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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實存主義/existentialism)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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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實存主義/existentialism)

세계 내의 인간 실존에 대한 해석에 힘쓰며 인간 실존의 구체성과 문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철학.

주로 20세기의 철학운동으로 대표자는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 프랑스의 가브리엘 마르셀,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 퐁티, 스페인의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러시아의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이탈리아의 니콜라 아바냐노 등이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주요특징은 이미 19세기에 프리드리히 니체와 쇠렌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나타났다. 에트문트 후설과 G. W. F. 헤겔은 실존주의자는 아니지만 실존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존주의 사상의 성격

실존주의의 기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존은 항상 특수하고 개별적이다. 둘째, 실존은 주로 실존의 존재양식에 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실존은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셋째,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인간은 이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이 선택에 몸을 맡겨야 한다. 넷째, 이 가능성들은 인간과 다른 사물 및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실존은 항상 세계내존재이다. 즉 실존은 선택을 제한·제약하는 구체적 상황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현존재(Dasein)라 불린다 (→ 색인 : 형이상학).

이상의 주장들로 인해 실존주의는 첫째, 인간을 절대적이거나 무한한 실체의 현현(顯現)으로 보는 견해와 대립하며 의식·정신·이성·이데아 등을 강조하는 관념론 대부분의 형태에 반대한다. 둘째, 인간을 주어진 완성된 실재로 보고 이 실재의 요소를 분석해야만 인간을 인식할 수 있다고 여기는 학설과도 대립한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외적 사실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객관주의나 과학주의의 모든 형태에 반대한다. 셋째, 모든 형태의 필연주의와 대립한다. 넷째, 유아론(나만이 존재한다)이나 인식론적 관념론(인식대상은 정신적인 것이다)과 대립한다. 실존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로서 항상 자기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이와 같은 토대에서 출발하지만 그 방향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실존(existence)과 관련해 존재(being)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이 초월성이 실존의 기초 또는 기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유신론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인간 실존은 절대적 자유로서 자신을 기투(企投)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급진적 무신론의 형태를 띨 수도 있으며 인간 실존의 유한성, 즉 기투와 선택의 가능성에 내재한 한계를 강조함으로써 인문주의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 색인 : 신학). 실존주의는 이렇게 여러 방향을 취하면서 실존의 여러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 인간 상황의 문제적 성격인데, 이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선택하고 기투할 수 있다. 둘째, 이런 인간 상황의 현상 특히 부정적 현상으로서, 이를테면 사물·타인과의 관계에 매달려 있는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관심이나 선입견, 죽음·고통 등 넘을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인한 '난파', 상황의 반복에서 오는 권태 등이다. 셋째, 실존에 내재하는 상호주관성으로서, 이것은 나와 너(타인 또는 신) 사이의 인격적 관계일 수도 있고, 익명의 군중과 개별 자아 사이의 비인격적 관계일 수도 있다. 넷째, 존재의 일반적 의미에 관한 학설인 존재론이다. 다섯째, 실존적 분석의 치료적 가치로서, 실존적 분석은 일상생활에서 빠지기 쉬운 미혹과 타락에서 인간 실존을 해방하고 실존이 그 본래성을 향하도록 한다.

실존주의의 역사

인간 자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몽테뉴와 파스칼의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르셀이나 사르트르 등에서 나타나는 인간 자신의 정신적 내면으로 후퇴하는 자세는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볼 수 있다. 실존이 이성으로 환원불가능하다는 테제는 독일 관념론 철학자 F. W. J. 셸링의 헤겔 논박에서 볼 수 있다. 빌헬름 딜타이는 인간은 자연적 사물의 인식과는 다른 절차를 통해서 특수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딜타이는 ' 이해'를 인간 과학의 고유한 방법으로 보았다.

19세기의 낭만주의 성향의 낙관주의는 인간 운명이 무한한 힘(이성·절대자·마음 등)에 의해 확실히 보장되어 있고 불가항력의 진보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이러한 낙관주의는 더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실존주의는 모든 인간 현실의 불안정과 위험을 강조하고 인간은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점과 인간의 자유는 그것을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한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고통·타락·질병·죽음 등과 같이 19세기 낙관주의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실존의 부정적 측면들이 인간 현실의 본질적 특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이런 부정적 현실을 강조한 사상가들은 실존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필연주의에 반대하여 실존을 가능성과 관련지어 해석했다. 불안은 '가능적인 것에 대한 감정'이다. 불안은 인간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아무리 조심해도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느낌이다. 한편 절망은 가능성에서 유일한 치유책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능성 없이 머물러 있다면 공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노동과 생산의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관계가 갖는 소외된 성격을 강조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가 인간을 목적에서 수단으로 인격에서 비인격적 과정의 도구로 만든다. 니체는 '운명애'(amor fati)를 '인간의 위대함을 위한 정식'으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유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과 지금까지 존재해온 것을 바라는 데 있으며 그보다 더 좋은 것은 바랄 수 없다는 듯이 그것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

 

현대의 실존주의는 이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일관된 방식으로 결합했다. 모든 형태의 실존주의에 공통되는 점은 가능성에 기초하여 미래를 기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한다는 것은 위험을 내포한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인간이 비본래성 내지 소외로 하락하고 인격에서 사물로 타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실존의 개별성과 반복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때로는 타인과의 공존을 소외로 여기기도 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 L'Etre et le neant〉에서 "타자는 나의 가능성의 숨겨진 죽음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실존주의에서 공존은 익명이 아니고 인격적 의사소통에 기초한 것으로 인간의 진정한 실존을 조건짓는다. 실존주의는 현대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문학에서는 프란츠 카프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카뮈 등이 실존주의 경향을 보였다. 예술에서는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를 실존주의와 유사한 경향으로 볼 수 있다. 또 실존주의는 야스퍼스와 루트비히 빈스방거를 통해 정신병리학에도 침투했다. 신학에서는 카를 바르트, 파울 틸리히, 루돌프 불트만 등이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방법론적 논점

실존주의자들이 실존 해석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해석자와 해석되는 것, 존재 문제와 존재 자체 사이의 관계가 직접적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 2가지 항은 실존 속에서 일치한다. 왜냐하면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인간은 이 물음을 자신에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자신의 존재에서 출발하지 않고서는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공통적 배경에서 출발하면서도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각기 실존 해석의 독자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이용한다. 하이데거에서 현상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현현이다. 현상학은 존재의 구조를 드러낼 수 있으며 따라서 존재론이다. 다만 이때의 존재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존재, 곧 인간이다.

야스퍼스는 실존의 합리적 해명방법을 채택한다. 그에 따르면 실존은 존재에 대한 추구로서 인간의 합리적 자기이해 노력 또는 의사소통 노력이다. 그의 방법은 실존과 이성이 인간 존재의 두 기둥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이성은 가능적 실존이다. 사르트르에서 철학의 방법은 실존적 정신분석 즉 인간 실존을 구성하는 '근본 기투'에 관한 분석이다. 마르셀에 따르면 철학의 방법은 존재의 신비 대한 인식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합리적 분석이나 증명을 통해서는 존재를 발견할 수 없다. 아바냐노와 메를로 퐁티 등의 인문주의적 실존주의는 실존을 구성하는 구조 즉 인간을 다른 존재와 연결해주는 관계를 과학을 비롯한 모든 이용가능한 기술을 사용하여 분석하고 규정한다.

내용상의 논점

존재론과 인간 실존의 방식은 모두 실존주의의 관심사이다.

존재론

실존주의적 존재론의 근본 특징은 실존의 본성에 대한 연구에서 가능성에 우위를 둔다는 것이다. 이때 가능성은 모순의 부재라는 순수 논리적 의미도 아니고 현실성이 될 운명에 처해 있는 잠재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도 아니며 인간 실존의 구조인 존재적·객관적 가능성의 의미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특유한 양상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주장은 이런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주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그 존재 및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본성을 갖지 않으며 이 양식이란 곧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항상 그 자신의 가능성이다"라고 말한다. 가능성으로서 인간 실존은 미래의 선취·예기·기투이다. 미래는 근본적인 시간의 차원이며 현재와 과거는 부차적이다. 또한 가능성으로서의 실존은 초월이기도 하다. 초월한다는 것은 그 자신을 넘어서 세계의 다른 존재(사물과 타인)로 총체로서의 세계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실존주의자에 따르면 이 다른 실재의 존재는 인간 실존의 존재와는 다른 양상을 가진다. 즉 실존에 고유한 양상은 가능성인 데 반해 존재에 고유한 양상은 현실성 또는 사실성이다. 그결과 가능성으로서의 실존은 존재의 무(無), 사실의 모든 현실성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난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Was ist Metaphysik?〉(1929)에서 "인간 실존은 무의 한가운데 머무르지 않고서는 존재와 관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존주의자들에게 '무'란 사실의 현실성에 대한 부정으로서 가능적 실존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가능적인 것은 그 자신(itself)이 '되기에는' 대자(For-itself)가 결여된 '어떤 것'으로 그것은 객체가 되기에는 주체가 결여된 것이며 결여로서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했다.

실존을 무로 환원하는 것은 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첫째, 사르트르, 카뮈, 무신론적 실존주의처럼 의미의 결여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즉 실존과 모든 기투의 부조리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후기 하이데거, 야스퍼스, 신학적 실존주의처럼 실존을 구성하는 가능성을 넘어서 실존과 존재 사이의 더욱 직접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방향에서 존재는 실존 속에서 언어적·신앙적·신비적 종교 등을 통해 그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 실존의 방식

실존주의는 때로 인간의 운명을 인간 자신이 맡는다는 의미에서 인문주의 성향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실존에 대해 존재의 우위를 강조하는 조류도 있다. 이 2가지 관점의 차이는 자유의 문제를 푸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항상 일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인간을 구성하는 가능성은 이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서는 상황이 인간의 선택을 결정한다. 반대로 사르트르에서는 선택이 상황을 결정한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운명 개념과 급진적 자유 개념 사이에서 동요한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결정론적 관점에서는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며 사르트르의 자유론적 관점에서 과거의 의미는 현재의 기투에 의존한다. 그러나 운명론적 관점에서도 인간에게 선택의 여지는 있다 (→ 색인 : 자유의지). 이때의 선택이란 자신의 무를 이해하느냐 않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이 실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그 표지는 죽음)을 이해할 때 '진정한 실존'을 달성한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에게 제공된 유일한 선택은 상황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이처럼 실존주의적 존재론은 존재와 무 사이를 동요하면서 무를 존재에 관한 유일한 계시로 여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신이 되려고 분투하는"(사르트르) 자이다. 우주론적·신학적 실존주의에서는 존재가 인간을 무로부터 되찾기 위해 다소 신비적인 방식으로 개입한다.

실존주의의 사회적·역사적 기획

인문주의적 실존주의는 인간이 역사에서 가질 수 있는 어느 정도 적극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인정해왔다. 예를 들어 메를로 퐁티는 인간이 사회 변혁을 위해 효과적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향해 나아갔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자연·사회와 원초적이고 제거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일치한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1960)에서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옹호했던 '기투' 개념을 수정하고 마르크스가 이해한 변증법 개념을 이용하여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종합하려 했다. 실존을 구성하는 기투는 전에 사르트르가 주장했듯이 자의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객관적 가능성의 제약을 받는다.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처럼 이 객관적 가능성을 '실존의 물질적 조건'과 동일시한다. 물론 기투는 어디까지나 유일무이한 의식을 가진 특수한 개인의 기투이다. 그러나 이 의식은 총체화하려고 노력하는 즉 점차 포괄적인 인간 집단을 구성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의식이다. 변증법적 이성은 바로 이런 총체화 증대의 과정이다. 나아가 변증법적 이성은 역사의 진정한 주역이 되며 역사에 참여하는 개인의 내적 자유와 동일시된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태도에서 역사의 절대적인 변증법적 필연성(물론 이 필연성은 개인들에 의해 내면화하고 체험됨)을 옹호하는 태도로 옮겨갔다.

실존주의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철학과 현대 문화 전반에 개념적 도구를 제공해왔다. 이 도구의 성격과 사용 기술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도구란 '문제성'·'기회'·'조건'·'선택'·'자유'·'기투'와 같은 용어들을 말한다. 이런 도구는 인식론·윤리학·미학·교육·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실존의 해석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N. Abbagnano 글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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