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순수.참여 논쟁의 비판적 이해

by 송화은율
반응형

 

순수.참여 논쟁의 비판적 이해

 본문

 문학에 있어서의 참여.순수 문제는 실상 문학의 속성의 이원성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상상적 기능과 인식적 기능이며 이 두 기능 중 어느 쪽에 역점을 두는가에 따라 참여.순수론의 논의 가능성이 놓이는 것이므로, 원론상으로는 어는 쪽도 정당하고 동시에 어느 쪽도 부당하다. 즉, 원론상으로는 그 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것이다.이 자리에서 장황히 그 원론상의 문제를 개진할 틈이 없지만 다음 한가지만 지적해 두기로 한다. 일찍이 학자들은 희랍 예술의 설명에서 예술의 상부 구조 이론의 난점에 봉착한 바 있다. 그들은 희랍 예술이 그 토대가 된 하부 구조가 바뀐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① 즐거움을 주며 ②어떤 규범으로 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예술의 상부 구조 이론과 모순된다. 어떤 비평가는 이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전의 재해석 가능성을 '언제나 과거에 대한 현대의 관계'로 보았다. 즉 그것은 '결코 어떠한 진리의 오늘날에 있어서의 불변의 적극성일 수 없다'는 선에 머물었다. 내가 볼 땐 이상의 견해는 문학을 음악이나 미술같은 순수 예술과 함께 동열(同列)에 놓았다는 것에 근본적인 오류가 개재된 것 같다. 음악이나 미술의 경우라면 즐기는 것이 전부이며 따라서 그것만이 예술적 진리이다.

 

 그러나 문학은 언어가 본질적으로 포회(抱懷)한 역사성.사회성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즉 인식론적 측면을 상상력과 더불어 그 고유한 속성으로 갖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은 반예술(半藝術)이다, 적어도 음악, 미술과 비교할 때는 그러한 것이다. 상상적 측면에서는 예술성, 인식적 측면에서는 역사.사회성, 이 두 개의 속성에서 순수.참여 논의의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때문에 원론상(原論上) 어느 쪽도 일원론(一元論)으로 격파될 성질일 수 없다.

 

 그러나, 문제의 소재는 어떤 시대의 구체적 현실로서의 역사적.사회적.계층적 제약성에 관한 해석 방법에 있다. 문학의 두 속성 중 어느 한쪽에 '보다' 역점을 둔다는 것은 특정 시대의 역사적 제약성에 결정권을 갖는다. 이 사실의 승인이 없으면 순수.참여 논의는 꼭두(幻)와의 싸움 이상일 수 없게 됨이 필지(必至)일 따름이다. 만일 이런 사실이 승인된다면 구체적 현실로서의 1960년대 한국의 사회적.역사적.구조적. 모순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이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는가를 검토해야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이에 머물지 않고, 1970년대에 이어지는 민족 문학으로서의 민중 의식, 농민 문학으로서의 가능성에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김윤식의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