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해설
by 송화은율서울, 1964년 겨울 해설
김승옥
작가 : 김승옥(金承玉, 1941 - )
일본 대판(大阪, 오사카) 출생. 1945년 귀국. 전남 순천에서 정착하여 삶.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 졸업.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동인지 산문시대에 참여함. 1965년에 「서울, 19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 수상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 1회 이상문학상 수상. 대표작에 「무진기행」(1964)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자기 존재 이유의 확인을 통해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인 자기 도피를 극복해 보려는 작가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한국 소설의 언어적 감수성을 세련시킨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평자들은 흔히 그를 내성적 기교주의자의 대표적 작가로 내세운다.
작가 2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였다. 전남 순천에서 성장하였고,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1962년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 「생명 연습」이 당선됨으로써 등단했다. 대학 재학시 김 현등과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환상수첩」(1962), 「건」(1962),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1963) 등의 단편을 동인지에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제, 치밀한 기법과 소설적 구성, 개인의 내면 세계에 대한 추구 등이 평단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1960년대에는 「역사(力士)」(1964), 「무진기행」(1964), 「서울,1964년 겨울」(1965), 「염소는 힘이 세다」(1966), 내가훔친 여름」(1967) 등의 단편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서울,1964년 겨울」로 제 10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들을 통해 김승옥은 1960년대적인 특징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되었다.50년대 작가들이 견지하고 있었던 엄숙주의, 교훈적인 태도 도덕적 상상력 등을 뿌리째 흔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것을 동시대의 비평가들은 ‘감수성의 혁명'이라 불렀다.
그의 문학적인 특징은 대표작이라 할 만한 「무진 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에서는 물론이고 「생명 연습」, 「야행」, 「역사」 등에서 고루 찾아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비정상적인 것, 비윤리적인 것, 비상식적인 것들에서 생명력과 빛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빚을 향해 속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강한 충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그 충동에 자신을 온통 맡겨버리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빛은 단지 한번의 반짝임으로 족한 것이다. 그들은 그 빛의 기억만을 가진 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철저한 현실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승옥의 인물들은 반짝이는 빛의 내면과 속된 일상의 의관을 동시에 지닌 역설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빛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상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타락한 윤리와 무책임성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1960년대에만 유효할 수 있다.7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왜곡된 근대화의 모순, 그리고 이에 대한 응전 방식으로 발화하는 새로운 엄숙주의 앞에서는 무력하게 좌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승옥을 두고 60년대적이라 함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 는 「서울의 달빛 0장」(1977), 「우리들의 낮은 울타리」(1979) 등을 간헐적으로 발표하면서 절필 상태에 들어 갔다. 그는 「서울의 달빛 O장」으로 1회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재기의 기대를 모았으나, 이후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집으로는 『서울,1964 년 겨울』(1966)과 『1960년대식』(1976), 『염소는 힘이 세다』(1980) 등이 있다.
등장 인물
나 : 화자(話者). 25세로 고졸, 구청 병사계에 근무함. 확실한 주관이 없는 회색적인 인물.
대학원생 안 : 25세인 부잣집 장남. 지식인이며 염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
아저씨 : 서적 외판원. 30대의 남자.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대표하는 인물.
구성
발단 : 1964년 겨울, 서울 거리에 밤이 되면 나타나는 선술집에서 작중 화자인 '나'와 '안'이라는 사람은 우연히 만나서 말을 주고 받게 된다. '나'는 시골 출신으로 지금은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고, '안'은 대학생이며 부잣집 장남이다. 서로에 대해 조금만 알고 있는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파리와 꿈틀거림... 그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전개 : '나'와 '안'이 자리를 옮기려 일어설 때 한 사내가 그들에게 말을 건네온다. 그 사내는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 대여섯 살 짜리 사내였고, 그는 힘없는 음성이지만 아주 간절하게 그들과 동행하기를 원했다. '안'과 '나'는 그 사내와 동행하는 것이 유쾌한 예감이 들지 않았지만 승낙한다. 사내의 제의로 '안'과 '나'는 중국집에 들어가게 되고 사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은 서적 외판원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나 오늘 아내가 급성 뇌막염으로 죽었다는 것. 그리고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어서 아내의 시체를 4천원 받고 팔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안'과 '나'에게 아무래도 오늘 이 돈을 다 써버리고 싶으니 그 때까지만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안'과 '나'는 사내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위기 : 중국집을 나와서 셋은 택시를 타고 소방차의 뒤를 따라 불구경에 나선다. 그 곳에서 사내는 바람에 휘날리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히고 갑자기 '아내'라고 소리치며 쓰다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길 속으로 던져버린다. '나'와 '안'은 이제 약속이 끝나 돌아가려 했지만 사내는 혼자 있기 무섭다며 오늘 밤만 같이 지내 달라고 부탁한다.
절정 : 셋은 여관에 들기로 한다. 사내는 같은 방에 들자고 했지만 '안'의 주장으로 각각 다른 방에 투숙하게 된다. 사내는 마지막까지 혼자 있기가 싫다며 모두 같은 방에 들기를 원하지만 '안'의 강경한 태도에 '나'와 사내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 들어간다.
결말 : 다음날 아침, 사내는 죽어있었고 '안'과 '나'는 서둘러 여관을 나온다. '안'은 사내가 죽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도리가 없었노라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혼자 두는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스물 다섯 살짜리이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음에 동의하면서 헤어진다. '나'과 '안'은 헤어져 버스에 오른다.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안'의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인다.
줄거리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오뎅과 군 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얼어 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트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하략)
1964년 겨울, 서울의 어느 포장 마차 선술집에서 안씨라는 성을 가진 대학원생과 ‘나’는 우연히 만난다. 우리는 자기 소개를 끝낸 후 얘기를 시작한다. 우선 ‘파리(Fly)’에 관한 이야기다. 파리를 사랑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우물거렸고, 나는 날 수 있는 것으로서 손 안에 잡아본 것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스스로 답한다. 추위에 저려드는 발바닥에 신경쓰이는 나에게 그는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의기양양해져 옛 추억을 떠울리며, 여자 아랫배의 움직임을 이야기하고, 그는 꿈틀거리는 데모를 말한다. 그리고 대화는 끊어지고 만다.
다른 얘기를 하자는 그를 골려주려고 나는 완전히 자신만의 소유인 사실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한다. 즉 평화 시장 앞 가로등의 불꺼진 갯수를 이야기하자 그는 서대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의 숫자를 이야기한다.
나는 안형을 이상히 생각한다.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원생인 사람이 추운 밤, 싸구러 술집에 앉아 나같은 친구나 간직할 만한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스러운 것이다. 안형은 밤에 거리로 나오면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술집에서 나오려 할 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서른 대여섯 살짜리 사내가 우리 쪽을 향해 말을 걸어와 우리와 함께 어울리기를 간청한다. 힘없이 보이는 그 사내는 저녁을 사겠다고 하며 근처의 중국요리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자신의 아내가 급성뇌막염으로 죽었고 그녀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직업은 서적 월부 외판원이었다는 것, 옛날에 부인과 재미있게 살았다는 것 등을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며 말을 계속한다. 나와 안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만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사내는 아내의 시체를 판 돈을 모두 써버리고 싶어했고, 우리에게 돈이 다 없어질 때까지 함께 있어주기를 부탁한다.
중국집에서 나와 우리는 양품점 안으로 들어가서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하나씩 사고 귤도 산다. 돈의 일부를 써버렸지만 아직도 얼마의 돈이 남아 있다. 그때 우리 앞에 소방차 두 대가 지나갔고, 사내는 소방차 뒤를 따라 가길 원한다. 택시를 타고 화재가 난 곳에 도착해서 불구경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내가 불길을 보고 아내라고 소리친다. 그러곤 남은 돈과 돌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에 던져버린다. 결국 그 돈은 다 쓴 셈이 되었고 우리는 약속한 대로 가려 했지만 사내는 우리를 붙잡는다. 혼자 있기가 무섭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밤만 같이 지내길 부탁하며 여관비를 구하기 위해 근처에 함께 들르길 요청한다. 사내는 남영동의 한 가정집 대문앞에 멈춰 벨을 누른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리며 월부책 값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다. 우리는 거리로 나와 여관으로 들어간다. 여관에 들어가서 우리는 방을 몇 개 잡을 것인가에 대하여 약간의 이견을 갖게 되나 각자 방을 정한다.
다음 날 아침 사내는 죽어 있다. 안과 나는 성급히 거리로 나온다. 안은 그 사내가 죽을 줄 알았다는 것, 그래서 유일한 방법으로 혼자 놓아둔 것이라고 말한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할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제목의 상징성
제목 그대로 1964년 겨울, 서울의 풍경이다. 풍경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서경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1964년 겨울 어느날 서울>이라는 책 속의 명명은 소설 속 상황이 구체적인 하나의 시공간에 국한 되있음을 밝히는 동시에 보편적인 도시인이 처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즉 이는 일종의 반어 또는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과 주제와의 관계
서울은 근대화의 상징이 되는 도시의 전형으로 소의 의식과 무관심이 공간이며 물질만능 주의의 가치관이 우선되는 부정적인 측면을 나타내 주는 공간이다. 1964년이란 시기는 정치적 격변기가 된다. 또 겨울이란 추위와 어둠의 이미지를 갖는 계절을 설정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현실에 적응치 못하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허무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불명명(不命名)의 효과
그들은 이름을 확인하지 않는다. 나와 안만이 서로의 호칭을 위해 성을 밝힐 뿐이다. 이 익명성은 근대적인 도시에서의 인간관계를 표상한다. 어느날 잠깐 만나 관계를 맺고는 다시 헤어지는, 관계의 유지나 발전, 그에 대한 집착은 전혀 없다. 심지어 같이 하룻밤을 지낸 가난뱅이 사내가 자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안은 그 자리를 피할 뿐 다시 만날 기약 같은 것도 없다. 즉 명명을 하지 않는 것은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익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익명성을 나타내는 것들
선술집 : 많은 선술집 중 우연히 들르게 된 곳일 뿐 상호가 있거나 주인의 매력 때문에 혹은 음식 맛이 유달라서 들른 곳이 아니다. 그러기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이다. 그저 지나가다가 한잔하기 위해 임시로 머물렀던 곳이다.
거리 :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광고에 구속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추운 거리에 어깨를 웅크리고 엎드려 있는 거지 앞을 무심히 그 존재를 생각하지도 않고 재빨리 지나쳐 버릴 뿐이다.
화재현장 : 여기서 사람들은 시종 구경꾼으로만 있다. 그들은 그저 불이 오래 타기를 바랄 뿐 화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가로수 밑에서 나누는 대화 : 끝까지 이들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재미 많이 보세요'라는 이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이는 그들이 서로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익명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등장 인물의 성격
‘나’
"안형, 파리를 사랑하십니까?"
"날을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을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손에 붙잡힐 수 있으니까요~"
⇒ '나' 자신을 파리에 비유했다고나 할까... 날고 싶다는 것은 자신의 꿈인 육사에 비유한거 같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구청 병사계라는 직장에서 구속되다시피 하여 살아가는 것을 한숨 어린 목소리에 담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본다면 자유 민주주의라는 체제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산업화에 따른 인간의 획일적이고 물질의 구속을 받는 현대인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을 것같다.
쇠가죽으로 지어진 내 검정구두는 얼고 있는 땅바닥에서 올라오고 있는 찬 기운을 충분히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 단순히 추위 때문에 발이 저려 든다는 걸로 볼 수도 있지만 마음속의 어떠한 고독감이 다시 꿈틀거리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시골에서 처음으로 올라온 청년들의 눈에 가장 부럽고 신기하게 비치는게 무언지 아십니까? 부러운 건 뭐니 뭐니 해도, 밤이 되면 빌딩들의 창에 켜지는 불빛, 아니 그 불빛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고, 신기한 건 버스 칸 속에서 일 센티미터도 안되는 간격을 두고 자기 곁에 이쁜 아가씨가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아가씨들과 팔목의 살을 대고 있기도 하고 허벅다리를 비비고 서 있을 수 있어서 그것 때문에 나는 하루종일 시내버스를 이것저것 갈아타면서 보낸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날 밤엔 너무 피로해서 토했습니다만......"
⇒ 고향 탈출에 성공한 '나'의 무직자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권태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나'의 꿈틀거림은 이것이다. 시간(삶)의 무의미 속에서 '나'는 접촉을 통한 고독감과 권태를 벗고 싶었고, 피로해서 토할 만큼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만 했을 만큼 '나'에게는 중요했던 것 같고 어떠한 현실에서 몸부림을 치는 '나'의 소극적 자세도 보인다.
"...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 젊은 여자의 아랫배의 움직임을 '나'는 단순한 호흡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위치로 보고 있다. 그만큼 '나'는 외로운 존재였다.
"아니, 음탕한 얘기가 아닙니다."
⇒ '나'의 꿈틀거림이 음탕하다는 이야기에 '나'는 마음이 상했다.
'나'에게는 신성한 움직임 이였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보호하고 픈 '나'의 모습이다.
나는 이젠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다소 서글픈 기분으로 생각했다. 결국 그렇고 그런 것이다.
⇒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함에 '나'는 외로움의 슬픈 감상에 빠져있는 듯 싶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나'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공감대를 느낄 수 없음을 깨닫고 허무함에 빠진다.
... 내가 했던 모든 그것에 대한 혐오감 ...
⇒ '나'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서 느끼는 그것이기에 고통은 더하며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버린다.
"의미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난 무슨 의미가 있기 때문에 종로 2가에 있는 빌딩들의 벽돌 수를 헤아리는 일을 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 자신이 하고 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행동은 의미가 없음에도 '나'는 여전히하고 있는 것이다. 무의미를 좇아가는 '나'의 의식이 느껴진다.
나는 그 사내에게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좀 불안했지만 ~
⇒ 조금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나'는 사내에게서 받은 위태로워 보이는 불안감을 떨쳐보려 노력한다.
"어디로 갈까?"라고 나도 그들의 말을 흉내 냈다.
⇒ 목적지를 상실하고 획일화되어 가는 '나'의 모습이다.
불이 붇는 과정을 그 많은 불 구경꾼들 중에서 나 혼자만 알고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때 문득 나는 불이 생명을 가진 것처럼 생각되어서 내가 조금 전에 바라고 있던 것을 취소해 버렸다.
⇒ '나'는 단순히 불이 계속 타기만을 원했고 불은 나에게 무의미한 존재이나 소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불이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그것이 소유될 수 없음에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모두 한 방에 드는 게 좋겠지요?", "화투라도 사다가 놉시다."
⇒ '나에게서 사람의 인정을 느낄 수 있다. 사내가 걱정된 마음이 보인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거짓 직업을 쓰고~
⇒ '나'는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는 듯 하다. 아니면 자기 굴레를 벗고 싶어 하던가...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나'는 자신을 잃어가고 익명화 되어간다.
"씨팔 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떡하라는 건지......"
⇒ 회피하고 픈 '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는 반면에도 사내의 죽음을 막지 못한 화도 담겨 있는 듯 싶다.
‘안’
"아니요, 아직까진... ", "없어요, 나도 파리밖에는... "
⇒ '안' 역시 파리는 자기 자신이며, 그 역시 자기 자신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는 그러한 존재이다. 부잣집 아들, 대학원생임에 온갖 자유를 누릴듯 싶으나, 결국은 다시 제약으로 돌아오는 것들이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 '안'은 꿈틀거림의 의미를 알고자 한다.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꿈틀거림을...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건네는 '안'에게서 철학적인 이미지가 느껴진다.
"어떤 꿈틀거림도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도......"
⇒ 여기서 '안'이 말하는 대강의 꿈틀거림을 알 수 있다. 어떠한 체제에 항의하는 의지의 꿈틀거림인 데모처럼 '안' 역시 상황에서 기피하고 벗어나고 싶은 어떠한 욕망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 같다.
"난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가 붉어진 눈두덩을 안경 속에서 두어 번 꿈벅 거리고 나서 말했다.
⇒ '안'의 서글픈 심정이 느껴지고, 짙은 소외감이 다가온다. 거짓말을 나누는 사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러한 감정이 든다면 참 사회는 메마를 것만 같고, '안' 역시 아러한 점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밤거리에 나오면 뭔가 좀 풍부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 생(生)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 난 집에서 거리로 나옵니다. 난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을 느낍니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말입니다... "
⇒ 답답해진 삶에서 벗어나고픈 '안'의 몸부림이 표출되어 있다고나 할까...
'안'은 잃어 가는 자신을 찾기 위해 그렇게 헤매이는 것이다.
'안'의 솔직한 심정이 느껴진다.
"... 낮엔 그저 스쳐 지나가던 모든 것이 밤이 되면 내 시선 앞에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총두리째 드러내 놓고 쩔쩔매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없는 일일까요? ... "
⇒ 벌거벗은 몸... 밤에만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낮에는 잊고 살던 인간의 내면적인 슬픔을 보여주는 듯 싶고, 의미와 무의미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안'의 모습이 떠오른다.
"김형과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서 같은 지점에 온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지점이 잘못된 지점이라고 해도 우리 탓은 아닐거예요."
⇒ 기계적인 삶의 윤회성 속에서 서로의 의지에 의해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잘못이 아님을 사회에 회피하고 , 어찌보면 인간적인 연대성을 그리워하는 '안'의 바램이 담겨 있는 듯 싶다.
안은 일이 좀 이상하게 되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
⇒ '안'은 사내와의 만남을 탐탐치 않게 여기고 있고, 여기서 마음을 닫고 있는 '안'의 마음의 문이 보인다.
안은 도망 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 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 `안'은 사내의 불행에 따분한 감정만을 갖고 있는 듯 싶다.
"어디로 갈까?" 안이 말하고
⇒ 목적지를 상실한고 획일화 되어가는 `안'의 내면을 보여준다.
"안됩니다. 소용없습니다."
⇒ 죄의식과 불안에 떨고 있는 사내의 불행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안'의 냉담한 태도가 보인다.
"...저 화재는 김 형의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고 이 아저씨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 돼버립니다. 그러나 화재는 항상 계속해서 나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난 화재엔 흥미가 없습니다..."
⇒ `안'이 화재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안만의 소유가 아닌 불을 보고 있는 모두의 것이므로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안'의 소유하려는 소유욕과 더불어 이기적인 면도 보이고 있다.
"...화재는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니라 화재는 오로지 화재 자신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난 화재에 흥미가 없습니다..."
⇒ `안'이 다시 이야기를 바꾼다. 화재에 흥미가 없는 진짜 이유는 화재 자신의 것이기에 자신이 소유하고 싶어도 그 영역을 침해 할 수 없기에 흥미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 듯 싶다. 여기서도 소유욕과 이기심이 느껴지나 화재를 소유하지 못하는 `안'의 안타까운 심정도 함께 느껴진다.
"결국 그 돈을 다 쓴 셈이군요...자, 이제 그럼 약속이 끝났으니 우린 가겠습니다."
⇒ 계약(약속)에 의해 이루어져 가는 인간 관계를 엿볼 수 있었고 돈이 사라지자 약속이 끝났다면 돌아서는 `안'의 태도에서 냉담함이 느껴진다.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 끝까지 `안'은 사내의 불행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차가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역시...""난 그 사람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 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 이였습니다."
⇒ `안'은 사내의 절망이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했으나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불행 역시 `사내'의 것이기에 자신의 흥미는 잃어가고 끝까지 개입하지 않는 냉담함이 느껴진다.
"김형,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두려워집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 `안'의 두려운 심정이 느껴진다.
스물 다섯 짜리의 삶이라 하기에 너무 무미건조하고 삶의 목적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이 느끼는 허무함과 고독감을 `안'은 느끼고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 `안'의 무덤덤한 표정 속의 생각...자신이 놓쳐버린 일들은 다시 되새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치 우리에게 그런 자세를 요구하는 듯 싶다.
‘외판원’
"미안하지만 제가 함께 가도 좋을까요? 제게 돈은 얼마 있습니다만..."
⇒ 같이 동행을 요청하는 걸로 보아 `나'와 `안'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만두겠습니다."
⇒ `안'과 `나'가 "먹었습니다." "혼자하죠"라는 말에 선뜻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말한걸로 보아 꼭 저녁을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 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안'과 `나'에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것을 털어 놓으려는 심정이 엿보인다.
"네,사양 마시고" 그가 처음으로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돈을 써 버리기로 결심했으니까요."
⇒ 자살을 생각하고 시체 판매 대금을 다 써버리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돈을 다 써버리기로 결심한 부분에서는 아내 시체를 팔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내의 모습도 보인다.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는데요."
"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 선술집에서 `안'과 `나'에게 끼여 든 이유가 아내의 죽음을 얘기할 말벗이 없어서 였음을 알 수 있다.
"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친정이 대구 근처에 있다는 얘기만 했지 한번도 친정과는 내왕이 없었습니다. 난 처가집이 어딘지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 재작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사람사이의 우연성이 보인다.
그리고 처가 집이 어딘지 모른다는 부분에서 가장 가까운 부부사이의 황당함이 보인다.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 여기서 자신의 고통을 `안'과 `나'에게 같이 분담해 달라는 요청의 자세가 보인다. 따라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남에게 의탁하는 모습에서 나약한 성격이 보여진다.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 아내의 시체를 판 죄책감과 후회하는 모습이 보인다.
"기분 나쁜 애길 해서 미안합니다. 다만 누구에게라도 얘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는 오늘 저녁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요."
⇒ 누구에게라도 얘기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는 말에서 자신을 잘 드러 내려하지 않는 `안'과 `나'에 비해서 이 사내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표출하려는 성격이 보인다. 그리고 한 가지만 의논해 보고 싶은데~ 부분에서 위에서처럼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고 분담할 것을 `안'과 `나'에게 간청하고 있다.
우리와 만난 후 처음으로 웃으면서 그러나 여전히 힘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사내는 한쪽 눈으로 울고 다른 쪽 눈으로 웃고 있었고...
⇒ `안'과 `나'와 함께 돈을 쓰면서도 한편으론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슬퍼하고 있다.
"넥타이를 골라 가져. 내 아내가 사주는 거야." 사내가 호통을 쳤다.
"아내는 귤을 좋아했다." 고 외치며 사내는 귤을 벌여놓은 수레 앞으로 돌진한다.
"세브란스로!" 라고 말했다.
⇒ 여전히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내 아냅니다." 하고 사내는 환한 불길 속을 손가락질하며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 불길을 보면서 아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아내가 막 흔들고 있습니다. 골치가 깨질 듯이 아프다고 머리를 막 흔들고 있습니다. 여보...."
⇒ 골치가 깨질 듯이 아픈 것은 뇌막염의 증세인 걸로 보아 사내(외판원)은 아내가 죽기전 뇌막염으로 고통스러워 했던 모습을 불길 속 아내의 모습 속에서 찾고선 슬퍼하고 여전히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하얀 것이 우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곳에서 불타고 있는 건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 사내가 나타난 후부터 `나'와 `안'은 사내를 부담스러워 하고 도망칠 궁리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사내는 그것을 알았는지 일부러 화재가 난 곳을 찾아가 돈을 버린다. 이 부분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미안해하는 사내의 모습이 드러나고 돈을 던진 것은 당시 사회의 허위성에 대한 사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분노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 나 혼자 있기가 무섭습니다." 그는 벌벌 떨며 말했다.
⇒ 아내를 잃고 심한 고독감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함께 갈 수 없겠습니까? 오늘 밤만 같이 지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잠깐만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 "오늘 밤만 같이 있어 주십시오."에서 `오늘 밤' 이라고 한 건 오늘 밤에 혼자있게 되면 일어나게 될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다.
"월부책값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월부책값...." 사내는 계속해서 흐느꼈다.
사내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사내는 가끔 "여보"라고 중얼거리며 오랫동안 울고 있었다.
⇒ 사내의 나약한 성격을 알 수 있다.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 "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 고독에 대한 사내의 저항을 알 수 있다.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의 대화)
⇒ 사내는 결국 자신의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였다.
여기서 사내가 마치 아내에게 속죄하듯 자살을 한 것으로 보아 끝까지 죄책감과 고독감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세 등장인물의 비교
나와 안은 일상적인 삶에 대해 지독한 권태에 빠져있다는 점, 권태롭고 익명적인 도시 생활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도 상통한다. 하지만 이러한 익명성과 권태, 무의미성을 더 철저히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안'이다. 나 역시 익명의 관계에 매우 익숙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스스로 의식적이지는 않다. 반면 안의 경우 자신의 태도가 사물을 관조하는 것일 뿐임을 자각하고 있고, 또 그런 의미 여부를 두고 고민한다. 또한 '안'은 가난뱅이의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여관 방에 같이 들자는 사내의 뜻을 물리치고 각자의 방으로 들고는 사내의 자살을 방조한다. 다음날 사내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변명을 늘어놓는 무책임함을 보인다. 반면 불쌍한 사내는 두 사람을 위안으로 삼고 싶었던 듯하다. 즉 자기 아내의 시체를 팔았다는 아니, 그보다 자신이 돈이 없어서 아내를 죽였다는 그 죄책감을 타인을 통해 구원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 사내는 아내의 죽음으로 고통받았고 또 그 고통으로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불안에 떠는 나약한 사람인 것이다.
성년식 소설의 관점에서 조명한 글
미성숙한 젊은이 : 나와 안은 25살밖에 안된 청년이다. 이들은 이 세상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자신의 욕망을 이야기로서 표현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겨우 말 장난에 불과해 보인다.
충격적인 경험 : 가로수 밑에서 그들이 걸음을 멈추고 나눈 이야기는 -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 우리는 이제 겨우 스물 다섯 살입니다." -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겪은 일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뭔가 깨달은 것이 많았음을 뜻한다.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는 김과 안은 '자살' 이라는 사건을 직접 목격함으로서 서울의 차가운 밤거리에서 환멸에 가득찬 인생을 새삼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완적 성숙 : 이 글에서 이 세 사람은 욕망과 좌절, 회의와 방황 속에 살고 있는 도회지의 젊은이를 대표한다. 그리고 사내는 절망과 고통에 묻힌 나약한 인간이다. 즉 이들은 이 외판원 사내를 통해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튼튼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플롯과 주제의 연관성 : 反플롯의 플롯 - 절망과 그 극복 양식
전통적인 의미에서 소설의 플롯은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중에서 그 일부를 선택하고 해석하여 그 관계를 구축하고 그들 사이에서 나름의 질서를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되어왔다. 세상 만사에 우연한 것은 없다는 이 신뢰는 인간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의지의 소산이다. 즉 이러한 플롯은 소설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이 절망 극복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1964년 겨울>은 마치 전통적인 플롯의 인과성의 조화로운 질서를 파괴하는 反소설의 플롯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우선 작품을 이루고 있는 많은 작은 단위 사건들이 서로 관계성이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 점은 소설 인물들의 상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건은 우연하게 튀어나올 뿐 필연성은 전혀 없다. 그런데 이러한 反플롯적 플롯이 바로 소설 주제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속성이 단절된 삶의 절망적 상황을 바로 인과성이 파괴된 플롯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플롯은 새사람의 절망적인 상황을 임시로 마련된 겨울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나서 별로 의미없는 이야기와 짓거리로 시간을 죽여 먹다가 다시 헤어지는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또 그 극복 상황을 전통적 소설 양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소설양식을 통해 모색했다. 결국 작가는 이런 反플롯적 플롯을 통하여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의식을 표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고립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건은 없이 우연한 만남을 이룬 세 사나이의 비현실적 대화의 행동을 통해 전망없는 세계에 처한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소위 4.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문체가 인간 관계의 단절상을 극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반어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자아로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현대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의도된 어색함의 상황’에 담아 보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를 60년대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대표적) 개인이다.
감상의 길잡이
이 소설은 '나'와 '안'이라는 동갑내기의 선술집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지만 결코 자신의 진심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 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고 말구요. 시체의 아랫배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요. 여하튼...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 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이 두 사람에 비해 삼십 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고뇌와 슬픔을 공 유(共有)하기를 바라나 '나'와 '안'은 받아 주지 않으며 부담스러워한다. 세 사내가 여관으로 와 서도 각각 다른 방을 쓰게 되고, 또 안씨의 경우 외판원 사내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이를 말리지 않은(못하는) 사실에서 인간적 유대가 없는 소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1964년 겨울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울 1964년 겨울>에 등장하는 세 명의 도시인들은 자아를 통합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잃어버린 인간들로 대표된다.
서울, 그것은 도시의 전형이다. 근대화의 상징으로서의 도시는 긍정적인 측면 못지 않게 부정적인 측면을 집약하고 있는 공간인데, 예를 들면 공동체 의식의 붕괴로 인한 소통의 단절과, 소외의식 그리고 무관심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모습이라든지, 물질만능의 가치관이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1964년. 이 연대는 좌절된 혁명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제 3공화국이라는 민간 이양된 군사 정권이 떳떳하게 민주주의를 압살하기 시작한 해이다. 정치적 격변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산업화의 논리가 전통적 사회구조인 농촌의 붕괴를 초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겨울, 겨울은 어둠과 똑같은 이미지를 지니며 동면의 계절로 기억되면서 '서울과 1964년'을 포괄하는 폭넓은 암유로 쓰인다.
화자이면서 가장 평균적인 소시민의 전형을 보여주는 구청 병사계 직원인 '나'. 부잣집 장남이지만 염세주의자인 대학원생 '안' , 죽은 아내의 시체를 대학병원에 팔고 그 날 밤 그 돈을 다 쓰려고 벼르고 있는 중년의 월부 책 수금원.
이들은 평균적인 소시민이며, 자신들의 앞날이나 역사에 대한 특별한 희망도 전망도 지니지 않는 무 지향적 인물들이다.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골몰하지만 그 자세는 과장되어 있고, 주제들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것만이 그들이 유일한 관심거리이며, 무료하게 주어진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묘안으로 부각된다. 그래서 그들이 대화에 몰두할수록 서로 간에 공통된 화제가 없다는 것, 그들 사이에 소통회로가 차단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된다. 그들은 결국 단절된 자의식의 세계 속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서지 못한다. 그들은 아무런 사건에 연루되어 있지 않으므로 아무런 갈등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들 존재가 이미 서울과 1964년 과 겨울이 빚어낸 갈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서로 알지 못하던 세 인물이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는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구청 병사계 직원인 '나'가 서술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이 소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인물을 내세워 그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전반부에서는 서술자의 직접 서술을 통하여, 이 세 인물의 직업, 외모 , 습관, 성장 환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반부에서는 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인물의 특징이 제시되고 있으며, 사내의 등장 이후인 후반부에서는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서 성격이 제시되고 있다.
나와 대학원생 안씨의 대화는 주인공의 내면적 고뇌를 보여 주고 있다. 대학원생 안씨가 말하는 '꿈틀거림'이라는 표현은 허위에 가득찬 일상적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만이 아는 사실'을 주고받는 이들의 대화 속에서 현대 사회의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모든 것이 획일화되고 개인의 고유성이 사라져 버리는 익명성의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참된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이들의 갈망이,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잡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적 월부 판매원인 사나이의 죽음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삶이 허위에 가득 찬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데서 예정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인간이며 건전한 생활인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 그의 아내가 단지 사천 원밖에 갑싱 나가지 않는다는 것, 더욱이 아내가 학생들의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 사용된다는 사실을 통해서 그는 존재의 허상과 삶의 무상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 사내가 여관으로 와서 각각 다른 방을 쓰게 되고, 또 안씨의 경우 월부 판매원 사내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음에도 이를 말리지 못하는 사실에서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소외를 발견하다. 함께 술을 마시고 대화를 통해 서로의 벽을 허물려고 노력해도 끝내는 단절되어 있는 인간 관계를 극복할 수가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앞둔 사람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대화들은 완전한 거짓말, 또는 극화된 언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실용적인 대화에서 벗어나 말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곳곳에서 단절되고 있다. '서로 할 얘기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침묵 속으로 떨어져서''그때 우리의 대화는 또 끊어 졌다.' 등등의 진술에서 볼 수 있듯이. '나'와 '안' 사이의 의사소통이 이처럼 두절되는 이유는 그들이 각기 외로운 섬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는 결국 고독한 자기 내면으로 되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30대의 사내는 두 젊은이를 자기 설움을 들어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같은 방에서 자라고 말하는 것도 의로움과 고독함을 호소하자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젊은이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역이요, 무의미한 노고에 불과하다.
호소해야 할 고독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 사내의 그 호소의 길이 막힌 데서 오는 좌절감 때문에 결국 30대 사내는 자살을 해 버린다.
감상의 길잡이
「서울,1964년 겨울」은 1965년 6월 『사상계』147호에 발표하여 제10회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 소설이다.이 작품은 1950년대의 전쟁 문학이 갖는 엄격한 교훈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실상을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깨닫는 과정을 일인칭 주인공시점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964년 겨울, 얼어붙은 황무지와 같은 서울은 시골에서 올라온 주인공이 부닥쳐야만 하는 현실이고, 그 해 겨울은 차갑고 냉혹한 삶에 대해 자각하게 하는 시간의 한 지점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연주의적 문맥 속에서 존재의 인식 과정을 치열한 언어로 포착한 이 작품의 무대 역시 차가운 서울 거리이다.
작중 화자인 ‘나’는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는 스물다섯 살 난 시골 출신의 주인공이다.‘나’는 차가운 거리의 선술집에서 ‘나’와 동갑으로 부잣집 장남이며 대학원생인 ‘안’이라는 사람, 마누라 시체를 병원에다 팔고 심한 죄책감과 자의식에 빠져 있는 서른 대여섯 살의 월부 책장수 사내를 만난다. 그들이 만나 나누는 대화는 고작 할 일 없는 사람이나 눈여겨보고 다님직한 일들에 관한 것 아니면, 얼빠진 사람들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시한 내용들이다.
그들은 새까맣게 구운 참새를 입에 넣고 씹으며 날개를 의식했던지 날지 못하고 잡혀서 죽는 ‘파리’에 자신들을 비유했다. 주인공 김은 이미 삶의 현실에 욕망과 좌절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맛본 후였기 때문에 감각이 다소 둔해졌다. 부잣집 아들인 ‘안’ 역시 밤거리에 나온 이유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이 밤거리를 헤매는 것은 그들의 지각 속에 아직도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미소를 짓는 ‘예쁜 여자’가 아니면 명멸하는 소주 광고 네온사인들에 부닥쳐 보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길을 나설 때 서른 대여섯 살의 사내가 불쑥 다가와 합세하기를 간청한다. 그 사내는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사주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은 그날 낮에 급성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아서 얻은 돈이라며 그것을 완전히 써버릴 때까지 같이 있어 달라는 것이었다. 중국집에서 나오는데 마침 소방차가 지나갔다. 그들은 택시를 타고 그 뒤를 따라 불구경을 나선다. 사내는 불길을 보더니 불 속에서 아내가 타고 있는 듯한 환각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자기 아내라고 소리치며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 속으로 던져 버린다. 불구경이 끝난 후, ‘안’과 나는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한 그 사내와 같이 여관으로 가서 밤일 세우기로 한다. 각각 딴 방을 썼는데 이튿날 아침, 일어나보니 사내는 죽어 있었다.‘안’과 나는 도망치듯 여관을 빠져 나왔다.
‘안’은 그 사내가 죽을 줄 알았지만 도리가 없었으며, 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혼자 두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참혹한 죽음의 광경을 보고 스물다섯 살짜리이지만, ‘이제 너무 많이 늙었다’는 말을 되씹으며 헤어진다.
이 작품은 전혀 무관한 세 사람이 선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세 인물 유형은 각기 다른 양태의 삶을 살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의 중심을 잡아줄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이 세 인물을 통해서 작가는 새로운 삶의 윤리를 마련하여 남과 다른 자기 세계를 보여 주고자 했으나, 현실과 내적 연관을 갖지 못한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인식 태도로 말미암아 결국 등장 인물들은 자기 세계를 잃어 버리게 된다. 이를테면, 영웅적인 인생을 꿈꾸고 사관학교에 응시했다가 실패한 주인공이 간직한 막연한 꿈, 부잣집 아들 ‘안’이 성적인 욕망을 추구하려는 것, 서른 대여섯 살짜리 사내와 그 아내의 비참한 죽음 등이 끝내 황폐한 현실과 만나게 된다. 특히 사내의 죽음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경제적 압박 때문이다. 그 사내가 화재 난 곳을 찾아가 구경하고 돈을 버리는 행위 역시 허위적이고 비인간적인 병든 사회를 불태우기 위한 욕망이기도 하다. 이러한 희망과 인간 존재의 의미는 도시의 현실에 의해 비참하게 희생된 사내의 죽음에서 결국 비극적 결말로 끝나 버리고 만다. 또한, 그들의 대화나 행동에는 가치 지향적인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허무 의식과 불안에 휩싸여 방황하는 인간들의 무의미한 삶이나 현실 감각이 퇴화해 버린 사람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들 세 사람은 바로 인간 존재의 실존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해 준 셈이다. 이와 같이 작중 현실에서 이 시대의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작품「서울,1964년 겨울」은 성년식 소설의 한 전형이기도 한다. 성년식 소설이란 등장 인물이 무지의 상태에서 깨달음을 통하여 내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테마로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감상의 길잡이
「서울,1964년 겨울」은 「무진기행」과 함께 김승옥의 대표 단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무진기행」의 무진에 대응되는서울의 풍경이 그려진다. 풍경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서경(敍景) 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조망이다. 1964년 겨울 어느 날 서울이라는 도시--이 구체적인 시기와 지명의 명기는 소설 속의 상황이 단지 구체적인 하나의 시간. 공간에만 국한되는 것임을 드러내놓고 밝힌 것인데, 그러나 오히려 거기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적인 도시인이 처한 상황임을 의미하는 일종의 반어 내지 역설로 읽힌다--의 어느 선술집에서 ‘나'와 ’안', 그리고 가난뱅이 사내 세 사람이 만나 하룻밤을 같이 지낸 이야기인데, 이들의 ‘우연한' 만남부터가 도시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그들은 이름을 확인하지 않는다. 나와 안만이 서로의 호칭을 위하여 각자의 성을 밝힐 뿐이다. 이 익명성이야말로 근대적인 도시에서의 인간 관계를 표상한다. 어느 날 만나서 잠깐 관계를 맺었으나 그 순간이 지나가면 그뿐, 관계의 유지나 발전, 그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은 없다. 심지어 같이 하룻밤을 보낸 가난뱅이 사내가 자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안은 그 자리를 피할 뿐이고, 다시 만날 기약 같은 것도 없다.
그래도 스물다섯으로 동강내기인 나와 안' 은 가난뱅이 사내와 달리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일상적인 삶에 대해 지독한 권태에 빠져 있다는 것, 나아가 권태롭고 익명적인 도시 생활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점에서도 상통한다. 그리하여 자신만이 확인한 낱낱의 사실들의 디테일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주체를 확인하는 놀이에 빠진다. 그러나 낱낱의 사실들의 소유가 어떻게 주체를 형성할 수 있을까 그 놀이는 결국 사물의 틈에 끼어서 가 아니라 사물을 멀리 두고 바라보는 태도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반해서 무의미성이라는 결과로 빠지게 만든다.
이러한 익명성과 권태, 무의미성을 더 철저히 의식하고 있는 것은 나가 아니라 ‘안'이다( 나는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말단 공무원이고, 안은 부잣집 장남으로서 대학원생이다). 나역시 익명의 관계에 매우 익숙해 있음은 분명한데, 그러나 스스로 의식적이지는 않다. 반면 안의 경우 자신의 태도가 사물을 관조하는 것일 뿐임을 자각하고 있고, 또 그런 놀이의 의미 여부를 두고 고민한다. 나아가 안'은 가난뱅이 사내가 자살할 줄을 예상하면서 도 여관에 들어 같은 방에 들자는 사내의 뜻을 물리치고 각자의 방으로 들고는 사내의 자살을 방조한다. 다음날 사내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안은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익명성과 짝을 이루는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의 무책임성이 아닐까
무책임성 속에서 죽어간 사내는 어떤가 서적 외판을 하면서도 아내와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아내가 급성 뇌막염으로 죽자 절망에 빠져 아내의 시체를 해부용으로 병원에 팔고는 그날 밤으로 그 돈을 다 써 버리려는 사내다. 아내와의 행복한 삶이 전부였던 셈인데, ‘급성'(이 역시 근대적 도시의 횡포가 아닐까)이라는 병이 그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셈이다. 사물화된 근대 도시의 면모에 아랑곳없이 작은 일상의 행복에 만족하려다 도시의 횡포에 의해 그 행복을 갑작스레 파괴당하는 가난뱅이 사내, 말단 공무원은 그저 권태로운 생활에서 자신을 확인하고자 하는 또다른 절망적인 몸부림에 빠져 있고, 지식인인 ’안'은 이 모든 사태를 관조하면서도 방관이야말로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근대적 도시환경 속에 처한 인간의, 그리고 인간 간의 소외현상에 대한 한 폭의 풍경화인 셈이다. 풍경화라고 하는 것은 작품이 하룻밤 사이의 몇 개 에피소드만을 지극히 담담한 문제로 그려 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주관적 가치평가적 어조를 전혀 담아내지 않은 이 담담한 문제로 하여 이 작품은 아무런 낙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둣이 냉정하게, 서울이라는 근대 도시 속에서의 황폐한 인간조건을 그려낸다. 근대화라는 미망에 사로잡혀가는 초기 시대에 이미 이러한 인간 조건을 통찰해낸 점에서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는 뚜렷하다. - 도시, 익명성, 권태, 무책임성 - 신승엽 (문학평론가. 아주대 강사)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본격 소설
시점: 1인칭 서술자 시점
배경 : 1964년 어느 겨울 밤, 서울 거리
성격 : 60년대 우리 사회의 전형성을 지닌 인물의 제시를 통해 시대의 문제를 극명하게 제시
표현
전반부는 서술자의 직접 서술, 중반부는 주로 대화, 결말부는 행동을 통해 인물을 구체적으로 제시
전형적인 인물의 행동과 대화를 통한 시대상의 제시
제재 : 연대성이 없는 세 사내가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지낸 일
주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여 만나는 세 인물이 느끼는 삶의 공동성(空洞性)과 파편적 개인성.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의 문제. 주체성 없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
현실의 부적응으로 인한 삶의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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