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석양 /전문 / 이태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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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 이태준


 

매헌(梅軒)은 벼르던 경주(慶州) 구경을 하필 삼복지경에 나서게 되었다. 가을에 동행하자는 친구도 더러 있었으나 가을은 좋으나 친구까지는 그다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성미가 워낙 아무나 더불어 쉽게 투합되지 않았다. 아무리 허물없는 친구라도 그는 혼자만치 편치 못했다. 여럿이 왁자하며 천 리를 가기보다 홀로 백 리를 가는 것이 더 멀리 가는 맛이기도 했다. 그래 그는 틈이 난 김에 복더위를 그다지 꺼리지 않고 나서 버리었다.

부여(夫餘)가 백제(百濟)의 고도(古都)이듯, 경주는 신라(新羅)의 고도라는 것밖에는, 그는 경주에 대한 별로 지식을 준비하지 못하였다. 뷰로에 가 차표를 사면서도 경주 안내 같은 것 한 장 청하지 않았다. 신을 가벼운 것으로 바꾸어 신고 하이킹 단장을 짚었을 뿐, 가방 하나도 들지 않았다. 어디 못 가본 데를 새로 구경 간다는 것보다는 한때나마 번루(煩累)를 떠나 본다는, 최소한도의 단순을 생활해 본다는, 또는 고독에 환원해 본다는 그런 정취에 더 쏠리는 편이라, 살림을 그냥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 들고 나설 필요가 무엇인가 싶었다. 그리고 경주를 다녀왔다면 으레 몇 군데서 기행문을 조를 것이나, 원고지도 한 장 넣지 않았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보기보다 정신을 늦추고 쉬고 싶었다. 그는 그만치 벌써 갖가지로 피로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주머니에 돈 한 가지만 과히 부족되지 않게 넣은 것으로 든든하였다.

남북이 그냥 여름의 한중간이라 차는 달리어도 봄새나 가을처럼 철다툼 한 군데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여러 번 지나 본 경부선이라 차창은 별로 매력이 없이 저물어 버렸다. 대구서 갈아탈 때는 아직도 어두웠고 두어 역 지나서부터야 창 밖은 낯선 풍경을 드러내 주었다. 같은 푸른 벌판이나 이슬 빛이 찬란해 아침다웠다. 반야월(半夜月)이란, 시흥을 돋우는 역명(驛名)도 지나갔고 김이 피어오르는 강가엔 농부보다도 부지런한 어부의 낚대 드리운 모양도 시골맛이었다. 볕이 차츰 따가워 차창을 내려 버릴까 할 즈음에 경주에 닿은 것이다.

조선집의 윤곽인 정거장을 나서니 바른편에 석탑이 한자리 섰다. 벌써 뜨겁기 시작한 해는 결코 동쪽 같지 않은 데서 쏘아 온다. 이모저모 부서지고 갈라지고 한 탑은 돌이 아니라 몇만 년 전 지층(地層)에서 나온 무슨 동물의 사등이뼈같이 누르퉁퉁하다. 산이 삥삥 돌리었는데 자차분하게 깔리다 만 시가는 경주가 아니라 경주의 부스러기란 느낌이었다.

매헌은 지팡이를 얼마 끌지 않아 납다데한 여관으로 들어섰다. 방은 차지할 것도 없이 툇마루에 앉아 조반을 치르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박물관(博物館)으로 찾아왔다.

조금만 더 넓었으면 거닐기 좋은, 운치 있는 정원이다. 대개 파편들이나 석물(石物)들이 정을 끈다. 정거장 앞에서 본 탑과는 빛이 주는 인상이 전혀 달라, 도자기(陶磁器) 중에도 이조(李朝) 것처럼 생활이 그냥 풍겨 나왔다. 잎이 무성한 모과나무 밑에 서서 석등(石燈)이 결코 지난 시대의 유물 같지 않았고, 그 뒤뚝거리는 신라의 토기(土器)들과는 달라, 중후한 곡선으로 조각된 우물 돌들은, 이날 아침에도 붉은 손들이 그 옆에서 쌀을 씻고 나물을 헹군 듯 손때조차 알른거리는 것이다.

진열실에 들어가서는, 왕관이라야 기이할 뿐이고, 그가 감격한 것은 봉덕사(奉德寺) 종에서다. 물러설수록 웅대하였고 가까이 볼수록 수없이 엉킨 섬세였다. 웅대와 섬세가 완전히 합일된 것으로, 그는 문학상의 최대작『전쟁과 평화』를 읽고 났을 때의 감격을 이 종 앞에서 다시 한번 맛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종에서는, 공이를 끌러 한 번 때려 본다면 웅장한 소리보다는 슬픈 음향이, 그 자신이 지닌 전설보다도 오히려 슬픈 음향이 우러날 것 같았다.

거리로 나선 그는 목이 말랐다. 그러나 빙숫집보다는 고완품점(古翫品店)이 먼저 눈에 띄었다. 신라 토기에는 그다지 애착이 없으면서도 그의 호고벽(好古癖)은 이런 집 앞을 그냥 지나지 못했다. 와전(瓦塼)이 쌓이고 와당(瓦當)이 쌓이고 토기가 늘어 놓이고, 그리고 여기 고적을 틀에 넣은 사진, 그림엽서들이었다. 와전이나 와당은 볼 만한 것이 없었다. 토기에는 서울서는 보기 드문, 단순한 음각(陰刻)으로도 꽤 변화를 일으킨 것이 몇 가지 눈에 뜨인다. 이것도 사들고 다니고 싶지 않으나 공연히 버릇처럼 골라 보는데 가게 안이 숨이 가쁘게 무덥다. 지지미 샤쓰 바람으로 옆에 와 섰는 소년에게 물을 한 그릇 청했다. 소년은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물그릇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나타나는 것은 소년이 아니라 웬 소녀다. 미목이 청수한 데 매헌은 놀랐다. 맑으면서도 가느스름한 눈매와 두볼진 볼룩한 턱이 고요하고 듬직한 인상을 준다.

"물이 꽤 차군!"

"우물에서 새로 떴어요."

의젓한 말소리를 듣고 보니 가슴서껀 키서껀 소녀는 아니다. 흰 바탕에 초록 나뭇잎이 듬성듬성 찍힌 수수한 원피스로 위아래가 설멍하니 드러났다. 볕에 약간 그을기는 했으나 알맞추 부른 팔과 다리엔 잠깐 본 동작이나 꽤 세련된 '도회'가 풍기는 처녀다. 매헌은 반가웠다. 딸의 동무래도 좋을 나이지만 도회 사람에겐 도회적인 것만으로도 고향 사람처럼 반가운 듯했다. 아마 어느 전문학교에 가 공부하다 방학에 와 있나 보다 했다.

매헌은 거의 다 마신 물대접을 놓고 다시 주무르던, 주전자도 아니요 항아리도 아닌 토기를 들고 먼지를 불었다.

"더 좀 이상허게 된 건 없나 원!"

"이상헌 거요?"

"좀 재밌게 되구……."

"이상허구 재밌게 되구…… 평범허더라두 오래 둬두 애착이 변허지 않을 걸 고르시는 게 좋지 않어요?"

매헌은 입이 얼어 처녀의 얼굴부터 다시 쳐다보았다. 너무나 그의 말은 훌륭한 함축이 있다. 오래 두고 보아도 애착이 변하지 않을 평범이란 그 처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기도 함인 듯, 그냥 담담할 뿐인 표정인데 무한한 애착이 간다.

"어떤 게 그런 걸까? 하나 골라 주시오."

처녀는 사양치 않고 두어 군데 손을 망설이다가 이조기라면 제기(祭器)라고 할, 높은 굽 위에 연잎처럼 널따랗게 펼쳐진 하나를 집어내었다.

"딴은 실과라도 담어 놓으면 훌륭헌 정물 그릇이 되겠군!"

"뵌 대루 놓구 봄 더 정물이죠."

처녀는 역시 간단히 해버리는 말인데 깊이가 있다. 고완품을 다루는 집 딸이기로 다 이럴 수야 있으랴 하고 처녀의 교양에 감탄하면서 매헌은 얼른 돈을 치르기가 아까워졌다. 좀더 그의 교양과 지껄여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앉을 자리도 없고 무엇보다 무더워서, 여기 어느 여관이 나으냐고 묻고는 나와 버리었다.

그 처녀에게 들은 여관을 찾아 점심을 먹고, 다시 나서 첨성대(瞻星臺)와 석빙고(石氷庫)를 보고, 반월성(半月城) 등성이를 걸어 계림(鷄林)을 지나 문천(蚊川)을 끼고 오릉(五陵)으로 향하였다.

꽤 늘어지게 걷는 길이었다. 언양가도(彦陽街道)에 나서서야 다리 건너로 옛 능원다운 울창한 송림이 바라보인다.

표식이 선 좁은 길은 어둡도록 소나무에 덮여 있었다. 천천히 걸어 땀이 들 만해서다. 소나무들이 좌우로 물러서며 아늑한 공지가 트이는데 봉분이라기보다 기름기름한 잔디의 산이 부드러운 모필로 그은 듯한 곡선으로 허공을 향해 붕긋붕긋 올려 솟는 것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비롯해 다섯 능이 한자리에 모여 있음이었다. 바라볼수록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기이한 풍경이다. 가까이 이를수록 담이 가리워 발돋움을 하나 시원히 바라보이지 않는다. 긴 담을 끼고 나가 보았다. 문이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이 정문을 지나 겨우 봉분의 상반 윤곽만이 엿보이는 대로 계속해 담을 끼고 돌았다. 대소가 다르고 고저가 다른 다섯 봉분의 곡선은 보는 각도마다에서 얼마씩 다른 리듬과 하모니를 일으켰다. 거의 한 바퀴가 끝날 즈음에서다. 지형이 약간 도독해 있어 발돋움을 하기에는 가장 편리한 곳이었다. 매헌은 단장에 힘을 주고 발뒤축을 최고한도로 솟구어 능 안을 엿보았다. 그러나 시원치 않고 오래 견딜 수도 없다. 그만 수건을 내어 땀을 씻는데 문득 공중에서,

"이리 올라와 보세요."

하는 소리가 난다. 놀라 돌려 쳐다보니, 꽤 높은 소나무 중턱에서다. 매헌은 머리가 쭈뼛하였다.

"올라오세요. 여기서가 제일 좋게 봬요."

매헌은 말소리를 인식하자 순간 반갑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가 너무 호젓한 데라 무슨 착각이나 아닌가 싶어 얼른 움직이지 못했다. 땅도 아니요 몇 길이나 될 높은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는 처녀는, 분명 처음부터 이상한 매력을 풍기던 그 고완품점의 처녀였다.

"웬일이오?"

"전 늘 와요."

"그 높은 델 어떻게 올라갔소?"

"올라오세요. 전 윗가지로 더 올라갈 수 있어요."

나무 밑에는 그의 푸른 파라솔과 흰 헝겊 구두가 두 짝 다 쓰러진 채 놓여 있었다. 매헌은 나무 밑으로 왔다. 쓰러진 처녀의 구두를 집어 바로 세워 놓아 주었다. 신 바닥에는 엷게나마 땀자리가 또렷이 배어 있었다. 그는 한결 마음에서 괴이감을 떨어 버리며 벗어 들었던 웃저고리는 낮은 가지에 걸어 드리우고 구두를 벗고 처녀가 시키는 대로 엉금엉금 나무를 탔다. 처녀는 앉았던 가지에서 일어나 더 윗가지로 올라갔다.

"떨어지리다! 난 이만치서두 좋으니 그냥 앉어 있어요."

"괜찮어요. 더 올라오셔요. 더 올라오세야 더 좋은 걸 보세요."

결국 처녀가 앉았던 자리까지 올라왔다.

"아! 여기선 봉분들의 조화가 더……."

"더 뭐야요? 형용해 보세요."

쳐다보니 처녀의 다리가, 발로는 거의 자기 머리를 밟을 만치 가까이 드리워 있었다.

"형용이요?"

"퍽 니힐허지 않어요?"

"니힐!"

오릉의 아름다움은 이 처녀가 발견한 이 소나무의 중턱에서가 가장 효과적인 포즈일 것 같았다. 볼수록 그윽함에 사무치게 한다. 능이라기엔 너무나 소박한 그냥 흙의 모음이다. 무덤이라기엔 선에 너무나 애착이 간다. 무지개가 솟듯 땅에서 일어 땅으로 가 잠긴 선들이면서 무궁한 공간으로 흘러간 맛이다. 매미 소리가 오되 고요하다. 고요히 바라보면 울어야 할지 탄식해야 할지 그냥 나중엔 멍―해지고 만다. 처녀의 말대로 니힐을 형용사로 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능들이 모다 이렇소?"

"괘릉(掛陵) 무열왕릉(武烈王陵) 다 가봐두 이런 맛은 여기뿐인가 봐요."

"그래 여기 가끔 오시오?"

"네, 전 경주서 여기가 젤 좋아요. 어제도 왔더랬어요."

"혼자 무섭지 않소?"

"무서운 맛이 아주 없음 무슨 맛이게요."

쳐다보려야 처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숙성하다고 할까, 교양이 치우쳤다고 할까 그의 정신은 그의 몸에 지나친 데가 있는 것 같았다.

"경주가 고향이오?"

"경주 온 지 몇 해 안 돼요."

"경성이더랬소?"

"……"

매헌은 굳이 캐어 묻기도 안 되어 화제를 돌리었다.

"그렇지만 당신 같은 젊은 여성이 뭣 허러 이런 옛 능에나 자주 와 니힐을 즐기시오?"

처녀에게서는 이번에도 대답이 내려오지 않는다.

"혼자 조용히 쉬는 델 내가 와 떠들어 미안허우."

"저 아깐 책 보드랬어요."

"책이오?"

"네."

매헌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얼마 뒤부터 위에서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 매헌은 경주에 잘 왔다 싶었다. 오릉의 신비한 곡선들은 사람에게 신비한 안식을 준다.

해는 첫 봉분 위에 그늘이 들기 시작했다. 매미 소리도 이런 데서 듣는 것은 더욱 유장하다.

어느덧 담배를 세 대나 피우고 나니 능 안은 그늘에 덮여 버린다.

"많이 쉬셨어요?"

위에서 처녀가 정적을 깨뜨렸다.

"잘 껖소! 여기서 당신을 못 만나드면 오릉을 헛 보고 갈 뻔했구려!"

"전 인전 오금이 아퍼졌어요."

매헌도 일어나 나무를 내려왔다. 내려와서 다시 놀란 것은 그 처녀가 들고 내려오는 책에였다. 바로 지난봄에 낸 자기의 수필집이다. 반가운 한편 무안스러웠다. 이런 니힐을 말하는 교양으로 본다면 비웃음을 면치 못할 초기의 감상문들이 꽤 여러 편 실렸기 때문이다.

"요 앞에 냇물이 퍽 맑답니다."

"같이 걸어도 괜찮소?"

"오세요. 인전 포석정(鮑石亭)엔 아마 못 가실 거야요."

책을 낀 처녀의 걸음은 더욱 도시적인 보법이었다.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길어 양장에 어울리는 체격이다. 얼마 걷다가 매헌은 물었다.

"그 책 재미있습디까?"

"더런 좋은 글이 있어요."

"그 사람 것 다른 것두 읽었소?"

"이인 소설을 아마 더 쓰죠? 소설은 난 별루 안 읽어요."

"왜요?"

"글쎄요…… 소설엔요 많인 못 봤어두요 너무 교훈이 많이 나오는 거 같어요."

"그 책엔 그런 게 없습디까?"

"더러 있어요. 그래두 꽤 친헐 수 있는 이 같어요. 좀 고독헌 이인가 봐요."

"고독 예찬이 많지 아마?"

"읽어 보셨나요, 이 책?"

하며 처녀는 책을 쳐들어 보인다. 매헌은 그저 자기를 감춘 채,

"읽었지요."

해버린다.

"고독을 예찬허누랍시구 쓴 건 되려 고독을 수다로 만들어 놓았죠?"

매헌은 얼굴이 화끈했다. 처녀는 말을 계속했다.

"제의(題意)가 고독이 아닌 글에서 차라리 이이가 지닌 고독미가 은연히 잘 드러난 거 같어요."

"상당히 예리허군요! 저자가 아마 당신 같은 독잘 가진 줄 알면 퍽 다행으로 생각할 거요."

"선생님은 뭘 허시는 분이세요?"

"나요?"

갑자기 눈부신 햇빛이 닥쳤다. 솔밭이 끝나자 강변이다. 처녀는 아직껏 둘이의 대화는 무시해 버리듯 돌아다보지도 않고 이글이글 단 모새 위로 파라솔도 접어 든 채 뛰어나가는 것이다. 매헌은 어쩔 줄 몰라 다시 소나무 그늘로 들어섰다. 그리고 또 차츰, 이게 정말 현실인가? 자기 눈씨의 의혹이 생기었다. 그, 소녀는 결코 아닌, 더구나 교양으로는 어느 어른의 경지보다도 높은 그 처녀가 그리 멀리도 가지 않아 있는 웅덩이 앞에서 기탄없이 옷을 활활 떨어 버리는 것이다. 반짝이는 모새 위에 푸른 먼산을 배경으로 한순간 상큼 서보는 나체, 그 신비한 곡선들의 오릉 속에서 뛰어나온 요정이 아니고 무엇이랴! 탐방탐방…… 물은 비낀 햇빛에 금쪽으로 뛰었다. 처녀는 그 속에 흐뭇이 잠긴다. 이윽고 상반신을 드러내더니,

"덥지 않으세요?"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분명히 인간의 소리다. 매헌은 천재(天才)와 천치(天痴)는 일치된다는 말을 생각했으나 이 처녀를 천치로 업신여길 수는 없었다. 어슬렁어슬렁 그 다음 웅덩이로 내려가 땀을 씻고 다시 올라왔을 때는, 처녀는 옷을 입고 파라솔을 받고 발만 맨발로 무슨 곡조인지 나직한 노래를 부르며 어정어정 걷고 있었다.

 



매헌은 되도록 이 처녀의 기분에 간섭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의 천진(天眞)을 상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옆에 사람이 있되 혼자이고 싶은 때는 곧, 기탄없이 혼자가 될 수 있는 그의 자연 그대로의 태도를 그는 본받고도 싶어졌다. 큰길 다리 밑에까지 서로 혼자처럼 걸었다.

"이 다리 아래가 퍽 시원허답니다."

"참 서늘하군!

"조곰 더 있어야 큰길은 식을 거야요."

하며 처녀는 발은 물에 담근 채 잔디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매헌도 같은 모양으로 옆에 앉았다. 다리 위로는 자전차도 버스도 사람들도 지나간다.

"실례지만 무슨 학교에 다녔소?"

"저요?"

처녀는 드물게 미소를 띤다.

"내가 나이 자랑이야 헐 게 되오만 나도 딸이 중학에 다니는 것두 있다우. 반말을 쓴다구 어찌 알지 말우."

"전요, 그런 덴 태평이랍니다. 해라라두 허세요."

"아깐 내가 속일래 속인 게 아니라 겸연쩍어 내란 말을 안 했소만 사실은 그 책이 부끄럽지만 내가 쓴 거라오."

"네? 매헌 선생님이세요?"

"내 호(號)라우."

"어쩌면요!"

"그렇게 정독을 해주니 고맙소."

"그런 줄두 모르구 전 아까 마구 말씀드렸죠!"

"어디 막이오? 여간 절실허지 않었소."

"어쩌면요!"

처녀는 암만해도 '우연'이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담담하던 두 눈동자가 날카로운 초점을 일으킨다. 매헌은 먼저 뜨거워지는 눈을 돌이켰다.

"선생님의 글을 읽구 상상했던 선생님관 아주 딴이세요."

"어떻게 다루?"

"다니지 마세요. 글만 못허세요."

"글만……."

"퍽 실제적인 인물이실 것 같네요."

매헌은 껄껄 웃고,

"실제적인…… 글장사니까! 그러나 글 역 내 것이니까 난 역시 기뿌."

하였지만 속으로는 자기 글에 약간 질투가 가는 심사다.

얼마 전 일이다. 어느 책갈피에서 자기의 동경 유학시절 사진이 나왔었다. 자기인 줄 얼른 몰랐다. 내가 이렇게 젊었었나! 내가 이렇게 남에게 정열적 인상을 줄 수 있었나! 감탄하였고, 지금의 얼굴을 거울 속에 비춰 보고는 그만 사진을 찢고 싶던 충동이었던 것이 매헌은 문득 여기서 생각이 났다.

물은 미뭉―히 소리 없이 흘러 오릉 앞을 감돌아 내려간다. 바닥에서는 모래들도 흘러 발을 간지른다. 매헌은 서글펐다. 자기의 얼굴에서, 글에서보다 몇 배 더 발랄하였을 낭만의 피를 뽑아 간 것은, 이 물처럼 흘러가고 거슬러 올 줄 모르는 세월이었다.

"전 동지사 다니다 고만뒀어요."

"왜요? 영문과더랬소?"

"네. 어머니두 돌아가시구, 경주가 경도보다 더 있구 싶어서요."

"어머님께서 언제 돌아가셨소?"

"지난봄에 대상 치렀어요."

"아버지께선 상점에 계슈?"

"반야월에 가 계세요. 과수원이 있는데 올부터 열기 시작했다나요. 그래 여긴 제가 지키구 있는 셈이죠."

"그런데 이렇게 나다뉴?"

"일갓집 아일 하나 둔걸요. 난 뭐든지 내 맘대루 하게 내버려두라구 어머니가 유언해 주셨어요. 난 세상에 젤 귀헌 유산을 받은 셈이야요. 어머니께선 내 성질을 어려서부터 잘 이해해 주셨에요."

"훌륭헌 어머님을 여랖구랴!"

"전 그래두 고독해허지 않을려구 해요. 생각험 고독허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요?"

"실례요만 이름이 뭐요?"

"옳지, 저 봐!"

"왜 그러오?"

"실례란 말 잘 쓰시는 것, 이름부터 알려시는 것, 그런 게 선생님의 실제성이세요. 제가 바로 알아맞혔죠?"

매헌은 적이 무안스러웠다. 그리고 그 무안이 걷히면서부터는 자기에게도 먼 옛날에 잃어버리었던 '천진'이 전신에 소생하는 것 같았다.

처녀는 뒤로 들어앉으며 발을 물에서 들어 내었다. 새파란 잔디 위에서 물을 떨치기나 하는 것처럼 꼼지락거리는 열 발가락, 매헌은 와락 고와졌다. 그의 정신보다는 모든 게 앳되어 보이는 이 처녀의 형체에서도 그의 발가락은 더욱 앳되어 보였다. 매헌은 두 손에 어린아이의 볼기에와 같은 단순한 감촉욕이 후끈 달았다. 얼른 처녀의 두 발을 붙들었다. 어느 틈에 한 손은 손수건을 꺼내었다. 물을 발가락 새마다 닦고 모래를 턴 구두 속에 제 짝씩 발을 넣어 주고 단추를 똑 똑 잠가 주었다. 어떻게 손이 자연스러웠는지 나중에 오히려 놀라웠다. 처녀는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였다.

큰길에 올라서서는 매헌은 담배를 피워 물고, 처녀는 어릴 때 부르던 노래 같은 사사조의 무슨 곡조를 또 콧노래하며 걸었다. 다시 서로 혼자처럼 얼마를 제 생각들로 걸었다.

"선생님, 낼 불국사 안 가시겠어요?"

"좀 안내해 주겠소?"

"덥지만 선생님 가신다면!"

"갑시다 그럼."

매헌의 여관 앞에 이르러서는, 내일 차 시간을 의논하고 헤어졌다.

다시 온욕(溫浴)을 하고 저녁상을 물리고 나니 단열밤이라 어느덧 초경은 지났고 몸도 굳은 자리에 뻗어 보고 싶게 곤했다. 그래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 처녀가 저녁 뒤에 놀러라도 와줄 것 같다. 가까인 모기 소리와 멀리론 개구리 소리가 무인지경처럼 호젓하다. 어쩌면 그 처녀가 이쪽에서 산보삼아 저희 상점으로 와주지 않을까 하고 기다릴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해태 한 갑을 거의 다 뽑으면서도 매헌은 얼른 자리를 일지는 못했다. 나다닐 때에는 별로 다른 줄 모르겠어도 이렇게 한번 자리에 털썩 누웠다가는 좀처럼 일어나지지 않는다. 이런 집에서는, 아내가, 왜 점점 게을러 가슈? 하였으나 매헌 자신은 게으름이 아닌 것을 벌써 수삼 년 전부터 은근히 깨달아 오는 것이다.

'모든 게 혈긴가 보다!'

매헌은 메마른 두 손을 배 위에 맞잡고 무엇인지 자기의 마디마디 뼈를 해마다 무게를 가해 누르는 그 무형한 힘에게 편안히 인종하려 하였다.

*

이튿날, 처녀는 첫차 시간에 먼저 나와 있었다. 그 원피스, 그 맨발에 그 흰 구두, 그 파라솔이었다. 매헌은 저만치 처녀를 발견하자 그의 앞으로 뛰어갔다. 퍽 반가웠다. 아침은 자기 인정에도 다시 오는 것 같은 신선이었다.

'청춘! 청춘은 청춘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미덕이냐!'

한 정거장 다음이지만 매헌은 이등표를 샀다. 타보는 것은 다음이요 우선 사는 기분이었다.

시골 아침차 이등실은 비어 있었다. 처녀는 아무 자리에나 창 가까이 가 앉아 버린다. 넓은 찻간에 하필 그 처녀와 무릎을 맞대이려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매헌은 마주는 바라뵈는 딴 자리에 앉았다.

"저게 안압지야요."

"이것두 무슨 능이래요."

매헌은, 안압지보다, 능보다, 아침 식탁이 기름졌던 듯, 가을 실과처럼 윤택해진 처녀의 입과 잇속과 오라기오라기 살아나는 것 같은 살랑대는 처녀의 이마 머리칼에 더 황홀한 정신을 두었다. 그러나 차는 햇볕과 바람이 그대로 비치고 풍기게만 달리지 않았다. 휘우뚱 돌아 처녀의 얼굴을 그늘지게도 달리었다. 처녀의 얼굴이 밝았다 어두웠다 서너 번에 불국사역이었다.

좁은 하이어 한 대는 손님을 터지게 실었다. 좁은 데서니 처녀는 매헌보다도 넓은 자리가 필요했다.

"괜찮대두요. 편히 푹 앉으세요."

그러나 매헌은, 더욱 차가 뛸 때마다 말을 타듯 옹송그리며 십 리 언덕을 올랐다.

"어때요? 사진보다 실지가 좋지요, 여긴?"

차에서 내려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둘이는 우뚝 서버린 것이다. 절이라기엔 너무나 목가적(牧歌的)인 서정(抒情)이 무르녹았다.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百雲橋) 흐르는 듯한 돌층계에는 곧 무희(舞姬)라도 나타나 춤추며 내려올 듯하다.

"전 여기 옴 저 돌층계를 오르락내리락허는 게 젤 좋아요! 신라 여자들은 어떤 신발이었을까?"

매헌은 처녀를 따라 백운교를 올라 청운교를 올라 자하문(紫霞門) 안을 들어섰다. 한 길이나 돌을 세워 싸돌린 신라 독특한 양식이라는 대웅전(大雄殿)의 단아한 기단(基壇), 동편엔 다보탑(多寶塔), 서편에는 석가탑(釋迦塔), 매헌은 종교적 의의는 떠나, 탑이란, 사람이 쳐다볼 수 있는 미술품으로는 최고의 형식일 거라 했다. 공간과 입체의 조화, 어느 희랍(希臘)의 인체(人體)가 이처럼 자연스럽고 장엄하랴.

"여기서껀 저기서껀 빈 주초가 많지 않어요? 이 절 경내에 건물이 이천여 간이나 있었대요!"

"얼마나 즐비했을까!"

"그게 일조에 불이 붙었으니 여기가 황황 붙는 불바다였을 것 아니에요? 그 불바다 속에 이 두 탑만이 떡 버티구 섰었을 걸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영웅적이구 비극이었을까요!"

그 말을 듣고 보니 탑들은 더한층 엄연해 보인다. 돌을 쪼은 것이 아니라 녹여 부은〔鑄造〕 듯한 부드러운 곡선들의 다보탑은 여성적인 미의 극치요, 간소하나 머리털 하나의 틈이 없이 짜인 석가탑은 금강역사(金剛力士) 백을 뭉쳐 세운 듯한 강력한 인상이다. 다보탑과 잘 대조가 되는 남성적 미의 극치다.

매헌은 처녀와 가지런히 범영루(泛影樓)에 걸터앉아 탑 머리에 지나는 구름을 기다리며 보내며 한나절을 저희들도 구름인 듯 유유히 지내었다.

호텔에 와 점심을 같이 하였다. 복도라기보다 전망대로서 서늘한 등의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처녀는 영지(影地)를 향해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로 매헌을 이끌었다. 매헌은 담배를 들고, 처녀는 태극선을 들고 깊숙이 의자에 의지해 먼 시선을 들었다. 몇십 리 기징이나 될까, 뽀―얀 공간을 건너 검푸른 산마루를 첩첩이 둘리었는데 그 밑에 한 골짜기가 번쩍 거울처럼 빛난다.

"저게 영지로군!"

"네, 아사녀(阿斯女)가 빠져 죽었다는…… 전 여기서 내다보는 이 공간이 말헐 수 없이 좋아요!"

딴은 오릉과 일맥상통하는 유구한, 니힐이 떠돈다. 가만히 살펴보면 작은 구릉들이 있고, 숲들이 있고, 꼬불꼬불 길이 달아나고, 꼬불꼬불 냇물이 흘러가고, 산모퉁이마다 작은 마을들이 있고, 논과 밭들이 있고, 그리고 그 위에 구름이 뜨고, 다시 그 구름의 그림자가 마을 위에 혹은 냇물 위에 던져져 있고…… 무심히 보면 그냥 푸르스름한 땅과 뿌연 대기(大氣)뿐, 아무것도 없노라 하여도 고만일 것이었다.

매헌은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긴― 하품을 쉬었다. 얼마 아니 하여 둘이는 쿨―쿨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를 잤는지 아랫도리에 해가 뜨거워 매헌이 먼저 깨었다. 땀이 전신에 흥건해 있었다. 처녀도 이마에 땀이 방울방울 돋았다. 매헌은 손수건을 내어 가장 정한 데로 처녀의 이마에부터, 땀을 씻는다기보다 날쌔게 묻혀내 주었다. 모르고 콜―콜 잔다. 양편으로 봉긋한 가슴이 숨소리와 함께 솟았다 낮았다 한다. 부채를 들어 고요히 그에게 바람을 일으켜 보내며 매헌은 처녀의 숨소리를 따라 하여 보았다. 자기보다 훨씬 빠름에 놀란다. 자기가 다섯 번을 쉴 새 그는 여섯 번은 쉬어야 된다. 매헌은 길동무에게서 떨어져 버리는 고독을 맛보며 다시금 올려 솟는 처녀의 이마에 땀을 씻어 준다. 햇볕은 점점 그의 얼굴을 범했다. 처녀는 입을 옴짓해 침을 삼키며 눈을 떴다.

"아, 아―무 꿈두 없이 잤네요!"

"잘했소."

"죽음이 그런 걸까요?"

"글쎄!"

둘이는 도랑으로 내려와 목마를 했다. 해는 빛이 붉어지며 산머리에 뉘엿거리었다. 처녀는 호텔 앞 매점에서 불국사 사진이 찍힌 부채를 한 자루 샀다. 그리고 저녁차에 내려가는 자동차표를 미리 한 장 샀다.

"왜 석굴암엔 안 갔다 가려구?"

"전 저녁차에 집에 가요."

더 문답하지 않았다. 자동차 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다. 둘이는 다시 백운교, 청운교를 올라 다보탑 뒤로 해서 절 뒷산을 올랐다. 장마에 군데군데 패였으면서도 잔딧길이 거닐기 좋게 솔밭 사이로, 비스듬한 언덕으로 깔려 있었다. 언덕에 이르렀을 때 해를 가린 구름은 장밋빛으로 탔다. 둘이는 석양을 향해 풀 위에 앉았다. 영지는 순간순간 연짓빛을 띠었다. 산등성마루들에 서기(瑞氣)가 돌고 어디선지 바람결이 선들선들 날아온다. 처녀는 부채를 폈다. 부채에도 처녀의 얼굴에도 석양은 황홀히 물들었다.

"선생님?"

"응?"

"저 여기다 뭐 하나 써주세요."

매헌은 선선히 그의 부채를 받았다. 만년필을 뽑아 잠깐 석양을 향해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의산(李義山)이란, 옛 시인의 석양시 한 편을 써주었다.

夕陽無限好(석양무한호)

只是近黃昏(지시근황혼)

석양은 무한 좋으나 다만 황혼이 가까워 온다는 한탄이었다. 매헌은 자기 자신의 석양을 느끼고 이 글이 생각난 것이다. 영리한 처녀는 이 부채를 받고 그 위에 이윽도록 고요히 눈을 감았다.

"제가 인제 편지해 드릴게요."

석양은 긴 것이 아니었다. 둘이는 이내 일어섰으나 내려오는 길은 이미 황혼이었다. 매헌은 정거장까지 따라 나가 귀여운 한때 길동무를 어두운 밤차에 보내 주었다.

매헌은 불국사에서 사흘을 묵었다. 그러면서도 석굴암(石窟庵)에도 올라가지 않았다. 날마다 호텔 복도에 앉아 영지 쪽을 향해 무료히 바라보다 석양을 맞이하곤 하였다.

 



*

집에 돌아와 며칠 안 기다려 처녀에게서 편지가 왔다. 경주는 가을이 좋다 하였고, 그 중에도 오릉이나, 불국사 호텔에서 영지에의 전망이 더욱 그렇다고 하였다. 가을에 오신다면 그때는 자기도 불국사에 가서 며칠 묵으며 동무해 드릴 수가 있으리라 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타옥(陀玉)이라 씌어 있었다.

'타옥!'

매헌은 곧 답장을 썼다. 자기도 가을에 다시 한번 가기로 마음먹고 왔노라는 것과 더구나 타옥과 함께 가보려 석굴암은 아껴 둔 채 왔노라 하였다. 그러고 자기 수필집을 한정판(限定版)으로 한 권을 구하여 함께 부쳐 주었다.

타옥에게서는 또 편지가 왔다. 책 보내 준 것과 석굴암 아껴 둔 것을 감사하였고 어서 경주에 가을이 오기를 고대한다 하였다.

가을은 왔다. 당해 놓고 보니 매헌한테는 너무 속히 왔다. 또 멈칫멈칫하는 동안에 가을은 가버리는 것도 너무 속하였다. 일정한 어디 출근시간이 있어야만 행동이 구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청복(淸福)도 복이라 내게는 무신(無信)한가 보오!' 하는 탄식하는 편지를 보내고 이듬해 가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헌은 가끔 타옥을 그리었다. 경주가 아니라 타옥이었다. 타옥일진댄 하필 가을이랴 싶어지기도 했다.

매헌은 몇 번이나 아침에만은, '나 오늘 어쩜 시굴 좀 갈 듯허우' 하고 집을 나왔다. 나와 생각하면 타옥을 만나기 위해 간다는 것이 어쩐지 스스로 민망해지곤 하였다.

'내가 타옥을 사랑하는 거나 아닐까?'

매헌은, 아마 지금의 자기의 호흡은 타옥과 육 대 사쯤이나 될 것이라고 스스로 비웃고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돌아와 탁자 위에 놓인, 그 타옥이가 '뵌 대로 놓구 봄 더 정물이죠' 하던 신라 토기를 장시간을 정좌하여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나 인생의 위기는 노소를 한가지로 어느 철보다도 봄인 것인가!

매헌은 봄을 지그시 못 보내어 진달래가 져버리기 전에 경주에 내려오고야 말았다. 타옥은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러나 매헌은 경이라 할까 환멸이라 할까, 타옥을 만나는 순간 일변해 버리는 자기의 심경을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몰랐다. 딴, 전혀 다른 타옥이었다. 경주에 있는 타옥은 역시 유유히 가을을 기다려 만나도 좋을 타옥이었다. 자기를 하루가 급하게 속을 조여 온 것은 매헌 자신 속에 생겨난 한 요녀였던 듯, 진정한 타옥의 앞에 서자 매헌의 한가닥 사념(邪念)은 뿌리째 뽑혀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래두 낭만이 계신가 봐!"

타옥은 이런 말조차 예사롭게, 아니 물처럼 담담한 얼굴로 지껄였다. 매헌의 흐렸던 안정은 그 담담한 물에 단박 씻기었다. 매헌은 악몽에서 깬 듯, 다시금 속으로,

'차라리 다행한 일이다!'

하였다.

둘이는 먼저 오릉으로 왔다. 그 소나무에 타옥이 먼저 오르고 매헌이 따라 올랐다. 오릉의 니힐한 맛은 봄이나 여름이나 다를 것 없었다.

이들은 이날로 불국사로 왔다. 청운교·백운교의 긴 층계는, 한결같이, 곧 무희라도 나타나 춤추며 내려올 것만 같은 서정이었다. 솔잎일망정 딴 기운을 띠어 푸르건만, 다보탑과 석가탑은 그저 한빛깔 한자세였다.

'오, 두 스핑크스여! 언제까지나 저렇게 서 있을 건가!'

매헌은 적이 처량해졌다.

호텔에 왔을 때는 이미 영지가 짙은 황혼에 묻혀 버린 뒤다. 남폿불 밑에서 저녁을 먹고 남폿불 밑에서 옛 전설을 음미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미술을 이야기하고, 나라 나라들의 흥망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깊어 가는 밤 자취에 귀를 기울여 이 밤의 달은 지금 지구의 어드메쯤을 희멀건히 비치고 있을까를 의논하고, 아무래도 매헌 편이 곤하여 먼저 드렁드렁 코를 골았다.

이튿날은 석굴암으로 올라왔다. 석굴은 자연과는 사귀지 않은 오로지 인조미(人造美)의 전당이었다. 예술의 황홀경이었다. 타옥의 말대로 돌에서 근육과 능라의 미를 느낀다는 것은 감탄할 따름이었다. 타옥은 불타의 무릎 위에 떨어진 바른편 손의 새끼손가락만은 떼어 가지고 싶다 하였다. 처음엔 매헌은 그냥 보여지는 대로의 개념이나 얻으면 그만이라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정력적인 미의 압도에는 정신을 차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먼저 석굴을 구조에부터 눈을 더듬기 시작했다. 매헌은 이내 피로를 느끼었다.

밖으로 나와 한참 쉬어 가지고 불상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면의 불타상은 무슨 찬사를 드리는 것이 오히려 경망스럽기만 할 것 같았다. 불타상 바로 뒤에 섰는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아무리 고운 여자라도 정말 숭고한 미란, 종교를, 또는 철학을 체득하지 않고는 발휘하지 못하는구나! 깨달았다. 매헌은 타옥을 불렀다. 십일면관음 앞에 가지런히 세웠다. 십일면관음의 도독한 손등을 쓰다듬고 그 손으로 역시 도독한 타옥의 손을 쓰다듬었다. 지천명(知天命)이 내일 모레인 자기의 그 집요한 사된 정욕을 만나는 일순에 돈망경(頓忘境)에 빠뜨려 놓는 타옥도 역시 자기에겐 숭고한 영원의 여성이었다.

'타옥!'

굴 안은 한결 엄숙한 정경이었다.

*

매헌은 타옥과 함께 불국사에서 사흘을 지내었다.

매헌은 사흘 동안, 타옥은 이조백자와 같은 여자라 생각하였다. 화려한 그릇들은 앉을 자리를 다투는 것이요, 주인이 눈을 다른 데로 줄까 시새우는 것이요 보면 볼수록 소란스럽고 피로해지는 것이나 이조백자는 모두가 그와 딴쪽이다. 바쁜 때는 없는 듯 보이지 않으나 고요한 때는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요히 위로와 안식을 주며 싫어지는 날이 없는 영원의 그릇이다.

매헌은 서울에 돌아오는 길로 자기가 문갑 위에 두고 일야 애무하던 이조백자의 필가(筆架) 하나를 타옥에게 보내 주었다. 정말 가을이 오고 또 봄이 오고 다시 가을이 오고, 그 동안 타옥과의 순결한 한묵(翰墨)은 끊어지지 않았다.

매헌은 어느 책사와 전작(全作) 한 편을 약속하였다. 가을 안으로 출간해야 한다는 것을 초겨울이 되도록 탈고(脫稿)가 되지 않았다. 달포를 책상에 꼬부리고 앉았더니 옆구리와 어깨가 결리는 것은 물론, 전과 달라 현기까지 난다. 날이 차츰 차지어 방을 덥히니 기름기 없는 피부가 조이는 것은 마음까지 윤습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매헌은 기어이 집에서 탈고를 못 하고 해운대(海雲臺) 온천으로 가지고 왔다.

경주와 가까운 데라 오는 길로 타옥에게 알리었다. 그러나 원고를 끝내는 날 다시 알릴 터이니 그때 오라 하였는데 타옥은 다음 기별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타난 것이다.

타옥은 만발(滿發)이었다. 그의 무늬 돋친 연두 저고리는 그의 얼굴을 연당에 솟은 한 송이 연꽃으로 보여 주었다. 매헌에겐 늙음이 오는 새 타옥에겐 청춘이 절정으로 올라 닿은 듯하였다. 으레 그랬을 것이었다. 만나서 이야기는 편지에서 사연보다 오히려 담박한 그였으나 그의 만발한 청춘의 광채만으로도 매헌에겐 간곡함이 폐부에 스며들었다.

"타옥이가 저렇듯 고왔던가?"

"저를 얼마나 밉게 보셨더랬길래!"

"난 많이 늙었지!"

"늙는단 것도 정신 문제가 아니겠어요?"

"그럴까!"

타옥은 탕을 다녀 나와 모락모락 이는 손으로 매헌의 만년필을 가만히 빼앗았다. 매헌은 어찔해지는 눈을 한참이나 감았다가야 일어서 타옥과 함께 해변으로 나왔다.

바닷가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였다. 파도도 제법 일었다. 매헌은 외투깃을 일으키고 목을 움츠렸으나 타옥은 고름을 허술이 묶은 동저고릿바람으로 앞을 서 뛰어나갔다.

"어서 오세요."

매헌은 이 해변에 여러 번째지만 처음으로 뛰어 보았다.

"선생님?"

"응?"

타옥은 불러 놓고 멍―하니 바다만 내다보았다.

"선생님?"

"왜?"

"파도 소리 좋아허세요?"

"그럼!"

"파도 소릴 들음 타고르의 명상이 일어나군 허죠?"

"타고르를 연상허기엔 난 너머 추운걸!"

"파도두 날씨는 물론이구요, 거기 해변 생긴 것 따라, 모새 따라, 물 자체의 맑구 흐린 것 따라 소리가 얼마씩 다를 거야요. 세상의 육지 변두리를 죄다 다녀 봤으면! 어디 파도 소리가 기중 좋을까?"

"대단헌 명상이시군!"

"파도 소린 참 유구허죠!"

"저 종아리가 좀 시릴까?"

펄럭거리는 검은 서지치마 아래로 밋밋한 두 다리, 그 다리가 엷은 비단 양말을 팽팽히 잡아당겨 신은 것도 매헌에겐 새로 느끼는 타옥의 감촉이었다.

이날 저녁이다. 해변에서 옹송그리고 들어온 매헌은 훈훈한 저녁 식탁에서 반주까지 서너 홉 하고 나니 전신이 혼곤해졌다. 식탁에서 물러나 타옥과 몇 마디 지껄이지 않아 깜박 잠이 들곤 했다. 놀라 눈을 떠보면 그 동안이 얼마나 짧은 것이었던지, 얼마나 긴 것이었던지, 타옥은 쓸쓸히 혼자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하여 아닌 것처럼 뻑뻑한 눈알을 굴려 보는 매헌 역시 무한히 속으로 쓸쓸하였다. 자기 잠든 새 타옥의 영혼은 넌지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은 것같이 질투다운, 쓰릿―한 고독이 메마른 가슴을 콱 찌르는 것이었다.

"내가 졸았지 그만?"

"여러 날 너머 무릴 허셨나 봐요. 과로허심 안 되세요."

"그리 과로랄 것두 없는데…… 그래 경주 근방에서두 고려자기가 더러 난다구?"

"경주랬어요 누가? 김해(金海)서요. 저어 계룡산(鷄龍山) 계통 같으나 계룡보단 훨씬 유헌 게 가끔 출토된다는군요."

"무안(務安) 것 비슷헌 게 있지…… 그게……."

매헌은 또 깜박해 버렸다.

"선생님?"

"……"

"선생님?"

"그게…… 그게 그렇지만 고련 아니구……."

"일찍 주무세요."

타옥은 후스마(맹장지)를 열고 옆방으로 가버렸다. 매헌은 또 의자에 앉은 채 졸았다. 얼마쯤 뒤에 눈을 떠보니 술이 홱 깨며 오싹 추워진다. 탕으로 갔다. 한 시간이나 후끈히 몸을 데워 가지고 나오니 자리에 들어가기가 아깝도록 정신이 맑아진다. 또 최근의 경험으로 보아 초저녁에 잠깐이라도 졸고 나면 일찍 눕는대야 여간해 잠이 오지 않는 법이다. 담배를 피워 물고 붓을 들기 시작했다.

붓을 든 동안처럼 시간이 빠른 때는 없다. 어느 틈에 손이 시리도록 몸이 식었을 때, 바스스 후스마가 열리었다. 헝큰 머리를 한 손으로 매만지며 한 손으로 자리옷을 여미며 타옥이가 나타났다.

"몇 신 줄 아세요?"

그제야 매헌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새로 두시가 가까웠다.

"무리허지 마시래두요 네?"

매헌은 붓을 던지고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잠에 취했던 타옥은 붕긋한 턱 아래까지 복사꽃으로 붉으면서도 새뽀얘 있었다.

"그만 주무세요."

"자께."

타옥은 다시 제 방으로 가더니 제 베개를 들고 왔다. 그리고 매헌의 베개를 집어다 제 자리에 놓았다.

"선생님이 저 방에 가 주무세요."

"왜?"

"글쎄요."

"왜?"

"글쎄요."

하며 타옥은 매헌의 자리에 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매헌은 더 묻지 않았다. 따스하게 녹은 자리를 주는 타옥의 마음에 그윽히 입 맞추고 그 온천보다는 향기롭기까지 한 타옥의 체온 속에 푸근히 묻혀 버리었다.

*

얼마를 잤을까, 해운대에 와 처음 늦잠이었다. 눈을 떠보니 천장 사이로 햇볕이 눈부시다. 시계를 집으려 머리맡을 더듬으니 웬 종이 한 장이 집힌다. 집어다 보니 타옥의 글씨다.

선생님 전 갑니다. 최근에 약혼을 했습니다. 어젯저녁에 이야기 끝에는 이런 말씀도 드리려고 했으나 그만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 배에 그이가 동경으로부터 와요. 부산으로 마중을 가려니까 선생님 깨시기 전에 그만 가버리게 되는 거야요. 용서하세요 네? 너머 무리허시지 마시고 편안히 쉬시며 좋은 작품을 잘 완성시켜 가지고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저이들 장래를 축복해 주세요 네?

*

매헌은 벌떡 일어났다. 머리맡에는 이 편지뿐이 아니었다. 원고 쓰던 책상에 두었던 담배와 성냥과 깨끗이 부신 재떨이까지 갖다 가지런히 놓아 주고 간 것이었다.

매헌은 한참이나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가 타옥의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후스마를 홱 열어 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비었던 방에는 찬기운이 음습해 왔다. 매헌은 담배를 집었다. 반갑이 넘어 남은 것을 차례차례 다 태우고야 겨우 일어났다.

'가버리었구나!'

종일 마음이 자리잡히지 않았다. 술도 마셔 보았다. 담배를 계속해 피워도 보았다. 저녁녘이 되자 바람은 어제보다 더 날카로운 것 같으나 매헌은 해변으로 나와 보았다.

파도 소리는 어제와 다름없었다. 타옥의 말대로 파도 소리는 유구스러웠다.

석양은 해변에서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각각으로 변하였다. 너무나 속히 황혼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출전:국민문학4(19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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