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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자본주의의 성립과 리얼리즘적 경향의 대두 배경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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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자본주의의 성립과 리얼리즘적 경향의 대두 배경 / 류보선

 본문

1920년대 중반부터, 정확히 말하면 1922년경부터 한국 근대 문학사에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이광수, 염상섭, 나도향, 현진건 등의 소설에서 집중적으로 반복되던 인간 주체성의 확립이라는 진리 내용이 약화되고, 대신에 사회적 모순의 자각과 극복이라는 주제가 문학사의 주요한 진리 내용으로 새로이 자리잡는다. 이 사회적 모순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극복을 내용으로 하는 문학적 경향은 문학사의 흐름 속으로 편입되자마자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하는데, 이 때부터 한국 근대문학은 앞 시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1920년대 중반에 근대 문학 전반이 커다란 전환의 모습을 보인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다. 우선 주목할 만한 요인은, 새로운 현실적 상황이 대두되었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의 한국 사회는 1910년부터 이루어진 토지 조사 사업과 회사령 등이 완비되면서, 비록 이식된 성격이지만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다. 상품 화폐 경제의 성립은 곧 자본 또는 돈이라는 무서운 괴물을 탄생시켰고, 이 자본이 자기 증식 운동을 펼치는 순간 당대의 현실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걷한 지각 변동이라 불릴 만하다. 자본의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오리지 상품을 구입할 화폐를 얻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계급이 생겨나고, 생산의 공동적인 성격과 사적 소유로 인하여 자본은 끊임없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이제 각 인간의 삶은 자본 또는 돈의 있고 없음으로 분명하게 선을 가르게 되며, 이 선은 우연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극복될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게 된다. 상품 화폐 경제의 확립은 이처럼 삶의 위계 질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뒤집어 놓는 혁명적 사건인 것이다. 그러자 반상의 구별, 조혼 등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던 유교적 질서보다 더 중요한 삶의 계기가 표면화된다. 즉 1920년대로 접어들자 인간의 진정한 삶을 훼손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경제적인 조건이 대두된 셈이다. 1920년대부터 자본주의적 모순을 강조하고 그것의 극복을 강렬하게 지향하는 사회주의 이념이 당대를 풍미할 수 있었던 것이나 염상섭 등의 문학이 내적 변모를 겪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3.1운동의 실패와 그를 계기로 한 사회주의 수용을 지적할 수 있다. 3.1운동 당시 민족의 전성원은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내달았다.그러나 일본 제국주의라는 철옹성의 장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3.1운동의 실패는 우리 민족에게 뼈아픈 반성의 계기로 작용한다. 민족의 해방은 단순한 염원으로만 성취될 수 없다는 각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모순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자리에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 했다.

 

이 때 뒤틀린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불빛으로 당대인들에게 강렬하게 비쳤던 것은 바로 사회주의적 전망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회주의는 그 논의 자체가 지닌 과학성, 현실 변혁성 그리고 유토피아 지향성 등으로 인하여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며 당대 지식인과 민중을 사로 잡는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운동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는 민족의 염원을 실현하는 가장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한다. 이 운동이 당대의 모순 극복에 얼마나 유효하게 작용했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일제 식민지에 맞설 수 있는 민족적 결집과 응전력을 확보하게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로 인해 한국 근대 문학에는 우울, 좌절, 환멸, 도피 등의 정념에서 벗어나 식민지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 노력 및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류보선, '민족과 계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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