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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명예 / 슬기로운 왕 / 시간값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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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名譽[명예]

 

어느 날 아침이었다.

보통 학교 5학년 을 조(乙組)에는 시골 학교로부터 동일이란 아이가 전학

을 하여 왔다. 그래서, 수업 시간 전에 생도 전부가 키 차례로 나란히 서서

동일이의 자리를 정하였다. 마침 동일이는 키가 커서 수남이와 복남이 사이

에 꼭 알맞아서 그 사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문에 어제까지 어깨를 가

까이하고 한 책상에 같이 앉아서 정답게 지내던 수남이와 복남이는 할 수

없이 따로 떨어지게 되고 말았다. 수남이는 동일이와 한 책상에 같이 앉게

되고, 복남이는 그 앞 책상에 딴 아이와 같이 앉게 되어서 한편 생각하면

섭섭하기도 하고 한편 생각하면 동일이가 얄밉기도 하였다.

어제까지 한 책상에 같이 앉아서 상학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글을 쓰실

때에는 소곤소곤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혹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잡기

(노트)에 연필로 장난을 해 놓고도 서로 넓적다리를 꼬집으며 웃기도 하

여 시간 가는 줄을 모르던 수남이와 복남이는 오늘부터는 그럴 수가 없으므

로 교실에서 한 시간 동안 참기가 퍽도 거북하였다.

첫시간이 끝나자, 두 아이는 약속한 것같이 운동장 한편 구석에 모이었다.

! 참말 싫증이 나더라. 한 시간이 왜 그다지 오랜지…….”

수남이는 복남이의 어깨를 짚고 이렇게 말했다.

글쎄, 당초에 골머리가 아파서 못 견디겠더라. 동일이만 오지 않았으면

이렇게는 안 되었을걸.”

…….”

이래서야 어떻게 날마다 학교에 오겠니…….”

그런데, 또 동일이의 왼쪽 뺨에는 징그런 허물이 있지. 나는 그것이 보

기 싫어서 못 견디겠다.”

그런데, 그 허물이 꼭 자벌레 같아서 더군다나 동일이가 미워서 못 견디

겠다.”

참 그래……. 그 허물진 것이 꼭 자벌레 같더라. 우리 이제는 그 애 별

명을 자벌레라고 짓자!”

두 아이가 이와 같이 이야기를 할 때에 종이 울렸다. 그것을 둘째 시간이

시작되는 종이다.

  !”

, 한 시간을 어떻게 치르나!”

이렇게 한숨을 쉬면서 수남이와 복남이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모였다.

하루 이틀, 날은 지나갔다.

두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로 전반 생도는 모두 동일이를 자벌레라고 놀려

대었다. 그런데다가 동일이는 시골서 온 까닭으로 말하는 것이라든지 옷고

름 매는 것이라든지 모두 우스웠다. 동일이는 운동장에 나와서도 다른 아이

들과 같이 장난도 아니하고, 학교 구석 포플러나무 아래 가서 혼자서 책을

보곤 하였다.

! 저것 보아라. 자벌레가 저기서 글 읽는다.”

한 아이가 이렇게 말하면 다른 아이들도 ! !’하고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그러나, 동일이는 별로 대꾸도 안했다.

자벌레가 그 주제에 공부는 또 막 잘하지. 이번 학기 시험에 일등을 못

하면 미친증이 날걸.”

그럼, 저렇게 공부를 하고 첫째를 못해서야…….”

이런 평판도 여러 아이들의 입에 떠돌았다. 참말로 동일이는 무슨 학과든

지 잘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 아이들도 놀려대기는 하면서도 동일이를 무

섭게 보았다. 그는 공부 잘하고 장난하기를 덜 좋아할 뿐만 아니라, 마음씨

도 원래 고왔다. 다만 왼쪽 뺨에 보기에도 흉한 허물이 있어서 여러 아이들

의 놀림감이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한 장의 편지를 손에 들고

이상스럽게도 엄격한 표정으로 교단에 서서 생도들을 내려다보았다. 여러

아이들도 자연히,

무슨 일인가?’

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오늘 여러분께 한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여 들려 드리고 싶습

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의 친구 한 사람이 시골서 보통 학교 선

생 노릇을 하고 있는데 어저께 나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 사

연은 자기 학교에서 우리 학교에 전학하여 온 생도가 있으니 뒤를 잘 보아

달라는 말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말을 마치자, 여러 아이들은 동일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동일이는 잠자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편지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습니다. 남의 편지를 여러분께

읽어 드리는 것은 좀 안 되었지만 이 사실 이야기는 수신을 다섯 시간이나

여섯 시간 공부하는 것보다도 훨씬 유익하겠으므로 지금 여러분께 읽어 드

리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여기에서 말을 그치더니 봉투 속에서 길다란 편지를 끄집어

내어 두 손으로 쫙  펴 들고 똑똑하게 읽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왼쪽 뺨에는 보기에 흉한 커다란 허물이 있는 것

을 당신도 보셨을 터입니다. 그 때문에 여러 아이들한테도 좋지 못한 불쾌

한 감정을 일으키겠지요. 그러나, 사실로 그 허물은 명예로운 훌륭한 허물

입니다. 그것은 바로 작년 봄에 생겼던 일입니다. 동일이란 아이가 광산 가

까운 곳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을 때에, 얼마 멀지 않은 그 앞에는 다른 두

어린 아이가 꽃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산 위로부터는 광석을 가

득 실은 트럭이 맹렬한 형세로 쏜살같이 내려왔습니다. 타고 오던 사람은

비켜라! 비켜라!’하고 소리 질렀지만 두 아이는 꽃싸움하기에 정신이 팔

려 있으므로 알아듣지를 못하고 할 수 없이 치어 죽게 되었을 때에, 이것을

본 동일이는 자기 몸이 위태한 것도 볼 겨를이 없이 바로 달려들어 두 아이

를 밀쳐내며 자기는 그 자리에 엎드러졌습니다. 바로 그 때에 트럭이 휙 

지나갔으나 다행히 동일이 몸은 레일 밖에 있었던 까닭으로 다치지 아니하

고 왼편 뺨만 트럭에 가볍게 다치어 그렇게 허물이 졌습니다. 나이 어린 용

감한 소년 동일이는 두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몸에 일평생 없어지지

못할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까무러쳐 넘어져 있었습니다. 

신을 차릴 때에도 자기 몸이 아픈 것을 잊어버리고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

습니까하고 묻는 말을 들을 때에는 누구나 다 같이 울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참말로 동일이는 우리 학교의 보배였지요. 공부도 잘하고 마음도 착

하고, 나는 동일이가 집안 살림 형편으로 서울로 이사를 떠난다는 말을 듣

고 친자식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섭섭하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귀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였습니다. 아무쪼록 잘 교도하여 장래에

훌륭한 인물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떨리었다. 숨도 크게 쉬지 않고 듣고 앉아

있던 여러 아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나는 며칠 전부터 여러 사람이 동일이를 놀려대는 것을 알았습니다. 

러나, 동일이는 그같이 놀림을 받으면서도 자기의 명예로운 허물에 대해서

한 마디도 변명치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지요.”

선생님의 눈에도 눈물이 어리었다. 교실 안은 쥐죽은듯이 고요하였다. 

금까지 자벌레라고 동일이를 놀려대던 여러 아이들은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

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어떤 아이는 참지 못하고 소매로 눈

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었다.

여러분! 나는 편지를 읽으며 울었습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희생처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제 몸을 사랑하

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귀한 제 몸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구하

는 것처럼 훌륭한 일은 없습니다. 동일이 때문에 목숨이 살아난 두 아이와

그 부모의 기쁨이 오죽하겠습니까? 동일이는 얼굴에 상처가 났지마는 그 두

아이는 상처가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늘 말을 잘하던 교장 선생님도 오늘만은 말이 막히곤 하였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동일 씨를 본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여러분이

동일 씨를 자벌레라고 불러서 동일 씨에게 불쾌한 감정이 생기게 한 것을

지금 사죄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 동일이를 쳐다보며

동일 군!”

하고 불렀다. 동일이는 가만히 머리를 들었다.

동일 군, 용서하시오. 내가 오늘부터는 동일 군이 다니던 시골 학교의

선생님을 대신할 터이니…….”

동일이는 가만히 일어서서,

아닙니다. 저는 이 학교에 와서 조금도 불쾌한 일은 없습니다. 제가 여

러분께 친밀하게 굴지 못한 일이 도리어 죄송합니다.”

! 얼마나 아름다운 말이며 얼마나 귀여운 마음이냐? 교실 안에는 훌쩍훌

쩍하는 울음 소리가 일어났다.

 

조금 있다가,

동일 씨! 용서해 주시오.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동일 씨를 자벌레

고 별명지은 것은 저올시다.”

수남이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수그린 얼굴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다.

아닙니다. 별명을 지은 것은 저올시다. 용서하여 주시오.”

하고 이번에는 복남이가 머리를 숙이었다. 선생님은,

참 기쁩니다. 여러분이 참마음으로 그렇게 전에 잘못한 것을 뉘우치니까

동일 군도 용서하여 주겠지요! 이렇게 10분이나 20분 동안에 여러분의 마음

이 모두 맑고 깨끗하여지는 것도 모두 동일 씨의 아름다운 희생 정신에 감

동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그 마음을 변치 말고 나아가면 이 교실

안은 언제든지 따뜻한 봄철의 꽃동산보다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기쁜 빛이 나타나며 두 눈에는 또 새로운 눈물이 어리

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 때부터 동일이의 뺨의 흠집은 이 학교의 귀중한 보배로 영원히 빛나게

되었다.

 

〈《어린이5 5, 1927 5·6월호, 허문일

 

 

슬기로운

 

솔로몬이라 하면 옛날 서양에 있던 여러 왕들 중에서 가장 지혜 많기로 유

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유태 나라의 왕 다윗의 아들이었는데, 어려서부터 지혜가 많았습니

.

그가 아직 어렸을 때 그의 지혜를 시험해 보려고, 꽃 만드는 사람이 참말

꽃처럼 꽃 한 송이를 만들어 가지고 다른 참말 꽃과 함께 솔로몬의 앞에 갖

다가 놓고는, 손으로 만지거나 코로 냄새를 맡지 않고 어느 꽃이 참말 꽃인

지 알아내라고 하였습니다.

만져 보지도 않고, 냄새도 안 맡고, 참말 꽃 가짜 꽃을 분간해 내기는 정

말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러나, 지혜 많은 어린 솔로몬은 아무 말도 없이 곧

밖으로 나가서 벌 한 마리를 잡아 가지고 들어와서 그 꽃 있는 방 안에다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벌은 가짜 꽃은 본 체 만 체하고, 참말로 핀 꽃으로 날아가

서 앉았습니다. 그래 그 꽃이 참말 꽃이라고 솔로몬이 알아냈습니다.

 

 

 

 

시간값

 이상한 책값 

 

현대 문명은 전기가 낳았다 하는 것인데 그 전기를 발명한 이는 미국 사람

프랭클린이니, 현대의 세계 문명은 프랭클린이 낳아 놓았다 할 것입니다.

그 프랭클린이 젊어서 인쇄소를 하는 한편, 고서적 상점을 경영하는데, 

루는 서점에 손님 한 분이 와서 1원짜리 헌책을 집어 들고,

이것을 75전에 팔라.”

, 점원에게 자꾸 졸랐습니다. 원래 신용 세우는 서점이라, 정해 논 값 외

에는 더 받지도 덜 받지도 않는 터이므로 감해 팔 수 없다 하였더니, 그래

도 자꾸 조르다가 나중에는,

그러면 주인을 불러 오시오. 주인이 오면 다만 얼마라도 감해 줄 것이

분명하니…….”

하고, 이번에는 서점 주인을 불러 오라고 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참 후에 인쇄 공장에서 일하던 채로 점원에게 불리어 온 프랭클린을 보

,

여보, 내가 이 서점에 처음 한 번 오는 것도 아닌 터에 이것 헌책 25

만 감하라 하는데, 그리 못할 것이 무어요. 그래서 주인을 청한 것이니,

! 얼마간 감해 파시오.”

하니까, 프랭클린이 어쩐 생각인지,

, 1 20전은 내셔야 팔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손님은 도리어 정가보다 더 비싸게 내라 하는 소리에 깜짝 놀

래어,

여보, 젊은이가 망령이요? 감해 달라니까 도리어 20전을 더 내라 하니,

그게 무슨 말씀이요. 그러지 말고 팔 금을 말하시오. 얼마에 팔겠소?”

하니까, 이번에는 또,

지금은 할 수 없습니다. 1 40전을 주셔야 팔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여보, 점점 더 비싸진단 말이요. 당신이 책을 팔려고 안 그러고, 나를

조롱 하느라고 그러는구려.”

하고 손님이 성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태연하게,

아니올시다. 얼른 사시지 않고 오래 끄시면 그만한 시간의 손해가 나는

것 이니, 그 시간값은 누가 당합니까? 남에게 손해를 자꾸 보이시면서 값은

 

감하라 하시니 됩니까? 이제는 벌써 1 50전 안 주시면 못 팔게 되었습니

.”, 공손히 대답하였습니다.

손님은 그 말을 듣고 모자를 벗고 절을 하면서,

……. 참말 좋은 진리를 배웠습니다. 제 시간도 더 손해나기 전에 얼

른 가겠습니다.”

하고, 1원짜리 책을 1 50전에 사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어린이 6 5, 1928 9월호,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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