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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밤에 / 안데르센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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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밤에 / 안데르센



살갗이 따끔따끔할 만한 추위였습니다. 별이 반짝빤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없는 밤이었습니다.

쾅!

사람들은 문짝에다 술병을 세차게 내던졌습니다.

탕!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는 총을 쏘았습니다.

섣달 그믐날 밤이었습니다. 열 두 시를 막 쳤습니다.

덜컥 덜컥!

우편마차가 왔습니다.

커다란 마차가 도시의 문밖에 섰습니다. 열 두 사람의 손님을 태우고 왔습니다. 그 이상은 자리가 없었습니다. 자리는 다 차 있었습니다.

"만세! 만세!"

집집마다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섣달 그믐날을 축하하고, 철철 넘치게 따른 술잔을 들고 새해를 맞이하는 건배를 들었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아가씨! 돈을 듬뿍! 화내는 일은 아예 없도록!"

그렇죠. 서로들 이렇게 빌며 잔을 부딪혔습니다.

우편마차는 도시의 문 앞에 섰습니다. 외국의 손님 - 열 두 사람의 나그네를 태우고.

어떤 손님들이었을까요. 모두 여권과 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네, 당신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도시의 사람들을 위해서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손님들은 누구였을까요? 무슨 일을 하려고 했을까요? 무엇을 가지고 왔을까요?

"안녕하셔요?"

하고, 열 두 사람은 문지기 군인에게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하고, 문지기 군인도 아침 인사를 했는데, 그것은 시계가 막 열 두 시를 쳤기 때문입니다.

"댁의 이름은? 신분은?"

하고, 문지기는 맨먼저 마차에서 내린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여권을 자세히 보십시오!"

라고, 그 사람은 말하였습니다.

"나는 납니다!"

곰가죽 외투를 입고 장화를 신은 점잖은 신사였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사나이입니다. 내일, 오십시오. 그러면 새해를 즐길 수 있게 해 드리지요. 사람들이 떼지어 모인 곳에 돈을 던져 줍니다. 선물도 합니다. 댄스하는 모임도 베풉니다. 서른 한 번만이지요. 그 이상 댄스를 할 저녁은 없습니다.
내 배는 얼음 속에 갇혀 있지만, 내 사무실은 따뜻해요. 나는 도매하는 장사치로, 이름은 1월이라고 합니다. 하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문서뿐입니다."

2월, 3월, 4월

그리고, 다음 손님이 왔습니다. 그 사람은 익살꾼이었습니다. 연극이랑 가장무도회랑,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여흥이면 뭐든지 주선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짐은 커다란 통이었습니다.
"카니발에는 고양이 같은 것보다도 더 멋진 것을 나오게 하겠어요."
하고, 이 사람은 말했습니다.

"나는 남들을 즐겁게 해 주고 나도 즐기려 합니다. 어쨌든 나는 가족 전체 중에서 가장 목숨이 짧으니까요! 28일뿐인걸요. 네, 하루가 불어나는 수가 있긴 하지만 그거야 뭐 대수로운게 뭐되죠. 만세!"
"그렇게 큰소리를 치시면 안 됩니다."

하고, 문지기가 말하였습니다.

"괜찮아요. 물론 상관없어요."

"나는 카니발의 왕자인데 2월이란 이름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는 세 번째 손님이 왔습니다. 마치 '단식 잔치'에라도 온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나 양초처럼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40명의 기사>의 친척으로 일기예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돈을 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단식 잔치의 계절을 칭찬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치장은 단추구멍에 꽂은 한 묶음의 제비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3월군 앞으로 갓!"

하고 넷째 번 손님은 이렇게 외치고, 셋째 번 사람을 밀어내었습니다.

"3월군 앞으로 갓! 초소로! 거기서는 폰스(포도주 따위에 향료를 섞은 음료)를 마실 수 있지. 술내가 나는 걸."

그러나 그것은 정말이 아니었습니다. <만우절> 거짓말을 해서 3월군을 속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넷째 번 젊은이가 끼어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씩씩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별로 아는 일 없이 잔칫날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해서 말야."라고, 이 사람은 말하였습니다.

"비가 왔다가 해가 났다가 해서 말야. 나는 또 이사 가는 일을 돌봐 주는 사람으로, 장례식이랑 결혼식 일도 맡아 봅니다. 웃기도 잘 하고 울기도 잘 합니다. 가방 속에 여름옷이 들어있는데, 그걸 지금 입으면 얼빠진 사람이 되겠죠. 자, 이것 보세요! 나들이를 갈 때는, 이렇게 비단 양말을 신고, 머프(모피 뒷면에 손을 넣게 되어 있는 방한구)를 낍니다."

이번에는 여자가 마차에서 내렸습니다.


미스 5월에서 9월까지

"미스 5월이에요!"

하고, 그 여자는 말하였습니다. 여름 옷에 고무 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너도밤나무 잎같은 초록 비단 옷으로, 머리에 아네모네 꽂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도깨비 부채의 향기를 짙게 풍풍 풍기고 있어서 문지기는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하였습니다.

"그럼 몸 성히 계십시오."

하고, 그 사람은 말하였습니다. 그것이 인사였습니다.

정말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수였습니다. 그것도 극장에서 부르는 것이 아니고, 숲속에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천막 속이 아니고, 싱그러운 초록빛 숲속을 거닐며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재봉 도구를 넣은 주머니 속에는 윈터어라는 시인의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시집은 너도밤나무숲과 아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또 리카르트라는 시인의 조그만 시집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도깨비부채 그대로였습니다.

"이번에는 부인이어요.  젊은 부인입니다!"라고 마차 안의 사람이 외쳤습니다. 그러자, 젊고 품위있는 새침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나왔습니다. 이 사람이 일곱 명의 <잠의 성자>가 다시 태어나온 것임을 담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부인은 6월 부인으로, 일년 중에 낮이 가장 긴 날 연회를 열었습니다. 음식 먹을 시간일 길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자기의 마차로 올 수도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편마차로 왔습니다. 거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여행은 아니고, 동생인 7월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이 동생은 매우 사치해서, 여름옷을 입고,  파나마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짐은 조금밖에 가지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더우면 짐을 거추장스럽습니다. 수영모자와 수영복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뿐이라면 대단치 않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왔습니다. 8월 부인은 과일 도매상으로 물고기를 기르는 독을 많이 가지고 있고, 치마단이 넓은 스커트를 입은 농사꾼이기도 하였습니다.

살이 쪄서 더워 보였지만, 무슨 일에든지 얼굴을 나타냈습니다. 손수 맥주 통을 이고 밭에 있는 일꾼들에게 갔습니다.

<얼굴에 땀을 흘리고 빵을 잡수셔요.>

라고 성경에 적혀 있답니다.

"일한 뒤에 숲에서의 댄스 파아티랑 추수 잔치를 합시다!"

하고, 8월 부인은 말하였습니다.

과연 어머니였습니다.

이번에는 또 남자였습니다. 직업은 화가로 채식의 명수였습니다. 숲도 그걸 알고 있어서, 나뭇잎을 빛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화가의 소원이란 아릅답게 하는 그것이었습니다. 숲은 곧 빨강이랑 노랑, 다갈색으로 될 참입니다.

화가는 검은 찌르레기처럼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또 부지런히 일하였습니다.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초록 호프 덩굴을 맥주조끼에 감았습니다. 그것은 장식이었습니다. 장식에 있어서는 이 사람은 안목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림 물감이 든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짐은 그것뿐이었습니다.


10월이, 11월이, 12월이

이번에는 지주가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씨 부린 땅을 썰고 가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냥의 즐거움도 얼만큼은 생각하였습니다. 개하고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주머니에는 호두가 들어 있어서 달각달각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짐을 퍽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제 가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신 밭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렇게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구 기침을 하며 쌕쌕거리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음에 찾아온 11월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콧물 감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심한 콧물 감기였습니다. 그래서 손수건 대신 요 홑이불을 콧수건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식모들에게 새로운 일을 가르쳐 줘야지! 장작을 패면 감기도 나을 거야. 그렇게 해야지."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나무꾼 조합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입니다. 밤에는 스케이트 구두를 만들며 지냈습니다. 이삼 주일 있으면, 이 즐거운 구두를 신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화로를 가진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추위에 얼어서 떨고 있었는데, 눈은 두 개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감탕나무로 된 화분을 한 손에 안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를 소중히 가꿔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까지는 마루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을 만큼 자라게 해야지. 그렇게 하면 불 켠 양초랑 금빛 칠을 한 사과랑, 오려낸 인형으로 꾸며지게 되겠지요! 화로는 난로 못지 않게 우리를 따뜻하게 해 줄 겁니다.

내가 품속에서 옛날얘기 책을 꺼내서 읽어 들려주면 방안의 아이들은 모두 얌전해집니다. 하지만 나무에 매단 인형은 생생해집니다. 나무 꼭대기에 매단 밀초로 만든 조그만 천사는, 금빛 날개를 퍼득이며, 초록빛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방 안의 어른이랑 아이들에게 키스합니다.

아니, 문밖에 서 있는 <베들레헴의 별>이라는 크리스마스의 노래를 부르는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키스를 합니다.
  
맺는 말

"자, 마차는 먼저 떠나도 좋아. 이것으로 열 두 명 다 모였으니까. 새 마차를 내 줘요!"

하고 문지기는 말하였습니다.

"먼저 열 두 사람을 차례로 이리로 들여 보내요!"

하고, 당번인 대장이 말하였습니다.

"한 사람씩! 여권은 내가 맡겠습니다. 한 달씩만 맡기로 합니다. 한 달 지나면 각자가 어떤 일을 했는가를 적어 놓습니다. 1월님,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래서, 1월이 들어왔습니다.

1년이 지나면 열 두 명이 당신네들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우리들 모두를 위하여, 무엇을 갖다 주었는가를 얘기해 드리지요.

지금은 나는 아직 모릅니다. 이 사람들도 모를 것입니다.

우리들은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시간이란 묘한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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