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 원작 이청준/ 각색 - 김명곤/ 본문 일부 및 해설
by 송화은율서편제 / 원작 이청준/ 각색 - 김명곤
제작. 기획 - 이태원 / 원작 - 이청준 / 각색 - 김명곤 / 감독 - 임권택 /
촬영 - 정성일 / 조명 - 차정남 / 음악 - 김수철 / 편집 - 박순덕
씬 1 소릿재
(산판 트럭이 소릿재 길을 따라 내려간다)
(주막 앞에서 멈추는 산판 트럭)
동 호 (운전사에게) 고맙소.
(동호, 차에서 내려 산판 트럭이 떠나는 것을 본다)
(길을 내려가는 산판 트럭)
(상을 치우려는 세월네)
동 호 하룻밤 묵을 수 있어요?
세월네 (힐끗 보며) 방은 있지만 잠자리가 불편하실텐디요.
동 호 아무려면 어때요. 눈만 붙이면 되지.
세월네 어떻게, 식사는 하실라요?
동 호 술이나 한 상 봐줘요.
씬 2 소릿재
(주막 등)
동 호 (소리) 이 고갯길을 소릿재라하고 이 주막을 소릿재 주막이라 한단 말을
듣고 왔소만...
씬 3 소릿재 주막 방
동 호 그 이름이 댁네 소리에 내력을 두고 생긴 말이오?
(세월네 고개를 젓는다)
동 호 그럼, 댁네보다 먼저 소리를 하던 사람이 있었단 말이오?
세월네 예, 소릿재나 소릿재 주막은 그 분을 두고 생긴 말이지요.
동 호 그럼 댁네 소리는 그분에게 배운 소리요?
세월네 (소리) 직접 배우지는 않았어도, 그분 딸한테 배웠으니 제자라 할 수 있
지요.
동 호 그럼 그분 제로 한 대목 들려주시오, 못치는 북이지만 한번 잡아보겠소.
(동호, 북을 끌어 앞으로 가져와 자세를 잡는다)
세월네 갈까보다 갈까보다 / 님 따라서 갈까보다 /
바람도 쉬어남고 구름도 쉬어넘는 / 떼지어 날아가는 청천의 기러기도 /
다 쉬어넘는 / 동설령 고개라도 님 따라 갈까보다
(북치는 동호의 모습)
세월네 하늘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
일년일도 보련마는 우리님 계신 곳은 /
(동호, 회상에 잠긴다)
(세월네 소리와 유봉소리 O.L)
씬 4 바닷가 콩밭
유 봉 (소리) 무슨 물이 막혔간디 이다지 못오는가 /
이제라도 어서 죽어 삼월동풍 제비되어 /
님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
밤중이면 님을 만나 만단정회를 풀어볼까 /
뉘년의 꼬임을 듣고 영영 이별이 됐단 말인가? /
어쩔거나 어쩔거나 님 없는 세상을 어쩔거나 님 없는 세상을 어쩔거나 /
아무도 모르게 울음을 운다.
(어린 동호가 실눈을 뜨고 태양을 바라본다)
(이글거리는 햇덩이)
(동호, 일어나 콩밭 쪽으로 가다가 엄마 쪽을 바라본다)
(소리나는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가는 금산댁)
<시간경과>
(감자를 먹는 어린 동호의 얼굴)
(금산댁, 고추를 따고 있는 동호는 혼자 떨어져 감자를 먹고 있다)
유 봉 (발성연습하는 소리)
나뭇꾼 1 거 소리 한번 좋다, 누구야?
나뭇꾼 2 윤초시댁 생신잔치에 불려온 소리꾼이래. 이제 윤초시도 가세가 기울어져
명창은 못부르고 떠돌이 소리꾼을 부른 모양이야.
(금산댁, 유봉의 소리에 뒤를 쳐다본다)
<시간경과>
(유봉이 밭으로 와서 선다)
(금산댁, 유봉을 유혹하듯 뒷걸음질 친다)
(유봉, 금산댁에게 다가간다)
(유봉, 수줍어 하는 금산댁을 안느다)
씬 5 대갓집 사랑
(복띠를 매는 유봉)
(송화가 옷을 유봉에게 건네준다. 고수가 쟁반을 들고 들어와 앉는다)
고 수 나는 내일 강진으로 가네.
유 봉 (옷 입으며) 정미소 상략식에서 초선이가 소리를 헌담서?
고 수 (북닦으며) 응.
(북닦는 고수의 손)
고 수 (소리) 근디 자네는 여기서 며칠 더 묵는다면서?
유 봉 (소리) 응, 그럴 작정이네, 당장 어디 갈 곳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씬 6 대갓집
(어린 동호가 송화에게 다가가서 소리를 듣는다)
유 봉 (소리) 어사또 거동보고 벌떼같이 달려든다.
육모 방맹이 들어매고
해같은 마패를 달같이 들어매게
달같은 마패를 들어매고
(유봉의 B.S)
유 봉 사면에서 우루루루... 삼문을 와닥 딱!
(북치는 고수)
(유봉의 뒷모습)
유 봉 암행어사 출또여!
(유봉의 B.S)
유 봉 출또여.
(윤초시 일행, 점잖게 소리를 듣고 있다)
유 봉 (소리) 암행어사 출또 하옵신다.
(소리판 L.S)
유 봉 두세번 부르는 소리 / 하늘이 덥쑥 무너지고 / 땅이 툭 꺼지는 듯 /
수백명 구경꾼이 독담이 무너지듯이
(윤초시 친인척들의 소리 듣는 모습)
유 봉 (소리) 물결같이 흩어지니 항우의 외침 소리
(윤초시와 그 친구들, 소리를 듣고 있다)
유 봉 (소리) 이렇게 무섭든가 / 장비의 호통소리 이렇게 놀랍든가!
(소리판 L.S)
유 봉 유월의 서리바람 뉘 아니 떨것느냐 / 각읍 수령은 정신 잃고
(유봉 B.S)
유 봉 이리 저리 피신헐제 / 하인거동 장관이라 /
밟히느니 음식이요 깨지나니 화기로다 / 장구통 요절나고
(소리판 L.S)
유 봉 북통은 치구르며 / 뇌고소리 절로 난다 /
제금줄 끊어지고 젓대 밟혀 깨어지며 /
기생은 비녀 잃고 화젓가락 찔렀으며 / 취수는 나발 잃고 주먹 불고
(유봉 클로즈업)
유 봉 흥앵 흥앵 / 대포수 총을 잃고 입방포로 꿍! /
이마가 서로 다쳐 코 터지고 박 터지고 / 피 죽죽 흘리는 놈 /
발등 밟혀 자빠져서 아이고 아이고 우는 놈 / 아무일 없는 놈도 우루루루
(금산댁, 사람 사이를 뚫고 들어온다)
유 봉 (소리) 달음박질 / 허허 우리 골 큰일났다 / 서리 역졸 늘어...
씬 7 마을 골목
(밤길을 걸어 금산댁의 집으로 들어가는 유봉)
씬 8 금산댁 방
(동호를 재우던 금산댁이 유봉의 신호에 나간다. 유봉 방으로 들어오고,
요를 까는 금산댁을 덮친다)
<시간경과>
금산댁 마을에 소문이 퍼졌어요.
유 봉 홀아비하고 과부가 정분 났는디 어뗘?
금산댁 그것이 아니고 무슨 봉변을 당할지 무서운디요.
유 봉 봉변이라니?
금산댁 시집이나 친정쪽 눈치가 험악혀요.
유 봉 왜?
금산댁 집안 망신이래요.
유 봉 천한 재인놈하고 붙었다 그런거요? 임자도 그렇게 생각혀?
금산댁 그렇게 생각혔다면 이렇게 됐겄어요?
유 봉 까짓것, 뜨자구. 내 비록 가난한 떠돌이 소리꾼이지만 거기 굶기진 않을
테니께.
금산댁 송화가 나를 좋아 할까요? 거기 딸 말여요.
유 봉 무슨 문제요? 내 친딸도 아닌디.
금산댁 예?
유 봉 부모 잃은 앤데, 소리꾼 맨글라고 데리고 있는거요.
씬 9 개펄
(송화를 잡고 폭풍우를 뚫고 가는 유봉, 금산댁이 동호를 업고 뒤따른다)
(빠른 걸음으로 폭풍우를 뚫고 가는 유봉)
(동호를 업고 빠른 걸음으로 유봉을 쫓는 금산댁)
씬 10 고갯마루
(풀숲 길을 걸어가는 유봉, 금산댁, 송화)
씬 11 유봉의 셋방
(산고에 몸부림 치는 금산댁)
(동호, 문구멍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송화도...)
(고통스러워하는 금산댁)
(문구멍으로 들여다 보고있는 동호와 송화)
(힘이 빠져 기진맥진하는 금산댁)
산 파 힘줘, 힘줘...
(들어오던 유봉, 멈추어 선다)
(유봉을 보고 도망가는 송화, 동호)
(산파, 방에서 나와 힘없이 마루에 앉는다)
(유봉, 방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간다)
(죽은 금산댁을 안고 우는 유봉)
씬 12 소릿재 주막 방
(동호, 회상에서 깨어나 술을 마신다)
동 호 (세월네에게 술을 따라주고) 그 소리꾼 이름이 유자 봉자 아니던가요?
세월네 맞아요.
전쟁통에 임자가 없어진 이 집에서 소리를 하며 지내다가 돌아가셨대요.
(고기를 씹는 동호)
세월네 (소리) 저는 그분 딸 송화 아가씨한테 소리를 배웠구요.
동 호 (고기를 씹다가) 그 송화라는 딸은 어찌 되었소?
세월네 부친 삼년상 치른 뒤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지요.
동 호 (소리)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오?
세월네 예. 앞도 못 보는 처지에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원.
동 호 아니, 그 여자가 장님이었단 말이오?
세월네 (소리) 예.
동 호 아니 어떻게 눈을 잃게 되었소?
세월네 (소리) 글쎄요... 딸 소리 좋게 할라고 부친이 멀게 했단 소문도 있고,
자식이 도망갈까봐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소리도 있고.
씬 13 인써트
(소복 입은 송화가 길을 걷는다)
씬 14 소릿재 주막방
(악몽에 시달리던 동호, 일어난다. 멍한 동호의 모습)
세월네 (소리) 어떤 사람은 그럽디다. 아무리 외롭기로서니 자식을 곁에 둘라고
눈을 뺏은 애비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겄는가, 좋은 소리를 헐라면 소리를
혀는 사람 가슴에다 말 못할 한을 심어줘야 하기 땜에 그랬다고요. 허지
만 그것도 어디 믿을 말이요?
씬 15 유봉집 마루
(동호, 송화에게 진도 아리랑을 가르치는 유봉)
유 봉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동호송화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유 봉 아라리가 났네, 헤에에
동호송화 아라리가 났네, 헤에에
유 봉 동호만 한번 해봐, 아라리가 났네, 헤에에
동 호 아라리가 났네, 에헤에...??
유 봉 에헤에가 아니고 아라리가 났네 헤에에
동 호 아라리가 났네 헤에에
유 봉 헤에에가 아니고 헤에에
동 호 헤에에...??
유 봉 (동호에게) 저리가. (송화에게) 송화만 해봐.
(동호가 일어나 나간다)
송 화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에헤헤
씬 16 유봉집 방안
(유봉은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송화와 동호는 방안에서 발성연습을
한다)
씬 17 유봉집
(유봉이 동호에게 북을 가르친다)
유 봉 발가락으로 받치고, 손을 올려놓고, 허리 똑바로 세우고, 북채 잘 잡고
중몰이 다시 한번 치는 거야. 소리 크게 하고.
동 호 합궁딱, 궁딱딱, 엇궁딱, 둥... 둥...
씬 18 유봉집
(소리를 배우고 있는 송화, 몸을 흔들며 땅을 쳐다보며 소리를 한다)
송 화 보고지고... 보고지고...
유 봉 (북 두들기며) (소리)땅에 뭐 떨어졌어? 왜 땅 쳐다보고 몸을 그렇게
흔들어. 다시
송 화 (제대로) 보고지고...
씬 19 유봉의 집
(북치는 동호의 모습)
송 화 (소리)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머리에 또아리를 얹고 소리를 하는 송화의 모습)
송 화 낭군을 보고지고 서방님과 정별후로...
(소리 연습하는 동호와 송화의 모습을 지켜보며 북채를 깎는 유봉)
송 화 일장서를 내가 못봤으니 (또아리를 떨어뜨려 다시 주워 쓴다)
부모 공양 글 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 이러는가!
씬 20 장터 한 곳
(낙산거사가 그리는 그림 클로즈 업)
낙산거사 (소리) 오얏 '리'자라. 나무 목밑에 아들 '자'했으니까
아들은 육십이 지나도 부모의 슬하에 있다 하는 말이야.
유 봉 (소리) 얼씨구, 명필이다. 거참 잘 그린다.
(유봉의 소리에 고개를 드는 낙산거사)
유 봉 (소리) 보통솜씨가 아니구만 그려. 나도 한 장 받아야겠구먼.
유 봉 (구경꾼에 섞여 앉으며) 명필이여, 명필.
(고개를 돌려 계속 그림을 그리는 낙산거사)
낙산거사 백성 '민'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 백성도 우대를 받아야 한다 해서
봉황을 그려넣고
유 봉 암만 그렇지. 아 그렇구 말구
낙산거사 거, 조용히 좀 합시다.
(유봉이 무안한 듯 주위를 슬쩍 돌아본다)
(그림 그리는 낙산의 부감)
낙산거사 (소리) 기둥 '주'자.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음 기둥이 바로 서야 해.
그래서 소나무로 기둥을 삼고 학을 앉혔지.
유 봉 (소리) 이민주라.
유 봉 거 이름 참 좋다. 아무렴 민주주의를 해야지.
사 내 이거 나도 좀 하나 그려주시죠.
낙산거사 (낙관 찍으며) 내가 오래간만에 잡놈을 하나 만나서
대포 한잔 해야 쓰겄소.
(일어나 돈을 주머니에 넣는다)
<하략>
지은이 : 이청준 원작, 김명곤 각색
갈래 : 각색 시나리오
배경 : 1950 ~ 60년대 전남 화순, 강진, 장흥, 해남, 보성 일대
성격 : 예술적, 전통적, 토속적, 애절하고도 한스러움
구성 : 5단 구성(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결말), 역순행적 구성
발단 |
전라도 어느 마을에 양녀 하나를 데리고 있는 떠돌이 소리꾼 유봉이 들어온다. 그는 아들 동호를 데리고 살고 있는 동네 과부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함께 마을을 떠난다. |
전개 |
동호와 송화는 친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동호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 유봉은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치며 유랑하고, 둘은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
위기 |
소리를 찾는 사람들이 줄고 소리꾼에 대한 냉대와 멸시가 더해지면서 동호는 어머니가 유봉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지 못한 동호는 유봉에 대한 반항심에서 집을 뛰쳐나간다. 유봉은 송화가 그 뒤를 따라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의 완성에 집착한 나머지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유봉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를 정성을 다해 돌보지만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송화에게 사죄를 하고 숨을 거둔다. |
절정 |
세월이 흘러 유봉은 죽고, 송화는 떠돌이 장님 소리꾼이 되어 어느 주막에 머문다. 그로부터 몇년 후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송화와 유봉을 찾아 나선 동호는 어느 이름없는 주막에서 송화와 만난다. 수소문 끝에 송화의 거처를 알아낸 동호가 찾아간다. 동호는 북을 치고 송화는 소리를 하면서 하룻밤을 지새며, 그들의 한을 풀어낸다. |
결말 |
날이 밝자 동호는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송화에게 말하지 않은 채 떠난다. 송화 역시 그가 동생이라는 것을 알면서 모른 척하고 떠나보내고, 다시 정처 없는 유랑길에 오른다. |
제재 : 판소리
주제 : 한(恨)의 예술적 승화와 향토적 정서, 가슴 아픈 한(恨)에서 피어나는 소리 예술을 형상화, 소리꾼 부녀의 삶과 예술, 한과 장인 정신의 예술적 승화
등장 인물 : 동호, 송화, 유봉, 천가, 낙산거사
특징 : 간결하고 압축적인 대사를 사용했고, 대사의 많은 부분이 판소리로 이루어짐
의의 : 민족 고유의 예술인 판소리를 영화와 결부시켜 그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킴
소설 '서편제'와 시나리오 '서편제'의 차이
|
서편제 |
시나리오 |
인물과 장면 제시 방법 |
서술자의 진술로 직접 제시 |
장면과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 줌 |
언어 표현 방법 |
서술자에 의한 산문으로 표현 |
대사와 지문으로 표현 |
<전략>
씬 83 소릿재 폐가 근처
(소리 연습하는 송화)
송 화 몸으로 희생하여 상림뜰[상림의 뜰로 중국 은나라 탕 임금 때에 칠 년 동안 계속해서 가뭄이 들자, 탕 임금이 스스로 제물이 되어 이곳에서 정성껏 빌었더니 비가 쏟아졌다고 전함] 빌었더니 / 대우방수천리[큰 비가 사방 수천 리의 땅에 내림] 풍년이 들었단다 /
그런 일도 있었으니 내 몸으로 대신 감이 어떠하냐 / 마른 땅의 새우뛰듯
여산폭포 돌궁굴듯 치둥굴 내리둥글[판소리 심청가에서 심청이 인당수 제수로 팔려 가게 된 날 아침에 이 사실을 안 심 봉사가 몸부림치면서 슬퍼하는 내용을 표현한 대목이다. '여산'은 중국 강서성 북부에 있는 산으로 예로부터 경치 좋기로 이름난 산이다. 이 산의 폭포는 특히 아름다워 이백의 '망여산폭포'라는 시로 더욱 유명해졌다.] / 가슴 쾅쾅 뚜다려 발동동 구른다
씬 84 소릿재 폐가 방안
(송화, 문앞에 앉아있고, 유봉 그 앞에 앉아있다)
유 봉 이제 제법 니 한을 소리에 실을 수 있게 되었구나.[소리에 영혼이 실렸다.]
송 화 ……
유 봉 송화야.
송 화 예.
유 봉 내가 니 눈을 그렇게 만들었다.[유봉은, 송화를 득음(得音 : 판소리 광대가 뛰어난 예술성을 얻었음을 표현한 단어)의 경지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그녀의 눈을 멀게 만들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한 예인(藝人)의 강한 집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원작에서는 자고 있는 송화의 눈에 유봉이 청강수를 찍어 넣어 눈을 멀게 한 것으로 되어 있고, 시나리오에서는 한방 약재의 하나인 부자를 넣은 약을 먹여 그렇게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유봉의 행위는 송화의 의지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위해 자식을 희생시키는 부도덕한 행위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의도와 주제 의식을 고려한다면, 유봉의 행위는 송화의 예술적 재능을 성숙시키기 위한 보모의 사랑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처지나 현실에 만족하게 되면 더 이상의 예술적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장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극단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
송 화 ……
유 봉 알고 있었쟈?
(송화, 끄덕인다)
유 봉 그럼 용서도 했냐?
송 화 ……
유 봉 니가 나를 원수로 알았다면 니 소리에 원한이 사무쳤을텐디 니 소리 어디
에도 그런 흔적은 없더구나. 이제부터는 니 속에 응어리진 한에 파묻히지
말고 그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혀라.[송화는 유봉이 자신의 눈을 멀게했음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유봉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이는 유봉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체념이 송화의 마음에 '한(恨)'으로 맺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봉의 말에 따르면, 그러한 한을 가슴 속에 묻고 있어서는 득음의 경지에 올라설 수 없다. 득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송화는 원망과 체념으로 인한 한을 초월해야만 하는 것이다. 오직 이 방법만이 송화를 득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주면서 성화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는 것이다. 승화(昇華)]
(송화의 얼굴)
유 봉 (소리)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하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
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중략)
씬 91 염전 주막 방안
(천가가 문을 열어주면 송화가 방으로 들어가 앉는다)
(동호, 송화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천가, 문을 닫는다)
(송화의 B.S)
동 호 소리를 쫓아 남도천지 안돌아본 데가 없는 위인이오[동호가 오랜 방랑 생활을 했으며 소리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 '소리를 찾아'의 의미는 '송화와 유봉을 찾아'의 의미이다.]. 소리만 있어주면[판소리에 대한 집념] 이대로 앉아 밤이라도 세우겠소.
송 화 들을만한 데도 없이 천하기만 한 소리요.
동 호 (소리) 소문을 듣고 찾아온 터이니 사양치 말고 좀 들려주시요.
(송화, 자세를 고쳐 앉는다)
동 호 (북을 앞으로 잡아 끌며) 북을 잡아본 지 오래돼서... 장단이나 맞을런지
모르겠소.
(동호, 북을 둥둥 친다)
송 화 그때의 심청이는 부친 눈을 띄울랴고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인데 작품 속에서 심청가의 역할은 유봉과 송화, 심청과 심봉사의 상황이 중첩되면서 송화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인당수에 제물로 몸을 팔았듯, 자신의 눈을 멀게한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이 노래를 구슬프게 불렀을 것이다. 여기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삶에 대한 체념이 한데 섞이고 융화되면서 새로운 경지로 승화된 정서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恨)이다. 이 부분에서 송화가 내는 소리는 승화된 한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남경장사 선인들께 삼백석에 몸이 팔려 / 만경창파를 떠날 적에 /
북을 두리둥두리둥 둥둥 두리둥 둥둥 둥둥 /
여보시오 심낭자 물때 늦어가니 / 어서 급히 물에 들어라 /
심청이 이 말을 듣더니 뱃전 안에 엎드러져 /
아이고 아버지 심청은 죽사오나 / 아버지는 눈을 떠 천지만물을 보옵시고
날같은 불효여식을 생각지 마옵소소 /
나 죽기 섧찮으나 혈혈단신(孑孑單身 : 의지할 곳 없는 홀몸) 이 내몸이 / 누게 의지 한단 말이냐
(북치는 동호의 모습)
송 화 (소리) 물결을 바라보니 원해만리라.
동 호 그렇지.[추임새는 고수가 흥을 돋우기 위해서 내는 감탄사]
송 화 (소리) 하늘이 닿았는디 / 태산같은 뒷덩이 뱃전은 움죽(몸이나 물건의 한 부분을 조금 움츠리거나 펴거나 하는 모양) 풍랑은 우루루루
동 호 그렇지.
송 화 (소리) 물결은 워리렁워리렁 툭 쳐 뱃전을 탕탕 와르르르르
송 화 심청이 거동봐라 바람맞은 사람처럼 이리비틀 저리비틀 /
뱃전으로 나가더니 다시 한번을 생각한다 /
내가 이리 진퇴키는[나아갔다 물러갔다 하는 것은 심청이 두려움 때문에 얼른 물에 뛰어들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양] 부친효성 부족함이라 /
치마폭 무릅쓰고 두 눈을 딱 감고 /
뱃머리로 우르르르르 손 한번 헤치드니 / 기러기 낙수격르로 떴다 물에가
송 화 (소리) 풍
동 호 (북을 치며) 어이
행화[향화, 향불]는 풍랑을 쫓고
(동호임을 알아채고 동호쪽을 보는 송화)
(두사람의 부감)
송 화 명월은 해문[두 육지 사이에 끼어 있는 바다의 통로]에 잠겼구나(밝은 달은 바다 구름 속에 잠겼구나로 심청이 인당수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시선을 거두는 송화)[비록 장님이지만 북을 치는 사람이 동생인 동호라는 사실을 송화는 금방 알아챘다. 그러나 짧은 순간에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중략)
씬 93 염전 주막 방안
(동호 O.S)[O.S는 off scene로 인물은 화면에 보이지 않고 대사만 들리는 화면]
송 화 이 말이 지듯마듯 / 산호주렴을 걷쳐버리고 버선발로 우루루루루 /
아이고 아버지
(송화 얼굴)
송 화 심봉사 이 발을 듣고 먼 눈을 희번덕거리며 /
에이 이거 웬말이냐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고 하여 /
나는 아들도 없고 딸도 없소 / 무남독녀 외딸하나 / 물에 빠져 죽은 지가 /
우금[지금까지, 오늘에 이르기까지]삼년인디 / 아버지라니 누구여 / 아이고 아버지 /
여태 눈을 못뜨셨소 / 아버지 눈을 떠서 / 어어서 나를 보옵소서
(소리하는 송화)
(북치는 동호)
(송화)
(동호)
(소리하는 송화)
(북치는 동호)
(동호 O.S 송화)[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함]
(송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동호)
(중략)
씬 95 염전 길
(동호,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다)
천 가 (소리) 저 사람이 자네가 늘 기다리던 동생인가?
송 화 (소리) 예. 제 소리가 저 사람의 북장단을 만났을 때 대번에 동생인지 알
아챘지요. 옛날 제 아비 솜씨 그대로였어요.[송화는 동호가 치는 북 장단을 듣는 순간 그가 동생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서로의 한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한 것이다.]
씬 96 염전 주막 안
천 가 어쩐지 심상치 않더라니. 헌디 그렇게도 기다리던 사람끼리 왜 서로 모른
척 하고 헤어졌단 말인가?[극중 인물들 거들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보조적 역할을 하는 인물]
송 화 한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였지요.[이제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 와서 동생임을 확인하면 그간 쌓아 온 한들을 다시 꺼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제가 가진 한이 다칠 것 같다는 말인데 그렇게 오랜 세월을 묻어둔 한을 들추어 내어, 지금까지의 삶의 축마저 흔들리게 하기보다는 서로의 한을 그대로 둔 채 삶을 지속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결말 처리법은 여운을 남김과 동시에 독자(관객)의 감동을 극대화하여 더욱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가 있다.]
천 가 무슨 한이 그렇게도 깊게 맺혔간디 풀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헤어졌단 말
이여?
송 화 우리는 간밤에 한을 풀어냈어요.
천 가 어떻게?
송 화 제 소리허고 동생의 북으로요.
천 가 어쩐지 임자 소리가 예전하고 썩 다르다 했더니만은……[천가가 소리에 일가견이 있음을 암시하는 말로, 판소리는 한의 예술이므로 간밤에 한이 배인 소리가 절실하게 들렸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이다.]
(버스 소리 들려온다)[이별의 상황]
씬 97 염전 길
(동호, 버스가 서자 차에 올라탄다. 차 떠난다)
천 가 (소리) 나도 밤새워 들었는디 자네 소리하고 저 사람 북장단이 어우러졌
을 때 서로 몸을 대지 않고도 상대편을 희롱하고 어쩔 때는 서로 몸을 보
듬고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 사이의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
씬 98 염전 주막 안
(버스 떠나는 소리 들린다)
송 화 제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지요?
천 가 한 삼 년 되었제.
(송화 B.S)[B.S는 bust shot로 가슴 위부터 머리까지만 화면에 나타나게 촬영하는 기법]
송 화 제 팔자를 생각해 보면 당치도 않게 편한 세월이 너무 길었나 봐요. 이제
그만 몸을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떠나야 한다는 말로 송화의 떠돌이 삶을 잘 보여주는 대사이다. 이 말 속에는 동호가 혹시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데에 대한 우려도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천 가 나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을 했네만... 다시 홀아비로 돌아가는구만.[모두 혼자가 되는 변두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삶에 있어서는 주변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 ] 정해
진 곳은 있는가?
(송화, 고개를 젓는다)[송화와 부부처럼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송화를 붙잡지 않는다. '송화의 떠남'은 판소리를 완성하고 득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끝이 없음을 강조하는 한편, 송화의 한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천 가 (소리) 정해지거든 알려주소. 내 짐을 부쳐줌세.
씬 99 갈대밭
(여자 아이의 손에 이끌려 길을 가는 송화)
(멀어져 가는 송화와 여자아이)['씬 99'를 촬영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당한 것은 갈대밭 사이를 걸어가는 인물의 뒷모습을 롱숏(Long Shot)으로 촬영한다.]
(타이틀 오른다)[영화나 텔레비전 따위에서 제목이나 스태프를 소개하는 자막]
이 작품은 이청준의 단편 소설 '서편제'를 각색한 시나리오이다. 이 작품은 남도 사람들의 예술혼과 풍류를 아는 멋있는 삶을 그리고 있는 원작 내용을 조금 변화시켜 근대화 과정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전통적인 소리의 힘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라남도 보성의 소릿재라는 곳에 있는 주막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남도 예인(藝人)들의 예술혼과 한(恨)을 짙은 향토적(鄕土的) 정서와 함께 잘 표현하고 있다.
의남매로 만났다가 헤어진 두 사람이 수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어렵게 다시 만나 노래로 밤을 지새우고 또 다시 헤어진다는 이야기로, 판소리와 아름다운 영상이 결합된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현실과는 전혀 타협할 줄 모르고 딸을 득음(得音)의 경지에 올려놓기 위해서 그녀의 눈까지 멀게 만드는 유봉의 집념은 그 자체가 무서우리 만치 철저한 장인(匠人) 정신이자 예술혼의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가 자신의 눈을 멀게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이해하려는 송화에게서는 숙명적인 한(恨)을 느낄 수 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집을 떠났지만, 결국 누이를 찾아 헤매지 않을 수 없었던 동호를 통해서는 끈끈한 인간의 정과 함께 이들의 예술혼이 결코 무모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서로가 애타게 만나고 싶어했지만 막상 만나서는 하룻밤 소리로 그 한을 달래고, 번연히 알면서도 다시 남남인 것처럼 헤어져야만 했던 이 작품의 결말은 저절로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그들은 그렇게 헤어지고는 또 그렇게 애타게 만나고 싶어하며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숙명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수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적셔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가난과 핍박 그리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서러움 속에서도 소리를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진정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며, 소설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소설과 영화의 차이를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언어유희 예시 글
임제의 시조
북창이 맑다거늘 우장(雨裝) 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한우(寒雨)라는 기생을 의미] 맞았으니 얼어잘가[한우(기생)과의 동침] 하노라.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동음 이의어에 대한 언어 유희로 '벽계수'는 푸른 시냇물이란 뜻이자 당시 종실의 한 사람의 이름)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 : '명월'은 밝은 달이자 황진이의 기명)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이정신의 시조
매아미 맵다 울고 쓰르라미 쓰다 우네(음운의 유사성을 통해 언어 유희)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춘향가
어사또 부채 꼭지로 운봉 옆구리를 콕 찌르며, "여보 운봉 영감 ! 거 갈비 한 대 주." 운봉이 깜짝 놀래며, "허어, 그 분이 갈비를 달래면 익은 소갈비를 달래지, 사람의 생 갈비를 달랜다 말이오?"[먹는 갈비-신체의 일부인 갈비]
각 읍 수령 모여들제~울고 나니 곡성(谷城)[哭聲(곡성-우는 소리)와 지명 이름 곡성(谷城)을 연결(동음이의어)] 원님, 운수 좋다 강진 원님......
춘향이 내달아,
"여보 도련님. 이제 가시면 언제나 오시려오. 사철 소식 끊어질 절(絶), 보내느니 아주 영절(永絶), 녹죽(綠竹) 창송(蒼松),백이.숙제 만고충절(萬古忠節), 千山에 조비절(鳥飛絶), 와병(臥病)에 인사절(人事絶), 죽절(竹節), 송절(松節),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四時節), 끊어져 단절(斷絶), 분절(分節), 훼절(毁節), 도련님은 날 버리고 박절(迫切)히 가시니 속절없는 이 내 정절(貞節) 독숙공방(獨宿空房) 수절(守節)할 때 어느 때나 파절(破節)할꼬. 첩의 원정(寃情) 슬픈 곡절(曲折) 주야(晝夜) 생각 미절(未節)할 제, 부디 소식 돈절(頓絶)마오."
열녀춘향수절가
"너의 서방인지 남방인지 걸인 하나 내려 왔다." (西方 = 서방인 낭군)
"허허 이게 웬 말인가. 서방님이 오시다니?"
"열녀가 이부를 섬기다니."
"이부(二夫)가 아니라 외얏 리자 쓰는 이부(李夫)를 말씀이오."
심청가
"영감아, 지난 달부터 밥 구미는 뚝 떨어지고 신 것만 구미가 당기니 어째서 그런가 모르겄오." "파아하하 거 그러면 태기가 있을란가 부네. 어쩌튼 하나만 낳아라. 그런디 신 것이 구미가 당기면 무엇을 먹는가?" "아 살구 먹었지요." "살구는 얼마나 먹었는고?" "아 씨 되어 보니 닷말 섯 되입니다." "거 신 것을 그리 많이 먹어. 그 놈은 낳드라도 안 시건방질까[시다 - 시건방지다] 몰라. 이것 농담이요."
신 것을 그렇게 많이 먹고, 그 애를 낳으면 그놈의 자식이 시쿤둥하여 쓰겠나
<아니리>
여보 뺑덕이네, 황성서 맹인 잔치가 열린다는디, 잔치에 불참허면 이 골 수령이 봉고 파직을 당한 대
여, 그러니 어서 급히 올라가세. 아이고 여필종부(女必從夫)라고 영감따라가지 누구따러 갈 사람 있소, 아닌게 아니라 우리 뺑파가 열녀도 더 되고 백녀다 백녀. 자 어서 올라가세
유산가
주곡제금(奏穀啼禽)은 천고절(千古節)이요, 적다정조(積多鼎鳥)는 일년풍(一年豊)이라. (소리와 의미의 유사성을 이용하여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을 인과관계로 엮어낸 언어유희)
꼭두각시 놀음 - 1마당 다섯 째, 표생원 거리-
꼭두각시 : 아이고, 듣던 중 상쾌한 말이요. 이 형편에 큰 집, 작은 집을 어찌 가리겠소. 집을 얻었으나 재목이나 성하며 양지 바르고 또 장인들 담거 놨겠소.
표생원 : 어오? 아 이게 무슨 소리여. 장은 무슨 장이며 재목은 무슨 재목? 떡 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구만 . 소실을 얻었단 말이여.[작은 집은 소실(少室)로 첩을 의미함]
봉산탈춤
아 이 양반아 허리 꺾어 절반인지, 개다리소반인지, 꾸레미전에 백반인지, 말뚝아 꼴뚝아, 밭 가운데 최뚝아, 오뉴월에 말뚝아, 잣대뚝에 메뚝아, 부러진 다리 절뚝아, 호도 엿 장수 오는데 할애비 찾듯 왜 이리 찾소?'[봉산탈춤에서 자신을 부르는 양반에게 대꾸하는 말뚝이의 대사로, '양반'의 '반'자와 같은 음을 가진 '절반, 개다리소반, 백반', '말뚝'의 '뚝'과 같은 음을 가진 '꼴뚝, 최뚝, 잣대뚝, 메뚝, 절뚝' `등을 나열하여 상대를 비하하며 조롱하고 있다.]
서편제(西便制)
판소리 유파의 하나로 섬진강 서쪽인 광주·나주·보성 등지에서 많이 불렸다. 선천적인 성량에 의존하는 동편제(東便制)와는 대조적으로 서편제는 기교와 수식의 맛이 중요하다. 소리 한 꼭지를 몇 장단에 걸쳐 끌고가다가 어떤 마디에 이르러 소리를 만들고 다시 끝을 맺는다. 발림이 많이 들어가고 연기적인 면이 강하다. 이때문에 서편제는 정교하며 감칠맛이 있다. 〈춘향가〉의 '이별가', 〈심청가〉의 '효성가', 〈적벽가〉의 '사향가'가 있다. 서편제 가운데 박유전제는 그 시조로 삼고 있는 박유전(朴裕全)의 호를 따 '강산제'라고도 한다. 이날치·김채만·정창업·정정열 등에 의해 전승되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동편제(東便制)
판소리 창제(唱制)의 하나로 전라북도 운봉·구례·순창·흥덕 등지에서 많이 부른다. 우조(羽調)의 한 계열로 송흥록(宋興祿)의 법제를 표준으로 한 것이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목으로 우기는 소리'로 '막 자치기 소리'라고 한다. 섬세한 기교보다는 곧게 내리지르는 통성을 쓰기 때문에 거칠면서도 호방한 맛이 있다. 따라서 동편제 소리를 제대로 하려면 풍부한 성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장단은 끌고나가는 속도가 빠른 편이고 전가락의 엇이 원박만 치는 '대마디 대장단'이 주축이 된다. 따라서 장단에 맞추어 말을 던지듯이 촘촘히 짜나가기 때문에 발림을 할 여유가 없다. 동편제의 표현성이 두드러진 대목은 〈춘향가〉에 송광록·박만순·김세종·장자백·김상국·성창렬·박녹주의 것이 있고, 〈수궁가〉에 송우룡·정춘풍·김찬업의 것이 있고, 〈심청가〉에 전해종·송만갑·진도성의 것이 있으며, 〈흥보가〉에 김도선·박기홍의 것, 〈적벽가〉에 김창록·서성관의 것 등이 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서편제와 동편제의 차이
서편제는 동편제의 고졸(古拙)·소박한 전통적 창법에서 탈피, 가공과 수식으로 소리를 만드는 기교파이다. 동편제가 선천적인 음량에 의존하는 데 비해, 서편제는 후천적인 노력이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서편제의 특징은 소리가 늘어지고 잔가락이 많다는 점이다. 기교를 부리자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편제에 비해 소리가 늘어지고 템포가 늦어지며, 가락도 대마디 장단의 맛은 없어지고 잔가락이 많이 끼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소리에 여유가 있어 발림이 풍부해지기 때문에 연기면에서도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
조태일의 시 '서편제'
북채를 잡아라 오래비여,
송홧가루 하염없이 내 귓가를 스치는
남도 황톳길 터벅터벅 걸어
소리재에 올랐다.
산마루마다 걸린 붉은 노을은
누구의 노래더냐 누구의 불타는 마음이더냐.
어서 북채를 잡아라.
눈뜨고는 차마 여기 이를 수 없어
오래비여, 나 눈을 감았다.
내 소리 이제 이 산천에 묻고
또 다른 소리를 찾아
이 몸 이 산천 저 산천 떠돌리라.
어서 북채를 잡아라.
요점 정리
지은이 : 조태일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애상적, 한스러움
표현 : 한(恨)의 정서
제재 : 소리꾼의 삶. 영화 "서편제"
주제 : 소리꾼의 예술과 삶
출전 :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1995)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소설을 대본으로 만든 영화를 다시 시로 쓴 작품으로, 시인 특유의 간절한 절실함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송화를 화자로 하여 오래비에게 북채를 잡으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시상이 전개된다. 남도 황톳길을 터벅터벅 걸어 오른 소릿재는 눈을 뜨고는 차마 이를 수 없는 곳이다. 소리를 위해 눈을 잃고서야 소릿재에 오른 송화는 산마루에 걸린 붉은 노을처럼 불타는 마음으로 오래비의 북 장단에 어우러져 한바탕 소리를 한다. 그리고는 그 소리를 이내 묻어 버리고 또 다른 소리를 찾아 떠나고자 한다. 소리 찾아 떠도는 송화의 한 맺힌 소리 인생을 통해 소리꾼의 예술과 삶을 보여 주고 있다. 1연에서는 송화가 소릿재에 온 사실을, 2연에서는 송화가 눈이 멀게 된 사실을, 3연에서는 소리를 찾아 끝없이 유랑할 것임을 노래하고 있고, 이것이 바로 장인 정신의 발로라고 볼 수 있고,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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