 제사가 이제로부터 끊어지게 되오니, 북바쳐 오르는 마음을 영원히 참지 못하겠나이다. 다시 말해서 대가 끊겨 조상을 모시지 못하는 것을 불효의 하나로 여기는 사상은 전통적인 유교의 윤리관이다. 향화(香火)는 향을 피운다는 뜻으로 제사를 달리 이르는 말이며, 불승영모는 축문에 쓰이는 말이다.
중국 남경 뱃사람들에게 인당수 제물로 내 몸을 팔아 오늘이 떠나는 날이오니 나를 마지막 보옵소서라는 뜻으로 뱃사람들의 순탄한 뱃길을 위해 사람을 사다 용왕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 이러한 무속적인 민속은 인신공희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궁지수란 말은 사궁 가운데서 첫머리에 해당하는 사람. 곧 늙은 홀아비란 말로 인생에 가장 외로운 정황을 뜻한다.
이해와 감상
심청이 앞 못 보는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것은 '인신공희설화'를 바탕으로 '효(孝)'의 유교적 윤리관을 나타낸 것이고, 심청이 인당수 제수로 바다에 던져 졌으나 다시 환생(還生)하여왕후가 되고 부귀 영화를 누린 것은 불교의 인과 응보(因果應報)와 관련된다. 이와 같이'심청전'은 유교와 불교의 그 사상적 배경을 이룬 작품으로 불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인과 응보를 주제로 할 수 있으며, 심청의 지극한 효성의 중점을 두면 유교적 '효사상'을 그 주제로 볼 수도 있다.
(중략)
한 곳을 당도하니 돛을 지우며 닻을 주니, 이는 곧 인당수라. 광풍이 대작하여 바다가 뒤누으며 어룡(魚龍)이 싸우는 듯 벽력이 일어나는 듯,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가 노도 잃고 닻도 끊어지며 용총도 부러져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비 뒤섞어 잦아졌는데, 갈 길은 천리 만리 남아 있고, 사면은 어둑 정그러져, 천지 적막하고 간치뉘 떠오는데, 뱃전은 탕탕 돛대도 와지끈 경각에 위태하니, 도사공 영좌 이하로 황황대겁하여 혼불부신하며, 고사 기계를 차릴 적에 섬쌀로 밥을 짓고 동이 술에 큰 소 잡아 왼소다리 왼소머리 사지를 갈라올려 놓고, 큰 돝 통째 삶아 큰 칼꽂아 거는 듯이 받쳐 놓고 삼색 실과며 오색 탕수(湯水)와 어동육서(魚東肉西)며 좌포우혜와 홍동백서(紅東白西)를 방위 차려 놓고, 심청을 목욕시켜 소의(素衣)소복(素服) 정하게 입혀 상머리에 앉힌 연후에, 도사공의 거동 보소. 북을 둥둥 치면서 고사할 제, 두리둥두리둥 - 사나운 인당수에 이르러 제수 바칠 준비를 서두름
내용 연구
돛을 지우며 닻을 주니 : 물결이 사나와져 돛을 내리게 하고 닻줄을 풀어 배를 안정하도록 하니
뒤누으며 :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는 모양. 뒤눕다(번복하다)
용총 : 돛을 오르내리기 위한 돛줄
어둑 정그러져 : 어둑하게 저물어. "졈글다>정글다(저물다)"
간치뉘 : 사나운 파도(백두파)
도사공 : 사공의 우두머리
영좌 : 단체의 우두머리
황황 대겁(惶惶大怯) : 몹시 두려워 하고 크게 겁먹은 모양
혼불부신 : 혼이 몸에 붙어 있지 않음. 곧 혼이 나가고 넋이 빠짐.
기계 : 도구와 기구
섬쌀 : 한 섬 되는 많은 쌀
돝 : 돼지
탕수 : 제사에 쓰는 국
어동육서(魚東肉西) : 제사상을 차릴 때, 생선 반찬은 동쪽에 놓고 고기반찬은 서쪽에 놓는 일
좌포우혜(左脯右醯) : 제사의 제물을 법식에 따라 상 위에 차려 놓을 때에, 육포는 왼쪽에, 식혜는 오른쪽에 차리는 격식을 이르는 말.
홍동백서(紅東白西) : 제사 때에 신위를 기준으로, 붉은 과실은 동쪽에 흰 과실은 서쪽에 차리는 격
소의소복 : 흰 옷
이해와 감상
인신공희설화가 담겨 있는 내용으로 사나운 인당수에 이르러 심청이를 제수 바칠 준비를 하고 있는 장면으로 세계 어느 지역에나 흔히 볼 수 있는 고대 설화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담겨 있다.
맹인잔치 배설
심청과 부친의 상봉
심봉사의 개안
맹인들의 개안
이 때에 심 황후(沈皇后)가 부친(父親)을 뵈오려고 맹인(盲人) 잔치 배설(排設)하여 천하(天下) 맹인(盲人) 오는 대로 성명(姓名) 연세(年歲) 다물어서 성책(姓冊)을 꾸몄으되, 심 봉사(沈奉事)의 성명(姓名) 삼자(三字) 암만해도 볼 수 없다. 몽은사(夢恩寺) 부처님이 눈을 뜨게 하시었나, 그 새에 불승 기한(不勝飢寒) 황천객(黃泉客)이 되시었나, 의심(疑心)이 만단(萬端)하여 침식 불감(寢食不甘)하시구나. 대궐문(大闕門)을 통개(通開)하고 봉사 불러들일 적에 각(各) 영문 군사(營門軍士)들이 봉사(奉事)를 손으로 잡고 궐내(闕內)로 인도하니 황후 모신 내관들이 대상(臺上)으로 인도(引導)하여 천만간(千萬間) 넓은 대청(大廳)에 일자(一字)로 앉힌 후에 내관이 지필(紙筆)들고 거주(居住), 성명, 연세, 직업, 자녀 유무(子女有無), 가세 빈부(家勢貧富), 유식 무식(有識無識) 물어 쓴 후, 시녀(侍女)를 내어 주어 황후 전(前)에 올리오니 황후가 보실 적에 직업(職業)이 다 다르다. - 맹인 잔치 배설
경(經) 읽어 사는 봉사, 점(占)하여 사는 봉사, 계집에게 얻어먹는 봉사, 아들에게 얻어먹는 봉사, 딸에게 얻어먹는 봉사, 풍각(風角)장이로 사는 봉사, 걸식(乞食)으로 사는 봉사, 차례(次例)로 보아 가니 그 중(中) 한 봉사(奉事)는 도화동(桃花洞) 심학구(沈鶴九), 년(年)이 육십삼 세(六十三歲), 직업은 밥 먹고 잠자기뿐이요, 아들은 못 낳았고 딸 하나 낳았더니 제수(祭需)로 팔아 먹고, 가세(家勢)는 있는 대로 다 떨어 짊어지고 황성(皇城)으로 오옵더니 계집이 가지고서 중로(中路)에 도망(逃亡)하고, 글이라 하는 것은 언문(諺文) 글자(字) 겨우 알고 받침은 못 하노라 하였거늘, 심 황후 보실 적에 오죽이 반갑겠나. 흔적(痕迹) 아니 하시고서 시녀에게 분부(分付)하셔 맹인 성책(盲人姓冊)을 내어 주며, "이 중(中) 심 맹인(沈盲人)을 주렴(珠簾) 밑에 앉게 하라." 내관이 영(令)을 듣고 심 봉사를 인도(引導)하여 염하(簾下)에 앉히거늘, 황후 자세(仔細)히 내다보니 완연(宛然)하신 부친이라 - 심
청과 부친의 상봉
황후가 체중(體重)하고 성정(性情)이 심중(深重)하신들 부녀 천륜(父女天倫)을 할 수 있나. 발 밖에 왈칵 나서 심 봉사의 손을 잡고, "애고, 아버님. 제수(祭需)로 팔려 갔던 심청(沈淸)이 살아 왔소." 심 봉사 부지불각(不知不覺) 이 말을 들어 놓으니 황후신지 궁녀(宮女)인지 굿 보는 사람인지 누군 줄은 모를 터나, 심청(沈淸)이란 말만 듣고 눈을 번뜩이며, 손으로 더듬이며, "이것이 웬말인가. 내 딸 심청(沈淸)이는 인당수(印塘水) 제수로 분명(分明)히 죽었는데 이것이 웬말인가. 죽어서 혼(魂)이 왔나, 누가 나를 기롱(譏弄)하나, 자상(仔詳)히 말을 하소." 황후 옥루 만면(玉淚滿面)하여 부친(父親) 얼굴 만지면서, "천신(天神)이 감동(感動)하여 나는 살아 왔삽는데 부처는 영험(靈驗) 없어 눈을 그저 못 보시니, 목소리나 짐작(斟酌)하오." 심 봉사 들어 보니 목소리는 심청이라, 손을 꽉 잡으며, "아겨, 이게 꿈이냐. 꿈이거든 깨지말고, 네가 귀신(鬼神)이냐, 귀신이면 날 잡아 가거라." 황후가 옥수(玉手)를 들어 봉사 눈을 씻으면서, "내 효성(孝誠)이 부족(不足)키로 내 목숨은 살아나고 아비 눈은 못 떴으니 이 몸이 또 죽어서 옥황(玉皇)전에 하소하여, 부친 눈을 띄오리다." 심 봉사 깜짝 놀라, "내 딸이 살아 오니 눈 못 떠도 한(恨)이 없다. 죽지마라, 죽지마라." 눈을 희번덕희번덕한 것이 두 눈이 환하게 밝았구나. - 심봉사의 개안
심 봉사가 목소리나 알지 얼굴이야 알 수 있나. 뜻밖에 눈 떠 보니 칠보장엄(七寶莊嚴) 곤위황상(坤位皇上) 어떠하신 한 부인이 옆에 가 앉았구나. 깜짝 놀라 내외(內外)하여 돌아앉아 하는 말이, "내가 정녕(丁寧) 꿈을 꾸지." 황후가 붙들면서 "아버님 모르시오. 내가 죽은 심청으로 살아 황후 되었습니다." 심 생원(沈生員)이 깜짝 놀라, "인당수에 아니 죽고 살단 말고 신통(神通)한데, 향곡(鄕曲)의 맹인(盲人) 여식(女息) 만승 황후(萬乘皇后) 되단 말이 만고(萬古)에 있겠는가." 아무리 아비라도 군신 분의(君臣分義) 중하기로 말버릇을 썩 고쳐, "하기에 한 일이오니 전후 내력(前後來歷)을 이야기로 하옵소서." 황후가 눈물 씻고, 인당수에 뛰어드니 용궁(龍宮)으로 모셔다가 꽃봉 속에 도로 나와 황후 된 전후 내력 낱낱이 다 고(告)하니 심 생원이 대희(大憙)하여, "얼씨고, 신통(神通)하다." 불끈 일어서서 팔 벌리고 춤을추니 누만명(累萬名) 맹인(盲人)들이 이 내력을 다 듣고서 고두 사은(叩頭謝恩) 여짜오되, "천고(千古)에 효녀(孝女)로 부친 눈을 띄웠으니 만민(萬民)의 모후(母后)시니 신등(臣等) 눈도 띄옵소서." - 맹인들의 개안
(후략)
요점 정리
표현 : 사실적 표현
성격 : 감격적, 비현실적, 행복한 결말
주제 ; 맹인잔치 배설과 아버지 상봉 장면
내용 연구
몽은사의 부처님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시었는가. 그 사이에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 저승의 길손이 되었는가?
부친의 생사가 의심스러워 갖가지 근심 걱정에 잠을 자도 단잠이 아니고, 음식을 먹어도 단맛이 아니구나.
황후의 지체가 높고 중하며 타고난 성품이 침착하신들 하늘이 맺어준 부녀간의 인륜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에 시주했건만 여태 눈을 못 떴으니 부처는 영묘한 효험이 없어 아버지가 눈을 뜨지 못하시니 목소리로나마 짐작하오.
영원한 효녀이므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였으니 온 백성의 어머니로, 우리 신하들의 눈도 뜨게 하옵소서.
천연두로 다친 눈과 눈병으로 다친 눈은 양쪽 눈을 다 떴으며,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눈은 한쪽 눈만 떴구나.
이해와 감상
여기에 소개된 본문 일부는 심청이 다시 환생하여 왕후가 된 후, 부친을 만나기 위하여 맹인 잔치를 베풀어 아버지를 상봉하는 장면으로 전체 구성상 가장 극적인 부분으로 대단원이다. 황후가 된 심 청이가 아버지를 찾아내기 위해 베푼 맹인잔치에서 마침내 아버지를 해후하게 되고, 또 아버지는 눈을 뜨게 된다는 우리 고대 소설의 특징의 하나인 해피엔드의 결말 형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부분은 만인의 환희를 십분(十分) 사도록 표현하여 놓았다. 이것은 독자에게 눈물을 주었다가 기쁨과 웃음을 주는과정으로서, 작자는 이 점 확실히 성공하였다. 이 작품이 전반부에서는 비극의 연속이었지만, 후반부에서는 환희와 행복으로 끝을 맺었음은 고대 소설의 공통적인 특징인 결미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나. 희비가 상호 교차하는 죽음에서 생으로 비천에서 귀함으로, 영결(永訣)에서 해후(邂逅)로, 비극에서 희극으로 끝나게 하여, 청자들을 극단에서 울게 하고 극단에서 기쁘게 하는 데 이 작품의 묘미가 있다.
요점 정리
작자 : 미상
연대 : 미상
종류 : 고대소설, 도덕소설, 판소리계 소설
성격 : 교훈적. 비현실적, 우연적
문체 : 가사체, 운문체
주제 : ①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 ② 인과 응보
형성 : 설화('효녀 지은')→판소리 사설(수궁가, 심청가)→고대 소설(심청전) →신소설(강상련(江上蓮)
출전 : 완판본‘'심청전'
기타 : 인신공회설화(人身供懷說話), 효자불공구친설화(孝子佛供救親說話), 맹인득안설화(盲人得眼說話)를 근원 설화로 보과 '삼국사기'의 '효녀 지은(孝女知恩)'{일명‘연권녀(連權女) 설화'〕, '삼국유사'의‘빈녀양모(貧女良母)'와 '거타지 설화', 전남 성덕산 관음사 연기문(觀音寺緣起文)에 나오는 홍장(洪莊)처녀 이야기 등을 문헌상의 근원설화로 본다. 또한 여러 사람들의 참여에 의해 첨삭(添削)된 적층 문학(積層文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내용 연구
구성
① 발단(發端) : 심천의 출생과 성장 과정.
② 전개(展開) : 심청이 아버지를 모시는 고생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몸을 팖.
③ 위기(危機) :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짐.
④ 절정(絶頂) : 다시 살아나 왕후가 됨.
⑤ 결말(結末) : 아버지를 만나고, 심 봉사는 눈을 뜨게 됨.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거타지설화(居陀知說話), 인신공회설화(人身供犧說話),맹인 득안(盲人得眼)설화,효녀 지은(孝女知恩)' 등의 전래 설화가 창(唱)의 판소리 사설로 구전되어 오다가 영ㆍ정조에 이르러 소설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러 사람들의 참여에 의해 첨삭(添削)된 적층 문학(積層文學)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심청전'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뱃사람인 선인(船人)들에게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 청이 인당수의 제수가 되어 바다에 던져 졌으나, 환생(還生)하여 왕후가 되어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도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이 소설의 사상적 배경은 불교(佛敎)의 인과 응보(因果應報)의 환생(還生)을 바탕으로, 유교(儒敎)의 효(孝)사상이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인물의 행동과 심리가 매우 현실감 있게 묘사되고, 사건의 발전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리얼리즘의 표현에 다가가고 있다고 하겠으며 후대에 고대 소설 '심청전'을 이해조(李海朝)가 '강상련"이란 소설로 개작(改作)하였다.
심화 자료
'심청전'의 주제
심청의 행동을 중심으로 보면, 우선 이작품의 주제는 '효(孝)'이다. 이 효는 유교적 덕목만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심성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 정말 효인가 라는 반문(反問)도 제기된다. 자식의 희생으로 눈을 뜬다는 것이 심 봉사로서는 더 큰 아픔이자 슬픔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고 난 뒤 심봉사가 뺑덕 어미와 벌이는 행각은 도덕적 덕목과는 거리가 먼 비속한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심청은 물에 빠졌다가 거듭나기 때문에 그 제의적(祭儀的) 의미 역시 중요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 작품의 주제는 논란거리인 만큼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고, 그 현대적 의미도 거듭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다.
'심청전'의 줄거리
심청을 어미를 잃고 앞 못 보는 아버지 손에서 동냥젖을 얻어먹고 자랐으나 마음이 착하고 효도가 극진했다. 심청이 15세 때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아버지가 눈을 뜨게 된다는 말을 듣고 남경 선인들에게 팔려 인당수 제물이 되나 수중궁에서 지내다가 연꽃안에 싸여 뜨게 되어 인당수에서 뱃사람들에게 발견된다. 한편 왕에게 바친 연꽃에서 심청은 환생하여 왕후가 되고, 맹인 잔치를 베풀어 아버지를 만나, 심 봉사는 그 자리에서 눈을 뜨게 된다.
'심청전'의 희극성
'심청전'에서 희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심 봉사와 뺑덕 어미의 행위와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심 봉사는 딸을 사지(死地)에 보내 놓고는 돈으로 인해 공연히 마음이 헤퍼지는 범속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 전화(轉化)하고 만다. 심청이 보인 비극적 행위에 비하면 심 봉사의 행위는 희극적인데, 사실은 이것이 화폐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당대 서민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화폐 경제로부터 겪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웃음'으로 극복해 보려는 당대 민중의 진솔한 자기 표현으로도 볼 수 있는데, 판소리계 소설에서 잘 드러나는 '웃음'의 의미는 삶의 포기가 아니라 삶에 대한 더욱 더 구체적인 문제 제기이다.
판소리 '심청가'
판소리는 구비 서사이고,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 사설이 문자로 정착되어 소설로 읽히는 것을 말한다. 조선 고종 때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여섯 마당 중의 하나이다. 전래 설화에서 발전하여 판소리로 가창되던 것으로 고대 소설로 정착되기 이전의 구전 문학이다.
'심청전'의 문체
이 소설의 문체는 3(4)·4의 가사체이다. '심청전'은 전통적인 운율을 지닌 운문체로서 국악 창극의 대본이 되었다.
'심청전'과 '거타지설화'의 차이점과 공통점
심청전과 거타지설화는 처녀가 꽃으로 화하였다는 점과 수로 만리의 안강을 걱정한 것, 또 용이 호위하여 일행이 목적지까지 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거타지설화'에서는 공희(供犧)의 대상이 처녀만이 아니라는 점과 '심청전'의 핵심 주제인 효(孝)에 대한 시사가 없다는 점은 '심청전'과 다르다. 이보다도 또 다른 차이는 '거타지설화'의 주인공은 초인간적인 힘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두는 영웅 남아인 데 반해, '심청전'의 경우 운명에 대하여 순종하는 연약한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지은 설화 (知恩 說話)
한기부(漢岐部) 출생.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난하여 품팔이와 구걸로써 32세가 되도록 결혼도 안 하고 눈먼 홀어머니를 모시다가, 쌀 10여 석에 품을 팔아 부유한 집의 하인이 되었다. 하인이 된 뒤에도 저녁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공양하여 그 소문이 퍼져 이를 의롭게 생각한 화랑(花郞)인 효종랑(孝宗郞)으로부터 조 100석을 받았고, 이어 빚을 갚아주어 하인 신세를 면한 뒤에도 다른 낭도(郎徒) 1,000여 명에게서 각각 조 1석씩을 받았다. 897년(효공왕 1) 왕은 조 500석과 집을 하사하고, 그 동네를 효양방(孝養坊)이라 하여 정역(征役)을 면제해 주었다
거타지설화 (居陀知說話)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이 등극한 지 몇 해 안 되었을 때 여왕의 아들 양패(良貝)가 당(唐)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 때 거타지(居陀知)는 양패를 수행한 궁사(弓士)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신 일행이 서해(西海)로 향하여 항해 중 배가 곡도(鵠島)에 이르렀을 때, 풍랑으로 뱃길이 막혀 십여 일을 묵게 되었는데, 그 때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현몽하여 섬에 궁사 한 사람을 두고 가면 뱃길이 무사하리라고 말하였다.
제비를 뽑아 거타지만 남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항해를 계속하였다. 거타지는 홀로 섬에 남아 근심에 싸여 있었더니 홀연 한 노인이 못 속에서 나와 거타지에게 말하기를, 해뜰 무렵이 되면 사미승(沙彌僧) 한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 자손들의 간(肝)을 빼 먹어 다 죽고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게 되었으니 활로 쏘아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는 노인의 간청을 쾌히 승낙하고 다음날 아침에 그 사미승을 쏘아 죽였다. 그 사미승은 늙은 여우가 변신한 것이었다. 이에 노인이 다시 나타나 거타지에게 치사(致謝)하고, 그의 딸과 혼인할 것을 청하므로 그는 그녀와 결혼하였다. 노인은 그의 딸을 꽃가지[一枝花]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가 품에 품고 가게 하였다. 그 노인은 바로 서해 용왕이었다.
용왕은 곧 두 용(龍)을 시켜, 거타지를 모시고 사신의 배를 따라가게 하고 그 배를 호위하여 당나라에 이르게 하였다. 그리하여 거타지는 당왕(唐王)에게 비범한 인재로 환대를 받고 귀국하여 다시 꽃가지가 여자로 변한 용녀(龍女)와 행복하게 살았다. 이와 유사한 설화는 《용비어천가》에도 있고, 제주도 서사무가(敍事巫歌) 군웅본풀이도 같은 유형의 설화이다.
근원설화 (根源說話)
여러 장르에 걸친 문학작품의 전부, 또는 한 부분의 모티프가 된 설화를 중요시하고, 이 근원설화를 찾아내고자 하는 시도는 1930년대 이후 국문학자들의 연구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설화에서 전적으로 취재했거나 그것을 변형시켰거나 또는 그것이 작품의 한 부분을 형성한 경우는 소설 ·시 ·희곡 등 문학 일반에 나타나는 현상이나, 특히 소설에서 두드러지며 또 고전소설에서 더욱 자주 나타난다. 작품의 분석 및 설화와의 관련성을 통해서 근원설화를 밝혀 내는 작업이 주로 고전소설 연구에서 이루어졌던 근본 이유도 바로 이런 점에 있었다. 가령 《심청전(沈淸傳)》의 모태가 된 근원설화로 인신공희설화(人身供犧說話)가 근간을 이루고, 거기에 다시 맹인개안설화(盲人開眼說話) ·효행설화 ·용궁설화 ·환생설화 등이 복합된 것이다. 그리고 근원설화 자체가 내포하는 정신이 작품 세계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나타났는가를 비교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가치 평가를 가늠하게 한다. 근원설화에 대한 연구는 설화와의 연관성 및 작품의 요소를 밝히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작품의 요소를 이루고 있는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은 문학 연구로서 의의가 적다고 보아, 반대로 설화에서 소설로의 이행과정(移行過程), 그 상호간의 차이, 그리고 작품세계 내에서의 구조 및 의미에 관심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인신공희 (人身供犧, human sacrifice)
인신공양(人身供養)이라고도 한다. 세계 여러 민족에서 볼 수 있던 공신(恭神)의 풍습이며, 수렵시대·유목시대를 거쳐 농경시대까지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법과 목적은 여러 가지여서 일정하지 않으나, 예를 들면 비의적(秘儀的)으로 추대한 왕의 활동력이 감퇴하여 대지(大地)의 번식력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다고 생각할 때, 왕을 죽여 희생으로 바쳤다. 때로는 그 대리인이 일정 기간 왕위에 있다가 희생되기도 하였다. 아프리카에서는 풍작의 기원과 장례에서 널리 하였으며 멕시코에서는 태양신에게 인간을 희생으로 바쳤다.
페루·잉카·고대이집트·메소포타미아·팔레스타인·이란·인도·그리스·로마·중국 등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는 대부분 인신공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토목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 축성·제방·교량 공사 등에서 사람을 물 밑이나 흙 속에 묻어 신의 마음을 달래고, 축조물에는 인간의 영(靈)을 옮겨 튼튼하게 유지되도록 하였다는 인주전설(人柱傳說)도 여러 곳에서 전하나, 사실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한국도 인신공희의 전설로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의 제물로 희생된 심청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또한 개성의 '지네산[蜈蚣山] 전설', 제주의 '금녕굴(金寧窟)의 구렁이 전설', 제주 대정산방(大靜山房) 길가에 있는 음사(淫祠) '광정당(廣靜堂) 이무기전설' 등은 모두 흉악한 동물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마을에서 매년 또는 정기적으로 인신을 공양하였다는 전설이며 한결같이 은혜를 입은 동물이 퇴치한다. '성덕대왕신종(鐘)'에 얽힌 전설은 귀여운 옥동자(玉童子)를 희생물로 바친 이야기이다. (자료 출처: 엔사이버두산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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