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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釋譜詳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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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釋譜詳節)

 

아득한 먼 옛날에 한 보살이 왕이 되어 계시다가, 그 나라를 아우에게 맡기시고, 도리를 배우러 나아가시어, 바라문교의 구담을 만나시어 자기의 옷을 벗도 구담의 옷을 입으시고 깊은 산에 들어가서 과실과 물을 잡수시고 참선을 하시다가, 나라에 빌어먹으러 오시니, 모두가 몰라보더니 소구담이라고 하더라.

보살이 성 밖에 있는 사탕수수밭에 정사를 만들고 혼자 앉아 있으시더니, 도둑 오백 명이 관청 재물을 훔쳐서 정사의 곁으로 지나가나, 그 도둑은 보살의 전세의 원수이더라, 이튿날 나라에서는 도둑의 자취를 밟아 그 보살을 잡아다가 나무에 몸을 꿰어 두었더니, 대구담이 신통력이 있는 눈으로 보고 허공으로부터 날아와서 묻자오되, "그대 자식이 없더니 무슨 죄인고?" 보살이 대답하되, "곧 줏을 나이거니, 자손은 의론하리요?" 그 왕(보살의 동생)이 사람을 시켜 쏘아 죽이니라.

대구담이 슬퍼하며 시체를 꾸리어 관에 넣고, 피 묻은 흙을 파 가지고 정사에 돌아와서 왼쪽 피를 따로 담고 오른쪽 피를 따로 담아 두고, 말하기를 "이 도사가 정성이 지극하던 것이면, 하늘이 마땅히 이 피를 사람이 되게 하시러라,." 열 달 만에 왼쪽 피는 남다가 되고, 오른쪽 피는 여자가 되거늘, 성을 구담씨라 하더니, 이로부터 자손이 이으시니, 구담씨가 다시 일어나시니라.(그 후로 자손이 계속 번성하여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드디어 석가모니가 탄생하였다 한다.)

요점 정리

주제 : 석가모니 탄생의 유래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이 간행한 석가모니의 가계와 그 일대기를 기록한 책. 세조가 수양대군으로 있을 당시 김수온(金守溫) 등의 도움을 받아 편역한 책이다. 책의 명칭 및 편찬동기와 간행시기, 그리고 편자에 대해서는 ≪월인석보≫(별항) 권1에 있는 〈석보상절 서(序)〉와 〈어제월인석보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서명의 ‘석보’는 석가의 일대기, ‘상절’은 요긴한 것은 상세히, 요긴하지 않은 것은 생략한다는 뜻이고, 편찬동기는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 대중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 위한 데 있다.

〔내용〕

 

내용에 관해서는 〈월인석보서〉에 승 우(祐)와 도선(道宣)의 ≪석가보≫·≪석가씨보≫를 참고로 한 책을 만들어 이를 번역하여 만들었다고 했으니, 번역에 앞서 한문으로 된 책(漢文抄稿)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석보상절≫을 보면, 위의 두 ≪석가보≫ 외에도 ≪법화경≫·≪아미타경≫ 등 여러 불경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편찬순서는 팔상도(八相圖)·도솔래의(兜率來儀 :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내려옴.)·비람강생(毘藍降生 : 룸비니 동산에서 이 세상에 태어남.)·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대문으로 나가 봄)·유성출가(踰城出家 : 성을 넘어 출가함.)·설산수도(雪山修道 : 설산에서 도를 닦음)·수하항마(樹下降魔 : 나무 아래에서 마군에게 항복을 받음.)·녹원전법(鹿苑轉法 : 녹야원에서 설법함.)·쌍림열반(雙林涅槃 : 쌍림에서 열반에 듦.)의 순서를 따랐다.

〔전본 및 소장처〕

 

이 책의 분량은 현전하는 권24의 내용으로 미루어 모두 24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자는 갑인자로 된 활자본이다. 당시의 활자인쇄술로 미루어 많은 부수가 간행되지 못하였을 것이며, 더구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의 두 난리로 인해서 그나마 전해지던 책도 없어져서 현재 초간본은 권6·권9·권13·권19·권23·권24가 각 1책씩 전할 뿐이다. 복각된 중간본도 권3·권11의 2책만 전한다. 권3은 16세기 중엽의 중간목판본으로 천병식(千柄植)이 소장하고 있다.

보물 제523호로 지정된 석보상절은 7책으로 각권의 소장처와 영인상황은 다음과 같다. ① 권6·권9·권13·권19는 초간활자본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으며, 한글학회에서 영인(1955)하였다. ② 권11은 16세기 중엽의 중간목판본으로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어문학회에서 영인(1959)하였다. ③ 권23·권24는 초간활자본으로 동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으며, 동악어문학회에서 영인(1967)하였다.

〔가치〕

 

≪석보상절≫이 학문적으로 갖는 가치는 첫째, 불교학적인 면에서 당시의 불교를 조직화한 것으로 조선 초기의 불교학 수준을 말하는 것이며, 최초의 번역불경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둘째, 문학적인 면에서 국문으로 된 최초의 산문작품이지만, 문장이 유창하고 세련되어 후대의 고전소설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셋째, 국어학적으로는 그 풍부한 어휘와 이에 따른 어법·음운·표기법 등 15세기 중엽의 국어연구 및 한자음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넷째, 서지학적으로는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최초의 국문활자본이란 점에서 값진 문화재로서 가치가 인정된다.

≪참고문헌≫ 注解 釋譜詳節(李東林, 東國大學校出版部, 1959), 釋譜詳節 第二三·二四 注解(金英培, 一潮閣, 1972), 釋譜詳節 第二三·二四 解題(李丙疇, 東岳語文論集 5, 1967), 釋譜詳節의 校正에 대하여(安秉禧, 國語學 2, 1974), 새로 발견된 釋譜詳節 卷三 解題(千柄植, 國語敎育 38, 1981).(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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