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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 전문 / 이태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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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 - 이태준


 

월미도(月尾島) 끝에 물에다 지어 놓은, 용궁각인가 수궁각인가는 오늘도 운무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벌써 열나흘째 줄곧 그치지 않는 비다. 삼십 간이 넘는 큰 집 역사에 암키와만이라도 덮은 것이 다행이나 목수들은 토역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미장이들은 겨우 초벽만 쳐놓고 날들기만 기다린다.

 

기둥에, 중방, 인방에 시퍼렇게 곰팡이가 돋았다. 기대거나 스치거나 하면 무슨 버러지 터진 것처럼 더럽다. 집주인은 으레 하루 한 번씩 와서 둘러보고, 기둥 하나에 십 원이 더 치었느니, 토역도 끝나기 전에 만여 원이 들었느니 하고, 황서방과 권서방더러만 조심성이 없어 곰팡이를 문대기고 다녀 집을 더럽힌다고, 쭝얼거리다가는 으레 월미도 쪽을 눈살을 찌푸려 내어다보고는, 이놈의 하늘이 영영 물커져 버리려나, 어쩌려나 하고는 입맛을 다시다 가버린다. 그러면 황서방과 권서방은 입을 삐죽하며 집주인의 뒷모양을 비웃고, 이젠 이 집이 우리 차지라는 듯이, 아직 새벽질도 안 한 안방으로 들어가 파리를 날리고 가마니쪽 위에 눕는다. 날이 들지 않는 것을 탓할 푼수로는 집주인보다, 목수들보다, 미장이들보다, 모군꾼인 황서방과 권서방이 훨씬 윗길이라야 한다.

 

권서방은 집도, 권속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홀아비지만, 황서방은 서울서 내려왔다. 수표다리께 뉘 집 행랑살이나마 아내도 자식도 있다. 계집애는 큰 게 둘이지만, 아들로는 첫아이를 올에 얻었다. 황서방은 돈을 뫄야겠다는 생각이 딸애들 때와 달리 부쩍 났다. 어떻게 돈 십 원이나 마련되면 가을부터는 군밤 장사라도 해볼 예산으로, 주인나리한테 사정사정해서 처자식만 맡겨 놓고 인천으로 내려온 것이다.

 

와서 이틀 만에 이 역사터를 만났다. 한 보름 동안은 재미나게 벌었다. 처음 사나흘 동안은 품삯을 받는 대로 먹어 없앴다. 처자식 생각이 났으나 눈에 보이지 않으니 우선 내 입에부터 널름널름 집어넣을 수가 있다. 서울서는 벼르기만 하던, 얼음 넣은 냉면도 밤참으로 사먹어 보고, 콩국, 순댓국, 호떡, 스꾸리까지 사먹어 봤다. 지카다비를 겨우 한 켤레 샀을 때는 벌써 인천 온 지 열흘이 지났다. 아차, 이렇게 버는 족족 집어 써선 만날 가야 목돈이 잡힐 것 같지 않다. 정신을 바짝 차려 대엿새째 오륙십 전씩이라도 남겨 나가니 장마가 시작이다. 그 대엿새의 오륙십 전은, 낮잠만 자며 다 까먹은 지가 벌써 오래다. 집주인한테 구걸하듯 해서, 그것도, 꾀를 피우지 않고 힘껏 일을 해왔기 때문에 주인 눈에 들었던 덕으로, 이제 날이 들면 일할 셈치고 선고가로 하루 사십 전씩을 얻어 연명을 하는 판이다.

 

새벽에 잠만 깨면 귀부터 든다. 부슬부슬, 빗소리는 어제나 다름없다.

"이거 자빠져두 코가 깨진단 말이 날 두구 헌 말이여!"

", 황서방은 그래 화투 하나 칠 줄 모르드람!"

 

권서방은 또 일어나 앉더니 오관인가 사관인가를 뗀다.

"우리 에펜네허구 같군." "누가?" "권서방 말유."

"내가 댁 마누라허구 같긴 뭬 같어?"

"우리 에펜네가 저걸 곧잘 해…… 가끔 날 보구 핀잔이지, 헐 줄 모른다구."

"화툴 다 허구 해깔라생인 게로구랴?"

"허긴 남 행랑 구석에나 처너 두긴 아깝대니까."

"벨 빌어먹을 소리 다 듣겠군! 어떤 녀석은 제 에펜네 남 행랑살이 시키기 좋아 시킨답디까?"

"허기야……."

"이눔의 솔학 껍질 하내 어디 가 백였나……."

"! 돈두 못 벌구 생홀애비 노릇만 허니 이게 무슨 청승이어!"

"황서방두 마누라 궁뎅인 꽤 받치는 게로군." "궁금헌데…… 내가 편질 부친 게 우리 그저께 밤이지?"

"그렇지 아마."

"어젠 그럼 내 편질 봤겠군! 장 돈이나 몇 원 부쳐 줬어야 헐 건데……."

"색시가 젊우?"

"지금 한창이지."

"그럼, 황서방보담 아랜 게로구랴?"

"열네 해나."

"저런! 그럼 삼십 안짝이게?"

"안짝이지."

", 황서방 땡이로구려!"

하는데 밖에서 비 맞는 지우산 소리가 난다.

"누구야, 저게?"

 

황서방도 일어났다. 지우산이 접히자 파나마에 금테 안경을 쓴, 시뿌옇게 살진 양복쟁이다. 황서방의 퀭한 눈이 뚱그래서 뛰어나간다. 뭐라는지 허리를 굽신하고 인사를 하는 눈치인데 저쪽에선 인사를 받기는커녕 우산을 놓기가 바쁘게 절컥 황서방의 뺨을 붙인다. 까닭 모를 뺨을 맞는 황서방보다 양복쟁이는 더 분한 일이 있는 듯 입을 벌룽거리기만 하면서 이번에는 덥석 황서방의 멱살을 잡는다.

 

"아니, 나리님? 무슨 영문인지나……."

"…… 뭐시이?"

하더니 또 철썩 귀쌈을 올려붙인다. 권서방이 화닥닥 뛰어내려왔다. 양복쟁이에게 덤비지는 못하고 황서방더러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 자식이 손은 뒀다 뭣에 쓰자는 거냐? 죽을 죌 졌기루서니 말두 듣기 전에 매부터 맞어?"

 

그제야 양복쟁이는 황서방의 멱살을 놓고 가래를 돋워 뱉더니 마룻널 포개 놓은 데로 가 앉는다. 담배부터 내어 피워 물더니,

"인두겁을 썼음 너두 사람 녀석이지…… 네 계집두 사람년이구……."

 

양복쟁이는 황서방네 주인나리였다. 다른 게 아니라, 황서방의 처가 달아난 것이다. 아홉 살짜리, 여섯 살짜리, 두 계집애와 백일 겨우 지난 아들애까지 내버려두고 주인집 은수저 네 벌과 풀 먹이라고 내어준 빨래 한 보퉁이까지 가지고 나가선 무소식이란 것이다. 두 큰 계집애가 밤마다 우는 것은 고사하고 질색인 건 젖먹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애비마저 돈 벌러 나간단 녀석이 장마 속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밥만 주면 처먹는 것만도 아니요, 암죽을 쑤어 먹이든지, 우유를 사다 먹이든지 해야 되고, 똥오줌을 받아 내야 하고, 게다가 에미 젖을 못 먹게 되자 설사를 시작한다. 한 열흘 하더니 그 가는 팔다리가 비비 틀린다. 볼 수가 없다. 이게 무슨 팔자에 없는 치다꺼리인가? 아씨는 조석으로 화를 내었고 나리님은 집안에 들어서면 편안할 수가 없다. 잘못하다가는 어린애 송장까지 쳐야 될 모양이다. 경찰서에까지 가서 상의해 보았으나 아이들은 그 애비 되는 자가 돌아올 때까지 주인이 보호해 주는 도리밖에 없다는 퉁명스런 부탁만 받고 돌아왔다. 이런 무도한 연놈이 있나? 개돼지만도 못한 것이지 제 새끼를 셋이나, 것두 겨우 백일 지난 걸 놔두구 달아나는 년이야 워낙 개만도 못한 년이지만, 애비 되는 녀석까지, 아무리 제 여편네가 달아난 줄은 모른다 쳐도, 밤낮 아이만 끼구 앉아 이마때기에 분칠만 하는 년이 안일을 뭘 그리 칠칠히 해내며 또 시킬 일은 무에 그리 있다고 염치 좋게 네 식구씩이나 그냥 먹여 줍쇼 하고 나가선 달포가 되도록 소식이 없는건가? 이놈이 들어서건 다리옹두릴 꺾어 놔 내쫓아야, 이놈이 사람놈일 수가 있나! 욕밖에 나가는 것이 없다가 황서방의 편지가 온 것이다.

 

"이눔이 인천 가 자빠졌구나!"

 

당장에 나리님은 큰 계집애한테 젖먹이를 업히고, 작은 계집애한테는 보퉁이를 들리고, 비 오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 길로 인천으로 끌고 내려온 것이다.

 

"그래 애들은 어딨세유?"

"정거장에들 앉혀 뒀으니 가 인전 맡어. 맨들어만 놈 에미애빈가! 개 같은 것들……."

 

나리님은 시계를 꺼내 보더니 일어선다. 일어서더니 엥이! 하고 침을 뱉더니 우산을 펴든다. 황서방은 무슨 꿈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리님 뒤를 따라 정거장으로 나오는 수밖에 없다. 옷 젖기 좋을 만치 내리는 비를 그냥 맞으며. 정거장에는 두 딸년이 오르르 떨고 바깥을 내다보다가 애비를 보자 으아 소리를 내고 울었다. 젖먹이는 울음 소리도 없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무심히 들여다보았다가는 엥이! 하고 안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얼굴을 돌린다. 황서방은 가슴이 섬뜩하는 것을 참고 받아 안았다. 빈 포대기처럼 무게가 없다. 비린내만 훅 끼친다. 나리님은 어느새 차표를 샀는지, 마지막 선심을 쓴다기보다 들고 가기가 귀찮다는 듯이, 옜다 이년아, 하고 젖은 지우산을 큰계집애한테 던져 주고는 시원스럽게 차 타러 들어가 버리고 만다. 황서방은 아이들을 끌고, 안고, 저 있던 데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 살긴 틀렸나 부!"

 

한참이나 앓는 아이를 들여다보던 권서방의 말이다.

"임자보구 곤쳐 내래게 걱정이여?"

"그렇단 말이지."

"글쎄, 웬 걱정이여?"

 

황서방은 참고 참던, 누구한테 대들어야 할지 모르던 분통이 터진 것이다.

"그럼 잘못 됐구려…… 제에길……."

"……"

 

황서방은 그만 안았던 아이를 털썩 내려놓고 뿌우연 눈을 슴벅거린다.

"…… 무돈년…… 제년이 먼저 급살을 맞지 살 줄 알구……."

"그래두 거 의원을 좀 봬야지 않어?"

"쥐뿔이나 있어?"

 

권서방도 침만 찍 뱉고 돌아앉았다. 아이는 입을 딱딱 벌리더니 젖을 찾는 듯 주름잡힌 턱을 옴직거린다. 아무것도 와 닿는 것이 없어 그러는지, 그 옴직거림조차 힘이 들어 그러는지, 이내 다시 잠잠해진다. 죽었나 해서 코에 손을 대어 본다. 아비 손에서 담뱃내를 느낀 듯 킥, 킥 재채기를 한다. 그러더니 그 서슬에 모기 소리만큼 애앵애앵 보채 본다. 그리고는 다시 까부라진다.

"병원에 가두 틀렸어, 이건."

 

남의 말에는 성을 내던 아비의 말이다.

"뭐구 집쥔이 옴?"

"……"

 

월미도 쪽이 더 새까매지더니 바람까지 치며 빗발이 굵어진다. 황서방은 다리를 치켜 걷었다. 앓는 애를 바짝 품안에 붙이고 나리님이 주고 간 지우산을 받고 나섰다. 허턱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왕진 갔다고 받지 않고, 소아과가 아니라고 받지 않고 하여 네 번째 찾아간 병원에서 겨우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애 아비를 보더니 말은 간호부에게만 무어라 지껄이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안 되겠습죠?"

"아는구려."

하고 간호부는 그냥 안고 나가라고 한다.

"한이나 없게 약을 좀 줍쇼."

"왜 진작 안 데리구 오냐 말요? 이런 애 죽는 건 에미애비가 생아일 쥑이는 거요. 오늘 밤 못 넹규."

 

황서방은 다시는 울 줄도 모르는 아이를 안고 어청어청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었다. 권서방에게 있는 돈을 털어다 호떡을 사왔다. 황서방은 호떡을 질근질근 씹어 침을 모아 앓는 아이 입에 넣어 본다. 처음엔 몇 입 받아 삼키는 모양이나 이내 꼴깍꼴깍 게워 버린다. 황서방은 아이 입에는 고만두고 자기가 먹어 버린다. 종일 굶었다가 호떡이라도 좀 입에 들어가니 우선 정신이 난다. 딸년들에게 아내에게 대한 몇 가지를 물어 보았으나 달아났다는 사실을 더욱 똑똑하게 알아차릴 것뿐이다.

 

"병원에서 헌 말이 맞을랴는 게로군!"

"뭐랬게?"

"밤을 못 넹기리라더니……."

 

캄캄해졌다. 초를 사올 돈도 없다. 아이의 얼굴이 희끄무레할 뿐 눈도 똑똑히 보이지 않는다. 빗소리에 실낱 같은 숨소리는 있는지 없는지 분별할 도리가 없다.

 

"이 사람?"

모기를 때리느라고 연성 종아리를 철썩거리던 권서방이 얼리지 않는 점잖은 목소리를 내인다.

"생각허니 말일세…… 집쥔이 여태 알진 못해두……."

"집쥔?"

"그랴…… 아무래두 살릴 순 없잖나?"

"얘 말이지?"

"글쎄."

"어쩌란 말야?"

"남 새집…… 들기두 전에 안됐지 뭐야?"

"! 별년의 소리 다 듣겠네! 자넨 오지랖두 정치겐 넓네."

"넓잖음 어쩌나?"

"그럼, 죽는 앨 끌구 이 우중에 어디루 나가야 옳아?"

"글쎄 황서방은 노염부터 날 줄두 알어. 그렇지만 사필귀정으로 남의 일두 생각해 줘야 허느니……."

"자넨 이눔으 집서 뭐 행랑살이나 얻어 헐까구 그리나?"

"예에끼 사람! 자네믄 그래 방두 뀌미기 전에 길 닦아 노니까 뭐부터 지나가더라구 남의 자식부터 죽어 나감 좋겠나? 말은 바른 대루……."

"자넴 또 자네 자식임 그래 이 우중에 끌구 나가겠나?"

하고 황서방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나가네."

"같은 없는 눔끼리 너무허네."

"없는 눔이라구 이면경계야 몰라?"

"난 이면두 경계두 모르는 눔일세, 웬 걱정이여?"

 

 

빗소리뿐, 한참이나 잠잠하다가 황서방이 코를 훌쩍거리는 것이 우는 꼴이다. 권서방은 머리만 벅적거리었다. 한참 만에 황서방은 성냥을 긋는다. 어린애를 들여다보다가는 성냥개비가 다 붙기도 전에 던져 버린다. 권서방은 그만 누워 버리고 말았다. 어느 때나 되었는지 깜박 잠이 들었는데 황서방이 깨운다. "왜 그려?" 권서방은 벌떡 일어나며 인젠 어린애가 죽었나 보다 하였다.

 

"자네 말이 옳으이……."

"?"

"아무래두 죽을 자식인데 남헌테 궂은 짓 할 것 뭐 있나!"

하고 한숨을 쉰다. 아직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

 

권서방은 후닥닥 일어났다. 비는 한결같이 내렸다. 권서방은 먼저 다리를 무릎 위까지 올려 걷었다. 그리고 삽을 찾아 든다.

"그럼, 안구 나서게."

"어디루?"

"어딘? 아무 데루나 가다가 죽건 묻세그려."

"……"

"아무래두 이 밤 못 넹길 거 날 밝으문 괜히 앙징스런 꼴 자꾸 보게만 되지 무슨 소용 있어? 안게 어서."

 

황서방은 또 키륵키륵 느끼면서 나뭇잎처럼 거뿐한 아이를 싸 품에 안고 일어선다.

"이런 땐 맘 모질게 먹는 게 수여. 밤이길 잘했지……."

"……"

 

황서방은 딸년들 자는 것을 들여다보고는 성큼 퇴 아래로 내려섰다. 지우산을 펴자 쫘르르 소리가 난다. 쫘르르 소리에 큰딸년이 깨어 일어난다. 황서방은 큰딸년을 미리, 꼼짝 말고 있으라고 윽박지른다. 황서방은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지우산을 받고 나서고, 그 뒤로 권서방이 헛간을 가리었던 가마니를 떼어 두르고 삽을 메고 나섰다. 허턱 주안(朱安) 쪽을 향해 걷는다. 얼마 안 걸어 시가지는 끝나고 길은 차츰 어두워진다. 길만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세차진다. 홱 비를 몰아붙이며 우산을 떠받는다. 황서방은 우산을 뒤집히지 않으려 바람을 따라 빙그르 돌아본다. 그러면 비는 아이 얼굴에 홈박 쏟아진다. 그래도 아이는 별로 소리가 없다. 권서방더러 성냥을 그어 대라고 한다. 그어 대면 얼굴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나 빗물 흐르는 비비 틀린 목줄에서는 아직도 발랑거리는 것이 보인다. 바람이 또 친다. 또 빙그르 돌아본다. 바람은 갑자기 반대편에서도 친다. 우산은 그예 뒤집히고 만다. 뒤집힌 지우산은 두번 세번 만에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또 성냥을 켜보려 한다. 그러나 성냥이 눅어 불이 일지 않는다. 하늘은 그저 먹장이다. 한참 숨을 죽이고 들여다보아야 희끄무레하게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이거, 왜 얼른 뒈지지 않어?"

"아마 한 십 리 왔나 보이."

다시 한 오 리 걸었을 때다. 황서방은 살만 남은 지우산을 집어 내던지며 우뚝 섰다.

"?"

인젠 죽었느냐 말은 차마 나오지 않는다.

"인전 묻어 버려두 되나 볼세."

"그래?"

 

권서방은 질질 끌던 삽을 들어 쩔겅 소리가 나게 자갈길을 한번 내려쳐 삽을 짚고 좌우를 둘러본다. 한편에 소 등허리처럼 거무스름한 산이 나타난다. 권서방은 그리로 향해 큰길을 내려선다. 도랑물이 털버덩한다. 삽도 짚지 못한 황서방은 겨우 아이만 물에 잠그지 않았다. 오이밭인지 호박밭인지 서슬 센 덩굴이 종아리를 어인다.

 

"병을 헐……."

 

밭은 넓기도 했다. 밭두덩에 올라서자 돌각담이다. 미끄런 고무신 한 짝이 뱀장어처럼 뻐들겅하더니 벗어져 달아난다. 권서방까지 다시 와 암만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거디 더 걷겠나?"

"여기 팝시다." "여기 돌 아니여?"

"파문 흙 나오겠지."

 

황서방은 돌각담에 아이 시체를 안고 앉았고, 권서방은 삽으로 구덩이를 판다. 떡떡 돌이 두드러지고, 돌을 뽑으면 우물처럼 물이 철철 고인다.

"이런 빌어먹을 눔의 비……."

"물구뎅이지 별수 있어……."

 

황서방은 권서방이 벗어 놓은 가마니쪽에 아이 시체를 누이고 자기도 구덩이로 왔다. 이내 서너 자 깊이로 들어갔다. 깊어지는 대로 물은 고인다. 다행히 비탈이라 낮은 데로 물꼬를 따놓았다. 물은 철철철 소리를 내며 이내 빠진다. 황서방은, "으흐흐……." 하고 한자리 통곡을 한다. 애비 손으로 제 새끼를 이런 물구덩이에 넣을 것이 측은해, 권서방이 아이 시체를 안으러 갔다.

"?"

죽은 줄만 알고 안아 올렸던 권서방은 머리칼이 곤두섰다. 분명히 아이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꼴깍꼴깍 아이의 입은 무엇을 토하는 것이다. 비리치근한 냄새가 홱 끼친다.

"여보 어디?"

 

황서방도 분명히 꼴깍 소리를 들었다. 아이는 아직 목숨이 붙었다. 빗물이 입으로 흘러들어간 것을 게운 것이다.

"제에길, 파리새끼만두 못한 게 찔기긴!"

 

아비가 받았던 아이를 구덩이 둔덕에 털썩 놓아 버린다. 비는 한결같다. 산골짜기에는 물소리뿐 아니라, 개구리, 맹꽁이 그리고도 무슨 날짐승 소리 같은 것도 난다. 아이는 세 번째 들여다볼 적에는 틀림없이 죽은 것 같았다. 다시 구덩이 바닥에 물을 쳐내었다. 가마니를 한끝을 깔고 아이를 놓고 남은 한끝으로 덮고 흙을 덮었다. 황서방은 아이를 묻고, 고무신 한 짝을 잃어버리고 쩔름거리며 권서방의 뒤를 따라 한길로 내려왔다. 아직 하늘은 트이려 하지 않는다.

 

"섰음 뭘 허나?"

 

황서방은 아이 무덤 쪽을 쳐다보고 멍청히 섰다.

"돌아서세, 어서."

"예가 어디쯤이지."

"그까짓 건…… 고무신 한 짝이 아깝네만……."

"……"

"가세 어서."

 

황서방은 아이 무덤 쪽에서 돌아서기는 했으나 권서방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권서방이 쫓아와 붙든다. "내 이년을 그예 찾아 한 구뎅에 처박구 말 테여……."

"! 이럼 뭘 허나?"

"으흐흐…… 이리구 삶 뭘 허는 게여? 목석만두 못헌 애비지 뭐여? 저것 원술 누가 갚어…… 이년을 내 젖퉁일 썩뚝 짤러다 묻어 줄 테다."

"황서방 진정해요."

"노래두……."

", 딸년들은 또 어떻게 되라구?"

"……"

 

황서방은 그만 길 가운데 철벅 주저앉아 버린다. 하늘은 그저 먹장이요, 빗소리 속에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뿐이다.

 

 

출전:문장16~17(19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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