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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가(禪雲山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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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가(禪雲山歌)

 

長沙人 征役 過期不至基妻思之登禪雲山望而歌之
장사인 정역 과기부지기처사지등선운산망이가지  

 

 요점 정리

 주제 : 남편을 그리워함

 

 이해와 감상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것은 문학의 중요한 소재이고, 주제가 아닌가?

 

 내용 연구

 

 백제 가요의 하나로 작자 ·연대 미상. 백제 때 장사(長沙) 사람이 정역(일정한 나이 이상에 이른 남녀가 서울에 가서 일에 복역하는 것)에 나갔는데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선운산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올 방향을 바라보면서 못내 그리운 심정을 읊은 것이라 한다. 가사는 전하지 않고 제목과 유래만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등에 전한다.

 

 

 선운산가

 

 백제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노래. 원사(原詞)도 한역사(漢譯詞)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사≫ 권71 속악조(俗樂條)와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각각 ‘선운산’·‘선운산곡’이라는 제목과 해설이 기록되어 있다.


 “백제 때에 장사(長沙) 사람이 정역(征役 : 일정한 나이 이상에 이른 남녀가 서울에 가서 일에 복역하는 것)에 나갔는데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아내가 남편을 사모한 나머지, 선운산에 올라 바라보며 이 노래를 불렀다(長沙人 征役 過期不至 登禪雲山 望而歌之).”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과 형식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해설로 보아 남편을 그리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오늘날 거의 전하지 않는 백제가요의 단편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增補文獻備考.(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선운산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과 심원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336m. 서쪽으로는 광활한 서해에 면하여 있고 북쪽으로는 곰소만을 건너 변산반도(邊山半島)를 바라보고 있다.


본래 도솔산(兜率山)이었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있어 선운산이라 널리 불리게 되었다. 주변에는 경수산(鏡水山, 444m)·청룡산(靑龍山, 314m)·구황봉(九皇峰, 298m)·개이빨산(345m) 등이 둘러 있다.


 이 산에서 모인 물은 인천강(仁川江)을 이루며 북류하여 곰소만에 들어간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울창한 수림과 계곡, 사찰과 많은 문화재가 있어 이 일대의 43.7가 1979년 12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요 사찰로는 선운산 동쪽 사면의 말단부에 있는 선운사와 그 서쪽 1 지점에 위치하는 참당암(懺堂庵)이 있다.선운사는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검단(黔丹)이 창건한 뒤 여러 차례 보수와 증개축을 해왔다. 한때는 5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4개의 암자만 남아 있다.


 절내에는 선운사대웅전(보물 제290호)·선운사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선운사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등의 보물 3점과 선운사석씨원류 禪雲寺釋氏源流(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4호) 등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청소년 수련원인 자연의 집이 나오고 계속해서 울창한 숲 속을 1 올라가서 서쪽으로 돌면 참당암이 있다.


 이 절은 신라 진흥왕 때 의운(義雲)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문화재는 대부분 분실되거나 또는 일제에 의한 약탈로 없어졌다고 한다.


 계곡을 더 올라가면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중생제도를 위해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입산, 수도하였던 좌변굴(左邊窟, 또는 眞興窟)과 도솔암(兜率庵)이 있다.


도솔암은 선운사 계곡의 절경을 이룬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앞에는 천인암(千巖)이라는 절벽이 있고, 그 사이의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도솔암 서쪽의 암벽 위에 내원궁(內院宮)이 있으며, 그 밑의 40여m 절벽에는 미륵장륙마애불(彌勒丈六磨崖佛)이 조각되어 있다.


 이 밖에도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왔다는 선학암, 봉황 머리 모양의 봉수암, 절을 굽어보고 있는 독수리형상의 수리봉 등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칠산바다·변산반도·곰소만 지역의 일몰 광경은 장관을 이룬다.


 일찍이 검단이 도둑들을 모아놓고 천일염 제조법을 가르쳤다는데 그에 대한 보은염(報恩鹽) 공양의 관습이 선운사에 전해 내려온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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