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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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나는 이제까지 너희들에게 이름이 없는 어느 교사로서 이야기해 왔다. 너희들은 이 이름 없음에 대한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 왜 이름이 없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이 글을 쓰는 사람은 한적한 어느 시골 학교의 선생일 수도 있고, 거대한 굴뚝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공장 지대 학교의 선생일 수도 있고, 강남의 어느 학교 선생일 수도 있다. 나는 요즘 신문에 오르내리는 사면, 복권, 복직 문제에 대한 시사를 읽으면서 어느 교사 속에는 해직교사가 포함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교사가 해직교사라고 가정한다면 내 물음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교사가 해직교사일 가능성은 아직은 매우 적은 것이니까 다른 예를 들어서 내 물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보자.

나는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서 만주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겨울의 기나긴 밤에 바느질을 하는 어머니 곁에 누워 하염없이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어머니는 신혼의 젊은 시절을 이민단 학교의 선생인 아버지와 함께 민주에서 지내셨다고 했다. 북국의 기후적 특성 때문에 어머니의 기억의 대부분은 눈이 많이 내리고 혹독하게 추운 겨울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에도 나이가 들면서 늘 새로워지는 것은 마적에 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이 늘 새로워지는 것은 그 마적이 다름아닌 독립군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여자 마적의 이야기는 내가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늘 나에게 힘을 주어왔다.


마적, 즉 독립단들은 유격전의 명수들이다. 광대한 벌판인 만주에는 벌판 가운데 거대한 돌산들이 듬성듬성 있는 모양이었다. 독립군들은 이 돌산을 근거로 유격활동을 하는데 마적은 이 소규모 유격대를 통상 일컫는 말인 듯싶다. 어머니는 가끔 이 마적들에게 붙들려갔다가 같은 한국 사람인 덕에 무사히 풀려나온 이야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업고 총을 메고 다니는 마적단의 아낙네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되면 이 소규모 마적단에 대한 일본군의 토벌이 시작되는데, 아이를 업은 아낙네들이 총을 난사하고는 비호같이 눈 쌓인 바위산을 뛰어올라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아낙네들이 궁등이에 대나무 빗자루 같은 것을 달고 다니는데 도망갈 때는 궁둥이를 흔들면서 바위산을 뛰어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발자국이 지워지고 그 위에 금방 눈이 덮여 찾아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유난히 길고 추운 어느 겨울산, 자기 발자국을 지우고 사라져가는 이 눈이 까만 조선 아낙네들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보았다. 창 밖에 눈이 내리고 쌓인 눈 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꽁지가 긴 새가 앉아 무언가를 쪼고 있었다. 나는 손을 호호 불면서 무료함에 달래기 위해 유심히 지켜보았다. 새는 긴 꽁지를 까불거리며 무언가를 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었는데 긴 꽁지가 눈 위의 희미한 발자국을 지우고 있었다. 나는 퍼뜩 하나의 깨달음으로서 어머니가 이야기해주던 아낙네들을 떠올렸다. 그렇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자기의 발자국을 지우고 이름없이 사라져간 그 무수한 사람들이야말로 우리의 역사를 만들고 가꾸고 우리의 역사를 빛 속으로 떠밀어올린 사람들인 것이다. 오히려 만주 벌판의 흰 눈 위에 굵은 발자국을 남긴 것은 고난의 우리 역사를 압살하고자 광분했던 추적자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많은 부분들은 이 추적자들의 발자국과 그 발자국을 미화하기 위한 낙서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역사의 진실이 아니라 역사의 더러운 껍데기이다.

역사의 진실은 아직도 여전히 이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진실은 찾아져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발자국을 지우고 이름없이 사라져가는 것에 기꺼이 동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아, 우리가 아직도 역사의 긴 겨울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질문의 참뜻을 알겠느냐? 이름 없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은 숨겨진 우리 역사의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름아니다.


숨겨진 진실에 대한 질문은 참다운 배움의 시작이고, 참다운 배움은 실천을 의미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주변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새로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너희들에게 각자 장래 희망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 보도록 한 적이 있었다. 대개 도시에서만 자란 너희들은 으레 젊어서는 의사가 혹은 과학자가, 엔지니어가, 건축가가 되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번 다음 나이가 들면 시골로 가서 아담한 집을 짓고 목장이나 농원을 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네....."운운에서 별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너희들의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장래 희망이 이야기되고 있을 때 문득 너희들 중의 한 아이가 일어나 항의조의 큰 목소리로 두서 없는 이야기를 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일반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 아이는 특히 말을 잘 못했다. 갑자기 일어나서 붉으락푸르락거리며 말더듬이 행세를 하는 그 아이에 대해 너희들은 처음에는 놀라다가 나중에는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아이는 교실 가득히 번지는 웃음소리에 머쓱해져서 말을 중단하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도시에서만 자란 너희들은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느 그 아이를 이해해보려는 노력 없이 가볍게 넘어가는 너희들이 안타까웠다.

그 아이는 말하자면 위장 전입을 한 아이였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고 그 아이만 서울의 친척집에 올라와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말뜻도 제대로 연결이 안되는 채 떠듬떠듬 쏟아놓은 단어들로도 나는 그 아이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너희들보다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오래 살았고 더 경험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이는 보리농사를 짓지 않는 부모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보리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은 농촌이 갑자기 잘 살게 되어서가 아니라 수지가 안 맞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그 아이는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보리농사를 지으면 손해본다고, 다른 농사도 그와 비슷하다고, 그래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고 자식에게만은 농사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 때문에 위장전입까지 해야 했는데, 농촌을 늙어서 돌아가 살 '저 푸른 초원 위에..."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하다니 말이나 되느냐고. 그 아이가 핏대까지 올려가며 하고자 한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또 나이키와 아디다스 이야기를 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한 컬레를 사려면 쌀 몇 말을 팔아야 하는데, 똥값이 된 배추를 몇 포기를 팔아야 하는데 그 농사를 위해 얼마나 땀을 흘려야 하는데 너도 나도 그렇게 쉽게 비싼 운동화를 신느냐, 그렇게 쉽게 해드폰을 끼고 팝송이나 들으며 사느냐, 그렇게 안이한 자세로 함부로 농촌을 이야기 하느냐고 그 아이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농촌의 아이들은 일하는 아이들이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일해야 하고, 수확물을 시장에 갖다 팔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부모님에게 돈을 타 쓰는 도시의 아들하고는 다르다. 적어도 자신의 삶과 관련된 현실에 대해서는 도시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농촌과 농촌에 계신 부모님의 어려움을 잘 아는 그 아이에게 과중한 비용을 들이는 서울 유학은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다. 더구나 성적은 성적대로 오르지 않을 때 느끼는 그 아이의 갈등은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이러한 그 아이의 갈등은 너희들의 농촌에 대한 "저 푸른 초원 위에....." 식의 얼토당토 않은 몰이해에 부딪쳐 폭발한 것이다. 너희들이 이것을 웃음으로 가볍게 넘긴 것은 진실에 대한 질문의 포기처럼 나에게는 느껴졌다. 진실에 대한 포기는 사회 구성원 상호간의 단절과 불신, 나아가서 분열을 낳는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서도 진실에 대한 질문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에 대한 질문이 장려되지 않고 오히려 억압될 때 그 진실은 이름없이 숨어버리고 고난을 통해 찾아내야 할 것으로 된다.

우리 사회에는 진실에 대한 질문을 어렵게 하는 잘못된 통념들이 많이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저 푸른 초원 위에....." 식의 농촌관이라든지 나이키, 아디다스에 대한 미신, 로큰롤이나 마돈나니 하는 미국 대중음악에 대한 미신 등도 그 일례이다. 이제 진실에 대한 질문을 억압하는 통념들이 어떤 성격의 것이고, 그러한 장애를 헤치고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존경하는 선배들로부터 들은 상징적 우화를 통해 이야기 하고 이 글을 마치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길조는 까치이다. 요즈음에는 비둘기가 평화의 새로서 우리의 통념 속에 길조로 깊이 인식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구적 통념이 우리의 의식에 들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선배는 우연히 비둘기의 생리와 까치의 생리를 자세히 관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선배가 한동안 거처하게 된 일본식의 가옥에는 뜰에 비둘기집이 있어 늘 한무더기의 비둘기들이 땅에 내려앉아 있곤 했는데 콩을 던져 주면 늘 꾸루륵 거리며 싸울 뿐만 아니라 숫놈들은 늘 암놈을 차지하기에 몰두하여 싸움을 일삼는다고 했다. 선배가 관찰할 바에 의하면 비둘기는 욕심 많고 싸움과 분열을 일삼는 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에는 제법 오래된 나무들이 높이 자라 있었고 그 높은 나뭇가지에 까치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쳤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새끼가 첫번째 날으는 연습을 하던 중 날개 힘이 약해 나무 밑에 내려앉게 되었다. 주인집 아저씨는 그 새끼를 모자에 담아 옮기려 하였다. 그때였다고 한다. 어미까치가 다급히 울음을 울어대자 어디에서 모여드는지 평소에는 그렇게 귀하던 까치들이 새까맣게 몰려들더니 주인집 아저씨에게 달려들더라는 것이다. 마치 폭격하는 전투기처럼 주인 아저씨의 얼굴 바로 앞까지 날카로운 주둥이를 세우고 달려들다가 하늘로 솟구치곤 하더라는 것이다. 주인 아저씨는 혼비백산하여 한 걸음도 앞으로 옮길 수가 없었고 끝내 새끼까치를 날려 보내야 했다. 새끼를 놓아주자 까치들은 그 새끼를 둥그렇게 둘러싼 채 날아올랐고 새끼가 둥지에 안착하자 뿔뿔이 흩어져 갔다. 선배는 우리가 바로 까치라고 했다. 까치가 자신이 비둘기라고 잘못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까지 숨겨질 수만은 없는 것이라고, 진실에 대한 질문이 존재하는 한 어느 날인가 우리가 까치가 되어 함께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근래에 까치로서의 우리 본연의 모습을 언뜻 보았었다. 어린 한 생명을 위해 새까맣게 몰려들어 자신의 몸을 던지는, 그리고 함께 날아오르는 까치의 모습을........

  나는 너희들이 늘 진실에 대한 질문으로 깨어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깨어 있음만이 우리 서로를 이해하게 하고 진실을 통해 하나가 되고 진실을 위해 함께 싸우게 할 것이다. 지금은 이 모든 진실이 아직도 감추어져 있는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스럽게 그것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어느 교사라는 이름없음을 대한 질문을 통해 너희들에게 이렇게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말하고자 했고, 이 숨겨진 진실에 대한 질문이 진정한 배움의 시작임을 말하고자 했다.

  아이들아, 우리들이 까치가 되어 함께 하늘 높이 솟아오를 그날은 언제일까? 하늘 높이 지우고 간 발자국들이 무지개로 솟아오를 날은 언제일까?

  너희들이 각자의 좁은 경험의 폭과 생각의 틀을 넘어서 진실에 대한 질문을 늘 제기하고 그것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될 때 그날은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다. 도시에서만 자랐고 도시에서만 살 것이라고 해서 도시적인 삶에만 묶여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우리 사회 전체 속에서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까치가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때에야 까치는 함께 날아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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