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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 생가와 시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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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 생가와 시비

 

동학과 백제, 금강을 노래했던 민족시인,

일생을 시와 사랑과 혁명으로 불살랐으면 했던 시인

 

계백 장군 동상 근처에 우리나라 현대시 역사에서 단연 우뚝 솟은 봉우리의 하나인,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의 생가가 있다. 근현대기의 많은 주요 인물들의 유적이 산업화 과정에서 다 망실되어 버렸지만 신동엽은 당대에 이미 인정을 받은 덕인지 다행히도 생가가 남아 있어 발길을 끈다.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생가를 지켰다.

 

신동엽은 1930 8 18일 부여 동남리 294번지에서 태어났다. 평범하고 조용한 소년시절을 보낸 그는 당시 우등생들이 흔히 그랬듯이 전주사범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1948년에 동맹휴학과 관련되어 제적당하고 이듬해에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였다.

 

1959년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로서 활동하게 된 이래 그는 10년 동안 김수영과 함께 60년대 문단을 이끌어갔다. 60년대의 시단 분포도 시인」「가인」「시업가같은 산문에서 그는 형식주의적이고 순수주의를 표방하며 속내는 체제 순응적인 당대 시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시인이 지향할 바는 인생과 세계의 본질을 맑은 예지 만으로써가 아니라 다스운 감성으로 통찰하여 언어로 승화시키는것으로서 백성의 시인이 되어야함을 절절이 밝혀 놓았다.

 

장편 서사시 금강 419 세대인 시인이 당대의 미완의 혁명이었던 419와 근대 역사의 한 분기점이면서 역시 미완의 혁명이었던 동학농민전쟁을, 역사에서 분출하는 민중의 힘으로서 동질화시키며 역사를 간직한 금강에 투영해 놓은 시이다. 신동엽은 금강에서 금강을 끈질긴 역사의 거름으로 노래했다.

 

백제,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바람버섯도

찢기우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새 씨가 된다.

 

타는 민족혼으로 삶을 불태우던 신동엽은 1969, 운율을 조용히 살려내며 가라앉은 나지막한 정서 가운데서도 불끈불끈 일어나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시편들만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마흔의 아까운 나이에 간암으로 죽고 말았다.

 

그의 시비(詩碑)는 부여에서 보령으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다리 바로 못 미쳐 왼쪽 소나무숲 사이에 있다. 일찍이 시인이 작고한 후 1주기를 맞아 그의 유족과 친구들이 신동엽을 기리기 위해 단출한 시비를 백마강가에 세웠으니 호젓한 이 자리는 금강의 시인 신동엽에게는 퍽 어울리는 곳이었으나, 바로 옆에 보기에도 위압적인 반공순국 위령비를 세워 보는 이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시비에는 그의 시 가운데 가장 서정적인 시편인 산에 언덕에가 새겨져 있는데, 전문이 아니라 두 단만 있다. 여기에 전문을 실으니, 말을 부려 다듬어 내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신동엽의 시어를 한번 낮게 읊조려 보아도 좋겠다.

 

 

 

산에 언덕에

 

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

바람 비었거든 人情 담을 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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