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운율에 대하여
by 송화은율운율
운율의 개념
시에 있어서의 소리의 효과에 관한 일체의 현상을 총칭하여 운율이라 한다. 운율은 리듬보다는 좀 넓은 개념이다. 운율은 ‘韻’과 ‘律’의 합성어로서, ‘운’은 특정한 위치에 동일한 음운이 반복되는 현상을 가리키고, ‘율’은 동일한 소리 덩어리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어쨌든 운율은 (소리의 반복 현상)과 관계가 깊다.
운율과 정서의 연관성
소리의 반복은 인간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된다. 시위 군중이 구호를 외칠 때, 또는 목사가 기도를 하거나 승려가 염불을 할 때 소리의 반복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소리의 반복이 듣는 사람에게 상당한 심리적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시에서 운율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운율의 갈래
․운율은 ‘운(음위율), 율격(음수율, 음보율)’ 외에도 ‘음상, 음성 상징, 시행의 배열’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운율을 ‘음위율, 음성률, 음수율, 음보율’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음위율(音位律)
․특정한 위치에 동일한 음운(자음, 모음)이나 음절이 반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운’은 ‘자음운’과 ‘모음운, 또는 ‘두운, 요운, 각운’ 등으로 나뉜다. → 이를 ‘음위율’이라 한다.
① 두운(頭韻) : 둘 이상의 시행이 같은 첫소리를 가지는 경우.
② 요운(腰韻) : 둘 이상의 시행이 행 중간의 일정한 자리에 같은 소리를 가지는 경우.
③ 각운(脚韻) : 둘 이상의 시행이 같은 끝소리를 가지는 경우.
*․자음운(子音韻) : 시에서 어떤 부분에 같거나 비슷한 종류의 자음들이 많이 쓰이는 현상. 예 :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 ‘가는길’. ‘ㄹ’음의 많은 사용). ․모음운(母音韻) : 같거나 비슷한 종류의 모음들을 어떤 부분에 많이 씀으로써 형성되는 운
예 1.
나 두 야 간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 나 두 야 가련다. ― 박용철, <떠나가는 배>에서
⇒(‘나’와 ‘야’의 반복)
예 2.
물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 /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붉웃한 잎 위의 길 / 실 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 밤 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 길 / 바람조차 가을 봄 걷히는 꿈
―김소월, <꿈길>에서―
⇛(‘길’과 ‘숲’의 반복)
음수율(音數律)
․음절의 수가 규칙적으로 반복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운율을 음수율이라 한다.
․우리 시에서는 ‘3․4조, 4․4조, 3․3․2조, 3․3․4조, 7․5조’ 등의 음수율이 나타난다. 그러나 기본 음수율이 그대로 지켜지는 경우보다 그것을 근간으로 한 변조의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불안정한 음절 본위의 음수율보다 호흡 단위의 음보율을 우리 시 운율의 근간으로 인식하자는 주장이 널리 확산되었다.
음보율(音步律)
․일정한 음보(foot)가 규칙적으로 반복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운율을 음보율이라 한다.
․음보란 음절 및 각 음절이 지니는 속성―장단―이 실현되면서 이루어지는 운율의 한 덩어리를 말하는데, 이 음보가 모여 율격의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는 행(行)을 이루며, 이 행에 의한 음보의 규칙적 배열 형식을 음보격(音步格)이라고 한다.
․우리 전통시에서는 주로 3음보격과 4음보격이 많이 쓰였다.
예.
․3음보격 : 민요, 고려 속요, 경기체가, 현대시에서 : 7.5조의 시.
․4음보격 : 민요, 시조, 가사 등.
음상(音相)
․한 단어 안에 표현 가치가 다른 모음 또는 자음이 교체됨으로써 어감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을 음상이라 한다.
․모음의 경우 : 양성 모음은 ‘작고, 밝고, 가벼운’ 느낌을 주고, 음성 모음은 ‘크고,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
․자음의 경우 : 평음 [ㄱ,ㄷ,ㅂ,ㅈ]은 평순한 느낌을, 경음 [ㄲ,ㄸ,ㅃ,ㅆ,ㅉ]은 강하고 단단한 느낌을, 격음 [ㅋ,ㄷ,ㅍ,ㅊ]은 거센 느낌을 준다.
음성 상징(音聲象徵)
의성어나 의태어를 통해, 소리로써 의미 내용을 청각적 감각으로까지 표현하는 것을 음성 상징이라 한다. 예를 들면, ‘휙휙, 철컥, 쨍그렁, 치렁치렁, 펄럭이다’ 등.
운율의 창조 방법
운율은 결국 동일한 자질(속성)의 소리가 반복적으로 배치될 때 형성된다. 우리 시문학에서 운율을 창조하는 방법에는 ①음보의 반복, ②음절 수의 반복, ③음운․음절․낱말의 반복, ④통사 구조의 반복, ⑤시행․연의 반복, ⑥음성 상징어의 반복 등이 있다.
음보의 반복
크게 3음보율과 4음보율로 나뉜다. 전자는 고려 속요와 경기체가에서, 후자는 시조와 가사에서 나타난다. 판소리 창에서도 4음보 율격을 확인할 수 있다. 고전 시가의 3음보율은 현대시에서 김소월, 김억, 김동환 등에 의해 민요조 율격으로 계승되었다.
예
1. 가시리 / 가시리 / 잇고 // 리고 / 가시리 / 잇고 // ―<가시리>에서⇒ ( )음보 율격
2. 紅塵에 / 뭇친 분네 // 이내 生涯 / 엇더고 // 녯 사 / 風流 // 미가 / 미가 // 天地間 / 男子 몸이 // 날만 이 / 하건마 // ⇒ ( )음보 율격― 정극인, <상춘곡>에서
3. 나 보기가 /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죽어도 / 아니 눈물 / 흘리오리다 // ⇒ ( )음보 율격
4. 나뭇잎은 떨어지고 / 나뭇잎은 흙이 되고 / 나뭇잎에 덮여서 / 우리들 사랑이 / 사라진다 해도 // ― 박인환, <세월이 가면>에서⇒ ( )음보 율격
음절 수의 반복
고전 시가에서 3․4조 또는 4․4조(시조와 가사)의 음수율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 속요에서는 3․3․2조의 음수율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현대시에서는 7․5조의 음수율이 부분적으로 유형화되었다.
예
1. 江湖애 / 病이 깁퍼 // 竹林에 / 누엇더니 // ― 정철, <관동별곡>에서 ⇒ (3 ․4 )의 반복 ⇒ (3,4 )조
2. 살어리 / 살어리 / 랏다 // 청산에 / 살어리 / 랏다 // ― <청산별곡>에서 ⇒ ( 3․3 ․2 )의 반복 ⇒ (3,3,2 )조
3. 산 너머 / 남촌에는 / 누가 살길래 //해마다 / 봄바람이 / 남으로 오네 // ⇒ (3 ․4 ․5 )의 반복 ⇒ (7,5 )조 ―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음운, 음절, 낱말의 반복
반복되는 위치에 따라 두운, 요운, 각운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우리 시문학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종결 어미를 선택하여 각운의 효과를 보여 주는 경우가 있고, 드물게 두운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
1.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 첫음절 종성에서 (‘ㄹ’의 반복)
2. 갈래갈래 갈린 길 / 길이라도 ― 김소월, <길>에서 ⇒ (‘ㄱ’의 반복)
3. 산은 / 구강산 / 보랏빛 석산 ― 박목월, <산도화>에서 ⇒ (‘산’의 반복)
4. 거울속에는소리가 없소 ……//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 이상, <거울> ⇒ 각 연의 첫머리에 (‘거울’)이라는 낱말의 반복.
5. 비가 온다 / 오누나 / 오는 비는 /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오다’)의 반복― 김소월, <왕십리>
6. 사슴은 / 암사슴 / 발을 씻는다 ― 박목월, <산도화> ⇒ (‘사슴’)의 반복
통사 구조의 반복
동일한 문장 구조를 반복 배치함으로써 운율적 인상과 의미의 강조 효과를 동시에 노리는 방법이다.
예
1.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별 헤는 밤>에서―
2. 해야 / 솟아라 // 해야 / 솟아라 // 말갛게 / 씻은 얼굴 // 고운 / 해야 / 솟아라― 박두진, <해>에서
시행, 연의 반복
예
1.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 <향수>에서 ⇒ 동일한 시행이 전 5연의 매 연마다 반복된다.
2.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에서 ⇒ 동일한 연이 2연과 5연에 반복된다.
3. 지금 어드메쯤 /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 그 분을 위하여 /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 조병화, <의자>에서 ⇒ 동일한 연이 1연, 2연, 4연에 반복된다.
음성 상징어의 반복
우리말에 발달되어 있는 음성 상징어의 활용을 통해서도 운율을 창조할 수 있다.
예
1. 층암 절벽상의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수루루루룩, 저 골 물이 솰솰. ―<유산가>에서
2.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박두진, <묘지송>에서
운율의 효과
미적 쾌감을 준다.
인상을 깊게 해 준다.
독특한 어조를 형성한다.
<3의 예문 1.>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오늘 하로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실비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 이 작품은 (‘싶다’)라는 말의 반복을 통해 어떤 (소망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 소망은 따스한 봄날 ‘햇발, 샘물, 부끄럼, 물결같이 부드러운 에메랄드 빛 하늘을 우러르고 바라보는’ 모습으로 암시된다. 그것은 결국 (밝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소망이다. 이런 소망을 노래하는 시적 자아의 정서는 아주 (해맑고 희망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에 사용된 시어가 주는 느낌은 어떤가?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 실비단 하늘을’ 이란 구절을 읽어 보자. (‘ㄹ’)음의 반복이 주는 밝고 경쾌한 느낌을 확인할 수 있다. 비단 이 구절만이 아니다. (‘돌담, 샘물, 봄길, 우러르고, 볼’) 등의 시어는 울림소리, 특히 유음 ‘ㄹ’이 주는 청각적인 효과를 겨냥하여 선택된 시어로 보인다.
<3의 예문 2>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 밖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 이육사, <절정>
⇒ 이 시의 시적 자아의 정서는 어떠한가? 시적 자아는 ‘채찍에 갈겨 북방으로, 고원으로 쫓기다가 마침내는 발 디딜 곳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적 자아의 마음은 여유라고는 전혀 없고 불안으로만 가득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처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운율적 요소는 무엇인가? 이 시에는 (‘채찍, 휩쓸려, 지쳐, 칼날, 무릎, 꿇어야, 강철’) 등의 강하고 거친 느낌을 주는 시어가 많이 쓰였다. 이들 시어를 통해 나타나는 강하고 거친 청각적 인상이 급박한 상황에 처한 시적 자아의 (불안한 심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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