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시의 운율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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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운율 / 김흥규

 본문

 1. 시 구성의 단위

 시 한 편은 단어의 연결로 이루어지는데, 발음 시간상의 등장성(等長性)에 의한 반복적 리듬의 단위를 음보(音步, foot)라고 한다. 대체로 이러한 음보가 몇 개 모여서 행(行, line)을 이루며, 행은 리듬의 한 단락을 나타내기도 한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主僧)은 잠이 들고 객(客)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 이은상의 「성불사(成佛寺)」-

 이 시조의 각 장(章)을 행으로 보면, 각 행이 모두 리듬과 의미의 단락을 보여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聯, stanza)은 원래 이탈리아어로 '방(房)'을 의미한다. 방은 하나하나 독립되어 있으면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며 한 채의 집을 이룬다. 이 때의 '집'이 한 편의 시에 해당한다.


 시 구성의 단위를 구별해서 연결해 보면, ①단어→②구(句)→③절(節)→④행(行)→⑤연(聯)→⑥시편(詩篇)의 단계로 종합된다. 이러한 연관을 주도하는 것이 시의 리듬이다.

 2. 서정시(抒情詩)와 음악성

 발생 단계에서부터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서정시(lyric)'라는 말은 고대 희랍의 악기인 라이어(lyric)에 맞추어 노래 부른데서 나왔고, 'lyre'이란 말에는 '서정적(抒情的)'이란 뜻도 있으나 '음악적'이라는 뜻도 있다.


 서정시의 본질의 하나는 음악성으로서, 포우는 시를 '미의 운율적 창조'라고 정의했고, 웰렉과 워렌도 「문학의 원리」에서 "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중요한 원리는 운율과 은유이다."라고 하여 운율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3. 한국 시가의 율격 원리(음보율)

 한국 시가의 율격 원리는 음보율(音步律)이다. 종래에는 음절수를 헤아려서 율격을 설명하는 음수율(音數律)의 방법이 통용되었으나 최근 10여 년의 국문학 연구에서는 음수율보다 음보율에 의한 설명이 우리 시의 특성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음수율론이 음보율론에 의해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음보율이란 소리마디 즉 음보의 규칙적 배열에 의해 형성되는 율격으로서, 시조와 가사는 3~4음절로 된 음보 넷이 모여서 한 행이 되는 4음보율격을 가지고 있고, '아리랑', '도라지'등의 민요는 3음보격이며, 고려 속요는 3음보격으로 된 작품이 많다.


 우리 시가가 지닌 음보율의 원리와 특성을 구체적인 예로서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ⅰ) <생략>
           -박인로, 「누항사」-

(ⅱ)밭 잃고 / 집 잃은 / 동무들아 //
    어디로 / 가야만 / 좋을가 보냐 //
    괴다리 / 봇짐을 / 짊어지고 //
    아리랑 / 고개로 / 넘어간다 //
    아버지 / 어머니 / 어서 오소 //
    北間島 / 벌판이 / 좋다더라 //
    쓰라린 / 가슴을 / 움켜쥐고 //
    백두산 / 고개로 / 넘어간다 //
                                        -신아리랑-

 정상적인 언어 감각을 지닌 한국인들에게 위의 시행들은 /와 //로 구분된 마디의 연쇄로 읽힌다. 여기에 /표로 구획된 소리마디가 곧 '음보'로서, 한국 시가 율격의 기본 구성 단위가 된다. 음보의 크기는 대체로 2음절에서 5음절 정도이며, 3음절과 4음절로 된 음보가 가장 많다. 율격의 기층 단위인 음보가 아무 제한 없이 커지거나 지나치게 작아질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음량 분포의 영역이 한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음보의 크기나 그 배열 체계를 지배하는 절대 수치(絶對數値)의 규칙은 한국 시가에 존재하지 않는다. 예 (ⅰ)의 경우 제2·3·4행의 첫 음보가 무도 2음절이지만 그 율격상의 무게는 3·4음절 음보와 대등하다. '終朝 / 추창하여'는 2/4음절의 연쇄여서 음절수의 배분이 불균형한 듯이 보여도, 이것을 '終朝추 / 창하여'로 율독(律讀)할 수는 없다. 우리 시가에 있어서 율격상의 분절은 통사적으로〔혹은 최소한도 형태소상(形態素上)으로〕끊기지 않는 곳에 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예 (ⅱ)에서도 마찬가지로서, 모든 음보는 일정한 율격 모형에 맞게 통사적 경계(統辭的 境界)가 적절히 배치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음절수가 반드시 같지 않은 음보들의 율격적 등가성(等價性, 심리적·감각적으로 인정되는 등장성)은 작은 음보들의 끝소리를 연장하거나 좀더 큰 쉼을 덧붙임으로서 보장된다. 또, 과음절(過音節) 음보의 경우는 호흡이 약간 빨라지기도 한다. 예 (ⅱ)에서 '어디로 / 가야만 / 좋을가 보냐'라는 시행을 음미해보면 이를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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