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 단테 / 해설 및 줄거리
by 송화은율신곡(La Divina Commedia:1308-1321) / 단테
해설
"신곡"은 이탈리아의 시성 단테가 20년 간 모국으로부터 추방되어 방랑하면서
완성한 신학적 서사시이다. 전곡 14,233행이 100가로 나뉘고 다시 지옥편 34가
연옥편 33가 천국편 33가로 구성된 3부작이다. 그런데 33이라는 수는 그리스도가
속죄에 오른 연령을 의미하는 수이며 또한 100은 완전수 10의 제곱수로서
'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10이라는 숫자는 당시의 3을 기초로 한 완전수를
상징하는 동시에 삼위일체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신곡"은 전편이 일시에 발표된 것이 아니다. 지옥편은 1300년-1308년에
연옥편은 1313년에 완성되고 천국편은 그의 사후 유고로서 세상에 나왔다.
"신곡"의 제목은 단테가 Commedia.라고 일컬었고 16세기 중엽 이후 후세
사람들이 여기에 Divina.를 첨가하여 초인적인 우월성으로 신성한 주제를
다루었다는 뜻을 덧붙였다.
작자가 제목을 Commedia.라고 붙인 것은 시의 내용이 고뇌와 증오로 시작하여
미와 희망으로 끝난다는 것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내용의 주조를 이루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 죄악의 생활로부터 참회와 정화를 거쳐 천국에 도달하는 인생의
여로를 그린 아름답고 숭고한 환상의 시이다.
"신곡" 속에는 예술가로서의 단테의 의식과 의지와 감정의 결정체가 나타나
있다.
"신곡"은 단테다. 그의 전생애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쓴 "신생"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유명한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은 이 위대한 작품의 뿌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테로
하여금 위대한 시인이 되게 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 것은 9세 때이며 이 소녀가 8세 되던 어느
따뜻한 봄날 꽃의 도시 플로렌스에서였다. 그 후 단테는 만나보지 못한 채 9년
동안 이름조차 모르는 이 소녀를 간절하게 사모하였다. 그 후 만9년이 지나서야
같은 봄날에 같은 장소인 아루노 강의 베티오 다리에서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우연히 만났다. 이 재회의 장면은 영국 화가 포리테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그 때 이 소녀는 단테에게 정답게 인사를 했다. 이 일이야말로 단테에게
천상의 세계를 계시하고 서정적 회고록인 "신생"을 쓰게 했던 시적 해후였던
것이다. 그러나 단테는 사랑을 고백하지 않고 남몰래 청순한 사랑을 품은 채
조용히 집에 올라와 타오르는 연모의 마음으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그 소녀의
꿈을 꾸었다. 단테는 꿈에서 깨어나 소네트를 지었는데 이것이 그의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사의 스타일인 신미체의 시였으므로
보수적인 사람들에게서는 악평을 받았으나 선배 시인인 구아도 카발칸티는
대단히 감동하여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친교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다시 재회하였을 때 베아트리체는 벌써 어떤
은행가의 부인이 되어 있었으며 1290년 6월 9일 단테가 25세가 되던 해에
베아트리체는 죽고 말았다. 단테는 그녀가 은행가인 귀족과 결혼한 것을 알고
몹시 슬퍼하기는 했지만 질투와 같은 비천한 감정은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속 깊이 그리워하고 동경하게 되었으며 그녀가 죽은 후 그의 사랑은
승화되어 천상적인 사랑이 되었고 그녀의 자태는 단테의 가슴 속 깊이 남아
영원한 연인으로서 천상적인 이상이 되었다.
"그녀는 자연이 낳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며 그를 보는 사람은 마음이
온화해져서 모든 원한이 녹아 버리고 오만과 분노도 사라지게 된다"고 단테는
그 여인을 칭송하였다. 그 후 단테는 다른 여인에게로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베아트리체의 환영을 보고 참회하여 영의 순례자로서 천계의 그녀를 찬양하게
되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절망과 빈곤과 암흑에 끊임없는 위안의 원천이
되었으며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찬양되어 단테로 하여금 예술의 문을 통해 종교의
본질에 이르게 하였다.
"신곡"은 세계 문학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당시
이탈리아 문학은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이 작품은 당시 경시되던
투스카니 어로 쓰여졌고 당시의 사회적 사건에 대한 비평이 들어 있으며 중세적
우주관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단테는 이 투스카니 어를 사용하여 문학적인
언어를 창조했는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고전 이탈리아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자료가 된 것은 성서와 그리스 로마 신화 및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이며 신 플라톤 파의 우주론 토레미의 천문학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등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곡"은 인간의 예술품이라기보다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전해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줄 뿐 아니라 후세 사람들의
비극적 시에 원천이 되었다.
"신곡"은 인간의 상상력이 낳은 최고의 창작품의 하나이며 세계문학사나 인류
문학사의 불후의 금자탑이다. 러스킨은 "신곡"의 어떤 부분의 시에 대해 사람의
힘으로 미치지 못할 기적이라고 말했고 괴테도 이 시의 어떤 부분에 대하여
"인간이 쓴 시 가운데 최고의 것"이라고 감탄하였다. 이와 같이 "신곡"에 의하여
이탈리아 국민 문학은 불후의 명성을 확립했고 단테 자신도 국민 문학의 스승이
되었다. 칼라일은
"유럽은 많은 것을 만들었다. 거대한 도시 위대한 제국 수많은 백과 사전 많은
신조 다양한 의견 각종의 실천 등을 그러나 단테의 사상에 비견될 만한 것은
극히 적을 것이다"고 단언했으며 헤겔 쇼펜하우어 쉴링 등의 철학자들은 일생
동안 이 시의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곡"이 단테의 환상이라고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작자 자신의 고뇌와 사랑과
열망의 표현으로서 그의 인생관 종교관 우주관 사회 비평의 집대성이며 역사와
문학상으로는 물론 철학상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중세 사상의 총괄이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독교 신학 스콜라
철학의 심오함 신비주의자의 정신적 비약을 볼 수 있어 문예 부흥의 선구로서
숭고한 예술의 전당을 이루고 있다. 그 속에 담겨진 지식의 방대함과 깊이는
중세 백과 사전과 같은 느낌도 준다. 여러 세계 문학 작품 중에서도 그 사상의
심원함이나 구상의 웅대함 종교적 열정과 예술적 장엄함에 있어서 이 서사시와
비교될 만한 것은 밀턴의 "실낙원" 외에는 없다고 한다. "신곡"은 인쇄술이 아직
발달되기 이전에 이미 600권의 사본이 있었으며 그 후 판본이 300권 외국어
번역이 300종 이상이 된다고 한다.
작가 약전
단테는 1265년 5월 30일 르네상스의 요람이며 중세 유럽 문학의 중심지였던
플로렌스 시의 가난한 귀족 가문에서 출생하였다.
단테는 일찍 생모를 잃고 계모의 손에서 양육되었으나 18세 때에는 아버지마저
별세하였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9세 때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테를 알게 된 일이었다. 그에 대한 순결한 사랑은 평생 동안 그의
영혼에서 사라지지 않고 시정을 움직여 세계적인 명작 "신생"과 "신곡"을 쓰게
하였다. 그는 1290년에 그 소녀가 죽자 한때 방종한 생활에 빠졌으나 그 소녀가
천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어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도 그만큼
고결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학문에 열중하였다.
26세 때에는 플로렌스 시의 명문 출신인 겜마 도나티와 결혼하여 1302년(37세)
그 시에서 추방당할 때까지 함께 살면서 네 자녀를 두었다. 그는 시인이면서도
학문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고 애국적 열의도 높아 정치에도 참여했으며 전쟁에
나가기도 했었다.
그는 격렬한 당파 싸움에 휩쓸려 1302년 4월에 반역 등의 죄명으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귀국하거나 체포되는 경우에는 화형에
처한다는 가혹한 선고를 받았다.
이렇게 되어 단테의 고독한 망명 생활이 시작되었다.
단테는 항상 고국에 돌아갈 날을 꿈꾸고 있었으며 1301년 플로렌스 정부가
모든 정책을 완화하여 벌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귀국을 허가하였으나
단테는 자기의 무죄를 명확히 하지 않는 한 귀국할 수 없다고 거절하여 정부는
그에게 다시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리하여 단테는 유럽의 망명 시인의 시조가
되었다. 아니 정치적인 망명에 관례적인 위엄을 부여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볼로냐 파류아 라벤나의 프란체스코 사원 안에 있는데 그 비문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플로렌스 땅은 무정한 어머니같이 그를 낳았을 뿐 단테는 어머니인
조국으로부터 쫓겨 나서 이곳에 잠들다"
단테가 죽고 여러 해가 지난 후에 플로렌스 정부는 국보와 같은 위대한
인물에게 가혹했음을 후회하고 그의 작품을 모든 사원과 일반인들에게 강독케
하고 연구 주해라는 명령을 내렸다. 맨 먼저 나타난 "신곡"의 주해자는 단테를
이탈리아 민족의 독특한 광휘라고 평가하고 단테와 더불어 현재 이탈리아 어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였다.
교황 레오 11세 때의 단테의 유골을 플로렌스로 옮기려 하였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계획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단테가 죽은지 600여 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그에 대한 세계의 존경과 애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의 시골에서는 가난한 농부들이 단테의
시를 애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줄거리
-지옥편-
단테가 인생의 반 고개인 35세(1300)가 되던 봄4월8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 금요일 새벽녘에 그는 길을 잃고 어떤 어두컴컴한 숲 속을 방황하고
있었다. 이 숲은 인간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상징하는 곳으로 드디어 그는 숲의
끝에 있는 험한 산비탈까지 왔다. 때마침 솟아오르는 햇빛은 이 '기쁨의 산'을
아름답게 비추었다.
그는 밤새도록 무서운 숲 속을 헤매었기 때문에 몹시 피곤하였으나 산에
올라가고 싶은 충동에 못 이겨 막 올라가려고 했을 때 세속을 상징하는 무서운
호랑이와 사자와 이리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그가 단념하려는 순간 앞에 나타난 것은 단테가 진정한 철학과 시의
스승이라고 숭배하고 있던 로마의 위대한 시성 베르길리우스였다.
베르길리우스의 영혼은 단테에게 인간 이성의 상징이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죄로부터 단테를 인도하는 사명을 받고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이 사나운 짐승들이 많은 숲 속을 빠져 나가려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길을 변경해야 될 것입니다. 그 길은 나와 함께 지옥과 연옥을 통과해야 하는
길입니다. 그 다음에는 천국이 나오는데 그 곳에는 인간의 이성은 갈 수
없으므로 당신을 인도할 여인 베아트리체 신의 사랑의 상징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며 동행을 권하며 그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여기서 세 마리의
맹수는 중세 사람들이 믿고 있던 죄의 3대 근원으로 호랑이는 악의와 사기
사자는 폭력과 야욕 이리는 무절제를 상징한 것이었다.
첫날 저녁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가다 기진하며 절망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게 자기에게는 베르길리우스가 말한 환상을 볼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베르길리우스는 자기가 이 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이나 천당에도 가지 못하고 연옥에 있을 때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신의 사랑의 상징으로서
그녀가 단테를 과오에서 인도하고자 베르길리우스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단테는 도움을 받지 않고는 신의 사랑에게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베아트리체는 성모 마리아와 성 루시아의 기도로서 보내졌다는 것이다 단테는
이와같이 천국의 세력들이 자기를 구해 주려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얻어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우주 여행의 길을 나섰다.
그 날 해질 무렵 두 사람은 지옥의 문턱에 도착했는데 문 위 돌에 이상한 말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슬픔의 나라로 가는 길이다. 나는 영겁의 고통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영원의 파멸로 가는 길이다"
이 문을 지나 가니 아케론 강가에 와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지옥을 바라보고
섰다. 별도 없는 암흑 속에서 이상한 외국어와 방언으로 아우성치는 소리와
몸부림치는 소리 차마 들을 수 없는 비명 소리가 참혹하게 들려왔다. 지옥의
주위를 흐르고 있는 이 아케론 강을 건너 망령들을 저승에 이르도록 해주는 배를
젓는 것이었다.
그는 떼지어 오는 망령들을 잔인한 말로 조롱하며 이 강을 건너기만 하면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여기서 보이는 태양빛도 다시 보려는 생각조차 말라고
하자 망령들은 일제히 통곡하였다. 카론은 지상에 있을 때와 같은 옷차림을 한
단테를 보고 화를 내며 이 괴상한 방문객의 승선을 거부하였다. 그의 임무는 죄
지은 망령들만을 건네 주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로부터
천국의 뜻에 의해 이 곳에 왔다는 것을 듣고는 이내 납득하였다.
이 강의 탁류를 건너는 도중 신의 노염을 받은 망령들이 사방에서 떼를 지어
모여 와서 단테를 붙잡았기 때문에 하마터면 배가 전복될 뻔하였다. 이 때에
'눈물의 나라'로부터 큰 바람이 불어오고 번개가 치는 바람에 단테는 공포
때문에 그만 졸도하고 말았다. 이 위험을 겨우 벗어나 건너간 곳이 바로
지옥이다. 단테가 생각하는 지옥의 위치는 지구 중심의 밑바닥이 되는 북반구
밑에 놓여 있는 큰 묘지 모양의 동굴이었는데 이 큰 분지의 주위로 봉우리들이
있고 여기에는 죄에 대한 형벌이 지정된 곳이었다.
지옥의 끝이 되는 곳 즉 지심의 밑바닥인 대마왕의 형벌을 받는 곳에서부터 한
줄기의 험한 길이 지구의 표면을 통하여 반대 방향으로 열려 남해의 파도 위에
우뚝 솟은 정죄산의 비탈로 나오게 되어 있다. 이 지옥은 또 '상부 지옥'과 '하부
지옥'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상부 지옥'은 이성을 잃은 사람이 욕망을 제멋대로
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곳이며 '하부 지옥'은 이성을 갖지 못한 사람이 짐승과
같은 행위 또는 악랄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벌을 받는 곳이다.
단테는 인도자인 베르길리우스에게 인도되어 먼저 상부 지옥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여러 단계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지옥 전체는 아홉 가지의 지옥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부로 내려갈수록 죄가 무거운 사람들이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제1권
이 곳은 지옥의 변두리가 되는 특수한 장소인 변옥이라는 곳인데 죄는 없으나
그리스도를 모르고 세례를 받지 않은 자 즉 무신자 혹은 이교도들이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하고 이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지상에 내려오기
전의 사람들이나 혹은 그리스도를 몰랐던 사람들로 덕이 있어서 형벌을 받지
않지만 애써 신을 찾으려 해도 구원과 희망을 얻을 수 없는 절망의 고통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이 곳에 있던 사람들로서 승리의 왕관을 쓰고 온 그리스도에게 최초로 구원된
사람은 아담 이브 아벨 노아 모세 아브라함 다윗 왕이었으며 많은 그리스 로마의
성현 중의 한 사람인 베르길리우스는 거기에 남아 있다가 특별한 사명을 띠고
단테를 지상 낙원까지 인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 네 사람의 망령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다. 그 중 한 사람이
"위대한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라 떠나간 영광 그 영혼이 돌아온다. 그이가
왔다. 그이가 왔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스승은 단테에게 그를 맞아준 사람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그리스의 이름 높은 시성 호머 호레이스 루칸
등이었다. 이 여섯 사람은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교환함으로써 단테가 지옥
여행에 대해서 품은 공포심도 어느 정도 풀리게 되었다. 일행은 강물을 육지와
같이 걸어서 어느 지점까지 왔다. 그 곳에 위치하고 있는 거룩한 철학성은 일곱
겹의 벽으로 둘러싸여 현자의 7덕을 나타내고 벽마다 열려져 있는 일곱 개의
문은 일곱 학문의 상징이며 그 성벽의 주위에는 웅변을 상징하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문을 들어가니 그 곳에는 진기한 화초가 우거지고 푸른 숲이
있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이 곳에는 수많은 세계의 시성 성현 위인들이 있었다.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
로마의 건국자 아에네아스 줄리어스 시저 터키 왕 사라센이 있었다. 단테는
사라센을 보고 그가 임종시에 자신의 장례를 성대히 거행하지 말라고 유언으로써
엄명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장례식은 그의 속옷을 창끝에 걸어 왕의 깃발로
사용하여 열 앞에 들게 하고 소복을 입은 중이 깃발 앞에 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동방의 정복자이고 생전에는 부귀와 위대함이 정복자였던 사라센은 이제 한
벌의 속옷만을 들고 간다" 하고 외치도록 되었던 것이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은 지상에서 즐기지 못한 세
사람의 만남을 기뻐하는 것같이 보였으며 그 외에 데모크리토스, 디오게네스,
탈레스가 있었고,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 수학자 유크리트, 천문학자
프로메테우스, 의성 히포크라테스 등이 있었다. 단테는 중세 기독교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위인들을 지옥에 있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죄인에 대한 일관된 정서는 복수적 징벌이 아니고 측은한 마음이었다.
제2권
지옥 고유의 형벌이 길을 가로막고 시작된다. 지옥에 온 죄수를 심판하고 그
업보를 판정하여 이들을 각각 적당한 지옥에 보내고 있는 자는 옛날 크레타성의
왕이었다는 미노스였다. 그는 반인 반수의 무서운 얼굴과 한 개의 긴 꼬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죄수가 앞으로 나와 참회를 하면 그 꼬리를 자기 몸에 감아
그들이 추락할 옥을 숫자로 표시하고 또한 매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미노스는 두 시인에게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는 뱃사공 카론에게와 같은 태도를 취하여 그를 침묵케
하였다.
이 옥에는 육욕의 죄를 범한 자 즉 이성을 배반하고 욕정에 빠진 자들이 있는
곳이다. 망령들은 그칠 새 없이 불어오는 무서운 태풍과 모래와 먼지의 고통을
받으며 암흑 속에서 떨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쾌락에 젖어서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살면서 이성을 망각한 응보였다.
그들 속에는 수많은 미남 미녀들이 있었는데 로마의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농락한 클레오파트라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된 미녀 헬렌과 그의 정부 파리스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민족을 다스리면서 육욕에 빠져 부패를 일삼은 여왕
세미라미스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죄를 은폐하고자 모든 음란한 행위를
법으로 합리화했었다.
그 다음은 디도인데 그녀는 남편 시카에우스가 죽은 뒤 정절을 깨고 사랑에
빠져 자살을 한 여왕이었다.
그들 중에 서로 얼싸안고 떨어지지 않으며 가련하게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는 두 남녀가 있었는데 그들은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와 파울로였다. 이 두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단테와는 한 고향이었다. 파울로는 묵묵히 울고
있었으나 프란체스카는 전생에서의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사랑의 이야기는 너무도 비극적이어서 후세의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275년 리미니의 조반니 말라테스타는 약간의 불구자였기 때문에 절름발이
조반니라 일컬었지만 용감하고 힘센 무사였으므로 라벤나의 구이도 다폴렌타의
딸 프란체스카와 정략 결혼을 하였다. 프란체스카가 리미니에 왔을 때 조반니의
동생 파울로와 사랑에 빠졌다. 파울로는 1269년 결혼한 두 딸의 아버지였는데도
불구하고 프란체스카와의 사랑은 계속되었다. 조반니가 프란체스카의 침실을
기습하여 둘을 죽인 것은 1283년의 일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즉 조반니는 파울로를 자기 결혼의 대리인을 보냈는데 프란체스카는
진짜 자기 남편으로 알고 첫눈에 마음을 주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단테는 비통함에 젖어 끝내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가 의식을 회복하였을
때는 제3권 앞에 서 있었다.
제3권
이 곳은 대식가와 음식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자들을 벌하는
지옥이다. 상을 에이는 듯한 눈과 큼직큼직한 우박이 미친 듯이 쏟아져서 암담한
지경을 이루고 있다. 욕심껏 먹어도 만족을 모르는 머리가 셋 달린 짐승
첼베루스가 새로 들어온 망령에게 덤벼들어 잠깐 동안에 피부를 찢고 살을
물어뜯어 망령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 괴물은 두 시인을 발견하자 큰 입을
벌리고 단숨에 삼킬 듯이 가까이 왔다. 이 때 베르길리우스가 흙덩어리를 집어
던지자 괴물은 그 흙덩어리를 먹느라고 수선을 떨었으므로 그 틈을 이용하여
겨우 그 곳을 통과하였다. 이 때에 길 옆의 더러운 물이 고인 구덩이 속에서
단테에게 소리치는 자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는 플로렌스 사람으로서 생전에
욕심껏 많이 먹기로 유명하여 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인데 그는 단테의
물음에 고국의 혼란과 흑백 양당의 싸움을 논하고 백당이 승리한 3년 후에 또
다시 패배한다고 미래를 예언하였다. 그리고 플로렌스의 여러 명사들이 지옥
깊이 떨어져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제4권
이곳은 축재할 줄만 아는 인색함과 낭비로 일생을 보낸 방탕아들이 서로
다투고 있는 곳이다.
이 권에서는 수많은 망령들이 흡사 사람의 물결과도 같이 서로 아우성을 치며
싸우고 있었다. 이들은 두 패의 노한 폭도로 각각 거대한 바위를 힘을 다하여
굴리고 충돌시키고는 그것을 굴리고 되돌아 갔다가 또다시 충돌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이 바위는 부의 상징이었다. 이 거대한 바위를 굴리고 있는
것은 지나치게 부만 추구하고 또한 낭비하는 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바위가 도로 굴러떨어지면 한 쪽에서
"너희들은 왜 돈만 모으려고 하느냐?" 하고 외치면 한 쪽에 있는 자들은
"너희들은 왜 낭비만 하고 있느냐?" 하고 외쳤다. 그것은 권의 양끝에서
욕망끼리 부딪칠 때 일어나는 과도한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 중에는
성직자들과 교황, 추기경들도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덧없는 허영과 부귀 영화,
야욕으로 본성끼리 더럽힌 죄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제5권
이 곳은 분노에 몸을 맡긴 자들이 잇는 지옥이다. 여기는 스틱스라는 무서운
늪이 있고 늪 가운데에는 디테라고 하는 증오의 성이 높이 솟아 있었다. 이
늪에는 검은 탁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 물 속에는 진흙투성이의 망령들이
하반신을 진창 속에 담그고 서 있는데 그 분노의 형상이 참으로 처참하였다.
그들은 서로 손과 발을 들어 머리나 가슴이나 발을 닥치는 대로 치고 박고
하였으며 심지어는 이빨로 서로 물어뜯었다. 그뿐만 아니라 늪의 수면에는 검은
물이 부글부글 거품을 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가라앉은 망령들이 가슴 속에 뭉쳐
있는 검은 연기와 같은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테와 스승은 죽음의 늪을 건너 중죄를 범한 자들이 있다는 디테 성의 문
앞에 섰다. 탑의 꼭대기에는 신을 배신하고 타락하여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의
망령들이 운집하여 내려다보면 성난 소리로 외쳤다.
"지상 사람의 모습으로 망령들의 영역을 대담하게 침입하려는 너는 누구냐?
당장 지상으로 없어져라" 하고 단테의 입성을 거절했다. 베르길리우스는
조심스럽게 밀어 제치며 그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단테에게 그 망령들이 전생에 지은 분노와 교만의 죄에 대해 설명해
주며 위로했다.
"이 메두사야 빨리 나타나라. 너희들이 쏘아 보아도 우리는 돌이 되지
않는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들이 말하는 메두사는 무서운 힘을 가진
여자인데 누구든지 그의 무서운 얼굴을 한 번만 쳐다보면 그만 돌로 변해
버렸다.
스승은 악령들이 메두사를 불러 단테에게 위험을 가하려는 것을 알고 놀라
있는 단테를 뒤로 돌려 세우고 손으로 그의 눈을 가려 주었다.
이 때 늪의 양쪽이 흔들리며 돌연 온 몸에서 찬란한 빛이 발산되는 천사가
물위로 육지와 같이 걸어 오고 있었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절하게 하니
그때까지 날뛰고 있던 악령의 무리들이 이리저리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천사가
성문 앞에 와서 성장을 문에 대자 굳게 닫힌 큰 문이 활짝 열렸다. 천사는
성으로 들어가 망령들을 꾸짖고 두 시인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온 길로 돌아가
버렸다.
제6권
이 곳부터가 가장 무서운 '하부 지옥'이다. 이 곳은 넓은 들판으로 신을 모독한
죄, 즉 이교도의 교주들과 그 제자들이 있는 지옥이다. 그리스도교에 반항한
이교도와 쾌락이 인생의 최고 가치라고 주장하는 에피쿠로스 파의 철학자들이
있었다. 바라보이는 곳마다 무덤이 펼쳐져 있는데 모두 뚜껑이 옆에 있거나
없어서 망령들의 아비 규환과 고통에 시달리는 소리가 그 속에서 들려 왔다.
더구나 그 위에 맹렬한 불길이 타고 있는데 여기는 각종 종파의 이교도들이
형벌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영생을 부인함으로써 영혼이 육체와 더불어
죽는다고 믿었으므로 그들의 처벌은 신의 분노로 화형을 받는 영원한 무덤에
사는 것이다. 이 곳에는 기배린 당의 용장 파리나타를 비롯하여 단테의 친구이자
시인인 구이도의 부친인 카바르칸티와 피데리코 2세 교황 옥타비아누스 등 천여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원한과 복수의 상징인 메두사가 두 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7권
여기에는 깨진 암석들이 둥글게 쌓여 원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바닥이 있었다.
험한 암석이 톱니처럼 우뚝 솟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좁은 바윗길을 겨우
뚫고 나가니 바위틈 사이에 옛날 크레타 섬에서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반인
반수의 미노타우로스가 누워 지키고 있었다. 이 괴물은 누워 있다가 그들을 보자
분노에 떨면서 자신의 몸을 물어뜯기 사작하였다.
이 기형아는 크레타 섬의 왕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바다의 신이 보내 준
숫소를 사랑하게 되어 나무로 만든 암소의 몸 속으로 기어들어가 결합하여
태어난 것이다. 미노스 왕은 그를 달아날 수 없는 미궁 안에 유폐하여 나오지
못하게 한 후 매일 아테네의 소년 소녀 일곱 명씩을 잡아먹고 살게 하였다.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는 이것에 분개하여 크레타 섬에 가서 그를 죽여 버렸다.
그래서 그의 혼은 피에 굶주린 포악과 잔학의 상징이 되어 이 권에 갇혀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었다. 베르길리우스는 그가 분노하는 모양을 보고 큰 소리로
"이 괴물아, 나는 너를 죽인 아테네의 왕이 아니다. 우리들은 단지 너의 형벌을
보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이다" 하고 소리쳤다.
두 시인은 허물어진 암석을 겨우 지나서 아래에 있는 골짜기를 걸어가는데
발에 걸리는 돌이 이상하게 발 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세계가 갑자기 암흑이 되고 온 골짜기가 진동하면서 이 곳에
있는 바위도 추락하여 이와 같이 움직이는 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래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세 개로 구분된 원 하나에 백성들에게 흉포한
행동을 가한 폭군과 살인자들이 열탕처럼 끓고 있는 빨간 피의 연못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눈과 이마가 뜨거운 핏물에 잠긴 자도 있고 겨우 목만 내놓고
신음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죄의 경중에 따라 침몰의 깊이에 차이가 있었으며
대안에는 흉포의 표상인 반인 반마의 센타우르스가 수천 마리의 떼를 지어 핏물
속에서 올라오려는 망령을 활로 쏘려고 위협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압제자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과 인간의 영혼을 더럽힌 시칠리아의
데오니오스 등 자기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많은 살생을 한 호전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제2원은 신의 율법을 배반하고 자살을 한 자들이 사는 숲으로 이 곳에 있는
작고 앙상한 나무들은 전부 죄수가 변한 것이었다. 열매는 하나도 맺지 못한 채
독가시만이 무성했다. 불평과 절망의 상징으로서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새와 같은 날개와 긴 손톱을 가진 괴물은 얼굴은 굶주림으로
창백하였다.
이 곳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는데 슬픈 울음 소리가 사방으로부터
들려 왔다. 그것은 이 괴상한 새가 새싹을 주둥이로 쪼았기 때문에 나무들이
아픔을 견디지 못해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단테가 스승이 시키는 대로 그
나뭇 가지 하나를 꺾었더니 마디 속에서 피가 흘러 나왔으며
"왜 남의 몸에 상처를 입히느냐?" 하면서 고통에 겨워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 나무는 시칠리아 왕 페데리코 2세의 고관이었던 피에르 텔레뷔니에의
화신이었다.
그는 평민으로서 웅변과 학식이 뛰어난 명예로운 지위를 얻었으며 공도 많았던
사람이었으나 만년에는 정적들의 모략으로 국왕의 총애를 잃고 눈알까지 빼앗긴
채 유폐 당하자 절망 끝에 자살하였다. 이 때 벌거벗은 두 개의 그림자가
가시덤불에 상처를 입은 채 악마들에게 쫓겨 숲을 헤치고 오더니 죽어 버렸다.
그들은 시에나 사람인 라노와 파도아의 자코보인데 가산을 탕진하고 횡사하여
이러한 벌을 받고 있었다.
제3원에 이르니 풀 하나 남지 않고 타버린 열사의 들판이었다. 이 곳에는 신을
모독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들은 뜨거운 모래 위에 엎드려 고민하고 있었으며
자연에 반역하여 인륜을 더럽힌 자와 땀을 흘리며 얻어야 할 노동의 대가를
부당하게 착취한 불로 소득자들이 죄의 무게에 따라 속도를 달리하여 떼를 지어
달리며 헤매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불줄기와 이 나체의 죄수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불꽃이 점점 모래땅 위에 쌓여 불바다를 이루자 망령들은 손을
휘젓고 발을 구르면서 계속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열사를 지나가니 한 줄기의 빨간 피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이 강물은
부리가메에서 흐르던 물과 같았다. 부리가메라는 것은 비델보 부근의 유황
온천인데 중세 때는 창부나 죄 지은 여인들이 일반 부인들과 함께 목욕하는 것을
금지 당하였으므로 이 온천의 물을 다른 장소로 끌어내어 따로 목욕을 하였다고
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이 지옥의 늪과 강물은 인간 태고의 황금 시대는
제외하더라도 그 후의 죄와 고통으로 가득 찬 각 시대에 흘려진 눈물이 지하를
뚫고 흘러서 지옥의 내를 이루었으며 여기에 지옥의 죄수들의 눈물과 폭군
자객의 피와 여러 지옥의 모든 더러운 것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형벌의 좋은 도구가 된다고 말했다. 이 강은 아케론과 스트제 강인데 열사의 한
복판을 흐르며 질병을 퍼트리고 물위나 냇가의 불꽃을 끈 후 대마왕이 사는 최저
지옥의 얼음지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이 곳을 지나는 강가에서 단테는 여러 죄수들 가운데서 얼굴이 그을려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 그의 은사 부르네토 라티노를 간신히 발견하였다.
그는 단테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단테는 누구보다 가장
큰 존경을 보였다. 부르네토는 단테가 플로렌스 사람의 손에 고역을 겪으리라는
예언과 함께 자신의 보전을 기억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신의 강제에 의해 들판을
달려 건넜다. 강물이 그치는 곳까지 이르러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허리에
매고 있는 띠를 물 속 깊이 던지게 하니 한 마리의 기괴하고 큰 짐승이 짙은
안개 속에서 떠올랐다. 얼굴은 유순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나머지 전신은 털이
돋은 뱀 형체를 한 보기에도 끔찍한 괴물이었다. 이것은 사람을 유혹하여
자연이나 문명을 파괴하는 상징인 게류온이었다.
이 때 한 쪽에서는 비싼 이자를 받아 사람들을 괴롭힌 고리 대금업자가 목에
영원히 걸고 있어야 하는 가방을 매고 고열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돈가방에는 문장과 상표가 선명하게 수놓여 있었는데 대개가 플로렌스의 명문
귀족들이었다. 두 시인은 게류온을 타고 빨간 피의 폭포수를 좌우로 바라보면서
공중을 번개 같이 빠르게 비행을 하여 사기꾼들이 벌받고 있는 무쇳빛 암석의
나라로 내려갔다.
제8권
이 곳은 악의 구덩이라고 하는데 사기꾼과 악한들이 있는 지옥 상반부이다.
암석은 점차 제9권을 향하여 기울어져 있고 다시 열 개의 골짜기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는 죄의 정도가 다른 자들이 각각 들어 있었다. 타락한 천사도
이 곳에 있는데 이 권은 인륜을 파괴한 기만의 죄를 범한 자들이 떨어져 있었다.
제1의 골짜기에는 지상에 있을 때 부녀자들을 유괴 혹은 매매한 자들로서
그들은 뿔이 돋힌 악귀의 긴 매에 무참하게 맞으려 도망쳐 다녔다. 노무노스
섬의 젊은 왕녀 피퓨시프레에게 아이를 배게 한 뒤 버리고 아내로 맞은
고루키스의 왕녀 메데아까지 버린 셋사리아 왕 야송 알렉산드리아의 난폭한 국왕
타이스가 이 곳에서 자기 몸을 학대하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제2의 골짜기에는 아첨한 자들이 똥통 속에 빠져 허덕이는 것이 보였다.
제3의 골짜기에는 성직 매매의 죄를 범한 자가 있는 곳인데 이 곳은 납빛을 한
절벽 속에 많은 구덩이가 뚫려 있었는데 그 속에는 죄수가 한 사람씩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빨간 불꽃이 그 구덩이 속에서 타고 있는데 밖으로 나온
두 발목은 뜨거움에 못 이겨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불꽃이 강한 것이 니콜라스 3세의 것이었다. 그는 교황의 몸으로 성직을 돈을
받고 팔아 많은 죄악을 저질렀다.
제4의 골짜기에는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언했던 점쟁이가 있었는데 그들은 신의
신비를 폭로한 죄로 앞을 보지 못하게 머리를 뒤로 돌려 붙었기 때문에 발은
앞으로 걸어가나 눈은 뒤를 향하고 있었다.
단테는 비참한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제5의 골짜기에는 관직을 더럽힌 자들이 있었다.
뇌물을 받은 탐관 오리들은 송진과 기름이 끓고 있는 연못에 파묻혀 얼굴만
겨우 내놓고 개구리 같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들을 감시하고 있는 포악스럽게
생긴 악귀들은 손에 갈고리를 들고 끓고 있는 송진과 기름 속으로 죄인들을 밀어
넣었다. 그들은 감시를 피하여 떠올랐다가 악귀들이 가까이 오면 못 속 깊이
숨어 버리곤 하였다.
제6의 골짜기에는 위선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무거운 납으로 만든 의복을 입고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으나 그 의복의 표면은 찬란한 도금으로 덮여 있었다.
그 중에는 브로니아의 수도사 카타라노와 로데링고 등이 있었으며 땅바닥에 세
개의 말뚝에 못박혀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도록 빌라도에게 넘겨
준 제사장 카이아파스였다. 그는 벌거벗고 좁은 길바닥에 누워 그 위를 짓밟고
다니는 사람들의 무게를 낱낱이 몸에 느껴야만 했다.
제7의 골짜기에는 수많은 도둑들이 가장 천한 벌을 받고 있었다.
이 곳은 어두컴컴한 밑바닥은 보이지 않았으나 온 골짜기에는 끔찍한 뱀의
무리가 보였다. 리비아의 사막이나 에디오피아와 아라비아의 뱀을 모두 모아도
이처럼 처참하고 지독한 뱀들은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죄인들이 뱀 사이를 피해
다니는데 뱀은 손과 목 허리를 칭칭 감아 조이고 있었다.
지금도 뱀 한 마리가 두 시인 옆에 있는 한 사람의 목을 찔러 쑤시니 금새
타서 재가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베르길리우스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으니 단테의 고향에서 가까운 피스토이아
사람이며 신전의 성스러운 보물을 훔쳐 이 속에 떨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단테에게 피스토이아와 플로렌스의 정치 싸움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말을 마친 그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신을 욕하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곧 떼를 지은 뱀이 목을 감아 입을 막고 팔을 감아 움직이지 못하여
도둑을 끌고 갔다. 이 때 떼를 지어 덤비는 뱀이 등에 붙은 젠타우로(예전에
가축을 훔친 죄로 이 옥에 떨어진 사람)가 그를 뒤쫓아가는 것이 보였다.
다음에 본 광경은 더욱 처참하고 기괴하였다. 세 망령이 두 시인이 바라보는
아래로 왔을 때 여섯 개의 발을 가진 도마뱀 한 마리가 그중 한 망령에게
달라붙었다. 망령은 도마뱀에게 칭칭 얽혀지더니 뜨거운 납처럼 녹아 보기 흉한
모양이 되어 떠나갔다.
그 때 또 삼복의 더운 햇볕 아래 번개같이 길을 지나던 작은 뱀 한 마리가 한
망령의 배로 뛰어들어 그 배꼽을 찌르고 그의 앞에 넘어진다. 찔린 사람은
열병에 걸린 듯 하품을 하면서 뱀과 서로 쳐다보면서 연기를 토하고 그 연기는
서로 섞이었다. 이것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 사람의 사지는 비틀어지고 얽혀서
얼굴이 변하면서 뱀의 몸이 되고 뱀의 몸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뱀으로
변한 망령은 소리를 내며 바위 틈으로 도망 다니고 있었다.
이와 같이 뱀과 한 덩어리가 되어 뱀이 되었다 사람이 되었다 하는 이 기괴한
변화와 비참한 고통을 눈앞에 보여 준 자들은 모두가 플로렌스의 도둑들이었다.
제8의 골짜기에는 권모 술수의 죄를 범한 자들이 있었다.
사람이 타고난 재능을 남용하여 권모 술수로 죄를 지은 죄인들이었다. 그
죄인들 중에는 트로이 전쟁 때 목마의 간사한 꾀로써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이와 디오메데스도 있었다. 그들은 간계의 대가로 화염에
싸여 고통을 받고 있었다.
제9의 골짜기에는 이간 중상자와 책동자가 있는 곳으로 그 참혹한 광경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독교를 변질시킨 마호메트는 뺨으로부터
아래까지 갈라져 있는데 종아리 사리로 창자가 늘어져 있으며 오장육부가 환히
다 보였다. 이는 그의 종교적 불화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는 단테
눈앞에 자기 가슴의 상처를 헤쳐 보이며
"보라, 이 모습을! 나는 마호메트이다. 나보다 앞서 가고 있는 이마로부터
얼굴까지 갈라져 있는 사람은 이슬람교 안에서 최초의 분파를 만든 나의 사위인
알라이다. 여기에 있는 악귀들은 우리들이 고뇌의 길을 한 바퀴 돌아오면 다시
칼로 무참하게 갈라 놓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상처가 다시 아물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이슬람교 주인 마호메트는 단테의 지상의 옷차림을 보고 현세에 돌아가면 헛된
교파 싸움만 하고 있는 돌치노에게 충고해 달라고 하였다. 돌치노는 바루마의
세가렐리의 제자였는데 공산적 경향이 있었으며 재산과 여성의 공유를
주장하였다.
목을 베이고 코를 눈 아래까지 깎이고 귀가 한쪽만 있는 사나이가 목구멍을
열어 말하는데 그는 루마니아의 각 도시에 분쟁의 씨를 뿌린 피에르 다
메디치였다. 그 옆에 혀를 잘리어 묵묵이 있는 것은 시저로 하여금 로마
공화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한 호민관 쿠리오였고 두 손을 잘리고 남은 팔만을
어두운 공중으로 올리고 있는 것은 결혼을 위해 플로렌스를 두 파로 분열시켜
전쟁의 원인이 된 폰델몬테 가문의 모스카였다.
프랑스의 귀족이며 연애 시인 벨트란드 데 보른은 머리가 없는 몸뚱이로
자기의 머리를 손에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손에 달려 있는 머리는 그의
몸뚱이를 바라보며
"아아!" 하고 슬프게 한숨 지었다. 그는 영국의 왕자 헨리를 사주하여 부왕인
헨리 2세를 반역하게 한 자였다. 결합되어 있는 두 사람의 사이를 벌어지게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머리와 몸뚱이가 잘리운 것이었다.
제10의 골짜기에는 연금술사와 화폐 위조자들이 벌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기만자들은 엎드려 배로 기어다니거나 타인의 어깨 위에 매달려
있거나 혹은 네 발로 바애의 길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 썩어 문드러진
몸에서는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머리부터 발목까지 부스럼으로
덮인 채 서로 얼싸안고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손톱으로 긁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몸을 공중으로 띄워 나를 수 있다고 사람을 속이고
또 한 사람은 화폐를 위조한 연금술사인데 이들은 이미 시에나에서 화형을
당했다.
이 때 고삐 풀린 산돼지처럼 광포하게 달리는 두 개의 망령이 달려 와서 그
하나는 연금술사 한 사람에게 덤벼들어 목덜미를 물으며 배를 땅바닥에
문질렀다. 이것을 보고 떨고 있는 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 폭행자는 위조의
유언장을 가지고 유산횡령에 가담한 플로렌스의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지풀로의
왕 지니라의 딸로서 어둠을 타서 아버지와 근친 상간을 한 미류라의 넋이라고
했다.
그리스의 시논은 간계를 써서 트로이의 포로가 되어 그리스 군대가 남겨 두고
간 목마를 성내로 끌어들이게 하여 성을 함락시킨 간첩이었는데 그는 옴이
손등에 번지고 열병에 걸려 전신에서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으나 한 방울의 물도
얻지 못한 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며 신음하고 있었다.
이 지옥은 마왕의 지옥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사방이 어두웠다. 이 때 천둥
소리보다도 더욱 무서운 소리가 들려와서 바라보니 높은 탑이 늘어선 것 같은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것은 마치 시에나 성의 북쪽에 있는 성 몬테레치오네의
12층 탑과 흡사했으나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이 거인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너무 과신하고 신에게 반역을 꾀한 자들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 팔을
철쇠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넓은 얼굴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길이 7피트 반이나 되는 거대한 종만 하였으며
골격도 역시 거대하였다.
제9권
이 곳은 지옥의 최말단으로 반역의 죄를 범한 자들이 철쇠에 묶여 원의 얼음
속에 잠겨 있는 얼음 지옥이다. 국가를 반역한 매국노 군주를 죽인 역적
그리스도를 판 유다 등이 이 얼음 지옥에서 가장 가혹한 중벌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머리까지 얼음 속에 잠겨 있었는데 단테가 잘못하여 그 중 한 사람의
머리를 발로 건드리니 그가 성을 내면서
"몬다페르디 전쟁에서의 복수를 하려고 하느냐?"라고 하는 것을 달래어 그의
이름과 사적을 물어 보았다. 현세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죄수들이 이 곳에서는 이름이 밝혀지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단테는 무자비하게 그의 머리카락을 한 줌 뽑았다. 그래도 그는 고함만
지르며 고개를 숙인 채 이름을 감추었으므로 그의 옆에 있는 다른 죄수의 입을
통해 그가 동지를 배반한 복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루프 당과 기베린 당의
양당이 1260년 몬테페르디에서 대결전을 하였을 때 적과 내통하여 기수의 손을
잘라 군기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게루프 당의 사기가 떨어져 대패를 하게 했던
간악한 배반자였다.
가족과 손님을 연회에 초대하여 살해한 죄인은 핏줄까지 얼어붙을 듯한 곳에
수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기의 친 아우를 살해한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혹한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붙들고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전신이 얼음 속에 잠겼는데 얼음이
눈알까지 덮여 있기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가 고통이 더욱
심하였으며 양쪽 귀는 없었다. 단테는 그의 눈에 있는 얼음을 씻어 주는 대신
그의 신상 이야기를 듣기로 하였다. 이 두 사람은 알베루티 형제로서 백작인
아버지가 죽은 뒤 잠시 협력하여 압정을 하였으나 분쟁을 일으켜 두 당으로 갈려
서로 살육을 범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단테는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자들은 아귀였으므로 단테의 사랑에 모순되기 때문이었다.
단테는 암굴 속에서 머리가 또 하나의 머리 위에 붙어 동료의 머리를 뜯어먹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슨 죄로 그렇게 처참한 짓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입을 머리에서 떼고 입술의 더러운 피를 씻으며 이야기했다. 이들은 유명한
우골리노 백작과 대승정 루지에르였다. 우골리노 백작은 피사의 귀족으로서
게루프 당의 지도자였다. 권세를 좋아하며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자기의 당을
배반하고 루지에르와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루지에르의 배반으로 우골리노
백작은 두 아들과 세 명의 손자와 함께 피사의 탑 속에 감금되었다.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들과 함께 약 8개월 간 유폐되었던 감옥은 짐승도 살지 못할 만큼
어둡고 습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듬해 3월에는 옥이 폐쇄되어 식사를 받지
못하게 되고 굳게 닫힌 옥문의 열쇠는 알노 강물 깊이 던져졌다. 그 때부터 한
방울의 물도 한 조각의 빵도 없이 노백작은 희미한 빛 아래서 가련한 아이들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곧 벌어진 참극을 짐작한 늙은 백작의 고민과
비탄은 참으로 처참하였다. 일 주일이 지난 후 다섯 명의 어린애들은 비참한
몰골이 되었다. 원통함과 슬픔 때문에 백작이 자기의 두 손을 물어뜯자 옆에서
보고 있던 아들이 배가 고파 그러는 줄 알고
"우리들의 살을 잡수시지요. 그러면 우리들의 슬픔과 고통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 불행한 살을 주신 아버지께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나흘이 되는
날 아침에 그의 둘째 아들 갓도는 아비의 무릎 아래서 죽어갔다.
"왜 구해 주시지 않으십니까 아버지!"
이것이 그가 죽어가며 외친 절규였다.
이리하여 남은 애들도 모두 죽어 버렸다. 비애와 고통의 극단을 맛본 백작은
아이들이 죽은 3일 후에 아사하고 말았다.
이 우골리노 백작의 이야기는 프란체스카의 비련과 함께 고금의 애절한 노래로
후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어떤 나라에서는 교과서에까지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피사의 고탑은 이 사건 떄문에 아사탑이라는 끔찍스런 이름을 얻게
되고 잔인함의 상징으로 사람들에게 남게 되었다.
지옥의 밑바닥 즉 광열의 근원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것은 대마왕
르치페로이다. 그는 악의 상징이고 우주를 반역한 거대한 괴물이다. 이전에는
아름다운 천사였으나 악마가 되면서부터 얼굴이 흉악해 지고 모든 비애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천당에서 이 지옥으로 굴러 떨어져 한반신이 영원히 얼음
지옥 속에 파묻혀 추악한 세 면의 얼굴과 여섯 개의 눈을 가졌다.
그런데 그 얼굴의 하나는 붉었고, 하나는 검었으며, 나머지는 노랑색이었다. 이
세 면의 얼굴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이것은 신의 삼위 일체인 지혜와
힘 사랑에 대하여 지옥에 있어서도 삼위 일쳬라고 할 만한 무지 무력 증오의
상징이라고 한다. 무지는 자체의 암흑 때문에 검고, 무력은 분노 때문에
붉었으며, 증오는 질투에 의하여 노란 것이다. 얼굴 아래에는 날개가 둘씩 나와
있는데 그것은 박쥐의 날개 같았으며 쉴 새 없이 날개를 치면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일어나는 바람으로 얼음이 점점 두터워져 이 얼음 지옥의 얼음
강을 얼어붙게 할 뿐이었다.
반역의 왕인 그의 여섯 개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내렸고 세 개의 입으로
세 사람의 죄인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판 가롯의
유다였는데 머리는 벌써 입 속에 들어가고 양쪽 발만 내저으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부르터스와 카시우스는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를 암살한 죄로 다른
두 입에 물려 있었다.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은 이것으로 다 보았으니 밤이 되기 전에 돌아가자" 하고 말하였다. 두
시인은 이틀 동안의 지옥 구경을 끝마치고 다시 지구의 표면으로 험악한 길을
올라갔다. 하루가 지나서 멀리 보이는 둥근 구멍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마왕이
회개하고 지옥으로 떨어질 때 생긴 그 구멍으로 빠져 나왔다. 두 시인이 지옥을
나왔을 때 인간 세상은 부활제의 전야인 월요일의 새벽녘이었는데 별은 아직도
찬란하게 연옥의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연옥으로
올라갔다.
-연옥편-
넓고 푸른 바다로 된 남반구의 중앙에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산으로 된
섬이 있다. 그 형태는 원추형이고 바로 예루살렘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꼭대기는 화천에 이르게 되어 있는데 이 높은 산이 연옥이다. 연옥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간이 죄를 회개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의
상징일 것이다. 이 곳에서는 망령들이 지옥에서와 같은 비참한 형벌을 받지는
않으나 고난과 싸워 가톨릭의 신조를 지키고 자기의 잘못을 속죄하면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즉 영혼의 구원을 받을 희망이 있는 망령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이
곳에서의 시련과 수양만으로는 불충분하여 다시 신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연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산의 중턱을 도는 일대를 연옥의 하부라 하고 그
위로부터 산꼭대기에 이르기까지를 연옥의 상부라 하는데 그 봉우리에는 에덴의
동산이라고 부르는 지상의 낙원이 있었다.
연옥의 하부
컴컴한 지옥의 둥근 구멍을 나온 두 시인은 연옥에 서 있었다. 밤은 아직 밝지
않아서 별빛은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깨닫게 하고 정의와 신중 강의와 절제의
네 가지 도덕을 표상하는 네 개의 별이 남쪽 하늘에 빛나고 있었다. 다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그 곳에 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자유의 이상을 지키며 평생
흔들림이 없었던 로마의 애국자이며 스토아 학파의 도덕가인 와치카의 카토였다.
그는 여기서 연옥을 지키는 문지기의 임무를 맡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햇빛과 같이 빛나고 어깨에는 흰 머리가 늘어져 있었으며 가슴에는 흰 수염이
길게 내려져 있었다.
두 시인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연옥 견학의 허락을 구하자 그는 몸을 깨끗이
씻도록 한 뒤 연옥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이 때 바다 저편에서
아름다운 빛에 싸인 한 척의 배가 쏜살같이 달려 왔다. 이 배는 노도 돛대도
없이 배 앞에 선 천사의 날갯짓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배 안에는 연옥에서
정죄를 씻는 수행을 해야 하는 많은 망령들이 타고 있었다. 배가 강가에 닿자
그들은 찬송가 114절 출애굽의 노래를 부르고 십자가를 그리며 배에서
뛰어내렸다. 밤은 점차 밝아지고 부활절의 아침 해가 떠올라 찬란한 빛이 이
망령들을 축복하여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테의 그림자는 땅에 검게
비쳤으나 스승인 베르길리우스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생명이 있는
자에게만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시인은 산에 오르는 도중에 떼를 지은
여러 망령들을 보았다. 그들은 참회하여 죄를 용서받거나 또는 임종의 순간에
신에게 귀의한 사람들의 영혼이었다. 그들 중에서 용모가 수려한 장부 한 사람이
"내 얼굴을 모르겠는가?" 하고 말을 걸어 단테는 걸음을 멈췄다. 그는 시시리아
여왕 고스단사(1258년 즉위)의 손자인 만후렛티로 교회를 배반하여 교황에게
파문을 당했기 때문에 생전의 연령의 30배를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를 위하여 명복을 빌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기간이 단축되므로
단테에게 인간 세계로 돌아가면 자가의 딸에게 그의 명복을 빌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와 작별하고 걸어가는데 생전에 안일하고 태만하여 마지막 임종할 때 비로소
참회를 했던 단테의 친구이며 악기 제작의 명인이었던 배랏구아가 게으름의 죄로
이 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임종 때까지 참회를 미루었던 죄로 생전에 보낸
시간을 이 곳에서 지내야 하며 또한 지상의 착한 사람들의 기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두 시인은 험악한 산길을 올라가 넓은 평지로 나왔다. 이 곳에서는 한 떼의
망령들이 시편 501장을 부르고 있었다.
"하느님이여, 주의 자비를 좇아 저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제 죄를 도맡아 주소서. 저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저의 죄를 깨끗이 하소서.
저는 제 죄를 아오니 제 죄가 항상 제 앞에 있나이다"
이 사람들은 암살했거나 혹은 전사 익사 모살 교살된 자들로 억울한 최후를
마친 사람들이었으나 단말마의 순간에 회개를 한 사람들로서 눈을 감는 순간에
하늘로부터 광명이 내려와 평화롭게 영혼이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시인 소로데루로를 만나 왕후의 골짜기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시인들은 연옥에서 밤길을 가지 않았다. 이 곳에서는 밤에 걷게
되면 반드시 길을 잃는다. 밤의 어둠은 의지를 잠재우고 무력하게 만들게
때문이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연옥에서는 금물이었다. 이 곳에서는 화초와
진귀한 나무가 울창하여 찬란한 금은 보석의 장식을 펼쳐 놓은 것과 같았으며
대기에는 향기가 가득하여 에덴과 흡사한 작은 낙원과 같아서 단테의 심신이
황홀해졌다. 여기는 고금의 이름난 장군과 어진 왕의 거처인데 그들은 백성들을
가련하게 여겨 훌륭한 정치는 하였으나 정사에만 몰두하고 사치를 일삼으며 정작
중요한 신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루돌프 황제를 비롯하여
룩셈부르크의 앙리 3세 등이 옛날에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나 이제는 친구가 되어
조용히 과거의 죄를 씻고 있었다. 밤이 되어 기도 소리가 밤 하늘에 들리는데
높은 하늘에서 푸른(푸른 빛은 희망의 상징) 옷을 입고 푸른 날개를 치며 두
천사가 자비의 상징인 불꽃에 싸인 이 검을 들고 내려와 낙원을 경호하고
있었다. 옛날 에덴에서 죄악의 과실을 먹도록 이브를 유혹하였던 뱀도 이 화원에
숨어 있었는데 또다시 왕후들을 유혹하려고 기어다니고 있는 것을 천사들이 큰
칼을 휘두르며 쫓아 버렸다. 연옥에서 이틀째 되는 날이 밝을 때 잠자던 두
시인은 천사들에게 운반되어 연옥의 상부에 가 있었다. 그 문턱에 있는
다이아몬드 문이 큰 층대 위에 있었는데 천사가 신의 심판을 상징하는 칼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칼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강한 빛을 내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두
시인은 두려워하며 회개를 상징한 세 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이 계단의 제1단은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마음의 순결을 상징하는
것이고 제2단은 녹색의 소석인데 죄의 참회를 상징하고 제3단은 피처럼 붉은
반암으로 신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며 입구의 다이아몬드 문은 교회의 근본을
상징한다고 한다. 천사는 그들에게 권위를 표상하는 금과 지식을 표상하는
은으로 된 열쇠를 주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천사는 자기가 들고
있는 무딘 칼로 단테의 이마 위에 일곱 개의 P자를 써 주었다.
이것은 이 죄를 씻는 곳(연옥)에서 속죄하여야 할 죄인 오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폭식, 사음의 일곱 가지 악을 가르키는 것이다. 이 때에 새로 연옥의 문을
들어가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찬미의 소리가 들려왔다. 두 시인은 암석이 톱니와
같이 늘어선 속죄의 험한 길을 겨우 올라갔는데 거기에는 여덟 개의 고리 모양의
길이 나 있었다. 연옥의 산마루를 도는 이 둥근 길(환도)의 넓이는 좁지만
평평하였다. 한 쪽은 지하수의 천길 계곡이며 다른 한 쪽은 하늘을 찌를 듯한
절벽이었다. 스승은 단테가 떨어지지 않도록 단테의 오른편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제1환도
이 곳의 암벽에는 겸양의 미덕을 나타내는 옛이야기 몇 가지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암석은 흰 대리석으로 한 쪽 면에는 성모 마리아의 수태 고지와
시편의 작자인 다윗 왕이 모세의 십계명이 새겨진 궤 앞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춤을 추는 모양과 로마 황제가 가난한 과부의 호소를 듣고 있는 모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때 이상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오만의 죄를 저지른
자들로 어깨 위에 거대한 돌을 메고 허리를 굽히고 고민하며 걷고 있는 괴상한
형상이었다. 그 중에는 단테와 친한 화가 오데릿지도 있었는데 그는 인간 사회에
있을 때 혈통의 존귀함을 자만하고 예술의 가치만을 높이 여기며 동료를 존경할
줄을 몰랐으나 이 곳에 와서는 과거의 행동을 참회하고 명예의 공허함을 깨달은
자신의 심중을 고백하고 있었다. 산길을 올라가니 길에 깔려진 돌 위에 오만의
벌을 받고 있는 열세 가지 그림이 조각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마왕 르치페로의
지옥 추락과 올림포스 신들에 반역한 거인 괴물 부리야우스와 뇌사의 바벨 탑을
건축한 냄부롯트 대왕 등의 그림이 상상의 석재에 새겨져 있었다. 이 때 겸양의
천사가 샛별과 같이 나타나서 전진할 것을 재촉하였다. 어디서인지 천상의
은악과 아울러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자 단테의 이마 위에 새겨진 P자의 상처
하나가 사라졌다. 두 시인은 험한 계단을 올라 제2의 환도로 나왔다.
제2환도
이 곳은 질투의 죄를 씻는 곳으로 첩첩한 암벽이나 길이 마음의 어둠에서
생기는 질투의 색깔에 따라 변하였다. 정죄를 하고 있는 망령들도 같은 색깔의
허름한 옷을 입고 병풍과 같은 암벽에 매달려 마리아 미카엘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고 있는 모양이 마치 눈먼 걸인들이
성전의 복도에 앉아 보이지 않는 눈을 쳐들고 무엇을 달라고 애걸하는 모양과
같았다. 그들은 현세에 있을 때 타인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시기한 보복으로
이제는 눈이 철사로 꿰매어져 바다에서도 하늘에서도 도무지 맛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빛의 혜택도 받을 수 없었으나 이젠 지상의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슬퍼하며 가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광경이
너무 가련해서 단테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곳을 나오자 제2의
P자가 또 사라졌다.
제3환도
이 곳은 분노의 죄를 지은 자들이 죄를 씻는 곳이다. 이 곳에 가까이 오자
세 가지의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를 찾으러 다니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의 궁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성모
마리아였으며 두 번째는 자기 딸이 어떤 젊은 청년에게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당하는 것을 보고도 그 죄를 추궁하려 하지 않았던 아테네의 왕
피시스트라였다. 세 번째는 원수를 용서하고 그의 속죄를 빌며 죽어간 기독교의
최초의 순교자 스테파노였는데 모두가 온화한 인격의 소유자들이었다. 이 환상이
사라지자 어둠이 닥쳐왔다. 단테는 스승의 뒤를 따라 악취가 풍기는 짙은 안개
속을 걸어 나갔다. 이 독기는 이 곳에 있는 망령들의 분노의 상징이었다. 이 세
개의 환영은 이러한 분노를 씻어 버리고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망령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제2일째의 밤이 되어 그들은 제4환도의 태만의 연옥에 들어섰다.
제4환도
이 곳에 들어오자 광명의 세계가 펼쳐졌다. 지금까지 본 제1의 환도는 타인의
기업을 험담하려는 오만 제2의 환도에서는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는 질투 제3의
환도에서는 타인을 괴롭히고 만족하는 분노의 죄를 닦는 것을 보았으나 이
곳에서는 신의 덕을 본받으려 해도 도달하지 못한 사람 속세의 쾌락이 정도를
넘고 육체의 욕망에 굴복한 사람들이 정죄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세의 속죄를
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시련을 받고 있었다.
이 때 뒤에서 많은 망령들이 태만의 벌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단테가
잠시 잠들었을 때 머리맡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벙어리에다 손과
발이 꼬부라진 불구로 단테가 바라보니 여자의 발이 노근하게 펴지고 혀가
늘어지면서 야윈 얼굴이 사랑을 구하는 듯한 빛을 띠기 시작하여 단테의 마음이
온통 그에게 쏠렸다. 그 여인은 아름다운 노래로 배를 타고 가는 선원들을
유혹하고 교태를 부리는 사이렌이었다. 이 때 성스러운 얼굴을 한 천사가
나타나서
"베르길리우스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꾸짖자 그 요부가 본색을
나타내었는데 얼굴이 보기에도 소름이 끼칠 만큼 추악해졌다. 단테가 견딜 수
없는 악취에 잠을 깨어 보니 스승은 세 번이나 그를 깨웠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제5환도
이 곳은 세상에 있을 때 재물을 탐낸 죄인이 있는 곳이다.
"나의 영혼은 먼지에 불과하다"라는 시편의 구절 그대로 망령들이 좁은 길바닥
위에 엎드려 땅 위에 얼굴을 대고 이젠 아름다운 것을 볼 수가 없어 죄를
회개하는 슬픈 소리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들은 물거품과 같은
속세의 환락을 좇으며 신을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금지 당한 채 신의 뜻에 받아드려질 때까지 있어야 했다.
그들 중에 39일 동안 세 개의 관을 법왕 아도리아노 5세가 있었는데 그의
참회가 늦었던 것에 대해 현세에 생존 중인 단 하나의 손녀 아라지야의 기도를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단테가 허리를 굽히고
대법왕의 존위를 빌자 그는 황급히 이를 말리고 일으키며 죽은 다음에는 귀함과
친함의 구별이 없으며 베드로의 가르침에는 하등의 차별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여
주었다.
프랑스에서 푸줏간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프랑스 왕조 유구 카페
재물을 탐내어 의형을 죽인 풋다마리온 황금을 탐하던 나머지 손에 닿는 것
전부를 금으로 변화시키는 마력을 원하며 먹을 것까지도 황금으로 만들어 금은
속에 파묻혀 굶어 죽은 미다스 왕 등이 있었다. 지진이 일어나서 산이 곧
허물어질 것 같아 단테는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런데 망령들이
"보다 높은 곳에는 신에게 영광 있으라" 하는 축복의 노래를 부르자 곧 지진이
그쳤다. 두 시인이 겨우 일어나서 땅 위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망령들을 넘어
걸어나가니 옛날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소생하여 지나 가던 두 제자에게 말하던
것과 같이
"형제여! 그대들에게 신의 평화가 있으라" 하고 말하는 자가 있었다.
돌아다보니 그는 기원 전70년경의 이름 높은 로마의 시인 스타츄였다. 두 시인이
그에게 지진에 대해 물으니 연옥의 둥근 길(환도)에서 죄를 씻는 수행을 끝마친
망령이 신에게 용서를 받아 영원의 행복을 받을 때가 되며 천지가 기뻐하여 모든
산이 흔들리고 망령들은 신의 영광을 노래 부르며 구원받은 망령을 환송하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제 스타츄는 500년의 긴 세월을 이곳에서 시련을 받고 산마루에 있는 낙원에
오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항상 자기가 숭배하고 동경하고 있던
베르길리우스를 반가워하며 세 시인은 함께 제6환도로 들어갔다.
제6환도
이 곳은 폭식의 죄를 씻는 곳이다. 이 곳을 들어서니 녹음이 우거진 숲 속에서
절제의 미덕을 찬양하는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길의 중앙에 있는 능금나무는
사람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아래 부분의 줄기가 가늘었는데 보석과 같은 과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리고 바위 틈에서는 감로와 같은 샘물이 흘러내리고 언덕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는 흡사 백옥을 뿌리는 것 같았다. 여기에는 현세에서 폭식을 하던
사람들이 눈앞에 산해 진미를 차려 놓고도 단식의 고행 때문에 눈은 움푹
들어가서 구슬이 빠진 반지 같았으며 얼굴은 창백하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오직
"주여! 나의 입술을 열게 해 주소서"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 따름이었다.
제7환도
이 곳은 정욕에 빠져 타락한 사람들 즉 음욕의 죄를 저지른 죄를 씻는
곳으로서 연옥의 끝이다. 깎은 듯한 암벽에서는 빨간 화염이 분출되어 폭포 같이
솟아 오르고 땅 위에도 퍼져 화염의 막으로 덮여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자비로우신 신이여!" 하고 음탕함에 젖어 있었던 망령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를 다니며 자기가 범한 죄를 깨끗이 태우고 있었다.
그들은 동정녀 마리아를 비롯한 많은 정결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찬양하고
있었다. 이 곳을 지나니 해질 무렵이 되었는데 어디선가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행복이 있도다" 하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 오고
화염의 반대편에서 정숙한 천사의 자태가 나타났다. 천사는 단테에게 이 화염
속을 뚫고 가지 않으면 천국으로 갈 수가 없다고 설명하였다. 단테는 잠시 그
화염 속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는데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 하는가? 범한 죄가 없는 자는 불에 타지 않는다.
용감하게 뛰어들어 보는 것이다" 하고 말하는 베르길리우스의 격려와 그의 애인
베아트리체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그 죄를 씻어 주는 화염
속으로 몸을 던져 돌진하였다. 그의 몸은 타는 듯이 뜨거웠다. 이리하여 단테와
베아트리체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최후의 죄가 사라져 버리고 단테는 이제
청정 무구한 시인이 되었다. 이 때 그의 이마에 남아 있던 마지막 P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단테가 천사의 말을 생각하며 앞을 바라보니 멀리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지상 낙원에 이르는 길을 지키고 있는 천사의 소리였다. 그러자
지금까지의 인도자였던 베르길리우스는
"나는 나의 힘이 미치는 예술과 지혜로써 그대를 이 곳까지 인도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의 임무는 끝났다. 앞으로의 길은 험하기는 하지만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는 이교도였기 때문에 이 곳에서 더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단테는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해는 벌써
저물었다. 두 시인은 스타츄에게 안내되어 빠른 걸음으로 제7환도를 나와 새로운
층계를 올라가서 지상 낙원에 닿았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직접 그를 마중 나올
때까지 혼자서 그 근처를 산책할 것을 허락 받았다.
지상 낙원
여기에서는 살아 있는 단테도 그림자가 없어졌고 맑고 부드러운 신비로운
기운은 시달림 받은 그의 영혼과 육체를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다. 행복을
암시하는 별들을 쳐다보며 돌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동안 환상적인 기분이
되었다. 단테는 꿈 속에서 이제는 천사가 된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도 보았다.
이 곳은 천지 창조 때 아담과 이브가 있었던 에덴의 동산이었다. 세 시인은
떠오르는 아침 해의 영광을 받으면서 이 낙원으로 들어갔다. 알 수 없는 향기와
기운으로 가득 찬 수풀 속을 꿈 같은 기분으로 걸어가니 고통과 걱정 있는
자들이 마시면 모든 고난을 잊어버린다는 '레테(망각)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건넌편 강가에는 백화가 만발해 있는 곳에 아름다운 사람이 시편 32편의 "그
죄가 가리워진 자는 복이 있도다"를 부르며 강변을 따라 올라가며 꽃을 꺾고
있었다. 이 때 돌연 먼 숲 속에서 엄숙한 교회의 행렬이 나타났다. 신비롭고
장엄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햇빛이 무색할 정도로 빛나는 황금 촛대
7개는 신의 일곱 영혼(혹은 교회의 7가지 비밀)을 상징하고 무지개의 아름다운
광채와 같은 일곱 개의 기는 신의 일곱 가지 전능인 지혜 총명 모략 굳센 기상
지식 경건 외경을 상징하여 행렬의 선두에 세웠다. 그 뒤에 따르는 34인의
장로는 구약 전서(혹은 '유다'의 족장 및 예언자)를 상징하면서 두 줄로 나란히
섰는데 머리에는 흰 백합 화관(신앙의 상)을 쓰고 흰 옷을 입고 혼례식에
걸어가는 신부보다 느리고 공손하게 걸으며 베아트리체를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또한 한 대의 쌍륜(두 바퀴는 신구약을 상징함)의 전송차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흰 옷을 입고 늙은 장로의 뒤에 푸른 관을 쓰고 눈이 달린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네 마리의 영수는 제전의 꽃창대에 둘러싸인 채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머리는 독수리이고 몸이 홍백색인 사자인 구리호네는 그리스도의
신성함과 인간성을 상징한 것으로서 거대한 날개를 하늘에 펴고 네 가의 빛나는
금색발로 화원을 거닐며 전송차를 목으로 끌고 있었다. 구리호네의 뒤를 따라
오른편에는 사랑, 소망, 믿음의 3덕을 상징하는 백색 녹색 붉은색의 옷을 입은
여신이 따르고 왼편 바퀴에는 자주빛 옷을 입고 정의, 주밀, 강직, 절제의 4덕을
상징하는 네 명의 여신이 뒤따랐다. 과거, 현재, 미래를 투시하는 세 개의 눈을
가진 천사의 지휘에 따라 이들이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뒤에는 이 행렬을 돌봐 주는 얼굴이 비슷한 두 노인과 천한 네 사람의 노인이
따르고 맨 끝에 한 노인이 졸면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 노인들은 신약
전서의 7서를 상징한 것으로 머리에 진홍색의 장미꽃 관을 쓴 두 사람의 노인은
'사도행전'과 '로마'서를 의미하고 그 뒤의 4인은 '베드로'서, '야고보'서,
'요한'서, '유다'서이고 끝에서 졸고 있는 노인은 '요한 묵시록'이었다.
세 시인들이 넋을 잃고 이 신비로운 행렬을 바라보고 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벼락을 치더니 수많은 천사가 나타나 성가를 부르며 백합꽃을 뿌렸다. 그러자
신비로운 향기가 주위에 퍼져 순식간에 오색 찬란한 구름이 되었다. 그 속에서
천사가 된 베아트리체의 존귀한 자태가 나타났다. 단테는 아홉 살 때부터 한 살
아래인 그녀에게 순결한 사랑을 느꼈고 그 때부터 그녀는 단테의 사랑과 이상이
되었다. 그런데 10년 전 어느 날 세상을 떠나 이제는 신에게 봉사하는 천사가
되어 단테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예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구원하려는 자기의 소망을 위하여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의 고통과 쓸쓸한 연옥을 순례하고 이 지상 낙원까지
도달한 단테를 환영하기 위하여 천국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단테는
신의 계시의 상징이 된 존귀한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단테는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다가 그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단테가 당황하여
그의 스승인 베르길리우스를 찾았으나 벌써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자기의 무덤으로 돌아간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지혜와 철학의 상징으로
사람은 철학의 힘으로 연옥에서 죄를 닦을 수는 있으나 그 이상의 행복에는
도달할 수가 없으므로 천당으로 인도해 주는 것은 오직 사랑과 종교하는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사랑과 종교 즉 구원의 애인이었다. 푸른 숲을 지나갈 때 사람들이
'아담'하며 중얼거렸다. 그 말은 그 곳에 서 있는 선악을 아는 '지혜의 나무' 즉
법제와 복종의 상징인 천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나무를 말하는 것이었다.
구리호네가 전송차를 이 나무의 줄기에 매니 고목이었던 그 나무에 푸른 잎이
돋고 꽃이 피어 아름다운 향기를 풍겼다. 이것은 정치와 종교의 합치를 표시하는
깊은 의미의 계시이다. 이 때 천상의 음악이 더욱 심오해져서 여러 악기로부터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률이 시인의 마음을 황홀케 하였다.
벌써 구리호네와 그 행렬은 가버리고 바람에 꺼지지 않는 등불을 손에 들고
있는 일곱 명의 여신과 함께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그 큰 나무 밑에
베아트리체가 앉자 돌연 큰 독수리가 전송차 안으로 들어와 그 날개를 남겨 두고
날아가니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차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또한 날개 달린 용이
바위 틈에서 기어 나와 차의 일부를 탈취해 가니 전송차 안에서 무서운 혼란이
일어났다.
한 더러운 요부가 옥좌를 침범하자 뿔이 한 개 혹은 두 개 달린 괴물의 일곱
개의 머리가 기어 나왔다. 이 때 거인이 나타나서 그 차를 해방하고 요부를 안고
처음에는 그를 애무하는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질투를 하는 듯 그를 매질하고
또한 구타하는 소리가 심해지더니 그만 그를 태운 채 산림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로마 황제 콘스타티누스의 박해를 날개는 이권을 여우는
교회 최대의 이단을 용은 악마를 지목한 것이며 일곱 머리는 7대 죄악을 요부는
타락한 교황 보니화치오 8세를 거인은 프랑스의 휘이릿푸 4세를 매질하는 태형은
교황의 오욕을 산림 속으로 향했다는 것은 1305년 교황청이 로마로부터
아비논으로의 이전을 말한다고 한다. 이것을 본 베아트리체는 탄식하면서
일어서서 일곱 천사를 앞세우고 단테를 데리고 갔다. 그는 단테에게 다정스럽게
위로하면서 이제가지 단테를 최고의 선을 사랑하는 길로 인도하려고 애썼다는
이야기를 한 후 궁금한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물어 보라고 말하였다.
베아트리체는 이탈리아 통일과 교회의 조화를 성취시킬 왕의 출현을
예언하면서 단테에게 신목인 '지혜의 나무'의 일을 후세에 잘 전할 것을
당부했다. 낮이 되어 레테와 예우네의 두 은혜의 강가에 도달하였다. 이 강은
영원의 샘에서 흘러내리는 것으로서 레테(망각)은 사람들이 범한 죄의 기억을
씻어 잊어버리게 하는 힘을 가졌으며 예우네는 모든 선행의 기억을 회복시키는
힘을 가졌다.
이상하게도 단테의 흐려졌던 정신과 몸을 강물에 적시고 나니 갑자기 육신이
투명해진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정죄의 몸이 된 단테는 이제부터는
베아트리체에게 인도되어 천당이 있는 성스러운 별의 세계로 승천하게 되었다.
-천국편-
천국은 열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일곱 개에는 살아 있을 때 하느님을
알고 선한 생활을 한 영혼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열 번째의 광명이 하늘이
중앙을 차지하고 그 외의 아홉 천계는 이곳을 중심으로 대지 주위를 돌고 있다.
그리고 천사에게는 애, 지, 위, 치, 용, 위, 자, 대천인의 9계급이 있어서 각자의
천계에 살고 있었다. 지구와 달 사이는 불의 하늘로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이 "신곡"의 우주관은 중세의 천동설에 의한 것이고 이것은 가톨릭교의
요구에 응한 것으로 결코 단테 개인의 상상만은 아니라고 한다)
제1천
이 하늘은 월광천인데 타인의 뜻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신에 대한 맹세를
어겼던 사람들의 영혼이 살고 있다. 단테가 천국에서 처음으로 만난 것은 젊었을
때 성 글라라 교단에 들어갔다가 어떤 사람의 유혹 때문에 수도원으로부터
나오게 되어 결혼을 강요당한 플로렌스 명문의 딸 핏칼타였다.
제2천
이 수성천은 공명심 때문에 선행을 하였으나 그 목적이 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고 인간적인 명예를 구했던 영혼들이었다. 단테는 여기에서 로마법을 편찬한
유스티노의 영혼을 만나 그가 생전에 기독교에 귀의한 이야기와 그의 업적에
대해 들었고, 베아트리체에게서 십자가의 속죄와 영혼의 불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타락하여 죄를 지은 후 영생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속죄의 대업이 완성되는 마지막 심판의 시기가 오면 속죄의 육체는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 본래의 존엄을 다시 회복할 수 있어서 불멸의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
제3천
이 금성천은 속세에서 사랑에 도달한 사람의 영혼들이었다. 여기서 나폴리 왕
샤를 2세의 아들이며 잠시 헝가리의 임금이었던 카루로말테로를 만났다. 그는
자기 가문의 문란함과 악정을 한탄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비난하고 있었다.
그는 단테의 의문 하나를 풀어 주었다. 그것은 왜 고상한 부모로부터 야비한
자식이 출생하느냐는 물음이었는데 이에 대해 "사람의 성격은 천성을 타고난
것이며 단지 유전만은 아니다. 그 떄문에 한 사람의 가치를 정하기 위해서는
물려받은 신분이나 지위 등 환경적인 것에 의존하지 말고 주로 사람의 재능과
덕과 지식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이 세 가지의 천까지를 하천이라고
한다.
제4천
이 곳은 태양계라고 하는데 우주의 창조와 미묘한 만물의 질서 신의 섭리를
깨닫기 위하여 노력한 덕망 있는 신학자와 철학자들의 영혼이 살고 있는 곳이다.
달무리와 같이 두 시인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세 바퀴를 돌다가
멈추는 빛나는 한 뗴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 영혼들의 가운데 있는 중세 최대의
스콜라 학파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혼은 자기의 교파 도미니크스에
속하는 11명의 영혼들을 찬사를 다하여 소개하였다. 그들은 케룬의 백학의
스승이라고 하는 아루벨트 대사, 사원법의 대가인 구라데이아노, 교법 선생이라는
별명이 있는 페트로롬바루도, 이스라엘의 성왕 솔로몬 대왕, "천국관할론"의 저자
아레오산의 재판인인 디오누시오, "참회록"과 "신의 마을"의 저자로 유명한 라틴
교회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스페인의 고승 파우로오로시오, 유골은 파비아의
성당 제엘다우로에 묻혀 있지만 순교를 하고 이 곳에 와 있는 브에티우스,
세비리아의 승정 이시도로, 영국의 교회 역사가인 베어다. 성 빅토르의 마리칼도,
파리 대학의 철학 교수로 법와 마루티노 4세의 집에서 암살당한 부라반트의
시세에리 등 11명이었다.
그리고 토마스는 단테를 위하여 성스러운 교회의 두 성인 프란시스코와
도미니크스의 업적에 대해 상세히 들려 주었다. 이 때 장미 화환을 쓴 천사들이
단테를 에워싸고 신묘한 하늘의 음악과 무용이 찬란하게 펼쳐져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러자 한 줄기의 새로운 빛의 화환이 나타나고 그 속에서
보나벤투라가 나타나서 자기도 상대에 대한 찬사를 한 마디 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는 먼저 토마스가 상대방의 종파에 대해 찬양할 것과 마찬가지로 프란시스코에
속하는 그도 성 도미니크스의 기적을 논하며 그가 교회의 수호자라고
찬양하였다. 그는 자기의 종파에 불만을 품은 두 파로 분열되어 그 논쟁이
결국은 일반의 분쟁을 초래하였다고 말하고 동렬에 있는 영혼을 지명하였다.
그들은 성 프란시스코를 따라 애굽에 건너갔다는 이루미나도,
테라테이라보로에 있어서 이 파의 관구장으로 첫 제자인 아고스티노, 파리 성
빅토르 교회의 목사이며 신비파 신학자인 위고, "성경의 해석"을 저술한 페토르
만자도레, 12권의 "논리학 개요"를 쓰고 기억법을 고안해 낸 스페인 출신의 교황
페토로이스파노, 로마 대승정으로서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이 있는 유명한 설교사
구리소스톰, 캔터베리 대승정 안제롬, 4세기 중엽의 유명한 라틴 문법가
도나아토, 마인스의 대승정이며 "우주론" 22권의 저술가 라반마우르스, 20세기의
사람으로서 여러 권의 미래 이야기를 쓴 후 로라 원장 조아키노 등이었다.
두 빛의 화환은 다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삼위일체의 찬양하였다.
제5천
이곳 화성계는 순교자와 기독교를 위하여 싸운 사람들의 영혼의 거처로 되어
있다. 그들은 모여서 십자가의 모양을 만들며 신을 찬미하고 있었다. 모세의
다음가는 유다, 민족을 이끌었던 여호수아, 유다의 용장 마카메오, 기독교 신앙을
위해서 사라센 인과 싸운 칼류 대왕과 그의 조카인 올란도, 십자성군의 지도자
부리네오의 고프레도, 나폴리의 노르만 왕조의 구이스칼도 등의 용사들이었다.
제6천
이 복성계에는 정의로써 나라를 다스린 현왕과 지혜롭고 덕망 있는 법관들의
영혼이 거센 불꽃과 같이 빛나고 빛에 따라 여러 가지 생긴 모양이 그려진다.
그들은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땅을 지배하는 자들이여 정의를 사랑하라"는
문자를 그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곳에는 한 마리의 영취(이 영취는 로마제국의 상징으로 지상의 정의확립을
나타내는 것이다)가 있었는데 그는
"바르고 경건하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곳에 오게 되었고 지상의 영광을 받고
있다 우리들은 지상에 정의를 기념으로 남겨 두었으나 사람들은 말뿐이고 지킬
줄을 모른다"고 말하였다 성도들 중에는 성경의 시인 다윗 왕과 과부의 슬픔을
위로해 준 도라야누스 황제 등이 있었다.
제7천
이 하늘은 토성계인데 햇빛에 비쳐 황금빛으로 빛나고 끝도 보이지 않는 높은
금 사다리로부터 쏟아지는 빛처럼 내려오는 수많은 영혼들이 있었다. 이들은
고승, 명상자 또는 신비주의의 사람들의 영혼들이다. 그들 중에는 스스로 죄인
페트로라고 부르고 이제는 부패해 버린 혼테아베리나의 수도원에서 살고 있는
페트로 다미아노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박학하고 겸허한
스승으로서 이름이 높았으나 이젠 고승들의 부패와 허식을 개탄하고 은둔 생활을
하며 엄격한 교육으로써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이 때 한 덩어리의 불꽃이 그
주위에 떨어지면서 무서운 천둥 소리가 났다.
단테가 놀라고 있을 때 한 천사가 가까이 와서 그것은 천벌의 기운이라면서
그를 위로하여 주었다. 또한 그들 중에는 베네딕트 파의 건설자이며, 캇시노
산상의 아폴톤 궁을 파괴하고 유명한 수도원을 세운 성 베네딕트도 있었다. 이
3천을 상천이라고 불렀다.
이 천국에는 지옥과 연옥과 같이 극적인 사건은 적고 단지 철학과 신학의
이론이 아름다운 시의 형태로 서술되어 있다. 그것은 죄인들이 성인보다 극적인
생애를 보내기 때문이다 제8천과 제9천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는
하늘인데 이것을 움직이는 것은 천사이다.
제8천
이 하늘은 항성천으로 지혜의 천인의 영지이다. 믿음 소망 사랑의 세 가지
덕을 완성한 성인들이 있는 곳이다.
이 때 온 천국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단테는 장엄한 음률에 황홀해졌다.
여기에서 단테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았는데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구원받은
수많은 성도의 무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춤을 추고 환희의 고운 빛이 하늘에
가득하였다. 단테는 그들 성인들 중에서 기독교를 대표해서 나온 사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의 앞에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신앙과 희망 인내와 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 곳에서 인류의 조상 아담을 만났다. 그는 단테가 알고 싶은 여러 가지를
미리 짐작하고 이야기하여 주었다. 그가 에덴의 낙원에서 추방된 원인은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 아니고 단지 경계를 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낙원에 있던 기간은 4302년이고 지상에 살아 있던 것은 930년 동안이었다. 그가
사용한 말은 저 님로데의 백성들이 바벨의 탑을 짓기 훨씬 이전에 없어졌다고
하면서 말이라는 것은 인간의 머리에서 생겨서 하늘의 감화로 추이하는 인간의
뜻대로 변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지상의 낙원에 있었던 것은 해가 뜰
무렵에서 낮에 이르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베아트리체는 여러
성인들에게 부탁하여 단테에게 천당의 식사를 하게 해 주었다.
제9천
사랑의 천인이 사는 이 수정천은 직접적으로는 다른 8천이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운행하는 것을 주관하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고 움직이는 힘의 근원이 이 곳에 있는 것이다. 이 하늘이 다른 여러
하늘을 싸고 있는 것과 같이 이 하늘은 다른 하늘보다도 더욱 신의 사랑과 빛에
넘쳐 있었으며 또한 여러 가지 운행을 측정하는 시간의 기준이 되고 있다.
제10천
이 광명천은 우주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가장 빛나고 밝은 곳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추상적인 하늘에다. 여기에는 만물의 원망인 신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구원받은 모든 영혼이 사는 성스러운 곳이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인도되어 이곳으로 들어왔다. 이 하늘은 이미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 하늘은 자연법의 원인이 되고 모든 물체의 근원이 되어서 단테는 이
곳에 들어와서 무의미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것은 생멸로 옮겨 가는
과도 즉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더없이 깨끗한 광명천! 성스러운 사랑의 둥근 광채 속에 많은 천사와 성도들이
보인다. 무한히 빛나는 바다 광명의 바다이다. 이제는 단테가 인간계를 떠나서
신의 경지에 들어오고 시간을 벗어나 영원에 들어오고 플로렌스를 떠나 성자의
무리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얀 성의를 입은 명상과 직관의 대표자인 성 베로나도스는 베아트리체의 청을
받아 단테를 인도하여 신비로운 비밀을 알려 주려고 한다. 그는 성모 마리아를
향하여
"인간의 미혹을 이 사람으로부터 씻어 주시고 최고의 희열을 베풀어
주소서" 하고 단테를 위하여 기도를 올려 주었다. 이 때 단테는 인간 지복의
영광을 받아 시력이 밝아졌다. 그는 이 곳에서 영원의 빛을 우러러 보고 신의
거룩한 자태를 눈으로 보는 것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가 성복을 받아 눈을 떠보니 천국이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낙원이었다. 축복 받은 성도들은 백장미의 원형 극장과 같은 좌석에 흰 장미꽃
모양으로 자리잡고 앉아 극락의 빛에 움직이고 있었으며 중앙의 밑바닥은 빛의
바다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것을 '천국의 장미'라고 부르는데 수천의 천사들이
떼를 지어 그 위에 있는 지극히 높고 더없이 성스러운 대보좌와의 사이를 비처럼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 곳까지 인도한 베아트리체는 성모 옆에 있는 자기 자리에 들어갔는데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제일 높은 곳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영광의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하늘의 불변의 영광 속에서 삼위 일체의 신비와 화신의 신비가 단테에게
보였다. 그가 이 신비스러운 뜻을 해독하려고 하는 순간 한 줄기의 광채가 비쳐
와서 그의 마음을 때렸다.
이 때 단테의 눈과 상상은 여기에 이르러 그 힘을 잃어버려 그의 마음의 힘은
마침내 그 영묘함을 포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 의지는 신성의
환상과 별들을 움직이는 '영원의 사랑'에 의하여 인도되고 있었다. 이리하여
단테는 처음으로 우주의 본원 즉 신의 의지에 완전히 일치 융합되는 무상의
환희를 느낄 수가 있게 되어 이 신성 희곡의 대환영은 이 곳에서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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