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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논술69 - 노동의 해방인가, 노동의 종말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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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해방인가, 노동의 종말인가

 

지난 317일자 서울신문은 황소의 쟁기질 사진을 실었다. 새봄이란 제목아래 전남 여천의 한 농부가 얼었던 논의 흙을 쟁기로 갈아엎는 모습이다. 신문은 정감어린 이 삽화를 놓고 쟁기를 끄는 황소의 모습에서 봄의 약동을 느낀다고 썼다.

사진 설명대로 황소의 쟁기질은 우리의 봄을 상징한다. 그러나 농촌에서 자란 독자들은 이 사진에서 기자가 황소의 쟁기질 모습을 용케도 찾아냈구나 하는 감회도 함께 느꼈을 것이다.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일상적인 풍경이 이제는 사진기자의 각고가 있어야만 독자 앞에 나타날 수 있는 시대다.

 

황소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과, 권위가 사라지고 있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노동이 컴퓨터와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서울신문에 황소사진이 실린 날 축협 중앙회는 14년만에 처음으로 암소값이 황소값을 앞질렀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500짜리 한우 암소의 전국 산지 평균가격이 3217천원으로 황소 3131천원보다 86천원이나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통계였다.

 

황소값은 암소값보다 비싸다는 게 우리 관념이다. 지난 83년 단 한해 농가에 송아지 입식바람이 불면서 역전됐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황소값은 언제나 암소값의 위에 있었다. 축협중앙회는 이 같은 상황역전이 송아지 생산용 수요 급증에 따른 것으로 보고 소값 폭락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지난 83년의 경우와 달리 앞으로 다시는 황소값이 암소보다 높은 제자리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을 갖게 된다. 83년의 암소 가격 이상 급등은 일시적인 수요 공급의 마찰에서 빚어진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역전은 황소의 역할 종료에 따른 구조적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황소가 비쌌던 것은 노동력과 생식 능력 탓이다.

 

밭이나, 살이 얕은 산자락의 논은 암소로도 쟁기질이 가능했다. 그러나 평야 지대의 살이 깊은 논은 황소가 들어서야 논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거기다 산간지대와 달리 평야지대는 가구당 3040마지기를 경작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

힘 좋은 황소가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소는 달구지를 끌 수 있지만 암소는 할 수 없는데서 황소와 암소의 힘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황소는 수컷으로서의 생식 능력으로 주인에게 나락섬 값이나 보태는 일도 했다. 농번기가 끝나고 농한기가 되면 생식기가 된 암소 주인이 소를 끌고 와 황소와 교미를 시켰고, 그 대가로 황소 주인은 나락섬 값을 받는게 관례였다. 그런 탓으로 암소는 고기맛이 좋고, 새끼를 낳을 수 있음에도 황소보다 한 수 아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황소는 자신의 노동력과 생식 능력 모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황소가 쟁기와 써레를 끌고 누볐던 일터는 경운기나 트랙터가 차지해 버렸다. 더 나아가 농산당국은 현재의 경지 정리보다 두락당 면적을 훨씬 더 크게 하는, 두락당 3천평쯤 되도록 하는 대규모 경지 정리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의 논밭은 이제 경운기도 설자리가 없이 트랙터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로 재편되고 있다. 그러니 황소의 노동력 정도야 우습다.

 

황소의 고유한 생식 능력은 생물학이 빼앗아 갔다. 농촌 어디를 가 봐도 이나 으로 불리는 교미 행위를 통해 암소를 수태시키는 농가는 찾기 어렵다. 황소가 차지했던 자리를 이번에는 수의사가 주사 한방으로 대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화된 종우상에서 능력 좋은 몇 마리의 황소가 수천, 수만 마리의 황소가 했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필자의 고향집에 있는 암소는 황소를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는데도 일년에 한 마리씩 6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비인도적이라는 푸념을 할 틈도 없이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

 

컴퓨터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것이 미래다. 앨빈 토플러 같은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이 다가올 시대를 유토피아라고 한다. 그러나 제레미 리프킨은 최근 발간한 노동의 종말에서 미래는 소수의 정보엘리트와 영구실업자집단의 대립으로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황소의 퇴장을 남자의 퇴장, 인간의 퇴장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는 셈이다.(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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